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5월 15일, 숨진 A 일병에게 그 날은 지옥이었다

입력 2019.07.24 (15:23) 수정 2019.07.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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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 육군 일병이 청원휴가를 나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육군은 동기들의 가혹행위가 원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군 헌병대의 수사가 시작됐고, 실제로 동기 생활관에서 함께 지내던 동기들간의 가혹행위가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숨진 A 일병의 나이는 고작 열아홉 살. 가해자들은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A 일병을 괴롭혔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아들의 사망 원인

아들의 사망을 직접 목격했던 아버지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어린 나이에 입대를 권유한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은 것만 같아서 삶의 의욕마저 잃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씩씩하고 유쾌했던 아들이, 동기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것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더 지나, 군 당국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아들의 진짜 사망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바로 군 지휘관들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5월 15일, 그날의 재구성


A 일병은 입대 이후 지난 9개월 동안 동기 세 명으로부터 극심한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얼굴이 못생겼다고 놀림을 당하고, 말을 재미있게 못 한다며 욕을 먹고, 심지어 폭행을 당해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대대장과 중대장은 2주에 한 번씩 소원수리만 받았을 뿐입니다. 이마저도 많은 동기들이 보는 앞에서 받은 것이라 도저히 소원 수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5월 15일, A 일병은 예정되어 있던 훈련을 거부하고 중대장에게 고충을 토로합니다. 중대장은 행정 보급관을 불러 A 일병과 면담토록 지시를 하고 훈련을 나갑니다. 그리고 행보관과 A 일병의 면담이 시작됩니다. 앞으로 진행될 비극의 시작입니다. A 일병은 특정 동기생 세 명으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행보관의 대응이 비상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벌했으면 좋겠냐?” 당장 처벌 의사부터 묻는 말에 A 일병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돌보라고 시킨 지휘관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군 지휘관은 가혹행위를 토로하는 병사에게 ‘혹시 다른 가혹행위는 없는지, 누가 더 그랬는지, 얼마나 그랬는지.’ 등 가혹행위 전반에 대해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잔뜩 위축된 A 일병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지휘관은 A 일병을 가해자 중 한 명과 ‘전우조’로 묶어 버립니다. 즉, 가혹행위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돌보게 한 것입니다.

A 일병의 고충 토로 사실을 알게 된 가해자는 약 1시간에 걸쳐 피해자에게 회유를 시도합니다. “야 너 왜 그런 말을 했느냐. 말 좀 해봐라.” A 일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습니다. 그 뒤 다른 가해자 두 명까지 합세해 피해자를 생활관에 몰아넣고 회유를 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숨진 A 일병은 이를 ‘감금’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1시간 넘는 회유 끝에 가해자 셋은 행보관을 찾아가 “우리 화해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행보관은 A 일병의 표정을 보더니 기분이 풀린 것 같지 않아 보인다며 한 번 더 화해를 종용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30분 넘는 회유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화해 종용 시간, 아마 A 일병에게는 지옥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화해 아닌 화해’는 이뤄졌습니다.

그제야 행보관은 그들의 화해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A 일병을 따로 불러 말합니다. “야 너 괜찮지? 그럼 됐고 오늘 아침에 너 훈련 거부했지? 그거 지시 불이행이니까 진술서 쓰고 가라.” 가혹행위를 토로한 병사에게 억지 화해를 종용하더니 이제는 훈련을 거부했다며 진술서까지 쓰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A 일병은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여 부모님과의 전화 통화를 요청했고 그날 저녁 정신과 진료를 목적을 청원 휴가를 나갔다가, 이튿날 가해 병사로부터 걸려온 회유 시도 전화를 받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9개월의 기록

5월 15일 이전은 어땠을까요. 군 수사결과에 따르면, 사실 A 일병의 죽음을 막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A 일병은 입대 이후에 7차례에 걸쳐서 인성 검사, 스트레스 검사 등을 받았고 그중 5차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즉 충분히 동기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식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당 부대 지휘관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A 일병의 고통을 파악하고 사전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것입니다.


지휘관의 실책은 이뿐만 아닙니다. A 일병은 중대장이 진급 규정을 숙지하지 못해 억울하게 진급 누락까지 당했습니다. 중대장은 병 인사관리 규정에 따라 병사들의 진급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해당 중대장은 관련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정상 진급 예정자인 A 일병의 진급을 누락시켰고, 이 때문에 같은 동기임에도 A 일병 혼자 계급이 다른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진급 누락은 가혹행위를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병 관리는 엉망으로 해놓고서, 일은 엄청나게 시켰습니다. 중장비 특기병이었던 A 일병은 입대 이후 총 11건의 부대 공사 현장에 투입돼 병사들이 생활하는 병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했는데, 이 작업을 돈으로 환산하면 자재 비용을 빼고도 약 4천5백만 원의 국방 예산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군 스스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사병을 대하는 지휘관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러니 어느 누가 군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사단장과의 전화통화


취재 과정에서 51사단장과 통화를 했습니다. 사단장은 유능한 부하가 죽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A 일병의 죽음에 대해 사단장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군의 부조리 이런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젊은 친구들이 생각이 깊지 않아 가지고...”

