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구찌(社)에 ‘최고 다양성 담당 책임자’가 필요해진 이유

입력 2019.08.02 (09:00) 수정 2019.08.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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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최고경영책임자), CFO(최고재무책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CMO(최고마케팅책임자), CRO(최고위험관리책임자), CAO(최고행정책임자), CPO(최고지재관리책임자)…….

그렇다면 기업에서 CD(E)&IO는 어떤 부문을 책임지는 사람일까?

영어로는 Chief Diversity & Inclusion Officer 또는 Chief Diversity, Equity & Inclusion Officer, 우리말로 번역하면 '최고 다양성, (공정성) 및 포용성 담당 책임자' 정도가 될 거다.

지난달 30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명 패션하우스 구찌사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에서 다양성 및 포용성 담당 책임자로 일했던 레네 티라도를 '다양성 제고 담당 최고책임자'로 영입·임명했다고 전했다.

구찌社와 레네 티라도 (Renée Tirado) (Getty Images; Courtesy of Gucci)구찌社와 레네 티라도 (Renée Tirado) (Getty Images; Courtesy of Gucci)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티라도는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미국 농구 협회의 은퇴 선수 협회와 인연이 닿으면서, 이후 미국 테니스 협회에 '다양성 및 포용성 담당 디렉터'로 스카우트돼 소수 민족이나 약자 그룹들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주관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티라도는 임명 소감에서 자신의 역할은 "새로운 대화를 끌어내는 것"이라며 "노동 현장에서 다양성 의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구찌뿐 아니라 패션 업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 새로운 사람들이 경쟁해서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줄 수 있는지"가 화두라고 밝혔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구찌가 '최고 다양성 및 포용성 담당 책임자'를 선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출처 : 영국 일간 가디언사진 출처 : 영국 일간 가디언

구찌는 지난 2월 위 사진과 같이 흑인 얼굴을 연상케 하는 약 100만 원(890달러)짜리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를 선보였다가 '블랙페이스(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 흉내를 내는 흑인 희화 또는 비하 행위)' 논란에 휩싸였다.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구찌는 사과 성명을 내고 즉시 매장에서 제품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얼마 후 다양성과 포용성 제고를 위해 글로벌 및 지역 책임자를 임명할 것이며 다문화 디자인 장학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 발표가 무색하게 구찌는 석 달 후 또다시 논란에 휘말렸다. 이번에는 약 110만 원 상당(790파운드)의 '헤드피스' 디자인이 문제가 됐는데, 전 세계 시크교도들이 쓰는 터번과 매우 비슷해 '종교 비하'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당시 시크교도 연합회는 "터번은 단지 패션 액세서리가 아니라 성스럽고 종교적인 신앙 물품"이라고 구찌를 비난했다.

사진 출처 : 영국 일간 가디언사진 출처 : 영국 일간 가디언

뿐만 아니라 유명 패션 업체 프라다도 지난 연말 미국 뉴욕의 한 쇼윈도에 전시한 액세서리가 흑인 희화화 논란에 휩싸이면서 판매 중지 사태를 빚기도 했다. 차별의 아픔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연상시키는 것 자체가 '아픔'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진 출처 : CNN 홈페이지사진 출처 : CNN 홈페이지

'인종 차별'과 '종교 비하'라는 민감한 이슈에 휘말리면서 순식간에 이미지가 실추된 두 업체는, 이런 터무니없는 '실수'가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 '회사 내에 소수 민족이나 그룹을 대변하고 그 문화를 잘 아는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따라서 티라도와 같은 새로운 직책의 새로운 분야 담당 임원을 영입함으로써 그러한 실수를 방지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홍보 효과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패션 기업은 구찌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된 프라다도 논란이 일자 즉시 다양성 이슈를 다루는 자문 회의를 발족시켰고, 샤넬도 이달 초 최초로 글로벌 다양성 및 포용성 책임자 선임을 발표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인 '다양성 책임자(CDO, Chief Diversity Officer).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총괄 임원 직책을 맡은 책임자들이 앞으로 얼마나 제 역할을 할지 그리고 그 결과로, 기업의 제품이 소수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기업 내 일하는 사람들의 국적이나 민족·문화적 배경이 얼마나 다양해질지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패션 업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특정 국가나 문화권에 편중되지 않고 티라도의 말처럼 '편평한 놀이터'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리더의 자리에까지 가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연관 기사] 여전한 ‘블랙페이스’ 논란…‘흑인 희화화’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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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구찌(社)에 ‘최고 다양성 담당 책임자’가 필요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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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8-02 10: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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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업에서 CD(E)&IO는 어떤 부문을 책임지는 사람일까?

