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란?

입력 2019.08.08 (08:41) 수정 2019.08.0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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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를 찾아보는 순서 영화의 쓸모 코너입니다.

본격적인 휴가철, 극장가에서도 대작들이 여러 편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요.

어떤 영화 골라볼지가 고민인데 완성도와 재미를 고루 갖췄다면 좋겠죠,

어떤 작품이 있는지 송형국 기자와 얘기나눠보겠습니다.

송 기자, 사실 이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 한국영화 개봉 편수가 해마다 200편 가까이 되거든요.

그런데 탄탄한 완성도에다 오락성까지 함께 갖춘 대규모 상업영화, 안타깝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예요.

현재 흥행과 비평에서 고른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작품이 한 편 있어서 오늘 가지고 나왔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화 '엑시트'입니다.

주인공들이 산악동아리에서 다진 실력으로 가스 테러 현장에서 탈출한다는 재난 소재 영화인데요.

촬영과 편집에 굉장히 정성을 들인 영화라는 점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인물을 가까이서 촬영한 클로즈업과 멀리서 찍은 원경을 이어붙이면 관객은 전체를 파악하면서 웃음을 얻게 됩니다.

["넌 가름마가 이쪽으로 이렇게 와야..."]

가까이 보여주고, 한발 떨어져서 보여주고,

["내 가름마야~"]

가까이,

["내가 너한테 고백 비스무리한 거 했지 그랬지. 아, 그렇다고 네가 불편해 내가? 뭐 내가 충격받고 울고 그랬을까봐?"]

멀리.

["왜! 왜!"]

위대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한 것처럼, 근경과 원경을 잘 조합한 장면들은

["가까이 오지 말라 그랬지, 누가 그냥 가라 그랬어... 살려주세요..."]

관객이 좀더 상황을 관조할 수 있게 해주면서 깊이감을 만들곤 합니다.

또 이렇게 카메라가 인물을 비추다가 위로 올라가면서 원경을 보여주면 재난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인물들이 얼마나 속수무책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이렇게 재난 속에서 인물의 무력감 같은 것을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화면 밖에 있던 인물의 얼굴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면서 관객은 인물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걸 뒤쪽에 있는 인물은 모르고 있다는 걸 지켜보는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살았다는 사실을 다른 등장인물들은 모른다는 점을 활용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처럼 관객은 아는 정보를 극중 인물에 어떻게 제공하느냐를 가지고 긴장감 혹은 유머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영화 역사에서 끊임없이 활용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앵커]

네, 그러니까 이런 촬영이나 편집 기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상업영화로서 완성도를 높인다 이렇게 보면 되겠네요.

그런데 흥행과 비평 양쪽을 만족시키려면 이런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내용도 좋아야 할텐데요.

어떤가요?

[기자]

네, 지금 대표적인 사례 몇가지만 말씀드렸지만 기술적인 측면이 내용하고 유기적으로 맞물리니까 완성도가 높다, 이런 평가가 나오는 걸 텐데요.

계속해서 화면 보시겠습니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 구성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청년 백수에다,

["그래 요즘 너 뭐..."]

["장가 못갔고요, 취업준비중입니다."]

감정노동에 시달린다는 설정은 물론이고 남주인공은 아들 선호사상이 있던 시절에 태어나 딸 셋 있는 집 외아들이라는 설정이라든지 얼핏 흘려보낼 수 있는 디테일들이 꼼꼼히 배치돼있습니다.

신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상가 간판 같은 것들을 정교하게 세팅해놓고 이것들을 위기 탈출에 다양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건 구급차가 아닌 사설 견인차고요.

명배우 버스터 키튼이 "평범한 코미디언은 재미있는 것을 연기하지만 훌륭한 코미디언은 평범한 것을 재미있게 만든다"고 말한 것처럼 평범한 주인공이 평범한 도시 속에서 위태롭고 흥미로운 상황들을 연출하는 솜씨는 고도로 훈련된 첩보요원의 그것만큼이나 재미있습니다.

또 한가지 돋보이는 점은 이 영화가 여성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인데요.

대부분의 재난 영화에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구조가 필요한 여린 존재로 그려지기 쉽죠.