군의 책임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사단장의 이 발언을 두고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기자와의 개인적인 전화 통화에서 사견을 드러낸 것을 보도하는 것이 괜찮을까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취재 윤리에 어긋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그대로 보도한 이유는 이 발언이 51사단, 어쩌면 육군 전체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을 취재하고 오는 길, 51사단 공보참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이번 뉴스 보도 계획에 대해 “이번 사건은 군대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 애들끼리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사건 아니냐. 군 문제로 내보내는 건 좀 비약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곧이어 서면으로 들어온 51사단 질문 답변서 역시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는 ‘병사 상호간 성숙하지 못한 대인관계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라고 공식적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사단장의 말이 단순히 개인적인 견해만이 아닌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군에 의하면, A 일병은 사회에서 가혹행위를 당해도 죽음을 선택했을 사람이었다는 얘깁니다.

유승준이 옳았다?

잇따른 동기생활관 가혹행위에 대해 서욱 육군총장은 7월 3일 동기생활관 제도 재점검을 지시했습니다. A 일병의 대대는 아예 동기생활관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전부 사후약방문입니다. 그런데 제도를 재점검하는 것만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유승준이 똑똑했네’ 방송 리포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입니다. 유승준이 차라리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것입니다. 병사를 하나의 부품으로, 도구로 바라보는 지휘관들의 태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아무리 제도를 고치고 점검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일까요. 국방의 의무를 지키려고 왔는데, 병사의 고통도 신경 쓰지 않는 채 부려 먹기만 하는 지휘관들이 계속 있다면, 저는 나중에 제 자식을 낳아서 군대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군대에 간 것을 자랑스러워했어요. 휴대폰 배경화면은 태극기로 되어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아들의 죽음입니다. 저는 정말 우리나라가 싫어졌어요.”

취재 도중 A 일병의 아버지가 전해준 마지막 말을 군 당국은 똑똑히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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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5월 15일, 숨진 A 일병에게 그 날은 지옥이었다
    • 입력 2019-07-24 15:23:18
    • 수정2019-07-24 15:23:33
    취재후·사건후
지난 5월, 한 육군 일병이 청원휴가를 나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육군은 동기들의 가혹행위가 원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군 헌병대의 수사가 시작됐고, 실제로 동기 생활관에서 함께 지내던 동기들간의 가혹행위가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숨진 A 일병의 나이는 고작 열아홉 살. 가해자들은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A 일병을 괴롭혔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아들의 사망 원인

아들의 사망을 직접 목격했던 아버지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어린 나이에 입대를 권유한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은 것만 같아서 삶의 의욕마저 잃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씩씩하고 유쾌했던 아들이, 동기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것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더 지나, 군 당국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아들의 진짜 사망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바로 군 지휘관들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5월 15일, 그날의 재구성


A 일병은 입대 이후 지난 9개월 동안 동기 세 명으로부터 극심한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얼굴이 못생겼다고 놀림을 당하고, 말을 재미있게 못 한다며 욕을 먹고, 심지어 폭행을 당해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대대장과 중대장은 2주에 한 번씩 소원수리만 받았을 뿐입니다. 이마저도 많은 동기들이 보는 앞에서 받은 것이라 도저히 소원 수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5월 15일, A 일병은 예정되어 있던 훈련을 거부하고 중대장에게 고충을 토로합니다. 중대장은 행정 보급관을 불러 A 일병과 면담토록 지시를 하고 훈련을 나갑니다. 그리고 행보관과 A 일병의 면담이 시작됩니다. 앞으로 진행될 비극의 시작입니다. A 일병은 특정 동기생 세 명으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행보관의 대응이 비상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벌했으면 좋겠냐?” 당장 처벌 의사부터 묻는 말에 A 일병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돌보라고 시킨 지휘관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군 지휘관은 가혹행위를 토로하는 병사에게 ‘혹시 다른 가혹행위는 없는지, 누가 더 그랬는지, 얼마나 그랬는지.’ 등 가혹행위 전반에 대해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잔뜩 위축된 A 일병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지휘관은 A 일병을 가해자 중 한 명과 ‘전우조’로 묶어 버립니다. 즉, 가혹행위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돌보게 한 것입니다.

