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홍콩 백색테러에 호신술 열풍…“내 몸은 내가 지키자!”

입력 2019.07.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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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홍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오늘(27일) 오후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습니다. 지난 21일 위안랑 역에서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한 '백색테러'를 규탄하는 시위입니다. 경찰은 이를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최 측은 강행 입장을 밝혀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송환법 반대 집회가 열렸던 지난 21일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흰옷을 입은 괴한들이 시민들을 마구 폭행했습니다. 흰색 상의를 입고 마스크를 쓴 남성들은 역사에 난입해 각목과 금속막대 등으로 시민들을 심하게 때렸습니다.

이 '백색 테러단'은 객차까지 들어가 승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임산부와 기자를 포함해 최소 45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시위대 공격하는 흰옷 남성들시위대 공격하는 흰옷 남성들

"혹시 백색테러 당하면.. 내 몸은 내가 지키자!" 호신술 강의 인기

시민들을 향한 백색테러 위협에 홍콩에 이색적인 풍경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호신술 강의입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위안랑 폭력 사건 며칠 뒤부터 홍콩 전역에 무료 호신술 강좌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26일 보도했습니다.

전에 없던 폭력 사태에 겁에 질린 시민들은 물론 이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이 강의를 찾고 있습니다. 가디언지는 스포츠 치료사이자 가라테 전문가인 헨리 정의 호신술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이 강좌에는 20대에서 60대까지 여성들이 주로 참가합니다.

호신술을 배우는 45살 여성은 "지난달에 일어난 일들이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이게 홍콩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수업에 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 공격(백색테러)은 모두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우리의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통념이 망가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백색테러를 한 남성들은 각목·쇠 막대는 물론 주먹으로 시민들을 폭행했습니다. 이스라엘군에 몸을 담았던 엘다드 예거(Eldad Jaeger)의 수업에서는 이 같은 무기에 방어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최근 홍콩의 사건들이 좋지 않아 보여 모두가 자신을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공원에서 열리는 예거의 수업에는 12세부터 40세 사이의 시민 4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한 어머니는 지하철을 타고 혼자 통학을 하는 아들을 데리고 공원을 찾았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무도 도망칠 수 없는 공격이 있을 수 있다"며 수업을 찾은 이유를 말했습니다.

흰옷 남성들 공격에 부상 입은 시민흰옷 남성들 공격에 부상 입은 시민

호신술 뜨는 이유는? "친중 경찰-폭력단 유착 때문"

이처럼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갑자기 호신술 강의가 뜨는 이유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시위대를 공격한 괴한들의 배후에 친중 세력은 물론 경찰까지 있다는 의혹이 번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21일 밤 신고 전화 수백 통이 경찰에 쏟아졌지만, 홍콩 경찰은 첫 신고 접수 뒤 3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더구나 폭력사태 몇 시간 전부터 흰옷을 입은 남성 수백 명이 위안랑 역 근처를 배회했지만, 경찰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사건 뒤 경찰이 역 근처를 수색하다 흰옷을 입은 남성들과 마주쳤는데도 체포하지 않고 쇠몽둥이 몇 개만 압수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경찰 지휘관과 흰옷을 입은 남성이 대화를 나누는 동영상까지 등장해 유착설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뒤늦게 홍콩 경찰이 용의자 몇 명을 체포했는데, 이들 중에는 폭력조직인 삼합회 조직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합회는 중국 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폭력조직입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홍콩 폭력조직인 삼합회가 중국 정부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고 지난 23일 보도했습니다.

호신술 수업을 듣는 26세 소니 창은 "사람들이 공격당했을 때 경찰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화가 났다"면서 "경찰과 폭력단이 공모하고 있다는 게 가장 끔찍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송환법 반대 홍콩 시위송환법 반대 홍콩 시위

무술영화 본토 홍콩에 부는 슬픈 호신술 붐

친중파 입법회 의원인 허쥔야오는 백색테러단을 '영웅'이라고 띄워주기까지 했습니다. 홍콩 빈과일보는 허 의원이 위안랑역 근처에서 흰옷 남성들과 악수를 하고 "이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영웅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공분을 산 허 의원의 행동은 끔찍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발언에 분노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허 의원 부모의 묘소를 심하게 훼손한 겁니다. 묘비가 부서지고 납골함에 있던 유골까지 주변에 흩뿌려졌습니다. 또 누군가 '관료와 폭력배의 결탁'이라는 페인트 낙서까지 무덤에 썼다고 합니다.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민들의 분노는 이제 '정치 깡패' 의혹과 이들에 의한 무차별 폭력을 향해 번져나가는 양상입니다.

