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만에 밟은 땅…다르게 쓴 ‘저도의 추억’

입력 2019.07.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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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민' 윤연순 여사의 저도(猪島)

문 대통령과 손을 꼭 잡고 있는 이 분은 올해 83세인 윤연순 여사입니다. 1970년대까지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섬 ‘저도(猪島)’에 살았던 주민입니다. 저도가 1972년 대통령 휴양지로 공식 지정되면서 쫓겨나기 전까지 이곳에 살았던 마지막 주민이셨죠.

저도에서 나갈 땐 30대 청춘이었던 윤 여사는 여든이 넘어서야 저도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47년 만에 저도를 국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윤 여사 가족을 초청했거든요.

7남매 중 5남매를 이곳에서 낳았다고 하니, 윤 여사에게 저도는 아마 청춘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무척 그리운 땅이었을 겁니다. 윤 여사는 큰딸,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곧 국민에게 곧 개방될 산책로를 걸었고, 문 대통령과 함께 나무도 심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저도의 마지막 주민이었던 윤연순 여사 가족과 함께 저도에서 식수 행사를 갖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저도의 마지막 주민이었던 윤연순 여사 가족과 함께 저도에서 식수 행사를 갖고 있다.

"부모님과의 추억" 박근혜의 저도(猪島)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저도'는 윤연순 여사처럼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윤연순 여사가 추억하는 '저도'와 박 전 대통령이 그리워하는 '저도'는 같은 장소이면서도 의미가 무척 다릅니다. 윤 여사에게 저도는 삶의 터전이었지만, 박 대통령에겐 어린 시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휴가를 보냈던 'VIP 휴양지'거든요.

박 대통령은 본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2013년 저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습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백사장에서 나뭇가지로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자를 쓰고, 페이스북에 글도 남겼습니다.

35여년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
-2013년 7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올렸던 ‘저도의 추억’ 사진 (출처 :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박근혜 전 대통령이 올렸던 ‘저도의 추억’ 사진 (출처 :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작은 섬 '저도'가 VIP들만의 '휴양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무척 애틋한 마음으로 저도를 방문했겠지만, 사실 이곳은 윤연순 여사처럼 평범한 국민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거제도 북쪽에 있는 면적 43만여㎡의 작은 섬인데, 섬 모양이 돼지(猪)와 비슷해 '저도'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죠.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엔 일본군의 탄약고, 1950년대엔 주한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되기도 했고요. 전쟁이 끝난 뒤엔 해군에서 인수해 관리를 시작하면서 이승만 대통령 휴양지로 활용됐는데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을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지정하고 '바다의 청와대'라는 뜻의 별장 ‘청해대(靑海臺)’를 지었습니다.

또 1993년엔 거제 시민들 요구로 대통령 별장 지정이 해제됐는데도 관리권은 여전히 국방부가 보유하면서 그 이후에도 대통령들이 휴가지로 이용했습니다.

재임 시절, 주말을 맞아 청해대를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전상의와 선글라스를 끼고 배 위에서 줄낚시를 즐기고 있다. (출처 : 노무현 사료관)재임 시절, 주말을 맞아 청해대를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전상의와 선글라스를 끼고 배 위에서 줄낚시를 즐기고 있다. (출처 : 노무현 사료관)

47년 만에 개방…국민들도 '저도의 추억'

저도는 섬 전체가 해송과 동백 등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졌는데, 그동안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섬'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휴가를 보낸 대통령이 공개하는 사진을 통해서만 엿볼수 있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저도의 빼어난 풍광에 대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저도의 모습...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는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표현했고, 문 대통령도 "제가 휴가 보내면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특별한 곳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정말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라는 그 저도를, 이르면 9월부터 일반 국민들도 가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일단은 시범 개방입니다. 거제시와 행정안전부, 국방부가 참여한 '저도 상생협의체'는 9월부터 1년 동안 일주일에 나흘, 하루 6백 명에게 저도를 시범 개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산책로, 전망대, 해수욕장, 골프장 등 섬의 대부분이 공개되는데, 단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와 군 관련 시설은 이번엔 공개되지 않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해대가 군 시설이라, 국방부와 경남도가 반환 문제를 협의해왔는데 협의가 잘 안 돼 장기 용역 과제로 넘기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문 대통령도 "거제시와 경남도가 잘 활용해서, 이곳을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특히 남해안 해안관광의 하나의 중심지로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원래 국민들의 것인 만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온전히 지켜지려면 '완전 개방'을 서둘러야 하는 과제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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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7년 만에 밟은 땅…다르게 쓴 ‘저도의 추억’
    • 입력 2019-07-31 08:00:51
    취재K
'마지막 주민' 윤연순 여사의 저도(猪島)

