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韓선박 피습 해역은 세계 최대 해적소굴”…‘캐리비안의 해적’에도 나와

입력 2019.07.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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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일) 새벽 한국 국적 화물선이 해적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해적 7명은 보트를 타고 화물선에 침입해 만 3천여 달러와 휴대전화 등 금품을 빼앗은 뒤 순식간에 달아났습니다. 습격과 강탈, 도주까지 단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베테랑 해적 집단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위치가 무척 생소합니다. 해양수산부 발표에 따르면 싱가포르 북동쪽으로 100마일 해상에서 피습이 일어났습니다. 이 바다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해양 강국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그동안 해적 출몰로 유명했던 곳은 소말리아 앞바다였습니다. 아프리카 뿔(Horn of Africa)로 불리는 이 지역에서 이번 사고 지점까지는 수천 km 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무슨 해적?"이라는 궁금증이 나올만합니다.

2018년 싱가포르 주변 해적사고 지도 캡처 (출처 : 국제해사국 해적신고센터)2018년 싱가포르 주변 해적사고 지도 캡처 (출처 : 국제해사국 해적신고센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 '동남아시아 해역'

놀라운 사실은 지난 2014년 유엔이 이번 사고가 일어난 동남아시아 해역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선포한 적 있다는 겁니다. 바로 해적들 때문입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95년부터 2013년 사이 전 세계 해적 범죄의 41%가 바로 이 동남아시아 해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말리아를 포함한 서인도 제도의 비중은 28%, 서아프리카 해안은 18%에 불과했습니다.

이 기간 136명의 선원이 해적의 공격으로 숨졌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나 영화 '캡틴 필립스'로 유명한 소말리아의 아프리카 뿔(Horn of Africa) 지역보다 두 배 많은 사망자 수입니다.

우리 해수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전 세계 해적사고 발생 동향' 문서도 싱가포르 주변 바다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동남아시아 해역에서 일어난 해적 사고는 모두 67건입니다. 동남아시아는 서아프리카(61건), 소말리아(2건)를 제치고 사고 건수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의 해적 사고 중 무려 42.9%가 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동남아시아 바다를 누비는 강도 떼의 위험이 현재진행형인 셈입니다.

 해적 피해 선박 씨케이블루벨 호 (출처 : 마린트래픽) 해적 피해 선박 씨케이블루벨 호 (출처 : 마린트래픽)

세계 해양운송 3분의 1차지 '노다지'.. 가난한 어민들 해골 깃발 걸어

왜 해적들이 동남아시아 바다에 몰려오게 됐을까요? 답은 역시 돈 때문입니다.

말레이반도 남쪽 서해안과 수마트라섬의 동해안 사이의 믈라카 해협과 싱가포르 해협은 바다의 고속도로로 불립니다. 타임지에 따르면 1년에 12만 대 넘는 선박이 이 수로를 지납니다. 세계 해양 운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양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수입하는 석유의 최대 80%가 이 해협을 지나갑니다.

동남아시아 바다가 해적들로서는 속된 말로 노다지인 셈입니다. 지난 2010년 '원 월드 퓨처(One Earth Future) 재단'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적들은 해마다 최대 120억 달러 벌어들였습니다. 재단은 이 가운데 아시아 해적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말리아와 마찬가지로 어민들을 해적질로 내몬 것은 가난이었습니다. 호주 머독대학교의 캐롤린 리스(Carolin Liss)박사는 "어획량이 줄고 경쟁이 심해져 가난해진 어부들이 해적질로 돈을 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해당 해역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치 환경은 단속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믈라카 해협에서는 반군과 조직폭력배 등이 활개를 치는 데다 최근 IS 등 이슬람 테러조직마저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남중국해의 상황은 더 복잡합니다. 중국을 비롯해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6개 나라 사이에 해상 영토분쟁이 진행 중입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싱가포르 해적 영주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싱가포르 해적 영주

수백 년 역사 동남아 해적.. 종지부 찍으려면 국제 공조 필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바다를 지배하는 9명의 해적 영주가 나옵니다. 그중 한 명이 주윤발이 연기한 싱가포르의 해적 선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지역 해적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14세기 중국 여행가 왕대연이 쓴 책에 싱가포르와 수마트라섬 북부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에 관한 내용이 나올 정도입니다.

1830년대 영국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동남아시아의 토착 세력은 해당 해역 해적의 위협을 줄이기 위한 조약에 합의했습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해적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믈라카 해협을 따라 각자의 통제선을 그었고, 이 통제선은 이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국경으로 이어졌습니다.

21세기가 되면서 해적들의 수법은 더욱 발전했습니다. 요즘은 5~10명 정도의 소규모 패거리가 고속보트를 타고 빠르게 배에 접근해 강도질하는 유형이 가장 많습니다. 해수부는 해적들이 "주로 야간 시간대에 총이나 칼을 사용해 배를 습격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양상과 매우 비슷합니다.

