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체제보장’ 요구에 ‘안전보장’ 답한 미국…실무협상 못여는 이유는?

입력 2019.07.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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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한방으로 '번개 만남'을 연출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회담. 두 사람은 교착 상태인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한데 회담의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달 30일 회담 당시 '2~3주 내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양측은 합의한 시간표를 넘긴 상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 매우 긍정적인 서신 왕래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협상 날짜는 잡히지 않았다"면서 "북한이 '준비'될 때 만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왜 망설이는 걸까. 미국과 다시 협상에 나설 '준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중·러 정상 붙들고 '체제 보장' 꺼낸 김정은 ... 미국, '체제' 언급 없이 "안전 보장"

빈손으로 끝난 하노이 회담 이후 '빅딜', 즉 일괄타결과 '선 비핵화·후 제재완화'라는 입장에서 미국이 꿈쩍도 하지 않자 지난 4월 다급히 푸틴 대통령을 찾은 김정은 위원장이 건넨 'SOS'는 '북한 체제 보장'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담 뒤 회견에서 "북한은 안전 보장(Гарантия безопасност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자주권(Суверенитет)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안전 보장'과 '자주권 유지'를 더해 '체제 보장'을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 기자회견 영상


김 위원장은 이후 평양을 찾은 시진핑 주석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건넸다. 외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두 정상을 만나 '제재 해제보다 체제 보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달 G20 정상회의에서 이런 김 위원장의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미국의 공식 답변은 열흘쯤 지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는 현지시각 12일 언론에 "미국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security assurances)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열흘 뒤 폼페이오 장관은 비슷한 얘기를 또 꺼냈다. 그런데 표현도 달라졌고, '안전(security)'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문장도 길어졌다. '안전' 뒤에 '조치(arrangement)'라는 표현을 써 '안전 조치(security arrangements)'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 조치' 앞에 '미국은 핵이 없는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수식어를 더했다. 폼페이오의 발언은 아래와 같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해체한다면 미국은 핵이 없는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위안을 줄 일련의 안전 조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We’re prepared to provide a set of security arrangements that gives them comfort that if they disband their nuclear program, that the United States won’t attack them in the absence of that)"

지난번 말한 '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그것이 '핵 프로그램 해체 시, 핵이 없는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불가침 약속'임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해체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반대로 하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전 조치는 없다'는 경고도 된다.

■ "김정은, 지금 자리에서 통치" 달랬지만 ... "리비아 모델 반대" 사활 건 북한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폼페이오가 말한 '안전 조치'가 '체제 안전 조치'라고 전했다. 지난번 그가 말한 '안전 보장'도 '체제 보장'을 약속한 것이라고 보도한 매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안전'이라는 단어 앞에 '체제(regime)'를 언급한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 방안을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영상 캡처)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 방안을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영상 캡처)

'체제'라는 말이 붙는지 아닌지에 따라,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냥 '안전'이라고 하면 개념이 모호해진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도 비슷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 시점은 지난해 5월.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까지 해놓고 회담 개최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때였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그의 나라를 통치하게 될 것이다 (This would be with KJU, something where he would be there, be in his country, running his country)"

당시 북한이 핵 폐기 후 정권이 무너진 '리비아 모델'에 반발하며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시사하자 내놓은 입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리비아는 초토화됐지만, 북한은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뒤이어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을 달래면서도 압박한 메시지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에도 '비핵화'는 네 가지 합의 사항 중 세 번째로 밀렸었다. 첫째가 '양국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 나간다'였고, 둘째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였다. 첫째와 둘째 항목이 사실상 '상호 불가침 약속'이었던 셈이다. 싱가포르 회담 전부터 지금까지 상황을 되짚어보면,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장치 마련에 방점을 둬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 미뤄둔 '불편한 핵심 의제' ... '안전 보장' 개념 논란, 드디어 수면 위로

그런데 비핵화 수레바퀴가 겉돈 지 1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제쳐놓았던 '안전 보장' 개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북한이 원하는 안전 보장 개념에 대한 분석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안전 보장'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정의가 다를 것이라고 분석한다.