7, 80년대 무술 영화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홍콩에 이제는 다른 이유로 무술 붐이 인다는 소식에 적잖이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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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홍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오늘(27일) 오후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습니다. 지난 21일 위안랑 역에서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한 '백색테러'를 규탄하는 시위입니다. 경찰은 이를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최 측은 강행 입장을 밝혀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송환법 반대 집회가 열렸던 지난 21일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흰옷을 입은 괴한들이 시민들을 마구 폭행했습니다. 흰색 상의를 입고 마스크를 쓴 남성들은 역사에 난입해 각목과 금속막대 등으로 시민들을 심하게 때렸습니다.

이 '백색 테러단'은 객차까지 들어가 승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임산부와 기자를 포함해 최소 45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시위대 공격하는 흰옷 남성들
"혹시 백색테러 당하면.. 내 몸은 내가 지키자!" 호신술 강의 인기

시민들을 향한 백색테러 위협에 홍콩에 이색적인 풍경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호신술 강의입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위안랑 폭력 사건 며칠 뒤부터 홍콩 전역에 무료 호신술 강좌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26일 보도했습니다.

전에 없던 폭력 사태에 겁에 질린 시민들은 물론 이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이 강의를 찾고 있습니다. 가디언지는 스포츠 치료사이자 가라테 전문가인 헨리 정의 호신술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이 강좌에는 20대에서 60대까지 여성들이 주로 참가합니다.

호신술을 배우는 45살 여성은 "지난달에 일어난 일들이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이게 홍콩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수업에 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 공격(백색테러)은 모두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우리의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통념이 망가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백색테러를 한 남성들은 각목·쇠 막대는 물론 주먹으로 시민들을 폭행했습니다. 이스라엘군에 몸을 담았던 엘다드 예거(Eldad Jaeger)의 수업에서는 이 같은 무기에 방어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최근 홍콩의 사건들이 좋지 않아 보여 모두가 자신을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공원에서 열리는 예거의 수업에는 12세부터 40세 사이의 시민 4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한 어머니는 지하철을 타고 혼자 통학을 하는 아들을 데리고 공원을 찾았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무도 도망칠 수 없는 공격이 있을 수 있다"며 수업을 찾은 이유를 말했습니다.

흰옷 남성들 공격에 부상 입은 시민
호신술 뜨는 이유는? "친중 경찰-폭력단 유착 때문"

이처럼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갑자기 호신술 강의가 뜨는 이유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시위대를 공격한 괴한들의 배후에 친중 세력은 물론 경찰까지 있다는 의혹이 번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21일 밤 신고 전화 수백 통이 경찰에 쏟아졌지만, 홍콩 경찰은 첫 신고 접수 뒤 3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더구나 폭력사태 몇 시간 전부터 흰옷을 입은 남성 수백 명이 위안랑 역 근처를 배회했지만, 경찰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사건 뒤 경찰이 역 근처를 수색하다 흰옷을 입은 남성들과 마주쳤는데도 체포하지 않고 쇠몽둥이 몇 개만 압수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경찰 지휘관과 흰옷을 입은 남성이 대화를 나누는 동영상까지 등장해 유착설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뒤늦게 홍콩 경찰이 용의자 몇 명을 체포했는데, 이들 중에는 폭력조직인 삼합회 조직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합회는 중국 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폭력조직입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홍콩 폭력조직인 삼합회가 중국 정부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고 지난 23일 보도했습니다.

호신술 수업을 듣는 26세 소니 창은 "사람들이 공격당했을 때 경찰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화가 났다"면서 "경찰과 폭력단이 공모하고 있다는 게 가장 끔찍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송환법 반대 홍콩 시위
무술영화 본토 홍콩에 부는 슬픈 호신술 붐

친중파 입법회 의원인 허쥔야오는 백색테러단을 '영웅'이라고 띄워주기까지 했습니다. 홍콩 빈과일보는 허 의원이 위안랑역 근처에서 흰옷 남성들과 악수를 하고 "이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영웅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공분을 산 허 의원의 행동은 끔찍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발언에 분노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허 의원 부모의 묘소를 심하게 훼손한 겁니다. 묘비가 부서지고 납골함에 있던 유골까지 주변에 흩뿌려졌습니다. 또 누군가 '관료와 폭력배의 결탁'이라는 페인트 낙서까지 무덤에 썼다고 합니다.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민들의 분노는 이제 '정치 깡패' 의혹과 이들에 의한 무차별 폭력을 향해 번져나가는 양상입니다.

7, 80년대 무술 영화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홍콩에 이제는 다른 이유로 무술 붐이 인다는 소식에 적잖이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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