A 일병의 고충 토로 사실을 알게 된 가해자는 약 1시간에 걸쳐 피해자에게 회유를 시도합니다. “야 너 왜 그런 말을 했느냐. 말 좀 해봐라.” A 일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습니다. 그 뒤 다른 가해자 두 명까지 합세해 피해자를 생활관에 몰아넣고 회유를 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숨진 A 일병은 이를 ‘감금’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1시간 넘는 회유 끝에 가해자 셋은 행보관을 찾아가 “우리 화해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행보관은 A 일병의 표정을 보더니 기분이 풀린 것 같지 않아 보인다며 한 번 더 화해를 종용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30분 넘는 회유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화해 종용 시간, 아마 A 일병에게는 지옥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화해 아닌 화해’는 이뤄졌습니다.

그제야 행보관은 그들의 화해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A 일병을 따로 불러 말합니다. “야 너 괜찮지? 그럼 됐고 오늘 아침에 너 훈련 거부했지? 그거 지시 불이행이니까 진술서 쓰고 가라.” 가혹행위를 토로한 병사에게 억지 화해를 종용하더니 이제는 훈련을 거부했다며 진술서까지 쓰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A 일병은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여 부모님과의 전화 통화를 요청했고 그날 저녁 정신과 진료를 목적을 청원 휴가를 나갔다가, 이튿날 가해 병사로부터 걸려온 회유 시도 전화를 받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9개월의 기록

5월 15일 이전은 어땠을까요. 군 수사결과에 따르면, 사실 A 일병의 죽음을 막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A 일병은 입대 이후에 7차례에 걸쳐서 인성 검사, 스트레스 검사 등을 받았고 그중 5차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즉 충분히 동기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식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당 부대 지휘관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A 일병의 고통을 파악하고 사전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것입니다.


지휘관의 실책은 이뿐만 아닙니다. A 일병은 중대장이 진급 규정을 숙지하지 못해 억울하게 진급 누락까지 당했습니다. 중대장은 병 인사관리 규정에 따라 병사들의 진급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해당 중대장은 관련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정상 진급 예정자인 A 일병의 진급을 누락시켰고, 이 때문에 같은 동기임에도 A 일병 혼자 계급이 다른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진급 누락은 가혹행위를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병 관리는 엉망으로 해놓고서, 일은 엄청나게 시켰습니다. 중장비 특기병이었던 A 일병은 입대 이후 총 11건의 부대 공사 현장에 투입돼 병사들이 생활하는 병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했는데, 이 작업을 돈으로 환산하면 자재 비용을 빼고도 약 4천5백만 원의 국방 예산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군 스스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사병을 대하는 지휘관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러니 어느 누가 군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사단장과의 전화통화


취재 과정에서 51사단장과 통화를 했습니다. 사단장은 유능한 부하가 죽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A 일병의 죽음에 대해 사단장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군의 부조리 이런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젊은 친구들이 생각이 깊지 않아 가지고...”

군의 책임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사단장의 이 발언을 두고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기자와의 개인적인 전화 통화에서 사견을 드러낸 것을 보도하는 것이 괜찮을까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취재 윤리에 어긋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그대로 보도한 이유는 이 발언이 51사단, 어쩌면 육군 전체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을 취재하고 오는 길, 51사단 공보참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이번 뉴스 보도 계획에 대해 “이번 사건은 군대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 애들끼리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사건 아니냐. 군 문제로 내보내는 건 좀 비약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곧이어 서면으로 들어온 51사단 질문 답변서 역시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는 ‘병사 상호간 성숙하지 못한 대인관계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라고 공식적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사단장의 말이 단순히 개인적인 견해만이 아닌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군에 의하면, A 일병은 사회에서 가혹행위를 당해도 죽음을 선택했을 사람이었다는 얘깁니다.

유승준이 옳았다?

잇따른 동기생활관 가혹행위에 대해 서욱 육군총장은 7월 3일 동기생활관 제도 재점검을 지시했습니다. A 일병의 대대는 아예 동기생활관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전부 사후약방문입니다. 그런데 제도를 재점검하는 것만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유승준이 똑똑했네’ 방송 리포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입니다. 유승준이 차라리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것입니다. 병사를 하나의 부품으로, 도구로 바라보는 지휘관들의 태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아무리 제도를 고치고 점검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일까요. 국방의 의무를 지키려고 왔는데, 병사의 고통도 신경 쓰지 않는 채 부려 먹기만 하는 지휘관들이 계속 있다면, 저는 나중에 제 자식을 낳아서 군대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군대에 간 것을 자랑스러워했어요. 휴대폰 배경화면은 태극기로 되어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아들의 죽음입니다. 저는 정말 우리나라가 싫어졌어요.”

취재 도중 A 일병의 아버지가 전해준 마지막 말을 군 당국은 똑똑히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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