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 “백색국가 제외 강행”·獨 “나치범죄 사죄”…차이의 근원은?

입력 2019.08.03 (07:02) 수정 2019.08.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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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였다. 일본 정부는 어제(2일) 각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 즉 수출우대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15분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우리 정부의 지정 중단 촉구도, 미국의 이른바 '현상 동결' 중재안도, 또 국제무역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모습이다.

때를 같이 해 독일은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죄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현지시간 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독일인과 독일의 이름으로 폴란드에서 저지른 일이 부끄럽다"며 "사망자를 기리고 폴란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의 일원으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독일, 그러나 전후 두 나라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는 극명하게 나뉜다. 무엇이 두 국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유대인 희생자 위령비 앞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1970.12. 폴란드 바르샤바)유대인 희생자 위령비 앞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1970.12. 폴란드 바르샤바)

독일, 줄기찬 반성과 사죄…최고지도자가 앞장서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전후 계속돼 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것도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앞장서 왔다.

1970년 12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은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최상의 사죄 표현으로 회자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진심을 담은 사과를 이어오고 있다. 2015년 5월 나치 집단수용소를 방문해 헌화했고, 2016년 1월 홀로코스트 생존자 미술 전시회에선 "수백만 명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국가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방문 시에는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박물해 희생자들에게 꽃을 바치고, "독일은 평생, 이 범죄를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유대인 배척주의, 인종차별, 증오와 폭력에 맞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지난해 11월 1차대전 종전 100년을 기념해선 종전 협정이 체결된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메르켈 총리는 "독일은 아직 할 일이 많다. 세계 평화를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다"라며 과거를 반성하고,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책임을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함께 다음 달(9월) 1일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발발 8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개헌 시도에 망언 경쟁까지

일본은 한국에 대한 이번 수출규제 조치가 두 나라 간 과거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강변한다. 대신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통상적인 수출통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본의 이번 조치가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서 비롯된 것임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그제(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라고 우리 측에 촉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은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수출규제 조치가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된 보복 조치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최고지도자인 아베 신조 총리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최대 관심사는 아베 정권이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느냐였다. 아베 총리가 줄곧 헌법을 바꿔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혀왔기 때문이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등 전쟁 범죄에 대한 부인, 독도와 교과서 왜곡 등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오히려 역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할수록 표를 얻는다고 생각해 서로 경쟁을 하는 모습으로까지 보인다.

'사죄' vs '부인'…무엇이 차이를 갈랐나?

전범국가 독일과 일본. 하지만 과거사를 대하는 두 나라의 태도는 극명히 나뉜다. 과거를 솔직히 반성하고 책임지려 하려 국가. 과거를 부정·왜곡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그릇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국가.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법에 서명하는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서독 의회 의장 (1949.5, 독일 본)기본법에 서명하는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서독 의회 의장 (1949.5, 독일 본)

일부에서는 두 나라의 정치제도에서 이유를 찾는다. 독일은 전쟁 이후 동과 서로 분단되고 기존 나치체제가 완전히 붕괴됐다. 새로운 국가 통치질서를 만들어야 했던 당시 서독은 1949년 헌법이라 할 수 있는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Nie Wieder)는 원칙을 만들었다.

기본법의 핵심 원칙은 이렇다: 다시는 독일에서 민주주의를 폐지하는 일이 불가능해야 하고, 전체주의 체제가 수립돼선 안 된다. 그 누구도 성별, 출신, 종족, 언어, 종교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피해를 보거나 차별받아선 안 된다.

기본법은 1990년 통일 이후 동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기존 나치체제와 철저히 결별하겠단 약속은 이후 정치지도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됐고, 실제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체제가 전쟁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신들이 '천황'으로 떠받드는 존재 아래 치른 전쟁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여기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국수주의적 선거를 치르는 일본 지도자들의 그릇된 행태까지 더해져 일본의 과거사 반성은 더욱 요원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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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3 07:02:06
    • 수정2019-08-03 10:01:52
    특파원 리포트
예상대로였다. 일본 정부는 어제(2일) 각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 즉 수출우대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15분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우리 정부의 지정 중단 촉구도, 미국의 이른바 '현상 동결' 중재안도, 또 국제무역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모습이다.

때를 같이 해 독일은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죄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현지시간 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독일인과 독일의 이름으로 폴란드에서 저지른 일이 부끄럽다"며 "사망자를 기리고 폴란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의 일원으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독일, 그러나 전후 두 나라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는 극명하게 나뉜다. 무엇이 두 국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유대인 희생자 위령비 앞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1970.12. 폴란드 바르샤바)
독일, 줄기찬 반성과 사죄…최고지도자가 앞장서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전후 계속돼 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것도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앞장서 왔다.

1970년 12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은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최상의 사죄 표현으로 회자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진심을 담은 사과를 이어오고 있다. 2015년 5월 나치 집단수용소를 방문해 헌화했고, 2016년 1월 홀로코스트 생존자 미술 전시회에선 "수백만 명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국가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방문 시에는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박물해 희생자들에게 꽃을 바치고, "독일은 평생, 이 범죄를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유대인 배척주의, 인종차별, 증오와 폭력에 맞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지난해 11월 1차대전 종전 100년을 기념해선 종전 협정이 체결된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메르켈 총리는 "독일은 아직 할 일이 많다. 세계 평화를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다"라며 과거를 반성하고,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책임을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함께 다음 달(9월) 1일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발발 8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개헌 시도에 망언 경쟁까지

일본은 한국에 대한 이번 수출규제 조치가 두 나라 간 과거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강변한다. 대신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통상적인 수출통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본의 이번 조치가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서 비롯된 것임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그제(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라고 우리 측에 촉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은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수출규제 조치가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된 보복 조치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최고지도자인 아베 신조 총리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최대 관심사는 아베 정권이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느냐였다. 아베 총리가 줄곧 헌법을 바꿔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혀왔기 때문이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등 전쟁 범죄에 대한 부인, 독도와 교과서 왜곡 등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오히려 역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할수록 표를 얻는다고 생각해 서로 경쟁을 하는 모습으로까지 보인다.

'사죄' vs '부인'…무엇이 차이를 갈랐나?

전범국가 독일과 일본. 하지만 과거사를 대하는 두 나라의 태도는 극명히 나뉜다. 과거를 솔직히 반성하고 책임지려 하려 국가. 과거를 부정·왜곡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그릇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국가.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법에 서명하는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서독 의회 의장 (1949.5, 독일 본)
일부에서는 두 나라의 정치제도에서 이유를 찾는다. 독일은 전쟁 이후 동과 서로 분단되고 기존 나치체제가 완전히 붕괴됐다. 새로운 국가 통치질서를 만들어야 했던 당시 서독은 1949년 헌법이라 할 수 있는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Nie Wieder)는 원칙을 만들었다.

기본법의 핵심 원칙은 이렇다: 다시는 독일에서 민주주의를 폐지하는 일이 불가능해야 하고, 전체주의 체제가 수립돼선 안 된다. 그 누구도 성별, 출신, 종족, 언어, 종교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피해를 보거나 차별받아선 안 된다.

기본법은 1990년 통일 이후 동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기존 나치체제와 철저히 결별하겠단 약속은 이후 정치지도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됐고, 실제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체제가 전쟁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신들이 '천황'으로 떠받드는 존재 아래 치른 전쟁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여기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국수주의적 선거를 치르는 일본 지도자들의 그릇된 행태까지 더해져 일본의 과거사 반성은 더욱 요원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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