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화마가 집어심킨 베테랑 소방관…하루 1명 죽거나 다쳐

입력 2019.08.07 (11:35) 수정 2019.08.07 (11:3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제(6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의 낮 최고기온은 34.6도까지 치솟았다. 밖에 나가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날씨였다.

절정의 폭염 속 화재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화재에 앞서 폭발이 일어나서 거리에는 건물 잔해가 나뒹굴었다. 건물을 지지하고 있던 철골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폭염 속 아수라장을 누비는 소방관들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매일 맞닥뜨리는 화기(火氣) 때문인지, 매년 겪어내는 폭염 때문인지 얼굴이 하얀 사람이 없었다. 여기에 불을 끄면서 묻은 그을음까지 더해졌다.

원래도 어두운 그들의 얼굴이 어제는 더 어두워 보였다. 어제 오후 발생한 안성의 종이 공장 화재는 20여 분 만에 초기 진압에 성공했지만, 그 대가가 컸다. 소방관 1명이 순직했다. 경력 15년의 베테랑 소방관 석원호 소방장이다.


'베테랑 소방관'의 안타까운 순직

화재 신고가 접수된 건 오후 1시 14분. 석 소방장은 동료와 함께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석 소방장이 목격한 건 건물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이었다.

지하 1층 창고 관계자는 이 사람은 창고에 불이 난 것 같다는 보안업체 연락을 받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 연기가 심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석 소방장은 이 사람을 보고 건물 안에 사람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어제는 휴무한 업체도 있고 일하는 업체도 근무자가 건물 안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안타깝게 이런 사실을 석 소방장은 알지 못했다.

화재에 앞서 폭발이 있었던 지하 1층에서는 석 소방장이 들어가는 순간 2차 폭발이 일어났다. 건물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음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2차 폭발로 건물 밖에 있던 소방차 앞 유리가 깨지기까지 했다.

석 소방장은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한 집념이 불러온 숭고한 희생이었다. 석 소방장과 함께 진압에 나섰던 동료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석 소방장은 2004년 3월 소방에 입문해 두 차례 포상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소방관이었다. 슬하에 10대 자녀 2명을 두고 70대 부친까지 모시고 사는 성실한 가장이기도 했다.


하루 1명꼴로 죽거나 다쳐…여름은 잔인한 계절

이렇게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소방관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소방청이 발간한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소방활동 과정에서 순직하거나 다친 사람은 4136명이다. 1년에 평균 410여 명, 하루 평균 1명꼴로 순직하거나 다치는 셈이다.

순직·부상자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08년에는 340명이 죽거나 다쳤는데, 지난해에는 이 숫자가 735명으로 늘었다. 10년 사이에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여름은 소방관에게는 더욱 잔인한 계절이다. 두꺼운 방화복을 입고 수십 kg에 달하는 소방 장비까지 착용하면 체감 온도는 40도를 오르내린다.

지난 5일 경기도 파주시에서는 전자상가에 난 불을 끄던 소방관이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당시 파주 지역은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었고, 낮 최고기온은 34.3도까지 올라갔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는 이제는 온 국민이 다 알 정도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지방직인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만드는 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난 6월 말 국회 행정 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안건조정위원회에 넘겨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매 순간 자기 목숨을 걸고 남의 목숨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답이 보일 것 같은데, 우리는 언제쯤 소방관들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화마가 집어심킨 베테랑 소방관…하루 1명 죽거나 다쳐
    • 입력 2019-08-07 11:35:58
    • 수정2019-08-07 11:36:10
    취재후·사건후
어제(6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의 낮 최고기온은 34.6도까지 치솟았다. 밖에 나가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날씨였다.

절정의 폭염 속 화재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화재에 앞서 폭발이 일어나서 거리에는 건물 잔해가 나뒹굴었다. 건물을 지지하고 있던 철골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폭염 속 아수라장을 누비는 소방관들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매일 맞닥뜨리는 화기(火氣) 때문인지, 매년 겪어내는 폭염 때문인지 얼굴이 하얀 사람이 없었다. 여기에 불을 끄면서 묻은 그을음까지 더해졌다.

원래도 어두운 그들의 얼굴이 어제는 더 어두워 보였다. 어제 오후 발생한 안성의 종이 공장 화재는 20여 분 만에 초기 진압에 성공했지만, 그 대가가 컸다. 소방관 1명이 순직했다. 경력 15년의 베테랑 소방관 석원호 소방장이다.


'베테랑 소방관'의 안타까운 순직

화재 신고가 접수된 건 오후 1시 14분. 석 소방장은 동료와 함께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석 소방장이 목격한 건 건물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이었다.

지하 1층 창고 관계자는 이 사람은 창고에 불이 난 것 같다는 보안업체 연락을 받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 연기가 심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석 소방장은 이 사람을 보고 건물 안에 사람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어제는 휴무한 업체도 있고 일하는 업체도 근무자가 건물 안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안타깝게 이런 사실을 석 소방장은 알지 못했다.

화재에 앞서 폭발이 있었던 지하 1층에서는 석 소방장이 들어가는 순간 2차 폭발이 일어났다. 건물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음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2차 폭발로 건물 밖에 있던 소방차 앞 유리가 깨지기까지 했다.

석 소방장은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한 집념이 불러온 숭고한 희생이었다. 석 소방장과 함께 진압에 나섰던 동료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석 소방장은 2004년 3월 소방에 입문해 두 차례 포상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소방관이었다. 슬하에 10대 자녀 2명을 두고 70대 부친까지 모시고 사는 성실한 가장이기도 했다.


하루 1명꼴로 죽거나 다쳐…여름은 잔인한 계절

이렇게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소방관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소방청이 발간한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소방활동 과정에서 순직하거나 다친 사람은 4136명이다. 1년에 평균 410여 명, 하루 평균 1명꼴로 순직하거나 다치는 셈이다.

순직·부상자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08년에는 340명이 죽거나 다쳤는데, 지난해에는 이 숫자가 735명으로 늘었다. 10년 사이에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여름은 소방관에게는 더욱 잔인한 계절이다. 두꺼운 방화복을 입고 수십 kg에 달하는 소방 장비까지 착용하면 체감 온도는 40도를 오르내린다.

지난 5일 경기도 파주시에서는 전자상가에 난 불을 끄던 소방관이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당시 파주 지역은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었고, 낮 최고기온은 34.3도까지 올라갔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는 이제는 온 국민이 다 알 정도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지방직인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만드는 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난 6월 말 국회 행정 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안건조정위원회에 넘겨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매 순간 자기 목숨을 걸고 남의 목숨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답이 보일 것 같은데, 우리는 언제쯤 소방관들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