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 마련된 빈소…“아버지의 마음으로”

입력 2019.08.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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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이름은 쇠 린 마웅, 미얀마 사람입니다."

지난달 31일, 목동 빗물 저류시설에서 3명의 작업자가 사망했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이들의 인적 사항은 안 모 씨, 구 모 씨, 그리고 미얀마 노동자 한 명이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 낯선 언어 속에서 일했을 이 미얀마 노동자는 잠시 사람들의 귀에서 맴돌다가, 연이어 쏟아지는 소식에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잊혀가던 그를 기억하는 공간이 그제(5일) 양천구청에 마련됐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쇠 린 마웅'. 분향소에는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을 갖고 있던 '쇠 린 마웅'씨의 사진과 미얀마 언어로 적힌 추모 글이 놓였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모였습니다.

쇠 린 마웅은 평소에 눈이 불편해 어려움을 호소했고,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미얀마에 있는 가족을 가장처럼 돌봤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미얀마 노동자가 아닌 친구이자 동료였던 '쇠 린 마웅'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번 목동 수몰 사고로 숨진 또 다른 노동자 안 모 씨의 아버지였습니다.

■"모두 다 노동자고, 같은 마음이잖아."

숨진 현대건설 대리 안 모 씨는 사고 당일,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쇠 린 마웅' 씨와 구 모 씨에게 수문이 열렸다는 긴급 상황을 알리기 위해 작업 현장으로 뛰어들어갔다 변을 당했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아들의 사망 소식에 안 씨의 아버지는 크나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자신도 마음을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 가족들을 달래야 했고, 갖가지 의혹들 속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아내야 했습니다. 한 가지 일도 처리하기 쉽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던 상황. 그런데 이런 아버지 안 씨에게 직계 가족이 한국에 없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던 '쇠 린 마웅'씨의 딱한 사정이 들려왔습니다.

안 씨는 곧 낯선 땅에서 누구도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고 있던 '쇠 린 마웅'씨를 챙기기로 하고, 양천구청에 분향소 설치를 요구했고, 그렇게 '쇠 린 마웅'을 기억하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 안 씨는 KBS 취재진에게 분향소를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모두 다 노동자고, 같은 마음이잖아. 나도 아버지고, 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에 가서 그 분 부모님이랑 얘기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멀리 미얀마에서 또 다른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했을,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들. 아버지가 아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안 씨는 '쇠 린 마웅'씨의 마지막을 챙겼고, 한국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밤을 보낸 '쇠 린 마웅'씨의 시신은 어젯(6일)밤 늦게 미얀마에 도착해 가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 안 씨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안 씨는 "이제 왜 내 아들이 사망했는지,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점은 없었는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형적인 '인재'라는 이번 사고에는 여전히 규명하지 못한 의혹이 많습니다. ▲공사 관계자들이 비가 온다는 것을 알고도 근로자들을 투입했는지, ▲뒤따라 내려갔다가 희생된 현대건설 직원 안 씨가 상부의 지시를 받고 내려갔는지, ▲작업자들이 터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일한 탈출구인 방수문을 외부에서 닫은 이유는 무엇인지. 이 모든 의혹들이 수사대상입니다.

아버지 안 씨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수사가 철저히 이뤄지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찰은 어제(6일) 시공사인 현대 건설과 서울시, 양천구 등 관련 기관을 압수 수색을 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공사 현장 관계자 4명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입니다. 경찰은 "양천구나 서울시 공무원 입건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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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땅에 마련된 빈소…“아버지의 마음으로”
    • 입력 2019-08-07 16:47:18
    취재K
■ "제 이름은 쇠 린 마웅, 미얀마 사람입니다."

지난달 31일, 목동 빗물 저류시설에서 3명의 작업자가 사망했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이들의 인적 사항은 안 모 씨, 구 모 씨, 그리고 미얀마 노동자 한 명이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 낯선 언어 속에서 일했을 이 미얀마 노동자는 잠시 사람들의 귀에서 맴돌다가, 연이어 쏟아지는 소식에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잊혀가던 그를 기억하는 공간이 그제(5일) 양천구청에 마련됐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쇠 린 마웅'. 분향소에는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을 갖고 있던 '쇠 린 마웅'씨의 사진과 미얀마 언어로 적힌 추모 글이 놓였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모였습니다.

쇠 린 마웅은 평소에 눈이 불편해 어려움을 호소했고,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미얀마에 있는 가족을 가장처럼 돌봤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미얀마 노동자가 아닌 친구이자 동료였던 '쇠 린 마웅'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번 목동 수몰 사고로 숨진 또 다른 노동자 안 모 씨의 아버지였습니다.

■"모두 다 노동자고, 같은 마음이잖아."

숨진 현대건설 대리 안 모 씨는 사고 당일,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쇠 린 마웅' 씨와 구 모 씨에게 수문이 열렸다는 긴급 상황을 알리기 위해 작업 현장으로 뛰어들어갔다 변을 당했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아들의 사망 소식에 안 씨의 아버지는 크나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자신도 마음을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 가족들을 달래야 했고, 갖가지 의혹들 속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아내야 했습니다. 한 가지 일도 처리하기 쉽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던 상황. 그런데 이런 아버지 안 씨에게 직계 가족이 한국에 없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던 '쇠 린 마웅'씨의 딱한 사정이 들려왔습니다.

안 씨는 곧 낯선 땅에서 누구도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고 있던 '쇠 린 마웅'씨를 챙기기로 하고, 양천구청에 분향소 설치를 요구했고, 그렇게 '쇠 린 마웅'을 기억하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 안 씨는 KBS 취재진에게 분향소를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모두 다 노동자고, 같은 마음이잖아. 나도 아버지고, 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에 가서 그 분 부모님이랑 얘기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멀리 미얀마에서 또 다른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했을,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들. 아버지가 아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안 씨는 '쇠 린 마웅'씨의 마지막을 챙겼고, 한국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밤을 보낸 '쇠 린 마웅'씨의 시신은 어젯(6일)밤 늦게 미얀마에 도착해 가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 안 씨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안 씨는 "이제 왜 내 아들이 사망했는지,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점은 없었는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형적인 '인재'라는 이번 사고에는 여전히 규명하지 못한 의혹이 많습니다. ▲공사 관계자들이 비가 온다는 것을 알고도 근로자들을 투입했는지, ▲뒤따라 내려갔다가 희생된 현대건설 직원 안 씨가 상부의 지시를 받고 내려갔는지, ▲작업자들이 터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일한 탈출구인 방수문을 외부에서 닫은 이유는 무엇인지. 이 모든 의혹들이 수사대상입니다.

아버지 안 씨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수사가 철저히 이뤄지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찰은 어제(6일) 시공사인 현대 건설과 서울시, 양천구 등 관련 기관을 압수 수색을 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공사 현장 관계자 4명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입니다. 경찰은 "양천구나 서울시 공무원 입건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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