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대형마트 규제 비껴간 식자재마트·노브랜드…진짜 약자는 누구인가

입력 2019.07.30 (07:01) 수정 2019.07.30 (15:2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유통시장의 '진짜 약자'는 누구인가. 재래시장과 작은 슈퍼마켓들이 '약자'라면 이들을 보호하는 규제의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경쟁력 있는 강자가 시장을 재편하도록 돕는 것과 약자들의 설 자리를 더 강력하게 보호해주는 것, 이 가운데 어떤 가치가 우선인가.

서로 부딪히는 상생의 가치들 사이에서 갈 방향을 잡기는 매우 어렵다. 진정한 유통 상생을 위해 누구를 어디까지 규제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갈림길에 선 현장을 취재했다.

'이마트24' 점주가 이마트에 소송 건 이유는?

전국에 210여 개가 있는 이마트 '노브랜드'. PB 상품을 기반으로 한 초저가형 할인점입니다. 원래는 직영점만으로 운영되다, 올해 4월부터 가맹형태 출점을 시작했습니다. 가맹점은 동일업종 근접출점 금지와 같은 법의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가맹점의 대기업 부담 비용이 51% 미만이면 상생법상 사업조정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직영점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골목 구석구석 출점할 수 있습니다.

가맹형태로 출점한 노브랜드 매장 근처에 있는 작은 동네슈퍼 주인을 만났습니다. 상권은 한정돼 있고, 코앞에 대기업 할인점이 들어왔으니 타격이 컸습니다. 생필품이나 식료품 가격이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해, 떠나는 손님들을 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한 이마트24 점주는 이마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마트24 바로 앞에 이마트 노브랜드가 들어온 겁니다. 점주는 '파는 물건도, 업종도 다르기 때문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던 이마트 측의 해명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건 종류는 비슷한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니 매장 앞에 노브랜드가 입점한 후 매출이 10%넘게 떨어졌다는 것이 점주 주장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대기업 꼼수 출점 막아달라”…‘노브랜드’ 주변 상인 반발

이마트 측을 만났습니다. 이마트는 상인들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노브랜드를 가맹 형태로 출점하는 것은 법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노브랜드 가맹 출점을 희망하는 자영업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마트 측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가맹 출점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마트 측은 초저가형 할인점은 거스를 수 없는 유통계 흐름이라고 말합니다. PB 상품의 특성상 중간 유통과정을 생략할 수 있기에, 제조사들과 산지업체들에 더 많은 이익을 돌려줄 수 있다, 오히려 '상생'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노브랜드 매장은 담배와 국산 소주 등을 취급하지 않는 등 판매 품목에도 차이를 두고 있으니 주변 상인들에게 끼치는 피해도 크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마트는 하반기에도 직영점과 가맹점 형태로 전국에서 10개 넘게 노브랜드를 출점할 예정입니다. 동네 상권이 재편되며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식자재마트는 '골목 슈퍼계의 코스트코?'

한 전통시장을 찾았습니다. 전통시장 바로 앞에 식자재 마트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 전통시장과 달리 식자재 마트 안은 시원합니다. 물건 전시도 훨씬 더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시장 골목의 영세상인들이 경쟁하기엔 버거웠습니다.

식자재마트 바로 앞 상인을 만났습니다. 시장 상인은 "식자재마트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지 너무 심하게 세일을 때린다"고 표현했습니다. 식자재마트가 들어온 후 장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연관 기사] 휴무 없고 출점도 마음대로…식자재 마트에 전통시장 한숨

대형마트들은 출점 제한도 받고, 격주로 휴업도 합니다. 현행법에는 전통시장 반경 1km 이내를 보호구역으로 정해, 3,000㎡ 이상 대형마트와 대기업이 운영하는 상점은 함부로 입점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3,000㎡ 이하의 중대형 슈퍼, 이른바 식자재마트는 이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휴무일과 영업시간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대형마트가 진출 못한 구석구석까지, 전국에 6만 곳 넘게 들어섰습니다.

인천 계산시장 상인들은 시장에서 500m 거리에 대규모 식자재마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지자체 앞에서 시위하며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현행 법으로는 제재할 방안이 없습니다. 식자재마트 공사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식자재마트의 인기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의한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 아니냐는 제 질문에, 상인회장은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장 논리만 따지면 도태되는 사람들의 종착역은 어디인가요?”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중형 슈퍼인 식자재마트까지 가로막는 건 과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작고, 더 경쟁력 없는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체 어디까지 규제를 확대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유통시장에서 규제를 확대해야 할 대상은 대기업이지, 식자재마트 같은 소형 자본들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유통 절대 강자들에 대한 규제가 먼저 이뤄지고 나면, 대, 중, 소형 유통 영업자들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이 자연스럽게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강자와 약자의 어디쯤…'상생'은 있는가

현재 국회에는 자산과 매출이 큰 중소규모 유통점도 대형마트와 똑같이 규제하자는 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다이소, 식자재마트와 같은 유통점도 규제의 우산 아래 들어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노브랜드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40여 개나 됩니다. 그만큼 상생을 둘러싼 가치 판단이 쉽지 않고, 실행도 쉽지 않다는 방증이겠지요.

