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성적 몰아주는 그들만의 리그?’ 끊이지 않는 고교 내신관리 부실

입력 2019.08.07 (14:30) 수정 2019.08.07 (14:3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상위권 반 참고서에서 2문제는 똑같이, 5문제는 숫자와 기호만 바꿔
학부모들 "일반 학생들은 교과서로만 수업, 공정성에 위배"
학교와 교육청, "잘못 인정하지만, 점수 차이 크게 없어 재시험 고려 안해"

"심화반 교재서 문제가 그대로 나왔어요!"

여름 방학이 한창인 며칠 전, 한 건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전남 목포의 한 사립고등학교의 1학년 기말고사 시험문제가 성적 상위권 반이 쓰는 참고서 문항에서 그대로 출제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또?'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광주광역시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시중 참고서 7문제가 출제, 2문제는 그대로 베껴 출제

목포 A고교의 모습목포 A고교의 모습

일단 제보 내용을 더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문제가 된 시험지는 고등학교 1학년 수학 과목 기말고사였습니다. 시험지를 확인해보니 객관식 17문항과 주관식 4문항 등 모두 21개 문항으로 출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7개 문제가 시중의 한 수학참고서의 문제를 사실상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2개 문항은 질문은 물론 보기도 숫자나 기호까지 그대로 출제가 됐습니다. 말 그대로 '묻지마' 출제였습니다. 5개 문항도 살펴봤습니다. 앞선 2개 문항처럼 참고서 문제를 그대로 출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식에서 '+'를 '-'로 바꾸거나 질문을 '합'에서 '곱'으로 바꾼 형태였습니다. 이른바 꼼수 출제였던 겁니다.

학원 강사 몇 명을 접촉해보았습니다. 일관된 답변은 대다수 참고서에 출제되는 일반 유형의 문제지만, 사전에 문제를 풀어본 학생이라면 풀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7개 문항의 배점은 28.7점. 이 문제를 풀어본 학생이라면 시험지를 받자마자 28.7 점은 기본 점수로 받고 시작을 하는 게 된다는 겁니다. 거기에 서술형 등 난이도 문제를 좀 더 여유롭고 꼼꼼하게 풀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른바 보너스라는 이야기도 전해줍니다.

목포 A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 수학 8번 문제와 참고서 문제입니다.목포 A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 수학 8번 문제와 참고서 문제입니다.

물론 다양한 문제를 풀어 본 학생들이 실제 시험에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쉽게 풀고 높은 점수를 얻는 건 합리적일 겁니다. 그런데 사실상 '베끼기'로 출제된 7개 문항이 출제된 참고서가 이 학교에서는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요? 황당하게도 성적 우수 학생들만 보는 보조 교재였습니다.

이 학교 1학년 학생은 모두 177명입니다. 이 가운데 50명은 성적우수반으로 분류되고, 또 여기서 30명만 따로 뽑아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1학년 학생들이 일반반-우수반-심화반으로 나뉘어 있는 겁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7문항 가운데 똑같이 출제된 2개 문항은 우수반과 심화반 학생들만 쓰는 참고서에서 출제가 됐고, 일부 기호만 바꿔 출제된 5문항은 심화반 학생들만 보는 참고서에 실린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반 학생들은 7개 문항을 미리 풀어볼 기회조차 없었고, 우수반 학생들은 2개 문항을, 심화반 학생들은 7개 문항을 사전에 학습할 기회가 각기 다르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수 학생들을 위한 성적 몰아주기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학교 측 "심화반 폐지하고 해당 교사 징계"...재시험은 고려 안 해

학교 측은 반응은 어땠을까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예정"이라며, "해당 교사를 담임 보직과 1학년 수학수업에서 제외하고, 법인에서 징계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2학기부터 수준별 수업반을 폐지하고 지난 3년간 출제된 시험문제를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책임이 시험문제를 출제한 교사 1명에게 있을까요?
일선 학교는 중간, 기말고사 시험 출제를 공동으로 출제를 합니다. 시험출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도 1학년 수학 기말고사 시험지는 모두 4명의 교사가 공동출제를 했고, 교감과 교장의 날인까지 찍혀 있습니다. 공동출제를 통해 시험 문항 출제 과정의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라는 것이지만 사전 검토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시험문제를 출제한 교사 한 명만 징계를 받는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건, 일선 학교의 시험지 공동출제가 사실상 교사들이 시험 범위만 구분해서 각기 문제를 출제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바쁘다는 이유로, 또 누군가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버젓이 참고서를 베끼더라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남도교육청은 A고교에 대해 특별감사에 들어갔습니다.전남도교육청은 A고교에 대해 특별감사에 들어갔습니다.

