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라진 블랙박스, 내 차에 무슨 일이?…공항 사설주차대행 불법 기승

입력 2019.08.06 (09:01) 수정 2019.08.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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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돈대로 받고, 차는 마음대로 쓰고"

신혼여행 길에 인천공항 사설 주차대행업체에 차를 맡겼던 윤 모 씨. 주행거리가 100㎞나 늘어나 있어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니, 누군가 차를 함부로 쓴 장면이 찍혀 있었습니다. 주차대행 직원이 윤 씨의 차로 마트도 가고, 집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간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겁니다.

실내 주차장에 차를 제대로 댔는지 의심한 또 다른 이용객. 블랙박스 운행기록을 확인해보려 하니 차를 맡긴 시점부터 차를 찾을 때까지 모든 기록이 싹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블랙박스 기록이 지워진 며칠간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설 주차대행에 맡긴 차, 따라가 봤더니…

7말 8초 휴가 성수기가 본격적으로 다가오면서 공항 불법주차대행이 기승을 부린다는 제보를 받고 공항 사설 주차대행에 차를 직접 맡겨봤습니다.

이른 새벽, 인천공항 제1 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 전면도로에 '주차'라고 적힌 푯말을 흔드는 사설 주차대행업체 직원들이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말을 걸자 "주차구역까지 찾아가야 하는 공식업체보다 더 편리하다"며 호객에 나섭니다.

어디에 주차하는지 묻자, 직원은 "장기주차장은 현재 만차라, 공항 땅 벗어나서 바로 세워둘 것"이라며 답을 얼버무립니다.

사설 주차대행 차량이 시속 110㎞로 달리며 신호위반 하고 있다.사설 주차대행 차량이 시속 110㎞로 달리며 신호위반 하고 있다.

가격흥정 뒤 공항을 출발한 차량. 5분 정도 떨어진 한 상가 유료주차장에 멈춰 섰습니다. 조수석에 동승자를 태우더니 을왕리해수욕장 쪽으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과속방지턱도 무시한 채 시속 110㎞로 내달리며 신호위반까지 2차례 저질렀습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문 닫은 식당 뒤편의 공터였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영종도가 마치 거대한 주차장이 된 듯했습니다. 4차선 해안도로와 논두렁 밭두렁 할 것 없이 노란색 불법 주정차 단속 스티커가 부착된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인천 중구 용유동 염전 옆에 차량들이 주차돼있다.지난달 29일 인천 중구 용유동 염전 옆에 차량들이 주차돼있다.

심지어 인천공항에서 10㎞ 정도 떨어진 한 염전 옆에도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신차들과 고급 수입차들도 방치돼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차량 안에 덩그러니 차 열쇠가 놓여있다.문이 열리는 차량 안에 덩그러니 차 열쇠가 놓여있다.

문이 열리는 차들도 있었습니다. 차 안에는 열쇠가 조수석에 보란 듯이 놓여있는 경우도 있어 도난 위험까지 상당했습니다. 차량 주인이 이런 사실을 아는지 전화를 걸어봤지만, 해외에 나가 있어 전화 연결이 되지 않거나 꺼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인천공항 인근 차도에서 사설 주차대행끼리 추돌사고가 났다.인천공항 인근 차도에서 사설 주차대행끼리 추돌사고가 났다.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던 길. 사설 주차대행 차량끼리 추돌한 사고가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함께 있던 인천공항 관계자는 "시간에 쫓겨 차량을 급히 인도하다 보니 접촉 사고도 빈번하게 난다"고 말했습니다.

2003년 공항 사설 주차대행 관련 보도(왼쪽) vs 2019년 공항 사설 주차대행 관련 보도(오른쪽)2003년 공항 사설 주차대행 관련 보도(왼쪽) vs 2019년 공항 사설 주차대행 관련 보도(오른쪽)

반복되는 불법 사설 주차, 왜 근절 안 되나?

인천공항의 공식 주차대행은 터미널별로 각 1곳씩입니다. 나머지 50~60곳은 불법입니다. 공항시설법에 따르면 국토부나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승인 없이 영업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사설 주차대행업체 직원이 인천공항 단속요원을 폭행하고 있다.사설 주차대행업체 직원이 인천공항 단속요원을 폭행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반이 바로 옆에서 영업을 제지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단속요원 멱살을 잡고 주먹까지 휘두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종도 인천공항공사 교통서비스팀장은 "공사의 단속 권한이 제지 및 퇴거 명령에 불과해 실질적인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미승인 영업행위 단속을 위한 공항시설법 개정 현황미승인 영업행위 단속을 위한 공항시설법 개정 현황

지난해 제지 및 퇴거 명령 권한을 경찰까지 확대하고 미이행자에 대한 처벌을 기존 과태료에서 벌금으로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고객 차량을 인수해 즉시 이동하는 사설 주차대행 특성상 많은 경찰이 현장에서 24시간 상주하지 않는 한 검거와 처벌이 어려운 겁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인천국제공항에서 적발된 불법 주차대행 사례를 보니, 총 3만여 건 가운데 극소수인 30여 건에만 과태료가 부과됐습니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공사는 공항공사 임직원이 불법 영업행위 현행범에 대해 사법경찰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사법경찰직무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이 개정되면 공항공사가 단속과 처벌 권한을 모두 가지게 돼, 점진적으로 공항 사설 주차대행을 근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해당 법은 2017년 1월, 국회 법사위에 넘겨진 이후 현재까지도 심사 계류 중이어서 성수기 공항 주차대행 문제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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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사라진 블랙박스, 내 차에 무슨 일이?…공항 사설주차대행 불법 기승
    • 입력 2019-08-06 09:01:33
    • 수정2019-08-06 09:01:40
    취재후·사건후
■"돈은 돈대로 받고, 차는 마음대로 쓰고"

