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벤처회사 이사님의 ‘슬기로운 병영생활’

입력 2019.08.0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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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병역을 이행해도 되나요?"

자신이 공동 창립한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KBS 취재진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만든 벤처기업 부설 연구소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방위산업과 관련된 업체도 아니다. 개인 회사만 위한 병역 이행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병무청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손 쓰지 않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자연계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연구기관에서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며 군 복무를 대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1981년부터는 중소기업 부설 연구소에도 해당 특례를 주었습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선정되면 4주간 군사훈련을 받고 36개월간 연구 현장에서 대체복무할 수 있습니다. 전문연구요원은 해당 회사에서 지시한 연구 활동만 할 수 있습니다. 상법상·민법상 이사로는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최고기술경영자(CTO)와 전문연구요원"
인터넷 동영상 강의 벤처기업의 부설 연구소에서 지난해부터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대신하고 있는 A 씨. 업체의 등기를 확인해보니 A 씨는 2018년 5월까지 등기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물러났습니다. A 씨의 페이스북엔 '공동창립자(Co-Founder)/최고기술경영자(CTO)'라는 소개도 있었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 공동 창립한 회사이자, 이사로 재직했던 회사에서 병역을 이행하고 있는 겁니다. 전문연구요원은 회사에서 지시한 연구만 해야 하니, 회사의 '최고기술경영자'였던 A 씨가 회사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연구만 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해당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B 씨는, A 씨가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고 있는지는 확인해주기 어렵다면서도, 그런 일이 있어도 불법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회사에서 병역을 대신하고 있는데, 불법이 아니다? 확인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병무청에 확인을 해봤습니다. 병무청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보통 일 년에 한 번 정도 병역을 잘 이행하는지 확인하러 가는데, 이 업체의 경우 문제를 인지해 두 번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출퇴근 등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공동창업자나 이사 등이 전문연구요원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 등이 없어, 제재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병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형평성"
병역법 제92조는 '대표이사의 4촌 이내 혈족에 해당하는 사람을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복무의 공정성, 의무종사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겁니다. 대표이사와 최고기술경영자가 4촌 이내 혈족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문제는 없는 겁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법에서 '대표이사의 4촌 이내 혈족'만 금지하고 있어, 이 외의 것에 대해 서류를 요구하기도 힘들고 제재를 가하기도 힘들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런 점이)대체복무제의 한계다. 더 큰 문제는 자기 회사니까. 정확히 어떻게 보면 문제의식이 맞는 거 같은데, 법적으로 이걸 허용해놨으니까..."라면서 곤란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형평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병역의 의무는 대한민국 남자 누구라면 지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낮은 시급을 받고 근무합니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고생하면서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다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학업, 연기, 음악, 사업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갑니다.

이에 대해 군 검찰 출신 김상호 변호사는 "병역법이 지정업체 대표와 4촌 이내 혈족 관계에 있는 사람 같은 경우에 편입을 제한하는 이유는 복무의 공정성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라면서 "이번 경우도 그 취지와 같은 측면이 있다. 정당한 업무지시가 있을 수 없고 복무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병무청에서 정부 입법으로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사님의 슬기로운 병영생활,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저녁 'KBS 뉴스9'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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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벤처회사 이사님의 ‘슬기로운 병영생활’
    • 입력 2019-08-07 18:33:26
    취재K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병역을 이행해도 되나요?"

자신이 공동 창립한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KBS 취재진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만든 벤처기업 부설 연구소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방위산업과 관련된 업체도 아니다. 개인 회사만 위한 병역 이행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병무청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손 쓰지 않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자연계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연구기관에서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며 군 복무를 대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1981년부터는 중소기업 부설 연구소에도 해당 특례를 주었습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선정되면 4주간 군사훈련을 받고 36개월간 연구 현장에서 대체복무할 수 있습니다. 전문연구요원은 해당 회사에서 지시한 연구 활동만 할 수 있습니다. 상법상·민법상 이사로는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최고기술경영자(CTO)와 전문연구요원"
인터넷 동영상 강의 벤처기업의 부설 연구소에서 지난해부터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대신하고 있는 A 씨. 업체의 등기를 확인해보니 A 씨는 2018년 5월까지 등기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물러났습니다. A 씨의 페이스북엔 '공동창립자(Co-Founder)/최고기술경영자(CTO)'라는 소개도 있었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 공동 창립한 회사이자, 이사로 재직했던 회사에서 병역을 이행하고 있는 겁니다. 전문연구요원은 회사에서 지시한 연구만 해야 하니, 회사의 '최고기술경영자'였던 A 씨가 회사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연구만 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해당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B 씨는, A 씨가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고 있는지는 확인해주기 어렵다면서도, 그런 일이 있어도 불법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회사에서 병역을 대신하고 있는데, 불법이 아니다? 확인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병무청에 확인을 해봤습니다. 병무청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보통 일 년에 한 번 정도 병역을 잘 이행하는지 확인하러 가는데, 이 업체의 경우 문제를 인지해 두 번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출퇴근 등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공동창업자나 이사 등이 전문연구요원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 등이 없어, 제재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병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형평성"
병역법 제92조는 '대표이사의 4촌 이내 혈족에 해당하는 사람을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복무의 공정성, 의무종사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겁니다. 대표이사와 최고기술경영자가 4촌 이내 혈족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문제는 없는 겁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법에서 '대표이사의 4촌 이내 혈족'만 금지하고 있어, 이 외의 것에 대해 서류를 요구하기도 힘들고 제재를 가하기도 힘들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런 점이)대체복무제의 한계다. 더 큰 문제는 자기 회사니까. 정확히 어떻게 보면 문제의식이 맞는 거 같은데, 법적으로 이걸 허용해놨으니까..."라면서 곤란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형평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병역의 의무는 대한민국 남자 누구라면 지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낮은 시급을 받고 근무합니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고생하면서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다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학업, 연기, 음악, 사업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갑니다.

이에 대해 군 검찰 출신 김상호 변호사는 "병역법이 지정업체 대표와 4촌 이내 혈족 관계에 있는 사람 같은 경우에 편입을 제한하는 이유는 복무의 공정성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라면서 "이번 경우도 그 취지와 같은 측면이 있다. 정당한 업무지시가 있을 수 없고 복무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병무청에서 정부 입법으로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사님의 슬기로운 병영생활,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저녁 'KBS 뉴스9'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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