개인의 비극과 국제 정치의 비극이 함께 만들어 낸 '해적'. 전 세계 해상 무역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 공조가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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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韓선박 피습 해역은 세계 최대 해적소굴”…‘캐리비안의 해적’에도 나와
    • 입력 2019-07-22 16: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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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일) 새벽 한국 국적 화물선이 해적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해적 7명은 보트를 타고 화물선에 침입해 만 3천여 달러와 휴대전화 등 금품을 빼앗은 뒤 순식간에 달아났습니다. 습격과 강탈, 도주까지 단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베테랑 해적 집단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위치가 무척 생소합니다. 해양수산부 발표에 따르면 싱가포르 북동쪽으로 100마일 해상에서 피습이 일어났습니다. 이 바다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해양 강국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그동안 해적 출몰로 유명했던 곳은 소말리아 앞바다였습니다. 아프리카 뿔(Horn of Africa)로 불리는 이 지역에서 이번 사고 지점까지는 수천 km 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무슨 해적?"이라는 궁금증이 나올만합니다.

2018년 싱가포르 주변 해적사고 지도 캡처 (출처 : 국제해사국 해적신고센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 '동남아시아 해역'

놀라운 사실은 지난 2014년 유엔이 이번 사고가 일어난 동남아시아 해역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선포한 적 있다는 겁니다. 바로 해적들 때문입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95년부터 2013년 사이 전 세계 해적 범죄의 41%가 바로 이 동남아시아 해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말리아를 포함한 서인도 제도의 비중은 28%, 서아프리카 해안은 18%에 불과했습니다.

이 기간 136명의 선원이 해적의 공격으로 숨졌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나 영화 '캡틴 필립스'로 유명한 소말리아의 아프리카 뿔(Horn of Africa) 지역보다 두 배 많은 사망자 수입니다.

우리 해수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전 세계 해적사고 발생 동향' 문서도 싱가포르 주변 바다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동남아시아 해역에서 일어난 해적 사고는 모두 67건입니다. 동남아시아는 서아프리카(61건), 소말리아(2건)를 제치고 사고 건수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의 해적 사고 중 무려 42.9%가 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동남아시아 바다를 누비는 강도 떼의 위험이 현재진행형인 셈입니다.

 해적 피해 선박 씨케이블루벨 호 (출처 : 마린트래픽)
세계 해양운송 3분의 1차지 '노다지'.. 가난한 어민들 해골 깃발 걸어

왜 해적들이 동남아시아 바다에 몰려오게 됐을까요? 답은 역시 돈 때문입니다.

말레이반도 남쪽 서해안과 수마트라섬의 동해안 사이의 믈라카 해협과 싱가포르 해협은 바다의 고속도로로 불립니다. 타임지에 따르면 1년에 12만 대 넘는 선박이 이 수로를 지납니다. 세계 해양 운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양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수입하는 석유의 최대 80%가 이 해협을 지나갑니다.

동남아시아 바다가 해적들로서는 속된 말로 노다지인 셈입니다. 지난 2010년 '원 월드 퓨처(One Earth Future) 재단'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적들은 해마다 최대 120억 달러 벌어들였습니다. 재단은 이 가운데 아시아 해적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말리아와 마찬가지로 어민들을 해적질로 내몬 것은 가난이었습니다. 호주 머독대학교의 캐롤린 리스(Carolin Liss)박사는 "어획량이 줄고 경쟁이 심해져 가난해진 어부들이 해적질로 돈을 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해당 해역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치 환경은 단속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믈라카 해협에서는 반군과 조직폭력배 등이 활개를 치는 데다 최근 IS 등 이슬람 테러조직마저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남중국해의 상황은 더 복잡합니다. 중국을 비롯해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6개 나라 사이에 해상 영토분쟁이 진행 중입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싱가포르 해적 영주
수백 년 역사 동남아 해적.. 종지부 찍으려면 국제 공조 필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바다를 지배하는 9명의 해적 영주가 나옵니다. 그중 한 명이 주윤발이 연기한 싱가포르의 해적 선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지역 해적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14세기 중국 여행가 왕대연이 쓴 책에 싱가포르와 수마트라섬 북부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에 관한 내용이 나올 정도입니다.

1830년대 영국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동남아시아의 토착 세력은 해당 해역 해적의 위협을 줄이기 위한 조약에 합의했습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해적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믈라카 해협을 따라 각자의 통제선을 그었고, 이 통제선은 이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국경으로 이어졌습니다.

21세기가 되면서 해적들의 수법은 더욱 발전했습니다. 요즘은 5~10명 정도의 소규모 패거리가 고속보트를 타고 빠르게 배에 접근해 강도질하는 유형이 가장 많습니다. 해수부는 해적들이 "주로 야간 시간대에 총이나 칼을 사용해 배를 습격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양상과 매우 비슷합니다.

개인의 비극과 국제 정치의 비극이 함께 만들어 낸 '해적'. 전 세계 해상 무역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 공조가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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