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정부 믿고 미국으로 연수갔지만…“생활고로 무료 음식주는 곳 알아봐”

입력 2019.08.02 (07:03) 수정 2019.08.0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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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미 대학생 연수프로그램(WEST) 부실…3~4달 인턴 못 구하기도
인턴 못하면 정부 지원도 없어…무료 급식소까지 찾아
2015년부터 해마다 반복…비용 문제로 적정 알선업체 선정 어려워

'영어 배우면서 미국 기업에서 일도 하고, 여행까지 할 수 있다!'

취업을 위해 스펙 한 줄이라도 더 써넣으려는 청년들에겐 솔깃한 제안입니다. 정부는 2009년부터 미국 어학연수와 인턴체험을 묶은 대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웨스트(WEST)' 프로그램입니다.

'Work, English Study, Travel'의 앞글자를 딴 WEST 프로그램은 단기 어학연수를 하고, 소개받은 미국 기업에서 인턴으로 업무를 배우면서, 프로그램 막바지엔 자유여행까지 가능합니다. 2008년 한·미 정상회담 때 도입한 이후 1년에 300명씩, 지금까지 약 3,500명이 참가했습니다.

학생들은 어학연수비와 인턴십 구직비 등 690~1,070만 원의 비용을 냅니다. 정부는 왕복 항공료 200만 원을 지원하고 소득분위에 따라 미국 현지 생활비 등을 차등 지원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어학 연수에 인턴십까지 체험할 수 있어, 경쟁률이 5:1이나 될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기약 없는 인턴 일자리…생활비 부족해 무료 음식주는 곳까지 찾아

WEST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갔지만, 뜻하지 않은 생활고를 겪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금까지 주는데 생활고라니…무슨 사연일까요?

지난해 참가자 김 모 씨(가명)는 어학연수가 끝나고 석 달 동안 인턴 일자리를 소개받지 못했습니다. WEST 프로그램에는 어학연수 이후 최대 한 달 이내에 일자리 알선 기관으로부터 인턴 일자리를 소개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자리 알선 기관은 미국에 있는 업체입니다.

인턴 일자리를 기다리는 3개월간 김 씨는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구직 기간에는 정부 지원금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직 기간이 한 달을 넘겨 길어지자 참가자들은 일자리 알선 기관에 단체로 항의한 끝에 얼마 안 되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몇 푼의 보상금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생활비가 없어 저축했던 적금을 깨거나 부모님에게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돈이 부족해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곳까지 알아봤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구직 기간 3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WEST 참가자 김 모 씨)


■일자리 소개 못 받거나, 한인 기업 등 취지와 다른 곳 소개받거나

아예 인턴 일자리를 소개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참가자 정 모 씨(가명)는 넉 달간 일자리 알선 기관으로부터 별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항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정 씨는 스스로 40~50곳에 직접 연락을 돌려 운 좋게 인턴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무급이었습니다. 일자리 알선 기관은 나중에 승인만 해줬습니다.

"제대로 인턴 제안이 오거나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대부분 한 달 내 인턴 자리를 구하지 못했어요."
"단체로 항의하니까 나중에 집세 정도만 지원해줬어요. 주는 금액마저도 일정치 않고 들쭉날쭉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시간 낭비만 한다는 생각에 암울했어요."
(WEST 참가자 정 모 씨)

인턴 자리를 소개 받아도 한국어를 쓰는 한인 회사이거나 한두 사람이 근무하는 영세 업체이기 일쑤였습니다. 영어 연수와 업무 실습을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인턴 제안을 받은 두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였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면접을 봤습니다. 프로그램 소개 내용과 달랐습니다."
"나중에 일하게 된 곳은 사장과 직원, 단 두 명이 있는 회사였습니다. 배치 이후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WEST 참가자 이 모 씨)


■해마다 문제 지적…하지만 개선되지 않아

사업을 주관하는 정부부처와 산하 기관도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15년부터 이런 내용의 민원이 해마다 들어오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별다른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WEST 사업을 운영하는 국립국제교육원은 결국 돈 문제라고 얘기합니다. 규모가 큰 일자리 알선 기관은 높은 소개비를 요구하면서 프로그램을 맡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알선 기관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의 일자리 알선 기관도 소개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부의 WEST 프로그램 연간 예산은 50억 원 정도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자리 알선 기관 문제 등을 포함해 내년도에 예산 증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 대학생 연수프로그램인 WEST는 10여 년간 이어진 외교 성과로 소개되곤 합니다. 지난해에는 애초 10년이었던 프로그램을 5년 더 연장하기로 한미 정부가 합의했습니다. 이처럼 대표적인 취업연수 프로그램이 부실한 내용과 서비스로 얼룩지고 있다면 당장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를 믿고 미국으로 간 학생들이 낭패를 보는 일은 막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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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정부 믿고 미국으로 연수갔지만…“생활고로 무료 음식주는 곳 알아봐”
    • 입력 2019-08-02 07:03:26
    • 수정2019-08-02 08:36:54
    취재K
한·미 대학생 연수프로그램(WEST) 부실…3~4달 인턴 못 구하기도<br />인턴 못하면 정부 지원도 없어…무료 급식소까지 찾아<br />2015년부터 해마다 반복…비용 문제로 적정 알선업체 선정 어려워
'영어 배우면서 미국 기업에서 일도 하고, 여행까지 할 수 있다!'

