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착륙 50주년]② 아프로노트(Afronauts), 잠비아 우주인을 아시나요?

입력 2019.07.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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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토속 음악이 흐르면서 우주복을 입은 흑인 소녀가 등장한다. 머리에 투명한 우주 헬멧을 쓰고 비장한 얼굴로 달을 쳐다보는 소녀.

2014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된 '아프로노트'(Afronauts)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아프로노트(Afronauts)는 아프리카(Africa)와 우주인(astronaut)의 합성어로 아프리카 우주인을 뜻한다.

아프리카에 우주인이 있었다고? 믿기지 않는 이 내용은 50년 전 실제로 있었던 잠비아의 우주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1960년대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구소련에서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고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냈다. 과학기술이 우주의 국경을 넘던 이때, 지구 반대편의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지들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해 새 나라를 건설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중남부의 나라, 잠비아에서 한 교사가 아프리카의 우주 프로젝트를 꿈꿨다. 에드워드 마쿠카 은콜로소(Edward Makuka Nkoloso)는 미국이나 소련보다 먼저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실험에 참가한 우주인 후보는 당시 17세의 소녀와 두 마리의 고양이였다. 은콜로소는 먼저 사람을 달에 보내고 이에 성공하면 화성까지 우주인을 보낼 계획이었다.

잠비아의 우주 계획 기사와 잠비아 우주프로젝트 책임자 은콜로소잠비아의 우주 계획 기사와 잠비아 우주프로젝트 책임자 은콜로소

은콜로소는 수도에서 11km 떨어진 버려진 농장을 개조해 훈련시설을 만들고 강도 높은 우주인 훈련을 실시했다. 우주 훈련이라는 것이 '드럼통 속에 들어가 언덕에서 구르기', '타이어 공중그네 타기' 등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물론 그때의 서방 국가 시각으로 봐도 - 다소 황당하지만, 우주의 무중력 공간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소녀를 달에 보낼 로켓도 함께 제작했다. 잠비아 첫 대통령의 이름을 딴 로켓 '디-카루'는 길이 3m, 지름 2m의 원통형으로 상당히 조악한 수준이었으나 잠비아 최초의, 어쩌면 아프리카 최초의 로켓이다. 그는 잠비아의 독립기념일인 1969년 10월 24일에 맞춰 로켓을 발사하려고 했으나 안전상의 문제로 계획은 취소됐다. 그는 700만 파운드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며 유네스코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것으로 아프리카 최초의 우주 계획은 막을 내렸다.


잠비아 최초의 우주인과 로켓을 재해석한 사진들(2012년, 사진집 ‘디 아프로노트’)잠비아 최초의 우주인과 로켓을 재해석한 사진들(2012년, 사진집 ‘디 아프로노트’)

백인들의 잔치였던 '달 착륙'에서 잠비아의 무모한 도전은, 무모해서 그 의미가 있다.
2012년 다큐멘터리 작가인 크리스티나 드 미들(christina De Middel)이 '실제 있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도전을 사진집으로 발간하면서 세상에 알렸다. 가나 출신 영화감독 프란세스 보도모는 영화 '아프로노트'를 만들었고, 올해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 ‘아프로노트’의 트레일러 영상. 알비니즘을 앓아 피부가 하얗게 탈색된 흑인 배우(디안드라 포레스트)가 주연을 맡은 것도 특이하다

지금까지 달 표면에 직접 내렸던 우주인은 모두 12명이다. 이들은 모두 백인 남성인데 반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여성이 우주인 훈련을 받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여성은 달에 언제 가게 될까? 이 같은 의문을 담은 예술작품이 바로 실비 플루리(sylvie Fleury)의 '달 위의 하이힐(High heels on the moon)'이다. 달에 찍힌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 굳이 남성의 발자국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는 같은 이유로 금성에 착륙할 첫 우주선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디자인하기도 했다.