영어로는 Chief Diversity & Inclusion Officer 또는 Chief Diversity, Equity & Inclusion Officer, 우리말로 번역하면 '최고 다양성, (공정성) 및 포용성 담당 책임자' 정도가 될 거다.

지난달 30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명 패션하우스 구찌사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에서 다양성 및 포용성 담당 책임자로 일했던 레네 티라도를 '다양성 제고 담당 최고책임자'로 영입·임명했다고 전했다.

구찌社와 레네 티라도 (Renée Tirado) (Getty Images; Courtesy of Gucci)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티라도는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미국 농구 협회의 은퇴 선수 협회와 인연이 닿으면서, 이후 미국 테니스 협회에 '다양성 및 포용성 담당 디렉터'로 스카우트돼 소수 민족이나 약자 그룹들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주관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티라도는 임명 소감에서 자신의 역할은 "새로운 대화를 끌어내는 것"이라며 "노동 현장에서 다양성 의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구찌뿐 아니라 패션 업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 새로운 사람들이 경쟁해서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줄 수 있는지"가 화두라고 밝혔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구찌가 '최고 다양성 및 포용성 담당 책임자'를 선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출처 : 영국 일간 가디언
구찌는 지난 2월 위 사진과 같이 흑인 얼굴을 연상케 하는 약 100만 원(890달러)짜리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를 선보였다가 '블랙페이스(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 흉내를 내는 흑인 희화 또는 비하 행위)' 논란에 휩싸였다.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구찌는 사과 성명을 내고 즉시 매장에서 제품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얼마 후 다양성과 포용성 제고를 위해 글로벌 및 지역 책임자를 임명할 것이며 다문화 디자인 장학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 발표가 무색하게 구찌는 석 달 후 또다시 논란에 휘말렸다. 이번에는 약 110만 원 상당(790파운드)의 '헤드피스' 디자인이 문제가 됐는데, 전 세계 시크교도들이 쓰는 터번과 매우 비슷해 '종교 비하'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당시 시크교도 연합회는 "터번은 단지 패션 액세서리가 아니라 성스럽고 종교적인 신앙 물품"이라고 구찌를 비난했다.

사진 출처 : 영국 일간 가디언
뿐만 아니라 유명 패션 업체 프라다도 지난 연말 미국 뉴욕의 한 쇼윈도에 전시한 액세서리가 흑인 희화화 논란에 휩싸이면서 판매 중지 사태를 빚기도 했다. 차별의 아픔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연상시키는 것 자체가 '아픔'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진 출처 : CNN 홈페이지
'인종 차별'과 '종교 비하'라는 민감한 이슈에 휘말리면서 순식간에 이미지가 실추된 두 업체는, 이런 터무니없는 '실수'가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 '회사 내에 소수 민족이나 그룹을 대변하고 그 문화를 잘 아는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따라서 티라도와 같은 새로운 직책의 새로운 분야 담당 임원을 영입함으로써 그러한 실수를 방지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홍보 효과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패션 기업은 구찌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된 프라다도 논란이 일자 즉시 다양성 이슈를 다루는 자문 회의를 발족시켰고, 샤넬도 이달 초 최초로 글로벌 다양성 및 포용성 책임자 선임을 발표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인 '다양성 책임자(CDO, Chief Diversity Officer).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총괄 임원 직책을 맡은 책임자들이 앞으로 얼마나 제 역할을 할지 그리고 그 결과로, 기업의 제품이 소수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기업 내 일하는 사람들의 국적이나 민족·문화적 배경이 얼마나 다양해질지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패션 업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특정 국가나 문화권에 편중되지 않고 티라도의 말처럼 '편평한 놀이터'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리더의 자리에까지 가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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