엉성한 '학업성적관리 지침'..."구체적 내용 검토하겠다"

지난해 사회적 이슈가 된 서울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 등을 계기로 교육부는 일선 학교의 학업 성적관리를 엄격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교육청도 "참고서 문제, 전년도 출제 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는 일"을 사전에 예방하라는 지침과 함께 적어도 참고서를 참고해 출제를 하려면 변형시킬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토 과정과 방식에 대한 구체적 지침은 아예 없습니다. 결국 형식적인 지침만 내려보냈을 뿐 이 같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손을 놓고 있었던 겁니다. 그나마 이번 사건이 보도되면서 "지침에 검토 관련 내용을 추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해당 학교에 대한 특별감사에 돌입했습니다. 다른 학년과 과목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겠다며, 일선 학교에도 이와 비슷한 시험출제가 있었는지 검토하라는 공문도 조만간 내려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연관 기사] 기말 수학, 상위권반 교재서 출제…“성적 몰아주기”

"재시험은 필요하지 않다?"...누구를 위한 조치?

하지만 학교 측과 전남도 교육청은 "지침에 위반한 문제는 2문항이고, 논란이 된 문항들과 일반 문항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큰 점수 차이가 없었다"며 재시험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학부모들은 분노하며, "내신 성적이 중요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 근절대책 마련을 위해 전수조사를 실시"하자고 요청합니다.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학교의 시험관리. 입시에서 수시 비중이 높아지고, 내신관리가 중요해지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까지 민감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을 통한 신뢰회복이 아닐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성적 몰아주는 그들만의 리그?’ 끊이지 않는 고교 내신관리 부실
    • 입력 2019-08-07 14:30:35
    • 수정2019-08-07 14:30:49
    취재후·사건후
상위권 반 참고서에서 2문제는 똑같이, 5문제는 숫자와 기호만 바꿔<br />학부모들 "일반 학생들은 교과서로만 수업, 공정성에 위배"<br />학교와 교육청, "잘못 인정하지만, 점수 차이 크게 없어 재시험 고려 안해"
"심화반 교재서 문제가 그대로 나왔어요!"

여름 방학이 한창인 며칠 전, 한 건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전남 목포의 한 사립고등학교의 1학년 기말고사 시험문제가 성적 상위권 반이 쓰는 참고서 문항에서 그대로 출제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또?'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광주광역시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시중 참고서 7문제가 출제, 2문제는 그대로 베껴 출제

목포 A고교의 모습
일단 제보 내용을 더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문제가 된 시험지는 고등학교 1학년 수학 과목 기말고사였습니다. 시험지를 확인해보니 객관식 17문항과 주관식 4문항 등 모두 21개 문항으로 출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7개 문제가 시중의 한 수학참고서의 문제를 사실상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2개 문항은 질문은 물론 보기도 숫자나 기호까지 그대로 출제가 됐습니다. 말 그대로 '묻지마' 출제였습니다. 5개 문항도 살펴봤습니다. 앞선 2개 문항처럼 참고서 문제를 그대로 출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식에서 '+'를 '-'로 바꾸거나 질문을 '합'에서 '곱'으로 바꾼 형태였습니다. 이른바 꼼수 출제였던 겁니다.

학원 강사 몇 명을 접촉해보았습니다. 일관된 답변은 대다수 참고서에 출제되는 일반 유형의 문제지만, 사전에 문제를 풀어본 학생이라면 풀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7개 문항의 배점은 28.7점. 이 문제를 풀어본 학생이라면 시험지를 받자마자 28.7 점은 기본 점수로 받고 시작을 하는 게 된다는 겁니다. 거기에 서술형 등 난이도 문제를 좀 더 여유롭고 꼼꼼하게 풀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른바 보너스라는 이야기도 전해줍니다.

