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무죄인데, 항소요?” 검찰총장에게 쓴 ‘눈물의 편지’

입력 2019.07.23 (17:37) 수정 2019.07.2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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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201호 법정에는 단출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방청석이 텅 비다시피 할 만큼 세간의 주목은 크지 않았지만, 피고인석에 앉은 70살 남정길 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던 '납북 어부' 남 씨에게, 국가가 50년 만에 재심을 열고 무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재판 내내 긴장한 표정이던 남 씨는 법정을 빠져나와 담당 변호사에게 무죄라는 말을 듣고서야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피고인의 가족들도 "웃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남 씨에게 덕담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6일 만인 지난 17일, 검찰은 아직 사실관계를 다퉈볼 여지가 남아있다며 항소했습니다.

앞서 KBS는 남 씨의 판결을 소개하며, 남 씨처럼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납북 귀환 어부' 3천 6백여 명 가운데 천3백여 명이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2008년 고(故) 서창덕 씨의 무죄 판결을 비롯해 진실·화해 위원회 출범 이후 모두 40건의 간첩 조작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일일이 피해 구제나 재심 청구를 진행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바로 가기] ‘납북어부’ 사건 또 무죄…“개별소송 말고 국가가 나서야”


이 같은 과거사 사건의 뒤편에는 항상 '국가'가 있습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어부들에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강력 처벌하기로 한 한국 정부에 잘못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고립된 섬마을이나 해안가에 살고 학력 수준이 낮은 어부들을 고문해 간첩으로 만든 뒤, 국민에게는 간첩을 잡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해 정권 유지에 이용했다는 겁니다.

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심 재판부도 당시 수사기관의 불법 감금과 가혹 행위에 주목했습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판결문에서 '남 씨를 비롯한 6명의 선원이 사후 구속영장 없이 한 달 가까이 불법 구금돼 있었고, 구타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같은 강압적인 조사를 통해 수사관들이 자백을 강요한 점 등이 인정된다'고 적었습니다. 장기간의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 협박 때문에 피고인들의 경찰 진술과 검찰, 법정 진술 등은 임의성이 없거나 그 임의성에 강한 의심이 들고, 따라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들의 법정 진술까지 증거 능력을 배제하는 건 부당하다며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관계자는 '검경 등 수사 기관에서 한 진술은 제쳐 놓더라도, 피고인들이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나와 직접 말한 내용마저 임의성이 없다고 봐야 하는지는 따져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피고인들이 당시 법정에서 검찰 주장 일부를 부인하거나 가혹 행위 때문에 거짓 자백을 했다고 폭로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법정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당시 선장의 제안에 따라 군사분계선 너머 황해도 인근에서 물고기를 잡은 사실 자체는 피고인들 대부분이 법정에서 인정한 것으로 공판 조서에 적혀 있는데, 이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행위라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올해 일흔이 된 남 씨는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자유롭게 걷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인 '지금 여기에'의 변상철 사무국장이 남 씨와 통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수신인은 문무일 검찰총장입니다. 문 총장은 모레(25일) 퇴임 예정입니다. 늦었지만, 여기에 편지 전문을 공개합니다.

저는 선유도의 어부 남정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문무일 검찰총장님께 갑작스럽게 편지 쓰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하지만 너무도 기가 막힌 일을 당한지라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1968년 전라북도 선유도라는 곳에서 어부로 생활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잡혀 강제로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저희가 일부러 북한으로 넘어갔다 왔다고 하면서 고문이란 고문은 엄청나게 당했습니다. 군산경찰서의 남궁길영이란 독한 수사관에게 물고문이며 구타며 정신없이 당했네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어 형무소생활을 했습니다. 형무소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인이 되어서 살았습니다. 빨갱이라고 배도 안 태워주려고 해 생계도 막막했습니다. 10살때부터 배를 탄 놈이 뭔 기술이 있겠습니까. 배를 못 탄다는 건 굶어 죽으라는 것이지요.

어딜 가도 형사가 따라다니고, 누굴 만나도 신고를 해야 하는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50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귀인 같은 변호사를 만나 내 억울한 누명을 벗겨볼 기회를 얻었네요. 재심이라는 것을 했는데 세상이 좋아져서 판사님이 저의 억울함을 소상히 들어주시더만요.

결국, 지난 7월 11일 군산지원 201호에서 저의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딱 50년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법정에서 무섭고 떨리기만 해서 판사님 말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데요. 변호사가 나가자고 해서 법정을 나오면서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랬더니 변호사님이 그러데요. 무죄 되었다고.....아, 어찌나 기쁘던지. 저는 몇 년 전 중풍이 걸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만 그날만큼은 두 손 하늘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고 싶대요. 이런 날이 나에게도 오는구나 싶어서요.