실비 플루리의 설치미술 ‘달 위의 하이힐’(2005년작) 아래는 은색 광택천으로 만든 ‘금성의 첫 번째 우주선’이다.실비 플루리의 설치미술 ‘달 위의 하이힐’(2005년작) 아래는 은색 광택천으로 만든 ‘금성의 첫 번째 우주선’이다.

인류의 달 착륙은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 쮜리히의 쿤스트하우스는 달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플라이 미 투 더 문' 전시회를 열었다. 20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해보면 달 착륙 이전과 이후, 달에 대한 예술가들의 인식이 상당히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에게 달은 오랫동안 밤과 어둠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이 출몰하거나 위험한 사고가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폭풍치는 밤바다, 아이스 스케이터들의 군무, 인간의 침묵과 외로움 등 어두운 작품에 달이 배경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인류가 직접 달에 가본 결과 달에는 늑대도 괴물도 없었다. 위험이 사라진 달은 이제 많은 작품에서 가볍고 밝고 미래를 상징하는 코드가 됐다.

크누드 바데, ‘노르웨이 서해안의 폭풍치는 밤’(1856년 작)크누드 바데, ‘노르웨이 서해안의 폭풍치는 밤’(1856년 작)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 ‘아이스 스케이터’(1911년 작)마리안네 폰 베레프킨, ‘아이스 스케이터’(1911년 작)

파멜라 선스트럼 ‘달에게’(2014년 작)파멜라 선스트럼 ‘달에게’(2014년 작)

두보사르스키 & 비노구라도프 ‘우주인’ (2006년 작)두보사르스키 & 비노구라도프 ‘우주인’ (2006년 작)

5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과학 기술은 한계를 모르고 뻗어나가고 있었다. 과학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막 영국에서 독립한 잠비아는 국제 사회의 주권국가가 되어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비록 실패했지만) 우주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것이다. 일제 시대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학 중흥 운동을 벌였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달 착륙 중계방송 ‘사람이 달에 내리다’달 착륙 중계방송 ‘사람이 달에 내리다’

1969년 6월 20일(한국 시간 6월 21일), 우리 국민들은 TV 수상기 앞에 모여 앉아 달 표면에서 사람이 걸어가는 장면을 생생히 지켜봤다. 과학계에서는 당시 아폴로 11호를 보며 엄청난 충격을 받은 '아폴로 키드'들이 이후 과학자가 되어 우리나라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보고 있다.

*사진은 쿤스트하우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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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 착륙 50주년]② 아프로노트(Afronauts), 잠비아 우주인을 아시나요?
    • 입력 2019-07-20 07:01:12
    취재K
아프리카 토속 음악이 흐르면서 우주복을 입은 흑인 소녀가 등장한다. 머리에 투명한 우주 헬멧을 쓰고 비장한 얼굴로 달을 쳐다보는 소녀.

2014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된 '아프로노트'(Afronauts)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아프로노트(Afronauts)는 아프리카(Africa)와 우주인(astronaut)의 합성어로 아프리카 우주인을 뜻한다.

아프리카에 우주인이 있었다고? 믿기지 않는 이 내용은 50년 전 실제로 있었던 잠비아의 우주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1960년대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구소련에서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고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냈다. 과학기술이 우주의 국경을 넘던 이때, 지구 반대편의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지들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해 새 나라를 건설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중남부의 나라, 잠비아에서 한 교사가 아프리카의 우주 프로젝트를 꿈꿨다. 에드워드 마쿠카 은콜로소(Edward Makuka Nkoloso)는 미국이나 소련보다 먼저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실험에 참가한 우주인 후보는 당시 17세의 소녀와 두 마리의 고양이였다. 은콜로소는 먼저 사람을 달에 보내고 이에 성공하면 화성까지 우주인을 보낼 계획이었다.