[링크] 북한 ‘안전 보장’ 개념 전문가 분석 VOA뉴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소리 방송(VOA)'에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방안으로 평화협정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원하는 안전 보장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일본에 대한 핵우산 철수"라고 밝혔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부차관보의 경우,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안전보장 방안으로 '핵무기 불가침 약속'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지난달 30일)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의견 모두 북한 체제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에도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노력'을 명기했지만, 그것이 북한 특유의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해줄 수 있는 장치는 아니다. 반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한다'는 세 번째 항목은 반대로 북한이 미국에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이다.

'북한의 비핵화'라고 명시하지 않은 세 번째 합의사항은 데이비드 맥스웰 연구원이 말한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일본에 대한 핵우산 철수' 등을 북한이 핵 폐기 반대급부로 요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애초 합의안 자체가 북한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정권 연속성, 즉 체제 보장과 미국의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 사이의 간극 좁히기라는 가장 중요한 난제를 미뤘던 것이다.

■ "김정은, '미국이 체제 교체 추구' 생각" ... 미국, '인권·종교문제'까지 들춰 압박

문제는 '체제 보장'과 '비핵화'가 주고받기가 가능한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비핵화 뒤 '경제 번영'까지 약속했지만, 미국이 말하는 '멋진 청사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혁·개방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정치학적으로도 북한 같은 체제와 개혁·개방은 양립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정말로 '미국이 북한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원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랜 뒷배인 중국까지 미국의 제재로 휘청이는 상황에서 '핵 포기'와 '핵 보유' 사이에서 한층 고민이 깊어졌을 김 위원장의 심경을 엘런 매카시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담당 차관보는 이렇게 분석했다.

매카시 차관보는 "김 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행동을 할 것으로 믿지 않지만, 미국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는 않아도 북한 체제를 지켜주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는 얘기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링크] 미국 의회 반응 VOA뉴스

북한이 오래전부터 비핵화 반대급부로 '안전 보장'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김정은 위원장도 비핵화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북한에 절대 유리하지 않다. VOA에 따르면, 북한이 비핵화 실무협상을 다음 달 초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의회에서는 북핵 협상에 대한 무용론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미국이 미련을 버리고 다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미국 국무부가 주최한 ‘종교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북한에 종교 자유 보장을 압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미국 국무부가 주최한 ‘종교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북한에 종교 자유 보장을 압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안전 보장'의 명확한 입장, 즉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을 향해 미국은 지금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과 종교 자유 문제까지 이슈화하며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국무부 산하에 인권 전담 기구를 두는가 하면 '종교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모두 북한을 겨냥한 것이다. 또한, 상원과 하원 모두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기관과 개인의 미국 은행시스템 접근을 차단'하도록 한 이른바 '오토웜비어법'을 통과시키는 등 북한의 남은 숨통까지 조여가고 있다.

■ 미국, '북한 미사일' 위협 부각 vs 북한, '미국 본토 타격 가능 잠수함' 공개

'안전 보장'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미국과 북한이 대화 동력을 살리지 못하는 가운데 주한미군은 지난 11일 "2017년 11월 시험 발사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가 미국 본토 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공식 평가한 결과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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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광장] 北 신형 잠수함 건조…김정은 시찰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 시찰 중 군 간부들 앞에서 얘기하고 있다. (조선중앙TV. 23일 공개)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 시찰 중 군 간부들 앞에서 얘기하고 있다. (조선중앙TV. 23일 공개)

이에 맞서기라도 하듯, 백악관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보좌관이 한국에 온 날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3천 톤 급으로 추정되는 신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잠수함을 시찰한 사실을 공개했다. 바닷속에서 발사하는 SLBM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탐지가 어려워 더 위협적이다. 태평양 중간 지점까지만 가면 은밀히 미국 본토 타격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은 종교집단처럼 통치되고 있다. 이 군사적 이단 국가의 중심에는 정복된 한반도와 노예가 돼버린 한국인들을 보호자로서 통치하는 것이 지도자의 운명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 내가 한반도에 온 것은 북한 독재체제의 지도자에게 직접 전할 메시지가 있어서다. 북한은 당신의 할아버지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다"

