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한밤의 포식자 멧돼지 습격에 날아가버린 한 해 농사

입력 2019.08.08 (07:01) 수정 2019.08.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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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과수원 습격 사건..CCTV에 생생히 담긴 '약탈' 장면

취재진은 지난달 말 야생 멧돼지의 습격을 받았다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사과 농장을 찾아갔습니다. 농장주인은 사건 당일 CCTV 화면을 보여줬습니다.

CCTV에는 덩치가 제법 있어 보이는 멧돼지 한 마리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멧돼지는 사과나무를 두 발로 밀다가, 입으로 가지를 물어, 세차게 흔들어 대는가 싶더니, 아예 나무 기둥까지 부러뜨려버렸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수도 없이 피해 지역을 봐 왔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멧돼지가 농경지를 습격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처참한 피해 현장...폐허로 변한 과수원

밭 주인과 함께 피해 현장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산비탈을 한참 올라가니 그물망을 빙 둘러친 과수원이 보였습니다. CCTV 속 피해 현장이었습니다.

과수원 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전체 사과나무 100그루 가운데 40그루가 기둥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나무를 지탱하는 지주대도 맥없이 휘어져 있었습니다. 서 있는 나무에도 사과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밭 주인은 영상을 보며 "CCTV에 잡힌 멧돼지는 한 마리지만, 현장에는 다른 멧돼지들이 더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는 농사 접어야 해. 몇 년을 또 키워야지"..멍든 농심

과수원 주인은 "지난 5년을 하루같이 피땀 흘려 키운 나무인데, 이 지경이 됐다"라며 "올해 농사는 접어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또 몇 년을 키워야 하는데,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곁에서 조용히 남편의 설명을 듣던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지난달 27일 밤. 멧돼지가 습격한 과수원의 모습지난달 27일 밤. 멧돼지가 습격한 과수원의 모습

"울타리, 멧돼지 기피제도 소용없어"

취재진은 주변에 피해를 입은 또 다른 농경지는 없는지 찾아다니다, 산비탈의 작은 옥수수밭을 발견했습니다. 교실 두 칸 정도 돼 보이는 옥수수밭의 절반이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곳곳에는 멧돼지 발자국이 남아 있었고, 옥수숫대도 쓰러진 채 짓이겨져 있었습니다. 멧돼지가 먹다 남은 옥수수는 밑동만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옥수수밭 주인은 "멧돼지의 짓"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멧돼지가 헤집어 놓은 울타리를 보여주며, "울타리도, 멧돼지 기피제도 다 소용없다"라고 한탄했습니다.

멧돼지가 헤집은 옥수수 농가멧돼지가 헤집은 옥수수 농가

멧돼지 피해, 강원 충북 경북 등 산림지역에 집중

환경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 동안 멧돼지로 인한 전국의 농작물 피해액은 200억 원대에 이릅니다. 그중 강원도와 충북, 경북 등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반면 서울이나 인천, 제주도 등은 아예 집계된 피해가 없거나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실제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의 멧돼지 포획은 127마리였습니다. 같은 기간 강원도에선 2만5천 마리가 넘는 멧돼지가 포획됐습니다. 산림이 울창하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전국 멧돼지 농작물 피해액최근 3년간 전국 멧돼지 농작물 피해액

해가 바뀌어도 끊이지 않는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 일 년 농사를 하룻밤 사이에 망치고 망연자실해 하던 농민들이 모습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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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한밤의 포식자 멧돼지 습격에 날아가버린 한 해 농사
    • 입력 2019-08-08 07:01:53
    • 수정2019-08-08 11:43:38
    취재후·사건후
멧돼지 과수원 습격 사건..CCTV에 생생히 담긴 '약탈' 장면

취재진은 지난달 말 야생 멧돼지의 습격을 받았다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사과 농장을 찾아갔습니다. 농장주인은 사건 당일 CCTV 화면을 보여줬습니다.

CCTV에는 덩치가 제법 있어 보이는 멧돼지 한 마리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멧돼지는 사과나무를 두 발로 밀다가, 입으로 가지를 물어, 세차게 흔들어 대는가 싶더니, 아예 나무 기둥까지 부러뜨려버렸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수도 없이 피해 지역을 봐 왔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멧돼지가 농경지를 습격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처참한 피해 현장...폐허로 변한 과수원

밭 주인과 함께 피해 현장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산비탈을 한참 올라가니 그물망을 빙 둘러친 과수원이 보였습니다. CCTV 속 피해 현장이었습니다.

과수원 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전체 사과나무 100그루 가운데 40그루가 기둥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나무를 지탱하는 지주대도 맥없이 휘어져 있었습니다. 서 있는 나무에도 사과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밭 주인은 영상을 보며 "CCTV에 잡힌 멧돼지는 한 마리지만, 현장에는 다른 멧돼지들이 더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는 농사 접어야 해. 몇 년을 또 키워야지"..멍든 농심

과수원 주인은 "지난 5년을 하루같이 피땀 흘려 키운 나무인데, 이 지경이 됐다"라며 "올해 농사는 접어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또 몇 년을 키워야 하는데,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곁에서 조용히 남편의 설명을 듣던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지난달 27일 밤. 멧돼지가 습격한 과수원의 모습
"울타리, 멧돼지 기피제도 소용없어"

취재진은 주변에 피해를 입은 또 다른 농경지는 없는지 찾아다니다, 산비탈의 작은 옥수수밭을 발견했습니다. 교실 두 칸 정도 돼 보이는 옥수수밭의 절반이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곳곳에는 멧돼지 발자국이 남아 있었고, 옥수숫대도 쓰러진 채 짓이겨져 있었습니다. 멧돼지가 먹다 남은 옥수수는 밑동만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옥수수밭 주인은 "멧돼지의 짓"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멧돼지가 헤집어 놓은 울타리를 보여주며, "울타리도, 멧돼지 기피제도 다 소용없다"라고 한탄했습니다.

멧돼지가 헤집은 옥수수 농가
멧돼지 피해, 강원 충북 경북 등 산림지역에 집중

환경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 동안 멧돼지로 인한 전국의 농작물 피해액은 200억 원대에 이릅니다. 그중 강원도와 충북, 경북 등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반면 서울이나 인천, 제주도 등은 아예 집계된 피해가 없거나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실제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의 멧돼지 포획은 127마리였습니다. 같은 기간 강원도에선 2만5천 마리가 넘는 멧돼지가 포획됐습니다. 산림이 울창하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전국 멧돼지 농작물 피해액
해가 바뀌어도 끊이지 않는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 일 년 농사를 하룻밤 사이에 망치고 망연자실해 하던 농민들이 모습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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