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이라서 하] 비정규직·저임금 일자리 반복…빈곤의 악순환

입력 2019.07.18 (10:30) 수정 2019.07.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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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포기한 이 씨 … 월 110만 원 벌어 50만 원 생계 보태

이 모 씨는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는 어머니를 생각해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그 뒤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취업사이트를 통해 대형 마트 보안요원으로 일했지만 한 달 월급은 110만 원. 하지만 카트를 나르는 등 각종 잡일은 모두 이 씨 차지였습니다. 6개월 정도 일하다가 그만두고 태권도 학원 사범을 했지만, 아이들을 데려오는 등 또 잡무는 이 씨 몫이었습니다. 한 달 월급은 120만 원.


결국, 그만두고 핸드폰 판매점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임금체불을 당했습니다. 몇 달 뒤에 돈을 겨우 받기는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다고 이 씨는 털어놨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또 그만두고, 또 다른 데 가도 반복되는 것 같아요."라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매달 50만 원씩 어머니께 보태드리고 핸드폰 요금 등 자신의 용돈을 벌어 쓰려면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득·자산 1, 2분위 비율 … 고졸 청년 가구가 대졸보다 2배 이상 높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가 발표한 '고졸 청년 근로 빈곤층 사례연구를 통한 정책대안' 보고서를 보면 "고졸자와 대졸자의 격차는 현세대뿐 아니라 이전 세대에서의 격차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은 상태인 (가구주이거나 가구주의 배우자인 경우 제외) 청년을 학력별로 살펴보면 고졸은 5분위 중에 1, 2분위에 속하는 비율이 31.6%로 대졸 12.8%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순자산으로 봐도 격차가 큽니다. 고졸 청년은 1, 2분위에 속하는 사람이 52.5%로 절반이 넘는데 대졸 청년은 24.8%에 불과합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자녀의 대학 진학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대학을 '안' 간 게 아니라 이 씨처럼 '못' 간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87%가 비정규직" …최저임금 미만 비율 고졸 25.6%·대졸 5.8%


이런 격차를 극복하려면 좋은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특성화고 권리연합회 경기지부가 특성화고 졸업생 300명을 추적해 조사해 봤더니 정규직으로 취직한 건 13%에 불과했고 나머지 87%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그리고 60%는 이 씨처럼 임금체불, 추가수당 미지급 등 부당 대우를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추경호 의원실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해보니 2018년 기준으로 고졸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비율이 25.6%로 대졸자가 5.8%에 그친 데 비해 5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질 낮은 일자리에 내몰리는 청년이 대졸보단 고졸이 훨씬 많다는 얘깁니다.

첫 연봉은 30% 차이 … 같은 일 해도 줄일 수 없는 12%의 격차

평균적으로 버는 돈은 어떨까요? 특성화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받는 첫 연봉은 평균 2,097만 원입니다. 대졸 신입사원이 약 3,000만 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30% 차이가 납니다.

기업들이 이른바 '호봉'에 따라서 임금을 주는 경우가 많고 고졸 청년들은 이직이 잦은 편이라 근속연수, 사업장 규모에 성별, 결혼 여부, 노조 여부 등 온갖 다른 변수를 통제하고 객관적으로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가 어느 정도 나는지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대졸 임금을 100으로 보면 고졸은 88로 나타났습니다. 격차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어떤 일을 해도 고졸은 대졸보다 12% 정도는 돈을 덜 받는다는 얘깁니다.

분석 작업을 도와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소득 수준에 따라서 학력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이와 같은 학력 격차가 다시 또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공공기관 채용 확대는 갈등만 조장 … 능력에 맞는 임금 달라"

정부는 지난 1월 '고졸취업 활성화 방안'이란 대책을 내놨습니다. 핵심은 '직업계고 취업률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 '국가직 공무원 9급 채용에서 고졸 비율을 20%까지 늘리겠다', '공공기관에 고졸채용 목표제를 도입하겠다.' 등 단기적인 목표 달성에 급급한 내용이 많습니다.

물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 2022년까지 신산업 학과를 500개, 산업체 근무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1,0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장기적인 목표도 있습니다만 500, 1,000이란 숫자도 왠지 도식적으로 보입니다.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학교별로 학생회가 있는 대학생과는 달리 뿔뿔이 흩어져 있어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모임에서 노조 위원장을 맡은 이은아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은아 위원장은 공무원, 공공기관 채용은 청년들 사이에 갈등만 조장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것보단 특성화고가 취지에 걸맞게 직업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고, 대졸이든 고졸이든 자신의 능력에 맞게 객관적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이 연계되는 마이스터고가 하나라도 더 생기는 게 미래의 고졸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2010년 25개로 시작한 마이스터고는 기계, 전자, 바이오 등 주요 산업별로 지정돼 전문가들의 교육을 받는 덕분에 취업률이 90%가 넘는데 현재 50개에 그쳐 증가 속도가 더딥니다. 지역 교육청의 예산 문제도 있고 기존 특성화고들이 전환을 신청해야 하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고졸 청년들은 거창한 목표보단 이런 작지만 확실한 개선부터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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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8 10:30:56
    • 수정2019-07-18 19:07:43
    취재K
대학을 포기한 이 씨 … 월 110만 원 벌어 50만 원 생계 보태

이 모 씨는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는 어머니를 생각해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그 뒤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취업사이트를 통해 대형 마트 보안요원으로 일했지만 한 달 월급은 110만 원. 하지만 카트를 나르는 등 각종 잡일은 모두 이 씨 차지였습니다. 6개월 정도 일하다가 그만두고 태권도 학원 사범을 했지만, 아이들을 데려오는 등 또 잡무는 이 씨 몫이었습니다. 한 달 월급은 120만 원.