2017년 11월, 한국 국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연설 속에는 '북한 체제'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이 아주 잘 담겨있다. 북한의 체제 보장 요구에 대한 답을 이미 오래전 밝힌 것이다. 당시 트럼프는 그러면서 김 위원장을 향해 "당신이 지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의 마지막 문 앞에서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시계는 1년 남짓 흘렀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결단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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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5 0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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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한방으로 '번개 만남'을 연출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회담. 두 사람은 교착 상태인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한데 회담의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달 30일 회담 당시 '2~3주 내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양측은 합의한 시간표를 넘긴 상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 매우 긍정적인 서신 왕래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협상 날짜는 잡히지 않았다"면서 "북한이 '준비'될 때 만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왜 망설이는 걸까. 미국과 다시 협상에 나설 '준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중·러 정상 붙들고 '체제 보장' 꺼낸 김정은 ... 미국, '체제' 언급 없이 "안전 보장"

빈손으로 끝난 하노이 회담 이후 '빅딜', 즉 일괄타결과 '선 비핵화·후 제재완화'라는 입장에서 미국이 꿈쩍도 하지 않자 지난 4월 다급히 푸틴 대통령을 찾은 김정은 위원장이 건넨 'SOS'는 '북한 체제 보장'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담 뒤 회견에서 "북한은 안전 보장(Гарантия безопасност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자주권(Суверенитет)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안전 보장'과 '자주권 유지'를 더해 '체제 보장'을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 기자회견 영상


김 위원장은 이후 평양을 찾은 시진핑 주석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건넸다. 외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두 정상을 만나 '제재 해제보다 체제 보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달 G20 정상회의에서 이런 김 위원장의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미국의 공식 답변은 열흘쯤 지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는 현지시각 12일 언론에 "미국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security assurances)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열흘 뒤 폼페이오 장관은 비슷한 얘기를 또 꺼냈다. 그런데 표현도 달라졌고, '안전(security)'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문장도 길어졌다. '안전' 뒤에 '조치(arrangement)'라는 표현을 써 '안전 조치(security arrangements)'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 조치' 앞에 '미국은 핵이 없는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수식어를 더했다. 폼페이오의 발언은 아래와 같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해체한다면 미국은 핵이 없는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위안을 줄 일련의 안전 조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We’re prepared to provide a set of security arrangements that gives them comfort that if they disband their nuclear program, that the United States won’t attack them in the absence of that)"

지난번 말한 '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그것이 '핵 프로그램 해체 시, 핵이 없는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불가침 약속'임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해체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반대로 하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전 조치는 없다'는 경고도 된다.

■ "김정은, 지금 자리에서 통치" 달랬지만 ... "리비아 모델 반대" 사활 건 북한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폼페이오가 말한 '안전 조치'가 '체제 안전 조치'라고 전했다. 지난번 그가 말한 '안전 보장'도 '체제 보장'을 약속한 것이라고 보도한 매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안전'이라는 단어 앞에 '체제(regime)'를 언급한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 방안을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영상 캡처)
'체제'라는 말이 붙는지 아닌지에 따라,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냥 '안전'이라고 하면 개념이 모호해진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도 비슷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 시점은 지난해 5월.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까지 해놓고 회담 개최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때였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그의 나라를 통치하게 될 것이다 (This would be with KJU, something where he would be there, be in his country, running his country)"

당시 북한이 핵 폐기 후 정권이 무너진 '리비아 모델'에 반발하며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시사하자 내놓은 입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리비아는 초토화됐지만, 북한은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뒤이어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을 달래면서도 압박한 메시지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에도 '비핵화'는 네 가지 합의 사항 중 세 번째로 밀렸었다. 첫째가 '양국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 나간다'였고, 둘째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였다. 첫째와 둘째 항목이 사실상 '상호 불가침 약속'이었던 셈이다. 싱가포르 회담 전부터 지금까지 상황을 되짚어보면,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장치 마련에 방점을 둬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 미뤄둔 '불편한 핵심 의제' ... '안전 보장' 개념 논란, 드디어 수면 위로

그런데 비핵화 수레바퀴가 겉돈 지 1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제쳐놓았던 '안전 보장' 개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북한이 원하는 안전 보장 개념에 대한 분석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안전 보장'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정의가 다를 것이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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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의견 모두 북한 체제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에도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노력'을 명기했지만, 그것이 북한 특유의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해줄 수 있는 장치는 아니다. 반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한다'는 세 번째 항목은 반대로 북한이 미국에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이다.