목포 A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 수학 8번 문제와 참고서 문제입니다.
물론 다양한 문제를 풀어 본 학생들이 실제 시험에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쉽게 풀고 높은 점수를 얻는 건 합리적일 겁니다. 그런데 사실상 '베끼기'로 출제된 7개 문항이 출제된 참고서가 이 학교에서는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요? 황당하게도 성적 우수 학생들만 보는 보조 교재였습니다.

이 학교 1학년 학생은 모두 177명입니다. 이 가운데 50명은 성적우수반으로 분류되고, 또 여기서 30명만 따로 뽑아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1학년 학생들이 일반반-우수반-심화반으로 나뉘어 있는 겁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7문항 가운데 똑같이 출제된 2개 문항은 우수반과 심화반 학생들만 쓰는 참고서에서 출제가 됐고, 일부 기호만 바꿔 출제된 5문항은 심화반 학생들만 보는 참고서에 실린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반 학생들은 7개 문항을 미리 풀어볼 기회조차 없었고, 우수반 학생들은 2개 문항을, 심화반 학생들은 7개 문항을 사전에 학습할 기회가 각기 다르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수 학생들을 위한 성적 몰아주기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학교 측 "심화반 폐지하고 해당 교사 징계"...재시험은 고려 안 해

학교 측은 반응은 어땠을까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예정"이라며, "해당 교사를 담임 보직과 1학년 수학수업에서 제외하고, 법인에서 징계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2학기부터 수준별 수업반을 폐지하고 지난 3년간 출제된 시험문제를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책임이 시험문제를 출제한 교사 1명에게 있을까요?
일선 학교는 중간, 기말고사 시험 출제를 공동으로 출제를 합니다. 시험출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도 1학년 수학 기말고사 시험지는 모두 4명의 교사가 공동출제를 했고, 교감과 교장의 날인까지 찍혀 있습니다. 공동출제를 통해 시험 문항 출제 과정의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라는 것이지만 사전 검토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시험문제를 출제한 교사 한 명만 징계를 받는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건, 일선 학교의 시험지 공동출제가 사실상 교사들이 시험 범위만 구분해서 각기 문제를 출제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바쁘다는 이유로, 또 누군가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버젓이 참고서를 베끼더라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남도교육청은 A고교에 대해 특별감사에 들어갔습니다.
엉성한 '학업성적관리 지침'..."구체적 내용 검토하겠다"

지난해 사회적 이슈가 된 서울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 등을 계기로 교육부는 일선 학교의 학업 성적관리를 엄격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교육청도 "참고서 문제, 전년도 출제 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는 일"을 사전에 예방하라는 지침과 함께 적어도 참고서를 참고해 출제를 하려면 변형시킬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토 과정과 방식에 대한 구체적 지침은 아예 없습니다. 결국 형식적인 지침만 내려보냈을 뿐 이 같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손을 놓고 있었던 겁니다. 그나마 이번 사건이 보도되면서 "지침에 검토 관련 내용을 추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해당 학교에 대한 특별감사에 돌입했습니다. 다른 학년과 과목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겠다며, 일선 학교에도 이와 비슷한 시험출제가 있었는지 검토하라는 공문도 조만간 내려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연관 기사] 기말 수학, 상위권반 교재서 출제…“성적 몰아주기”

"재시험은 필요하지 않다?"...누구를 위한 조치?

하지만 학교 측과 전남도 교육청은 "지침에 위반한 문제는 2문항이고, 논란이 된 문항들과 일반 문항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큰 점수 차이가 없었다"며 재시험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학부모들은 분노하며, "내신 성적이 중요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 근절대책 마련을 위해 전수조사를 실시"하자고 요청합니다.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학교의 시험관리. 입시에서 수시 비중이 높아지고, 내신관리가 중요해지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까지 민감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을 통한 신뢰회복이 아닐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