문무일 검찰총장님, 제 사건의 재심이 개시가 되어서 재판을 하던 중에 뉴스에서 총장님이 과거사 반성을 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큰 고통을 당하신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2019년 6월 25일 문무일 검찰총장 과거사 사과 발언 중)

총장님은 다시는 검찰이 권한을 함부로 쓰거나 공정하지 못한 과정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시더군요. 총장님의 그 말씀이 우리 같은 고문 피해자들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늘 국가로부터 감시받고 멸시받던 우리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시는 모습에 저는 그동안 마음속에 가졌던 국가에 대한 미움과 불신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인 7월 11일 우리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대로 잡힌 듯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기대를 검찰은 무참히도 짓밟아버렸습니다. 군산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한 지 딱 일주일이 지나던 지난 목요일(7월 18일) 군산검찰에서는 저희 사건에 대해서 항소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6월에 검찰에서 분명히 국민들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일률적으로 항소 안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잊으셨습니까? 판사님이 물고문, 구타에 의해 허위자백을 했고 별다른 증거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도대체 검찰은 왜 항소를 하는 겁니까?

저희가 50년 전 그렇게 억울하게 고문당해 재판을 받을 때도 우리 이야기 한번 들어주셨습니까? 저희 억울한 사연을 법정에서 이야기하려고 해도 눈감고 귀 막고 계셨던 검찰이 무슨 낯짝으로 증거도 없이 고문해서 된 사건이라고 밝혀진 이 마당에 항소를 한답니까? 두 손 두 발로 저희 앞에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하고 사죄해도 저희 상처가 풀릴지 모르는데 50년간 상처받았던 저희 가슴에 이렇게 소금을 뿌리고 생채기를 내셔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도대체 검찰은 언제까지 국민을 우습게 알고 지내려고 합니까? 검찰은 국민 위에 있답니까?

당장이라도 항소를 철회해주십시오. 그리고 저희의 무죄에 대해서 검찰에게 분명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2019년 7월 19일 선유도에 사는 남정길 올림


검찰의 항소장은 지난 17일 재판부에 도착했습니다. 남 씨의 바람과 달리 검찰이 항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사건은 광주고등법원으로 올라갑니다. 항소심 첫 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50년을 기다려 온 남 씨가, 이제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버텨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검찰이 항소를 취하하고, 지나간 세월에 대해 사과하길 바란다는 남 씨의 소원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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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 만에 무죄인데, 항소요?” 검찰총장에게 쓴 ‘눈물의 편지’
    • 입력 2019-07-23 17:37:50
    • 수정2019-07-23 17:41:54
    취재K
지난 11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201호 법정에는 단출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방청석이 텅 비다시피 할 만큼 세간의 주목은 크지 않았지만, 피고인석에 앉은 70살 남정길 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던 '납북 어부' 남 씨에게, 국가가 50년 만에 재심을 열고 무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재판 내내 긴장한 표정이던 남 씨는 법정을 빠져나와 담당 변호사에게 무죄라는 말을 듣고서야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피고인의 가족들도 "웃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남 씨에게 덕담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6일 만인 지난 17일, 검찰은 아직 사실관계를 다퉈볼 여지가 남아있다며 항소했습니다.

앞서 KBS는 남 씨의 판결을 소개하며, 남 씨처럼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납북 귀환 어부' 3천 6백여 명 가운데 천3백여 명이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2008년 고(故) 서창덕 씨의 무죄 판결을 비롯해 진실·화해 위원회 출범 이후 모두 40건의 간첩 조작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일일이 피해 구제나 재심 청구를 진행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바로 가기] ‘납북어부’ 사건 또 무죄…“개별소송 말고 국가가 나서야”


이 같은 과거사 사건의 뒤편에는 항상 '국가'가 있습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어부들에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강력 처벌하기로 한 한국 정부에 잘못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고립된 섬마을이나 해안가에 살고 학력 수준이 낮은 어부들을 고문해 간첩으로 만든 뒤, 국민에게는 간첩을 잡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해 정권 유지에 이용했다는 겁니다.