문 대통령과 손을 꼭 잡고 있는 이 분은 올해 83세인 윤연순 여사입니다. 1970년대까지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섬 ‘저도(猪島)’에 살았던 주민입니다. 저도가 1972년 대통령 휴양지로 공식 지정되면서 쫓겨나기 전까지 이곳에 살았던 마지막 주민이셨죠.

저도에서 나갈 땐 30대 청춘이었던 윤 여사는 여든이 넘어서야 저도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47년 만에 저도를 국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윤 여사 가족을 초청했거든요.

7남매 중 5남매를 이곳에서 낳았다고 하니, 윤 여사에게 저도는 아마 청춘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무척 그리운 땅이었을 겁니다. 윤 여사는 큰딸,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곧 국민에게 곧 개방될 산책로를 걸었고, 문 대통령과 함께 나무도 심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저도의 마지막 주민이었던 윤연순 여사 가족과 함께 저도에서 식수 행사를 갖고 있다.
"부모님과의 추억" 박근혜의 저도(猪島)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저도'는 윤연순 여사처럼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윤연순 여사가 추억하는 '저도'와 박 전 대통령이 그리워하는 '저도'는 같은 장소이면서도 의미가 무척 다릅니다. 윤 여사에게 저도는 삶의 터전이었지만, 박 대통령에겐 어린 시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휴가를 보냈던 'VIP 휴양지'거든요.

박 대통령은 본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2013년 저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습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백사장에서 나뭇가지로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자를 쓰고, 페이스북에 글도 남겼습니다.

35여년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
-2013년 7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올렸던 ‘저도의 추억’ 사진 (출처 :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작은 섬 '저도'가 VIP들만의 '휴양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무척 애틋한 마음으로 저도를 방문했겠지만, 사실 이곳은 윤연순 여사처럼 평범한 국민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거제도 북쪽에 있는 면적 43만여㎡의 작은 섬인데, 섬 모양이 돼지(猪)와 비슷해 '저도'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죠.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엔 일본군의 탄약고, 1950년대엔 주한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되기도 했고요. 전쟁이 끝난 뒤엔 해군에서 인수해 관리를 시작하면서 이승만 대통령 휴양지로 활용됐는데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을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지정하고 '바다의 청와대'라는 뜻의 별장 ‘청해대(靑海臺)’를 지었습니다.

또 1993년엔 거제 시민들 요구로 대통령 별장 지정이 해제됐는데도 관리권은 여전히 국방부가 보유하면서 그 이후에도 대통령들이 휴가지로 이용했습니다.

재임 시절, 주말을 맞아 청해대를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전상의와 선글라스를 끼고 배 위에서 줄낚시를 즐기고 있다. (출처 : 노무현 사료관)
47년 만에 개방…국민들도 '저도의 추억'

저도는 섬 전체가 해송과 동백 등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졌는데, 그동안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섬'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휴가를 보낸 대통령이 공개하는 사진을 통해서만 엿볼수 있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저도의 빼어난 풍광에 대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저도의 모습...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는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표현했고, 문 대통령도 "제가 휴가 보내면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특별한 곳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정말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라는 그 저도를, 이르면 9월부터 일반 국민들도 가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일단은 시범 개방입니다. 거제시와 행정안전부, 국방부가 참여한 '저도 상생협의체'는 9월부터 1년 동안 일주일에 나흘, 하루 6백 명에게 저도를 시범 개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산책로, 전망대, 해수욕장, 골프장 등 섬의 대부분이 공개되는데, 단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와 군 관련 시설은 이번엔 공개되지 않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해대가 군 시설이라, 국방부와 경남도가 반환 문제를 협의해왔는데 협의가 잘 안 돼 장기 용역 과제로 넘기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문 대통령도 "거제시와 경남도가 잘 활용해서, 이곳을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특히 남해안 해안관광의 하나의 중심지로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원래 국민들의 것인 만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온전히 지켜지려면 '완전 개방'을 서둘러야 하는 과제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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