결국, 그만두고 핸드폰 판매점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임금체불을 당했습니다. 몇 달 뒤에 돈을 겨우 받기는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다고 이 씨는 털어놨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또 그만두고, 또 다른 데 가도 반복되는 것 같아요."라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매달 50만 원씩 어머니께 보태드리고 핸드폰 요금 등 자신의 용돈을 벌어 쓰려면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득·자산 1, 2분위 비율 … 고졸 청년 가구가 대졸보다 2배 이상 높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가 발표한 '고졸 청년 근로 빈곤층 사례연구를 통한 정책대안' 보고서를 보면 "고졸자와 대졸자의 격차는 현세대뿐 아니라 이전 세대에서의 격차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은 상태인 (가구주이거나 가구주의 배우자인 경우 제외) 청년을 학력별로 살펴보면 고졸은 5분위 중에 1, 2분위에 속하는 비율이 31.6%로 대졸 12.8%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순자산으로 봐도 격차가 큽니다. 고졸 청년은 1, 2분위에 속하는 사람이 52.5%로 절반이 넘는데 대졸 청년은 24.8%에 불과합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자녀의 대학 진학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대학을 '안' 간 게 아니라 이 씨처럼 '못' 간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87%가 비정규직" …최저임금 미만 비율 고졸 25.6%·대졸 5.8%


이런 격차를 극복하려면 좋은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특성화고 권리연합회 경기지부가 특성화고 졸업생 300명을 추적해 조사해 봤더니 정규직으로 취직한 건 13%에 불과했고 나머지 87%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그리고 60%는 이 씨처럼 임금체불, 추가수당 미지급 등 부당 대우를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추경호 의원실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해보니 2018년 기준으로 고졸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비율이 25.6%로 대졸자가 5.8%에 그친 데 비해 5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질 낮은 일자리에 내몰리는 청년이 대졸보단 고졸이 훨씬 많다는 얘깁니다.

첫 연봉은 30% 차이 … 같은 일 해도 줄일 수 없는 12%의 격차

평균적으로 버는 돈은 어떨까요? 특성화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받는 첫 연봉은 평균 2,097만 원입니다. 대졸 신입사원이 약 3,000만 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30% 차이가 납니다.

기업들이 이른바 '호봉'에 따라서 임금을 주는 경우가 많고 고졸 청년들은 이직이 잦은 편이라 근속연수, 사업장 규모에 성별, 결혼 여부, 노조 여부 등 온갖 다른 변수를 통제하고 객관적으로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가 어느 정도 나는지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대졸 임금을 100으로 보면 고졸은 88로 나타났습니다. 격차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어떤 일을 해도 고졸은 대졸보다 12% 정도는 돈을 덜 받는다는 얘깁니다.

분석 작업을 도와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소득 수준에 따라서 학력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이와 같은 학력 격차가 다시 또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공공기관 채용 확대는 갈등만 조장 … 능력에 맞는 임금 달라"

정부는 지난 1월 '고졸취업 활성화 방안'이란 대책을 내놨습니다. 핵심은 '직업계고 취업률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 '국가직 공무원 9급 채용에서 고졸 비율을 20%까지 늘리겠다', '공공기관에 고졸채용 목표제를 도입하겠다.' 등 단기적인 목표 달성에 급급한 내용이 많습니다.

물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 2022년까지 신산업 학과를 500개, 산업체 근무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1,0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장기적인 목표도 있습니다만 500, 1,000이란 숫자도 왠지 도식적으로 보입니다.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학교별로 학생회가 있는 대학생과는 달리 뿔뿔이 흩어져 있어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모임에서 노조 위원장을 맡은 이은아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은아 위원장은 공무원, 공공기관 채용은 청년들 사이에 갈등만 조장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것보단 특성화고가 취지에 걸맞게 직업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고, 대졸이든 고졸이든 자신의 능력에 맞게 객관적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이 연계되는 마이스터고가 하나라도 더 생기는 게 미래의 고졸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2010년 25개로 시작한 마이스터고는 기계, 전자, 바이오 등 주요 산업별로 지정돼 전문가들의 교육을 받는 덕분에 취업률이 90%가 넘는데 현재 50개에 그쳐 증가 속도가 더딥니다. 지역 교육청의 예산 문제도 있고 기존 특성화고들이 전환을 신청해야 하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고졸 청년들은 거창한 목표보단 이런 작지만 확실한 개선부터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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