잠비아의 우주 계획 기사와 잠비아 우주프로젝트 책임자 은콜로소
은콜로소는 수도에서 11km 떨어진 버려진 농장을 개조해 훈련시설을 만들고 강도 높은 우주인 훈련을 실시했다. 우주 훈련이라는 것이 '드럼통 속에 들어가 언덕에서 구르기', '타이어 공중그네 타기' 등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물론 그때의 서방 국가 시각으로 봐도 - 다소 황당하지만, 우주의 무중력 공간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소녀를 달에 보낼 로켓도 함께 제작했다. 잠비아 첫 대통령의 이름을 딴 로켓 '디-카루'는 길이 3m, 지름 2m의 원통형으로 상당히 조악한 수준이었으나 잠비아 최초의, 어쩌면 아프리카 최초의 로켓이다. 그는 잠비아의 독립기념일인 1969년 10월 24일에 맞춰 로켓을 발사하려고 했으나 안전상의 문제로 계획은 취소됐다. 그는 700만 파운드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며 유네스코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것으로 아프리카 최초의 우주 계획은 막을 내렸다.


잠비아 최초의 우주인과 로켓을 재해석한 사진들(2012년, 사진집 ‘디 아프로노트’)
백인들의 잔치였던 '달 착륙'에서 잠비아의 무모한 도전은, 무모해서 그 의미가 있다.
2012년 다큐멘터리 작가인 크리스티나 드 미들(christina De Middel)이 '실제 있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도전을 사진집으로 발간하면서 세상에 알렸다. 가나 출신 영화감독 프란세스 보도모는 영화 '아프로노트'를 만들었고, 올해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 ‘아프로노트’의 트레일러 영상. 알비니즘을 앓아 피부가 하얗게 탈색된 흑인 배우(디안드라 포레스트)가 주연을 맡은 것도 특이하다

지금까지 달 표면에 직접 내렸던 우주인은 모두 12명이다. 이들은 모두 백인 남성인데 반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여성이 우주인 훈련을 받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여성은 달에 언제 가게 될까? 이 같은 의문을 담은 예술작품이 바로 실비 플루리(sylvie Fleury)의 '달 위의 하이힐(High heels on the moon)'이다. 달에 찍힌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 굳이 남성의 발자국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는 같은 이유로 금성에 착륙할 첫 우주선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디자인하기도 했다.

실비 플루리의 설치미술 ‘달 위의 하이힐’(2005년작) 아래는 은색 광택천으로 만든 ‘금성의 첫 번째 우주선’이다.
인류의 달 착륙은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 쮜리히의 쿤스트하우스는 달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플라이 미 투 더 문' 전시회를 열었다. 20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해보면 달 착륙 이전과 이후, 달에 대한 예술가들의 인식이 상당히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에게 달은 오랫동안 밤과 어둠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이 출몰하거나 위험한 사고가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폭풍치는 밤바다, 아이스 스케이터들의 군무, 인간의 침묵과 외로움 등 어두운 작품에 달이 배경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인류가 직접 달에 가본 결과 달에는 늑대도 괴물도 없었다. 위험이 사라진 달은 이제 많은 작품에서 가볍고 밝고 미래를 상징하는 코드가 됐다.

크누드 바데, ‘노르웨이 서해안의 폭풍치는 밤’(1856년 작)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 ‘아이스 스케이터’(1911년 작)
파멜라 선스트럼 ‘달에게’(2014년 작)
두보사르스키 & 비노구라도프 ‘우주인’ (2006년 작)
5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과학 기술은 한계를 모르고 뻗어나가고 있었다. 과학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막 영국에서 독립한 잠비아는 국제 사회의 주권국가가 되어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비록 실패했지만) 우주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것이다. 일제 시대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학 중흥 운동을 벌였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달 착륙 중계방송 ‘사람이 달에 내리다’
1969년 6월 20일(한국 시간 6월 21일), 우리 국민들은 TV 수상기 앞에 모여 앉아 달 표면에서 사람이 걸어가는 장면을 생생히 지켜봤다. 과학계에서는 당시 아폴로 11호를 보며 엄청난 충격을 받은 '아폴로 키드'들이 이후 과학자가 되어 우리나라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보고 있다.

*사진은 쿤스트하우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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