신혼여행 길에 인천공항 사설 주차대행업체에 차를 맡겼던 윤 모 씨. 주행거리가 100㎞나 늘어나 있어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니, 누군가 차를 함부로 쓴 장면이 찍혀 있었습니다. 주차대행 직원이 윤 씨의 차로 마트도 가고, 집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간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겁니다.

실내 주차장에 차를 제대로 댔는지 의심한 또 다른 이용객. 블랙박스 운행기록을 확인해보려 하니 차를 맡긴 시점부터 차를 찾을 때까지 모든 기록이 싹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블랙박스 기록이 지워진 며칠간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설 주차대행에 맡긴 차, 따라가 봤더니…

7말 8초 휴가 성수기가 본격적으로 다가오면서 공항 불법주차대행이 기승을 부린다는 제보를 받고 공항 사설 주차대행에 차를 직접 맡겨봤습니다.

이른 새벽, 인천공항 제1 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 전면도로에 '주차'라고 적힌 푯말을 흔드는 사설 주차대행업체 직원들이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말을 걸자 "주차구역까지 찾아가야 하는 공식업체보다 더 편리하다"며 호객에 나섭니다.

어디에 주차하는지 묻자, 직원은 "장기주차장은 현재 만차라, 공항 땅 벗어나서 바로 세워둘 것"이라며 답을 얼버무립니다.

사설 주차대행 차량이 시속 110㎞로 달리며 신호위반 하고 있다.
가격흥정 뒤 공항을 출발한 차량. 5분 정도 떨어진 한 상가 유료주차장에 멈춰 섰습니다. 조수석에 동승자를 태우더니 을왕리해수욕장 쪽으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과속방지턱도 무시한 채 시속 110㎞로 내달리며 신호위반까지 2차례 저질렀습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문 닫은 식당 뒤편의 공터였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영종도가 마치 거대한 주차장이 된 듯했습니다. 4차선 해안도로와 논두렁 밭두렁 할 것 없이 노란색 불법 주정차 단속 스티커가 부착된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인천 중구 용유동 염전 옆에 차량들이 주차돼있다.
심지어 인천공항에서 10㎞ 정도 떨어진 한 염전 옆에도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신차들과 고급 수입차들도 방치돼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차량 안에 덩그러니 차 열쇠가 놓여있다.
문이 열리는 차들도 있었습니다. 차 안에는 열쇠가 조수석에 보란 듯이 놓여있는 경우도 있어 도난 위험까지 상당했습니다. 차량 주인이 이런 사실을 아는지 전화를 걸어봤지만, 해외에 나가 있어 전화 연결이 되지 않거나 꺼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인천공항 인근 차도에서 사설 주차대행끼리 추돌사고가 났다.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던 길. 사설 주차대행 차량끼리 추돌한 사고가 취재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함께 있던 인천공항 관계자는 "시간에 쫓겨 차량을 급히 인도하다 보니 접촉 사고도 빈번하게 난다"고 말했습니다.

2003년 공항 사설 주차대행 관련 보도(왼쪽) vs 2019년 공항 사설 주차대행 관련 보도(오른쪽)
반복되는 불법 사설 주차, 왜 근절 안 되나?

인천공항의 공식 주차대행은 터미널별로 각 1곳씩입니다. 나머지 50~60곳은 불법입니다. 공항시설법에 따르면 국토부나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승인 없이 영업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사설 주차대행업체 직원이 인천공항 단속요원을 폭행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반이 바로 옆에서 영업을 제지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단속요원 멱살을 잡고 주먹까지 휘두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종도 인천공항공사 교통서비스팀장은 "공사의 단속 권한이 제지 및 퇴거 명령에 불과해 실질적인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미승인 영업행위 단속을 위한 공항시설법 개정 현황
지난해 제지 및 퇴거 명령 권한을 경찰까지 확대하고 미이행자에 대한 처벌을 기존 과태료에서 벌금으로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고객 차량을 인수해 즉시 이동하는 사설 주차대행 특성상 많은 경찰이 현장에서 24시간 상주하지 않는 한 검거와 처벌이 어려운 겁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인천국제공항에서 적발된 불법 주차대행 사례를 보니, 총 3만여 건 가운데 극소수인 30여 건에만 과태료가 부과됐습니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공사는 공항공사 임직원이 불법 영업행위 현행범에 대해 사법경찰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사법경찰직무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이 개정되면 공항공사가 단속과 처벌 권한을 모두 가지게 돼, 점진적으로 공항 사설 주차대행을 근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해당 법은 2017년 1월, 국회 법사위에 넘겨진 이후 현재까지도 심사 계류 중이어서 성수기 공항 주차대행 문제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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