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병합’ 인정 안 한 일본…‘배상’은 다했다?

입력 2019.08.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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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 그리고 이를 반박하는 우리 대법원 판결 내용에 대해 지난 기사로 전해드렸습니다.

[연관 기사] “징용 배상 끝” 기록 공개한 일본, ‘한일회담백서’ 속 우리 기록은?

그런데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 양국의 시각차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어쩌면 '개인 청구권'에 대한 논란을 필연적으로 야기할 수밖에 없는 해석차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1910년에 일어난 '경술국치', 일제의 대한제국에 대한 강제병합의 성격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차입니다.

日 “‘강제병합’ 아니다, 징용도 ‘합법’”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징용의 법적 성격에 대해 '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해 1910년 당시의 '한일병합' 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된 국가 간 조약인만큼 36년 간 이뤄진 일제의 강점 역시 불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은 이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강제징용'의 성격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내립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는 자국민들을 상대로도 이른바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일본 국민들 역시 이처럼 징용의 대상이 됐지만 이는 국가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일인 만큼, 당시 '합법적'으로 병합된 한국인에 대한 징용 역시 불법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이렇게 되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갚는 '배상' 역시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귀결됩니다. 이렇게 된 건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양국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일합병’을 보는 시각차…韓 “불법” vs 日 “합법”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1965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의 정식 명칭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청구권협정' 역시 한일기본조약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어와 영어로 작성된 조약문에는 각각 'もはや無効', '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으로 적혀 있습니다. 1910년 8월 22일은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날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은 당연히 제2조를 근거로 한일병합조약은 무효라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되면 36년 간의 일제강점기는 모두 원천 무효이고, 이 기간 일제가 한국인들을 상대로 저지른 모든 행위 역시 '불법행위'가 됩니다.

‘한일기본조약’ 일문 및 영문본 [출처 : 일본 외무성]‘한일기본조약’ 일문 및 영문본 [출처 : 일본 외무성]

반면 일본 측이 주장하는 '이미 무효'의 의미는 다릅니다. 일본은 과거 일제와 대한제국이 맺은 조약이 무효가 되는 시점을 일본이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발효 시점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1910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은 이후 1945년 광복 때까지 합법이었으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된 시점인 1952년 4월부터 조약이 '무효'가 됐다는 겁니다. 이 경우 36년 간의 일제강점기는 '합법적 지배'로 돌변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한국에 지불한 돈의 성격을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무효'가 아닌 '이미 무효'라는 단어를 넣기를 일본이 고집한 이유입니다. '이미'를 뜻하는 일본어 'もはや'가 '이제와서는'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것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배상’은 했다” 일본의 모순

물론 이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은 명확합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물론 우리의 입장을 모두 관철시키지 못하고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할 수밖에 없었던 1965년의 상황, 그리고 이후 우리 정부 역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에 소홀히 했던 점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지배'는 없었지만 '배상'은 끝났다는 일본의 입장은 이상의 설명으로 볼 때 일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모순입니다.

보름 뒤면 어느덧 제74회 광복절입니다. 7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유를 일본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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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병합’ 인정 안 한 일본…‘배상’은 다했다?
    • 입력 2019-08-01 07:00:17
    취재K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 그리고 이를 반박하는 우리 대법원 판결 내용에 대해 지난 기사로 전해드렸습니다.

[연관 기사] “징용 배상 끝” 기록 공개한 일본, ‘한일회담백서’ 속 우리 기록은?

그런데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 양국의 시각차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어쩌면 '개인 청구권'에 대한 논란을 필연적으로 야기할 수밖에 없는 해석차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1910년에 일어난 '경술국치', 일제의 대한제국에 대한 강제병합의 성격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차입니다.

日 “‘강제병합’ 아니다, 징용도 ‘합법’”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징용의 법적 성격에 대해 '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해 1910년 당시의 '한일병합' 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된 국가 간 조약인만큼 36년 간 이뤄진 일제의 강점 역시 불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은 이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강제징용'의 성격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내립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는 자국민들을 상대로도 이른바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일본 국민들 역시 이처럼 징용의 대상이 됐지만 이는 국가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일인 만큼, 당시 '합법적'으로 병합된 한국인에 대한 징용 역시 불법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이렇게 되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갚는 '배상' 역시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귀결됩니다. 이렇게 된 건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양국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일합병’을 보는 시각차…韓 “불법” vs 日 “합법”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1965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의 정식 명칭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청구권협정' 역시 한일기본조약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어와 영어로 작성된 조약문에는 각각 'もはや無効', '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으로 적혀 있습니다. 1910년 8월 22일은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날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은 당연히 제2조를 근거로 한일병합조약은 무효라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되면 36년 간의 일제강점기는 모두 원천 무효이고, 이 기간 일제가 한국인들을 상대로 저지른 모든 행위 역시 '불법행위'가 됩니다.

‘한일기본조약’ 일문 및 영문본 [출처 : 일본 외무성]
반면 일본 측이 주장하는 '이미 무효'의 의미는 다릅니다. 일본은 과거 일제와 대한제국이 맺은 조약이 무효가 되는 시점을 일본이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발효 시점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1910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은 이후 1945년 광복 때까지 합법이었으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된 시점인 1952년 4월부터 조약이 '무효'가 됐다는 겁니다. 이 경우 36년 간의 일제강점기는 '합법적 지배'로 돌변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한국에 지불한 돈의 성격을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무효'가 아닌 '이미 무효'라는 단어를 넣기를 일본이 고집한 이유입니다. '이미'를 뜻하는 일본어 'もはや'가 '이제와서는'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것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배상’은 했다” 일본의 모순

물론 이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은 명확합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물론 우리의 입장을 모두 관철시키지 못하고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할 수밖에 없었던 1965년의 상황, 그리고 이후 우리 정부 역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에 소홀히 했던 점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지배'는 없었지만 '배상'은 끝났다는 일본의 입장은 이상의 설명으로 볼 때 일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모순입니다.

보름 뒤면 어느덧 제74회 광복절입니다. 7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유를 일본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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