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뒤 구직이 힘든 여성…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입력 2019.07.31 (07:01) 수정 2019.07.3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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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인 김혜정(가명) 씨는 해외에서 10여 년 동안 승무원 일을 하다 그만두고 최근 귀국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하지만 좌절의 연속이었다. 경력단절 뒤 나이 마흔을 넘어서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게 한국에선 힘들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한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 구직게시판에 미술관 안내 일이라는 구직 채용 공고가 떠서 지원서를 써냈지만, 담당자로부터 이 사업은 청년실업지원사업이라 나이제한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지원사업은 그렇다치고 다른 민간 일자리도 얻기가 쉬운 게 아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했지만 35세 이상은 안 된다며 퇴짜를 맞았다. 나이에 따른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나이가 많다며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퇴짜를 놓고 있는 것이다.

고용상 차별을 둬서는 안 되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젊고 일할 의욕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굳이 경력단절된 여성을 고용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현실이라고 채용 전문가들은 말한다.

위에서 사례를 든 김 씨처럼 중간에 일을 그만두게 되면 여성으로서 다시 좋은 일자리를 얻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남성도 다시 좋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긴 하지만 여성의 경우 경력단절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다.)

■ 20대 후반부터 급격히 떨어지는 여성의 고용률…경력단절의 시작

여성의 경력단절을 그래프 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성별·연령별 고용률이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는 남녀 고용률은 그래프가 확연하게 벌어진다. 2015년 기준 남성의 경우 생애 주기상 30대에 접어들면서 고용률이 90%대에 안착하며 50대 초반까지 93%를 유지한다. 반면 여성의 경우 20대 후반 83.5%까지 올라갔던 고용률이 30대 후반엔 57%까지 떨어지며 M자 곡선을 이룬다.


20대 후반부터 급격히 떨어져서 50대까지 남성과 크게 벌어지는 고용률이 바로 여성의 경력단절을 보여주는 지표로 자주 거론된다. 통계청은 경력단절 사유로 결혼(34.4%)과 육아(33.5%), 임신·출산(24.1%)을 꼽고 있다. 지난해 경력단절 기혼여성 184만 7천 명을 대상으로 직장을 그만둔 이유를 조사했더니 결혼이 63만 4천 명, 육아 61만 9천 명, 임신·출산 44만 5천 명으로 나타났다.


■ "문제는 임신·육아가 아니다"

이 그래프만 보면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이유는 결국 결혼과 육아, 임신·출산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통계청의 조사는 기본 조건이 15~54세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력단절 조사 자체가 기혼여성의 생애사건 중심으로 바라본 나머지, 여성의 일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분석에서 빼먹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여성정책실이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임금노동자로 일했던 모든 여성(1,119명, 비혼여성 포함)을 대상으로 직장을 그만둔 이유를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경력단절의 이유의 1위가 육아나 출산 등이 아닌 '근로조건'(27.5%)으로 나타났다.

즉 낮은 임금이나 긴 노동시간 등 근로조건이 일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였고 그다음으로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이직,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위해서가 14.2%로 나타났다. 반면 통계청 조사에서 주된 이유로 꼽혔던 결혼이나 임신, 출산 등 생애사건을 꼽은 응답자는 13.7%로 3위로 나타났다.


■ "일을 그만두지 않게 노동시장 바꿔야…성평등이 보다 우선"

국미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현재 직장에서 동기부여가 돼야 하는데 여성들에게는 동기부여가 안 되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늦게 입사한 남성들이 먼저 승진하고 차별받는 직장문화를 겪다 보니 근로조건을 이유로 여성들이 주로 경력단절을 선택하게 된다"며 "일단 일을 그만두면 회복하기 힘든 게 우리나라 여성들의 노동시장이다"라고 말했다.