'북한의 비핵화'라고 명시하지 않은 세 번째 합의사항은 데이비드 맥스웰 연구원이 말한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일본에 대한 핵우산 철수' 등을 북한이 핵 폐기 반대급부로 요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애초 합의안 자체가 북한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정권 연속성, 즉 체제 보장과 미국의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 사이의 간극 좁히기라는 가장 중요한 난제를 미뤘던 것이다.

■ "김정은, '미국이 체제 교체 추구' 생각" ... 미국, '인권·종교문제'까지 들춰 압박

문제는 '체제 보장'과 '비핵화'가 주고받기가 가능한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비핵화 뒤 '경제 번영'까지 약속했지만, 미국이 말하는 '멋진 청사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혁·개방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정치학적으로도 북한 같은 체제와 개혁·개방은 양립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정말로 '미국이 북한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원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랜 뒷배인 중국까지 미국의 제재로 휘청이는 상황에서 '핵 포기'와 '핵 보유' 사이에서 한층 고민이 깊어졌을 김 위원장의 심경을 엘런 매카시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담당 차관보는 이렇게 분석했다.

매카시 차관보는 "김 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행동을 할 것으로 믿지 않지만, 미국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는 않아도 북한 체제를 지켜주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는 얘기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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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오래전부터 비핵화 반대급부로 '안전 보장'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김정은 위원장도 비핵화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북한에 절대 유리하지 않다. VOA에 따르면, 북한이 비핵화 실무협상을 다음 달 초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의회에서는 북핵 협상에 대한 무용론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미국이 미련을 버리고 다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미국 국무부가 주최한 ‘종교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북한에 종교 자유 보장을 압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안전 보장'의 명확한 입장, 즉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을 향해 미국은 지금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과 종교 자유 문제까지 이슈화하며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국무부 산하에 인권 전담 기구를 두는가 하면 '종교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모두 북한을 겨냥한 것이다. 또한, 상원과 하원 모두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기관과 개인의 미국 은행시스템 접근을 차단'하도록 한 이른바 '오토웜비어법'을 통과시키는 등 북한의 남은 숨통까지 조여가고 있다.

■ 미국, '북한 미사일' 위협 부각 vs 북한, '미국 본토 타격 가능 잠수함' 공개

'안전 보장'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미국과 북한이 대화 동력을 살리지 못하는 가운데 주한미군은 지난 11일 "2017년 11월 시험 발사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가 미국 본토 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공식 평가한 결과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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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 시찰 중 군 간부들 앞에서 얘기하고 있다. (조선중앙TV. 23일 공개)
이에 맞서기라도 하듯, 백악관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보좌관이 한국에 온 날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3천 톤 급으로 추정되는 신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잠수함을 시찰한 사실을 공개했다. 바닷속에서 발사하는 SLBM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탐지가 어려워 더 위협적이다. 태평양 중간 지점까지만 가면 은밀히 미국 본토 타격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은 종교집단처럼 통치되고 있다. 이 군사적 이단 국가의 중심에는 정복된 한반도와 노예가 돼버린 한국인들을 보호자로서 통치하는 것이 지도자의 운명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 내가 한반도에 온 것은 북한 독재체제의 지도자에게 직접 전할 메시지가 있어서다. 북한은 당신의 할아버지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다"

2017년 11월, 한국 국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연설 속에는 '북한 체제'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이 아주 잘 담겨있다. 북한의 체제 보장 요구에 대한 답을 이미 오래전 밝힌 것이다. 당시 트럼프는 그러면서 김 위원장을 향해 "당신이 지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의 마지막 문 앞에서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시계는 1년 남짓 흘렀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결단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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