취업을 위해 스펙 한 줄이라도 더 써넣으려는 청년들에겐 솔깃한 제안입니다. 정부는 2009년부터 미국 어학연수와 인턴체험을 묶은 대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웨스트(WEST)' 프로그램입니다.

'Work, English Study, Travel'의 앞글자를 딴 WEST 프로그램은 단기 어학연수를 하고, 소개받은 미국 기업에서 인턴으로 업무를 배우면서, 프로그램 막바지엔 자유여행까지 가능합니다. 2008년 한·미 정상회담 때 도입한 이후 1년에 300명씩, 지금까지 약 3,500명이 참가했습니다.

학생들은 어학연수비와 인턴십 구직비 등 690~1,070만 원의 비용을 냅니다. 정부는 왕복 항공료 200만 원을 지원하고 소득분위에 따라 미국 현지 생활비 등을 차등 지원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어학 연수에 인턴십까지 체험할 수 있어, 경쟁률이 5:1이나 될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기약 없는 인턴 일자리…생활비 부족해 무료 음식주는 곳까지 찾아

WEST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갔지만, 뜻하지 않은 생활고를 겪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금까지 주는데 생활고라니…무슨 사연일까요?

지난해 참가자 김 모 씨(가명)는 어학연수가 끝나고 석 달 동안 인턴 일자리를 소개받지 못했습니다. WEST 프로그램에는 어학연수 이후 최대 한 달 이내에 일자리 알선 기관으로부터 인턴 일자리를 소개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자리 알선 기관은 미국에 있는 업체입니다.

인턴 일자리를 기다리는 3개월간 김 씨는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구직 기간에는 정부 지원금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직 기간이 한 달을 넘겨 길어지자 참가자들은 일자리 알선 기관에 단체로 항의한 끝에 얼마 안 되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몇 푼의 보상금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생활비가 없어 저축했던 적금을 깨거나 부모님에게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돈이 부족해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곳까지 알아봤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구직 기간 3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WEST 참가자 김 모 씨)


■일자리 소개 못 받거나, 한인 기업 등 취지와 다른 곳 소개받거나

아예 인턴 일자리를 소개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참가자 정 모 씨(가명)는 넉 달간 일자리 알선 기관으로부터 별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항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정 씨는 스스로 40~50곳에 직접 연락을 돌려 운 좋게 인턴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무급이었습니다. 일자리 알선 기관은 나중에 승인만 해줬습니다.

"제대로 인턴 제안이 오거나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대부분 한 달 내 인턴 자리를 구하지 못했어요."
"단체로 항의하니까 나중에 집세 정도만 지원해줬어요. 주는 금액마저도 일정치 않고 들쭉날쭉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시간 낭비만 한다는 생각에 암울했어요."
(WEST 참가자 정 모 씨)

인턴 자리를 소개 받아도 한국어를 쓰는 한인 회사이거나 한두 사람이 근무하는 영세 업체이기 일쑤였습니다. 영어 연수와 업무 실습을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인턴 제안을 받은 두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였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면접을 봤습니다. 프로그램 소개 내용과 달랐습니다."
"나중에 일하게 된 곳은 사장과 직원, 단 두 명이 있는 회사였습니다. 배치 이후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WEST 참가자 이 모 씨)


■해마다 문제 지적…하지만 개선되지 않아

사업을 주관하는 정부부처와 산하 기관도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15년부터 이런 내용의 민원이 해마다 들어오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별다른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WEST 사업을 운영하는 국립국제교육원은 결국 돈 문제라고 얘기합니다. 규모가 큰 일자리 알선 기관은 높은 소개비를 요구하면서 프로그램을 맡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알선 기관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의 일자리 알선 기관도 소개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부의 WEST 프로그램 연간 예산은 50억 원 정도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자리 알선 기관 문제 등을 포함해 내년도에 예산 증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 대학생 연수프로그램인 WEST는 10여 년간 이어진 외교 성과로 소개되곤 합니다. 지난해에는 애초 10년이었던 프로그램을 5년 더 연장하기로 한미 정부가 합의했습니다. 이처럼 대표적인 취업연수 프로그램이 부실한 내용과 서비스로 얼룩지고 있다면 당장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를 믿고 미국으로 간 학생들이 낭패를 보는 일은 막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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