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주는 우리 엄마 신상공개해주세요”

입력 2019.08.0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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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우리 엄마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려주세요"

지난해 12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서현(가명) 양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인 '배드파더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엄마, 아빠들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해 법으로도 못 받는 양육비를 받아주는 사이트라고 들었습니다. 9년째 양육비를 주지 않던 서현 양의 생모도 조금은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함께 살고 있는 엄마와 아빠도 이제 덜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올린 바로 다음 날 서현 양 아버지를 상대로 3억 원의 민사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서현 양이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제보하는 바람에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생모가 법적 대응에 나선 겁니다. 생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의 공익성을 인정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민원을 넣고 재심의를 요청했습니다.

서현 양도 이에 맞서 새해 첫날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재판부에 절절한 탄원서도 보내봤습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서현 양이 밥도 먹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날이 많아졌고, 가족 모두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4월, 결국 서현 양 가족은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향했습니다. 힘든 마음이 조금 정리된 뒤에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서현(가명) 양은 지난 1월 1일 청와대 앞에서 생모의 신상정보가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직접 시위를 벌였습니다.서현(가명) 양은 지난 1월 1일 청와대 앞에서 생모의 신상정보가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직접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금 서현 양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는 양육비 분쟁이 아이에게 주는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생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한다는 겁니다. 어느 날은 서현 양이 "엄마,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나 봐"라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서현 양 어머니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돈을 안 주려고 하면 받을 방법이 없다"며 "왜 선진국과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이게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어머니는 "100만 아동이 법이 정한 최소한의 부모의 의무를 외면받고 있고, 그로 인해 떨어진 자존감과 위축된 마음을 안고 성장하고 있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배드파더스 1년…고소만 15번, 사건기록은 1,000쪽

구본창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한 지난 1년 동안 15번의 형사고소를 당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받아온 사건 기록은 1,000쪽에 달했습니다.구본창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한 지난 1년 동안 15번의 형사고소를 당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받아온 사건 기록은 1,000쪽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7월 18일,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문을 연 지 이제 1년이 넘었습니다. 운영자 구본창 씨는 소모적인 고소전에 휘말려 있습니다. 1년간 명예훼손 형사고소만 15건, 그중 6건은 병합돼 이번 달 수원지법에서 첫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 신상 정보를 제보한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을 상대로도 12건의 형사고소가 있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소송은 아마 더 많을 겁니다.

구 씨는 많은 소송에 휘말릴 줄 알면서도 이 일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현행법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양육비 문제인 만큼, 법을 넘어선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법이 바뀔 때까지만입니다." 구 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양육비 이행 강화를 위한 입법안이 6건 발의돼 있습니다. 국가가 양육비를 대신 지급하는 '대지급제'를 비롯해 미지급자 신상 공개와 출국금지, 운전면허 제한, 아동학대 혐의 형사처벌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구 씨를 포함해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들이 현재 가장 원하고 있는 조치는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운전면허 취소'나 '출국금지'입니다. 일상에 직접적인 불편을 줌으로써 효력이 클 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경찰과 법무부는 이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양육비 문제는 개인 간의 채권·채무, 즉 민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구 씨는 이러한 주장은 법리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구 씨는 "만약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 채무라고 한다면, 현행 감치 제도(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이혼 배우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30일 이내로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 구치소 등에 유치하는 제도)처럼 강제성 있는 조치도 없어져야 하고 양육비이행관리원 등 국가 기관도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양육비 문제를 개인 간 돈 문제로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 '명예훼손 vs 양육권'…무혐의 결론 날까?

구본창 씨는 지난 1년 동안 양육비 단체들이 진행한 대부분의 집회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구 씨의 바람은 하루빨리 양육비 관련 법안이 개정돼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필요 없게 되는 겁니다.구본창 씨는 지난 1년 동안 양육비 단체들이 진행한 대부분의 집회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구 씨의 바람은 하루빨리 양육비 관련 법안이 개정돼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필요 없게 되는 겁니다.

오는 21일 오전 11시, 수원지법에서 배드파더스의 명예훼손 문제를 다루는 첫 재판이 열립니다. 앞서 수원지검은 구 씨에 대해 벌금 3백만 원의 약식기소를 결정했고, 법원은 이를 정식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개인의 명예냐, 아동의 생존권과 양육권이냐. 치열한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단법인 오픈넷과 한국여성변호사협회, 양육비 해결 연합회 등도 이 재판을 돕기로 했습니다.

구 씨는 지난 1년 동안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통해 해결된 양육비 미지급 문제만 모두 104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상정보가 공개된 이들은 모두 4백 명이니, 25% 정도는 해결된 겁니다. 법으로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주로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제보되니 그 의미가 분명 큽니다. 구 씨는 "이 사이트의 공익성이 충분하다고 본다"며 "앞서 지난 2월 방심위에서도 이미 공익성이 인정됐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방심위는 지난 2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삭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 심의에서 위원들은 "우리 국가의 공적인 제도가 양육비 미지급자들을 보호해 주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이트가 사회적 순기능을 한다고 보면, 개인적인 명예훼손 부분은 개인이 소를 제기해서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공익적 성격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구 씨의 가장 큰 바람은 역설적이게도 이 사이트를 폐쇄하는 겁니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안이 마련되면, 이 사이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사이트를 만든 걸 후회한 적 없냐는 질문에 예상외로 "매일같이 후회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한다"며 속상해하던 구 씨,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죠"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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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육비 안 주는 우리 엄마 신상공개해주세요”
    • 입력 2019-08-06 07:04:04
    취재K
■ "아저씨, 우리 엄마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려주세요"

