[빈곤의 늪]① 한 달 51만 원으로 살 수 있을까?

입력 2019.07.18 (06:06) 수정 2019.07.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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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달력 받으면 명절부터 확인해요. 그달에는 밥을 줄여요.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하고, 저녁 한 끼 해먹어요."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밥을 굶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차례상에 고기 한 점, 술 한 잔이라도 올리려면 씀씀이를 더 줄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쪽방촌에서 만난 최빈곤층에게 삶은 그저 '생명을 이어가는 것'.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가치를 둔다는 건 사치와 다름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가구가 직접 쓴 가계부입니다. 열악한 환경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기초생활수급 가구가 직접 쓴 가계부입니다. 열악한 환경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 생계급여 51만 원…허리띠 졸라매도 ‘적자 인생’

빈곤사회연대는 지난해 기초생활수급가구 30곳을 상대로 가계부 조사를 벌였습니다.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로 월 최대 51만 원을 받습니다. 20가구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습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처절합니다. 먼저 식비를 줄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생활, 친구 관계는 끊긴 지 오래입니다. 외로움은 견디면 되지만, 갈수록 약해지는 몸뚱이가 문제입니다.

아파도 제때 병원을 갈 수 없습니다. 한 달에 최소 3,500원에서 최대 33만 원의 의료비를 본인 부담으로 내고 있었습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는 아예 생각지도 못합니다.

30가구 중 13가구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또 한 끼의 밥을 굶습니다. 빈곤의 악순환. 끝을 알 수 없는 터널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 한 해 10조 원씩 투입하는데…소득 양극화 더 심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00년 도입됐습니다. 정부는 약 130만 명의 빈곤층에게 해마다 10조 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혈세를 쏟아붓고 있는데도 소득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올 1분기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25만 원으로 상위 20% 소득인 992만 원과 비교해 8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복지의 척도 ‘중위소득’ 깜깜이 결정”…현실화 촉구

쪽방촌 주민들과 빈곤사회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어제(17일) 청와대 앞에 모였습니다. 복지사업의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을 현실화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중위소득'은 온 국민의 소득에 순위를 매긴 후, 정확히 가운데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을 말합니다. 올해 기준, 1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170만 7천 원, 4인 가구는 461만 3천 원입니다. 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으로 보고, 50%~150%는 중산층, 150% 초과하면 상류층으로 분류합니다.

빈곤층 가운데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는 가구에 대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적용됩니다. 중위소득의 30%가 생계급여, 40%는 의료급여, 44%는 주거급여, 50%는 교육급여로 책정됩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중위소득이 높게 책정되면 빈곤층에게 지원되는 수급비 역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2015년 이전까지 '최저생계비' 체제로 운영되다가, 2015년 7월 이후 '기준중위소득'이란 개념이 도입됐습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빈곤층과 시민단체들은 '중위소득'이 도입된 이후, 상황이 더 열악해졌다고 주장합니다. 2015년 이전에는 연평균 인상률이 3.9%였지만, 제도 개편 이후 2.25%로 더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를 결정짓는 이 '중위소득'이 어떤 근거로, 어떻게 결정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깜깜이'라는 거죠.

내일(19일) 중앙사회보장위원회에서 기준중위소득이 결정됩니다. 회의에 참여하는 정부 위원들 외에는 그 과정을 확인할 방도가 없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은 중위소득 산정 방식의 타당성을 높이고, 당사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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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곤의 늪]① 한 달 51만 원으로 살 수 있을까?
    • 입력 2019-07-18 06:06:09
    • 수정2019-07-18 10:33:50
    취재K
"새해에 달력 받으면 명절부터 확인해요. 그달에는 밥을 줄여요.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하고, 저녁 한 끼 해먹어요."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밥을 굶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차례상에 고기 한 점, 술 한 잔이라도 올리려면 씀씀이를 더 줄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쪽방촌에서 만난 최빈곤층에게 삶은 그저 '생명을 이어가는 것'.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가치를 둔다는 건 사치와 다름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가구가 직접 쓴 가계부입니다. 열악한 환경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 생계급여 51만 원…허리띠 졸라매도 ‘적자 인생’

빈곤사회연대는 지난해 기초생활수급가구 30곳을 상대로 가계부 조사를 벌였습니다.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로 월 최대 51만 원을 받습니다. 20가구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습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처절합니다. 먼저 식비를 줄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생활, 친구 관계는 끊긴 지 오래입니다. 외로움은 견디면 되지만, 갈수록 약해지는 몸뚱이가 문제입니다.

아파도 제때 병원을 갈 수 없습니다. 한 달에 최소 3,500원에서 최대 33만 원의 의료비를 본인 부담으로 내고 있었습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는 아예 생각지도 못합니다.

30가구 중 13가구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또 한 끼의 밥을 굶습니다. 빈곤의 악순환. 끝을 알 수 없는 터널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 한 해 10조 원씩 투입하는데…소득 양극화 더 심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00년 도입됐습니다. 정부는 약 130만 명의 빈곤층에게 해마다 10조 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혈세를 쏟아붓고 있는데도 소득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올 1분기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25만 원으로 상위 20% 소득인 992만 원과 비교해 8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복지의 척도 ‘중위소득’ 깜깜이 결정”…현실화 촉구

쪽방촌 주민들과 빈곤사회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어제(17일) 청와대 앞에 모였습니다. 복지사업의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을 현실화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중위소득'은 온 국민의 소득에 순위를 매긴 후, 정확히 가운데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을 말합니다. 올해 기준, 1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170만 7천 원, 4인 가구는 461만 3천 원입니다. 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으로 보고, 50%~150%는 중산층, 150% 초과하면 상류층으로 분류합니다.

빈곤층 가운데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는 가구에 대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적용됩니다. 중위소득의 30%가 생계급여, 40%는 의료급여, 44%는 주거급여, 50%는 교육급여로 책정됩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중위소득이 높게 책정되면 빈곤층에게 지원되는 수급비 역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2015년 이전까지 '최저생계비' 체제로 운영되다가, 2015년 7월 이후 '기준중위소득'이란 개념이 도입됐습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빈곤층과 시민단체들은 '중위소득'이 도입된 이후, 상황이 더 열악해졌다고 주장합니다. 2015년 이전에는 연평균 인상률이 3.9%였지만, 제도 개편 이후 2.25%로 더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를 결정짓는 이 '중위소득'이 어떤 근거로, 어떻게 결정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깜깜이'라는 거죠.

내일(19일) 중앙사회보장위원회에서 기준중위소득이 결정됩니다. 회의에 참여하는 정부 위원들 외에는 그 과정을 확인할 방도가 없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은 중위소득 산정 방식의 타당성을 높이고, 당사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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