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심 재판부도 당시 수사기관의 불법 감금과 가혹 행위에 주목했습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판결문에서 '남 씨를 비롯한 6명의 선원이 사후 구속영장 없이 한 달 가까이 불법 구금돼 있었고, 구타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같은 강압적인 조사를 통해 수사관들이 자백을 강요한 점 등이 인정된다'고 적었습니다. 장기간의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 협박 때문에 피고인들의 경찰 진술과 검찰, 법정 진술 등은 임의성이 없거나 그 임의성에 강한 의심이 들고, 따라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들의 법정 진술까지 증거 능력을 배제하는 건 부당하다며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관계자는 '검경 등 수사 기관에서 한 진술은 제쳐 놓더라도, 피고인들이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나와 직접 말한 내용마저 임의성이 없다고 봐야 하는지는 따져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피고인들이 당시 법정에서 검찰 주장 일부를 부인하거나 가혹 행위 때문에 거짓 자백을 했다고 폭로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법정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당시 선장의 제안에 따라 군사분계선 너머 황해도 인근에서 물고기를 잡은 사실 자체는 피고인들 대부분이 법정에서 인정한 것으로 공판 조서에 적혀 있는데, 이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행위라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올해 일흔이 된 남 씨는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자유롭게 걷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인 '지금 여기에'의 변상철 사무국장이 남 씨와 통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수신인은 문무일 검찰총장입니다. 문 총장은 모레(25일) 퇴임 예정입니다. 늦었지만, 여기에 편지 전문을 공개합니다.

저는 선유도의 어부 남정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문무일 검찰총장님께 갑작스럽게 편지 쓰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하지만 너무도 기가 막힌 일을 당한지라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1968년 전라북도 선유도라는 곳에서 어부로 생활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잡혀 강제로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저희가 일부러 북한으로 넘어갔다 왔다고 하면서 고문이란 고문은 엄청나게 당했습니다. 군산경찰서의 남궁길영이란 독한 수사관에게 물고문이며 구타며 정신없이 당했네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어 형무소생활을 했습니다. 형무소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인이 되어서 살았습니다. 빨갱이라고 배도 안 태워주려고 해 생계도 막막했습니다. 10살때부터 배를 탄 놈이 뭔 기술이 있겠습니까. 배를 못 탄다는 건 굶어 죽으라는 것이지요.

어딜 가도 형사가 따라다니고, 누굴 만나도 신고를 해야 하는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50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귀인 같은 변호사를 만나 내 억울한 누명을 벗겨볼 기회를 얻었네요. 재심이라는 것을 했는데 세상이 좋아져서 판사님이 저의 억울함을 소상히 들어주시더만요.

결국, 지난 7월 11일 군산지원 201호에서 저의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딱 50년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법정에서 무섭고 떨리기만 해서 판사님 말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데요. 변호사가 나가자고 해서 법정을 나오면서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랬더니 변호사님이 그러데요. 무죄 되었다고.....아, 어찌나 기쁘던지. 저는 몇 년 전 중풍이 걸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만 그날만큼은 두 손 하늘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고 싶대요. 이런 날이 나에게도 오는구나 싶어서요.

문무일 검찰총장님, 제 사건의 재심이 개시가 되어서 재판을 하던 중에 뉴스에서 총장님이 과거사 반성을 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큰 고통을 당하신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2019년 6월 25일 문무일 검찰총장 과거사 사과 발언 중)

총장님은 다시는 검찰이 권한을 함부로 쓰거나 공정하지 못한 과정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시더군요. 총장님의 그 말씀이 우리 같은 고문 피해자들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늘 국가로부터 감시받고 멸시받던 우리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시는 모습에 저는 그동안 마음속에 가졌던 국가에 대한 미움과 불신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인 7월 11일 우리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대로 잡힌 듯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기대를 검찰은 무참히도 짓밟아버렸습니다. 군산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한 지 딱 일주일이 지나던 지난 목요일(7월 18일) 군산검찰에서는 저희 사건에 대해서 항소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6월에 검찰에서 분명히 국민들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일률적으로 항소 안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잊으셨습니까? 판사님이 물고문, 구타에 의해 허위자백을 했고 별다른 증거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도대체 검찰은 왜 항소를 하는 겁니까?

저희가 50년 전 그렇게 억울하게 고문당해 재판을 받을 때도 우리 이야기 한번 들어주셨습니까? 저희 억울한 사연을 법정에서 이야기하려고 해도 눈감고 귀 막고 계셨던 검찰이 무슨 낯짝으로 증거도 없이 고문해서 된 사건이라고 밝혀진 이 마당에 항소를 한답니까? 두 손 두 발로 저희 앞에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하고 사죄해도 저희 상처가 풀릴지 모르는데 50년간 상처받았던 저희 가슴에 이렇게 소금을 뿌리고 생채기를 내셔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도대체 검찰은 언제까지 국민을 우습게 알고 지내려고 합니까? 검찰은 국민 위에 있답니까?

당장이라도 항소를 철회해주십시오. 그리고 저희의 무죄에 대해서 검찰에게 분명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2019년 7월 19일 선유도에 사는 남정길 올림


검찰의 항소장은 지난 17일 재판부에 도착했습니다. 남 씨의 바람과 달리 검찰이 항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사건은 광주고등법원으로 올라갑니다. 항소심 첫 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50년을 기다려 온 남 씨가, 이제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버텨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검찰이 항소를 취하하고, 지나간 세월에 대해 사과하길 바란다는 남 씨의 소원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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