'이것이 시장의 흐름이다', '도태될 대상은 도태돼야 한다', 생업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냉정하게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대의 속도에 뒤처지는 대상들도 자연스러운 변화를 통해 새로이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할 통로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소멸해야 할 대상으로 자신이 지목됐다면, 누구도 이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대형마트 규제 비껴간 식자재마트·노브랜드…진짜 약자는 누구인가
    • 입력 2019-07-30 07:01:20
    • 수정2019-07-30 15:27:46
    취재후·사건후
유통시장의 '진짜 약자'는 누구인가. 재래시장과 작은 슈퍼마켓들이 '약자'라면 이들을 보호하는 규제의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경쟁력 있는 강자가 시장을 재편하도록 돕는 것과 약자들의 설 자리를 더 강력하게 보호해주는 것, 이 가운데 어떤 가치가 우선인가.

서로 부딪히는 상생의 가치들 사이에서 갈 방향을 잡기는 매우 어렵다. 진정한 유통 상생을 위해 누구를 어디까지 규제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갈림길에 선 현장을 취재했다.

'이마트24' 점주가 이마트에 소송 건 이유는?

전국에 210여 개가 있는 이마트 '노브랜드'. PB 상품을 기반으로 한 초저가형 할인점입니다. 원래는 직영점만으로 운영되다, 올해 4월부터 가맹형태 출점을 시작했습니다. 가맹점은 동일업종 근접출점 금지와 같은 법의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가맹점의 대기업 부담 비용이 51% 미만이면 상생법상 사업조정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직영점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골목 구석구석 출점할 수 있습니다.

가맹형태로 출점한 노브랜드 매장 근처에 있는 작은 동네슈퍼 주인을 만났습니다. 상권은 한정돼 있고, 코앞에 대기업 할인점이 들어왔으니 타격이 컸습니다. 생필품이나 식료품 가격이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해, 떠나는 손님들을 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한 이마트24 점주는 이마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마트24 바로 앞에 이마트 노브랜드가 들어온 겁니다. 점주는 '파는 물건도, 업종도 다르기 때문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던 이마트 측의 해명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건 종류는 비슷한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니 매장 앞에 노브랜드가 입점한 후 매출이 10%넘게 떨어졌다는 것이 점주 주장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대기업 꼼수 출점 막아달라”…‘노브랜드’ 주변 상인 반발

이마트 측을 만났습니다. 이마트는 상인들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노브랜드를 가맹 형태로 출점하는 것은 법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노브랜드 가맹 출점을 희망하는 자영업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마트 측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가맹 출점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마트 측은 초저가형 할인점은 거스를 수 없는 유통계 흐름이라고 말합니다. PB 상품의 특성상 중간 유통과정을 생략할 수 있기에, 제조사들과 산지업체들에 더 많은 이익을 돌려줄 수 있다, 오히려 '상생'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노브랜드 매장은 담배와 국산 소주 등을 취급하지 않는 등 판매 품목에도 차이를 두고 있으니 주변 상인들에게 끼치는 피해도 크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마트는 하반기에도 직영점과 가맹점 형태로 전국에서 10개 넘게 노브랜드를 출점할 예정입니다. 동네 상권이 재편되며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식자재마트는 '골목 슈퍼계의 코스트코?'

한 전통시장을 찾았습니다. 전통시장 바로 앞에 식자재 마트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 전통시장과 달리 식자재 마트 안은 시원합니다. 물건 전시도 훨씬 더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시장 골목의 영세상인들이 경쟁하기엔 버거웠습니다.

식자재마트 바로 앞 상인을 만났습니다. 시장 상인은 "식자재마트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지 너무 심하게 세일을 때린다"고 표현했습니다. 식자재마트가 들어온 후 장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연관 기사] 휴무 없고 출점도 마음대로…식자재 마트에 전통시장 한숨

대형마트들은 출점 제한도 받고, 격주로 휴업도 합니다. 현행법에는 전통시장 반경 1km 이내를 보호구역으로 정해, 3,000㎡ 이상 대형마트와 대기업이 운영하는 상점은 함부로 입점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3,000㎡ 이하의 중대형 슈퍼, 이른바 식자재마트는 이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휴무일과 영업시간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대형마트가 진출 못한 구석구석까지, 전국에 6만 곳 넘게 들어섰습니다.

인천 계산시장 상인들은 시장에서 500m 거리에 대규모 식자재마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지자체 앞에서 시위하며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현행 법으로는 제재할 방안이 없습니다. 식자재마트 공사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식자재마트의 인기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의한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 아니냐는 제 질문에, 상인회장은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장 논리만 따지면 도태되는 사람들의 종착역은 어디인가요?”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중형 슈퍼인 식자재마트까지 가로막는 건 과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작고, 더 경쟁력 없는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체 어디까지 규제를 확대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유통시장에서 규제를 확대해야 할 대상은 대기업이지, 식자재마트 같은 소형 자본들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유통 절대 강자들에 대한 규제가 먼저 이뤄지고 나면, 대, 중, 소형 유통 영업자들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이 자연스럽게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강자와 약자의 어디쯤…'상생'은 있는가

현재 국회에는 자산과 매출이 큰 중소규모 유통점도 대형마트와 똑같이 규제하자는 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다이소, 식자재마트와 같은 유통점도 규제의 우산 아래 들어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노브랜드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40여 개나 됩니다. 그만큼 상생을 둘러싼 가치 판단이 쉽지 않고, 실행도 쉽지 않다는 방증이겠지요.

'이것이 시장의 흐름이다', '도태될 대상은 도태돼야 한다', 생업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냉정하게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대의 속도에 뒤처지는 대상들도 자연스러운 변화를 통해 새로이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할 통로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소멸해야 할 대상으로 자신이 지목됐다면, 누구도 이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