지난해 12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서현(가명) 양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인 '배드파더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엄마, 아빠들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해 법으로도 못 받는 양육비를 받아주는 사이트라고 들었습니다. 9년째 양육비를 주지 않던 서현 양의 생모도 조금은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함께 살고 있는 엄마와 아빠도 이제 덜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올린 바로 다음 날 서현 양 아버지를 상대로 3억 원의 민사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서현 양이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제보하는 바람에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생모가 법적 대응에 나선 겁니다. 생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의 공익성을 인정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민원을 넣고 재심의를 요청했습니다.

서현 양도 이에 맞서 새해 첫날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재판부에 절절한 탄원서도 보내봤습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서현 양이 밥도 먹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날이 많아졌고, 가족 모두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4월, 결국 서현 양 가족은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향했습니다. 힘든 마음이 조금 정리된 뒤에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서현(가명) 양은 지난 1월 1일 청와대 앞에서 생모의 신상정보가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직접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금 서현 양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는 양육비 분쟁이 아이에게 주는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생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한다는 겁니다. 어느 날은 서현 양이 "엄마,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나 봐"라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서현 양 어머니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돈을 안 주려고 하면 받을 방법이 없다"며 "왜 선진국과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이게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어머니는 "100만 아동이 법이 정한 최소한의 부모의 의무를 외면받고 있고, 그로 인해 떨어진 자존감과 위축된 마음을 안고 성장하고 있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배드파더스 1년…고소만 15번, 사건기록은 1,000쪽

구본창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한 지난 1년 동안 15번의 형사고소를 당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받아온 사건 기록은 1,000쪽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7월 18일,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문을 연 지 이제 1년이 넘었습니다. 운영자 구본창 씨는 소모적인 고소전에 휘말려 있습니다. 1년간 명예훼손 형사고소만 15건, 그중 6건은 병합돼 이번 달 수원지법에서 첫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 신상 정보를 제보한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을 상대로도 12건의 형사고소가 있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소송은 아마 더 많을 겁니다.

구 씨는 많은 소송에 휘말릴 줄 알면서도 이 일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현행법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양육비 문제인 만큼, 법을 넘어선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법이 바뀔 때까지만입니다." 구 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양육비 이행 강화를 위한 입법안이 6건 발의돼 있습니다. 국가가 양육비를 대신 지급하는 '대지급제'를 비롯해 미지급자 신상 공개와 출국금지, 운전면허 제한, 아동학대 혐의 형사처벌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구 씨를 포함해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들이 현재 가장 원하고 있는 조치는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운전면허 취소'나 '출국금지'입니다. 일상에 직접적인 불편을 줌으로써 효력이 클 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경찰과 법무부는 이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양육비 문제는 개인 간의 채권·채무, 즉 민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구 씨는 이러한 주장은 법리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구 씨는 "만약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 채무라고 한다면, 현행 감치 제도(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이혼 배우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30일 이내로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 구치소 등에 유치하는 제도)처럼 강제성 있는 조치도 없어져야 하고 양육비이행관리원 등 국가 기관도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양육비 문제를 개인 간 돈 문제로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 '명예훼손 vs 양육권'…무혐의 결론 날까?

구본창 씨는 지난 1년 동안 양육비 단체들이 진행한 대부분의 집회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구 씨의 바람은 하루빨리 양육비 관련 법안이 개정돼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필요 없게 되는 겁니다.
오는 21일 오전 11시, 수원지법에서 배드파더스의 명예훼손 문제를 다루는 첫 재판이 열립니다. 앞서 수원지검은 구 씨에 대해 벌금 3백만 원의 약식기소를 결정했고, 법원은 이를 정식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개인의 명예냐, 아동의 생존권과 양육권이냐. 치열한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단법인 오픈넷과 한국여성변호사협회, 양육비 해결 연합회 등도 이 재판을 돕기로 했습니다.

구 씨는 지난 1년 동안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통해 해결된 양육비 미지급 문제만 모두 104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상정보가 공개된 이들은 모두 4백 명이니, 25% 정도는 해결된 겁니다. 법으로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주로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제보되니 그 의미가 분명 큽니다. 구 씨는 "이 사이트의 공익성이 충분하다고 본다"며 "앞서 지난 2월 방심위에서도 이미 공익성이 인정됐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방심위는 지난 2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삭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 심의에서 위원들은 "우리 국가의 공적인 제도가 양육비 미지급자들을 보호해 주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이트가 사회적 순기능을 한다고 보면, 개인적인 명예훼손 부분은 개인이 소를 제기해서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공익적 성격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구 씨의 가장 큰 바람은 역설적이게도 이 사이트를 폐쇄하는 겁니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안이 마련되면, 이 사이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사이트를 만든 걸 후회한 적 없냐는 질문에 예상외로 "매일같이 후회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한다"며 속상해하던 구 씨,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죠"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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