국 연구위원은 "그렇기 때문에 경력단절 뒤 일자리를 찾아주는 재취업 정책이 아닌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정책을 펴는 게 훨씬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특히 대기업 여성들의 경우 직장에서 견뎌내면 비전이 보일 텐데 여성들의 임원 진출이 어렵기 때문에 어차피 임원까지 못 가니까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때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선택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경력 단절된 여성들이 원활하게 복귀하도록 직업교육, 알선 등 그동안 해오던 인프라를 더욱 확대하는 것은 물론, 사전에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선택하지 않도록 일자리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여성 일자리의 질 개선과 고용의 모든 과정에서 생기는 성차별을 개선하고, 성평등 노동세계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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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력단절 뒤 구직이 힘든 여성…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 입력 2019-07-31 07:01:57
    • 수정2019-07-31 07:02:17
    취재K
40대 여성인 김혜정(가명) 씨는 해외에서 10여 년 동안 승무원 일을 하다 그만두고 최근 귀국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하지만 좌절의 연속이었다. 경력단절 뒤 나이 마흔을 넘어서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게 한국에선 힘들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한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 구직게시판에 미술관 안내 일이라는 구직 채용 공고가 떠서 지원서를 써냈지만, 담당자로부터 이 사업은 청년실업지원사업이라 나이제한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지원사업은 그렇다치고 다른 민간 일자리도 얻기가 쉬운 게 아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했지만 35세 이상은 안 된다며 퇴짜를 맞았다. 나이에 따른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나이가 많다며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퇴짜를 놓고 있는 것이다.

고용상 차별을 둬서는 안 되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젊고 일할 의욕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굳이 경력단절된 여성을 고용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현실이라고 채용 전문가들은 말한다.

위에서 사례를 든 김 씨처럼 중간에 일을 그만두게 되면 여성으로서 다시 좋은 일자리를 얻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남성도 다시 좋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긴 하지만 여성의 경우 경력단절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다.)

■ 20대 후반부터 급격히 떨어지는 여성의 고용률…경력단절의 시작

여성의 경력단절을 그래프 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성별·연령별 고용률이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는 남녀 고용률은 그래프가 확연하게 벌어진다. 2015년 기준 남성의 경우 생애 주기상 30대에 접어들면서 고용률이 90%대에 안착하며 50대 초반까지 93%를 유지한다. 반면 여성의 경우 20대 후반 83.5%까지 올라갔던 고용률이 30대 후반엔 57%까지 떨어지며 M자 곡선을 이룬다.


20대 후반부터 급격히 떨어져서 50대까지 남성과 크게 벌어지는 고용률이 바로 여성의 경력단절을 보여주는 지표로 자주 거론된다. 통계청은 경력단절 사유로 결혼(34.4%)과 육아(33.5%), 임신·출산(24.1%)을 꼽고 있다. 지난해 경력단절 기혼여성 184만 7천 명을 대상으로 직장을 그만둔 이유를 조사했더니 결혼이 63만 4천 명, 육아 61만 9천 명, 임신·출산 44만 5천 명으로 나타났다.


■ "문제는 임신·육아가 아니다"

이 그래프만 보면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이유는 결국 결혼과 육아, 임신·출산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통계청의 조사는 기본 조건이 15~54세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력단절 조사 자체가 기혼여성의 생애사건 중심으로 바라본 나머지, 여성의 일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분석에서 빼먹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여성정책실이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임금노동자로 일했던 모든 여성(1,119명, 비혼여성 포함)을 대상으로 직장을 그만둔 이유를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경력단절의 이유의 1위가 육아나 출산 등이 아닌 '근로조건'(27.5%)으로 나타났다.

즉 낮은 임금이나 긴 노동시간 등 근로조건이 일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였고 그다음으로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이직,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위해서가 14.2%로 나타났다. 반면 통계청 조사에서 주된 이유로 꼽혔던 결혼이나 임신, 출산 등 생애사건을 꼽은 응답자는 13.7%로 3위로 나타났다.


■ "일을 그만두지 않게 노동시장 바꿔야…성평등이 보다 우선"

국미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현재 직장에서 동기부여가 돼야 하는데 여성들에게는 동기부여가 안 되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늦게 입사한 남성들이 먼저 승진하고 차별받는 직장문화를 겪다 보니 근로조건을 이유로 여성들이 주로 경력단절을 선택하게 된다"며 "일단 일을 그만두면 회복하기 힘든 게 우리나라 여성들의 노동시장이다"라고 말했다.

국 연구위원은 "그렇기 때문에 경력단절 뒤 일자리를 찾아주는 재취업 정책이 아닌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정책을 펴는 게 훨씬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특히 대기업 여성들의 경우 직장에서 견뎌내면 비전이 보일 텐데 여성들의 임원 진출이 어렵기 때문에 어차피 임원까지 못 가니까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때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선택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경력 단절된 여성들이 원활하게 복귀하도록 직업교육, 알선 등 그동안 해오던 인프라를 더욱 확대하는 것은 물론, 사전에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선택하지 않도록 일자리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여성 일자리의 질 개선과 고용의 모든 과정에서 생기는 성차별을 개선하고, 성평등 노동세계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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