이 영화는 초반에 여주인공의 암벽등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자연스럽게 전제하고 솔선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구조활동을 지휘할 뿐 아니라,

["모두 건물밖으로 나가세요. 빨리요, 빨리."]

남성 주인공과 동등한 실력으로 매달리고 뜀박질하면서 위기를 극복합니다.

여기에다 앞서 보신 장면에서 눈물을 숨긴다든지 그것이 들통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이렇게 다소 모자라보이는 역할도 사실은 기존의 코미디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의 몫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런 부분까지 여성 캐릭터에게 배분함으로써 여배우의 연기 반경을 넓히고 있다, 이런 점들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네, 이렇게 보니까 쉽게 보고 지나치는 오락영화 중에도 부지런히 공들여 만든 작품은 그만큼 화면의 밀도가 높고 그래서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송 기자, 오늘 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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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8 08:47:30
    • 수정2019-08-08 08: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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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를 찾아보는 순서 영화의 쓸모 코너입니다.

본격적인 휴가철, 극장가에서도 대작들이 여러 편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요.

어떤 영화 골라볼지가 고민인데 완성도와 재미를 고루 갖췄다면 좋겠죠,

어떤 작품이 있는지 송형국 기자와 얘기나눠보겠습니다.

송 기자, 사실 이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 한국영화 개봉 편수가 해마다 200편 가까이 되거든요.

그런데 탄탄한 완성도에다 오락성까지 함께 갖춘 대규모 상업영화, 안타깝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예요.

현재 흥행과 비평에서 고른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작품이 한 편 있어서 오늘 가지고 나왔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화 '엑시트'입니다.

주인공들이 산악동아리에서 다진 실력으로 가스 테러 현장에서 탈출한다는 재난 소재 영화인데요.

촬영과 편집에 굉장히 정성을 들인 영화라는 점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인물을 가까이서 촬영한 클로즈업과 멀리서 찍은 원경을 이어붙이면 관객은 전체를 파악하면서 웃음을 얻게 됩니다.

["넌 가름마가 이쪽으로 이렇게 와야..."]

가까이 보여주고, 한발 떨어져서 보여주고,

["내 가름마야~"]

가까이,

["내가 너한테 고백 비스무리한 거 했지 그랬지. 아, 그렇다고 네가 불편해 내가? 뭐 내가 충격받고 울고 그랬을까봐?"]

멀리.

["왜! 왜!"]

위대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한 것처럼, 근경과 원경을 잘 조합한 장면들은

["가까이 오지 말라 그랬지, 누가 그냥 가라 그랬어... 살려주세요..."]

관객이 좀더 상황을 관조할 수 있게 해주면서 깊이감을 만들곤 합니다.

또 이렇게 카메라가 인물을 비추다가 위로 올라가면서 원경을 보여주면 재난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인물들이 얼마나 속수무책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이렇게 재난 속에서 인물의 무력감 같은 것을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화면 밖에 있던 인물의 얼굴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면서 관객은 인물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걸 뒤쪽에 있는 인물은 모르고 있다는 걸 지켜보는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살았다는 사실을 다른 등장인물들은 모른다는 점을 활용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처럼 관객은 아는 정보를 극중 인물에 어떻게 제공하느냐를 가지고 긴장감 혹은 유머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영화 역사에서 끊임없이 활용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앵커]

네, 그러니까 이런 촬영이나 편집 기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상업영화로서 완성도를 높인다 이렇게 보면 되겠네요.

그런데 흥행과 비평 양쪽을 만족시키려면 이런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내용도 좋아야 할텐데요.

어떤가요?

[기자]

네, 지금 대표적인 사례 몇가지만 말씀드렸지만 기술적인 측면이 내용하고 유기적으로 맞물리니까 완성도가 높다, 이런 평가가 나오는 걸 텐데요.

계속해서 화면 보시겠습니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 구성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청년 백수에다,

["그래 요즘 너 뭐..."]

["장가 못갔고요, 취업준비중입니다."]

감정노동에 시달린다는 설정은 물론이고 남주인공은 아들 선호사상이 있던 시절에 태어나 딸 셋 있는 집 외아들이라는 설정이라든지 얼핏 흘려보낼 수 있는 디테일들이 꼼꼼히 배치돼있습니다.

신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상가 간판 같은 것들을 정교하게 세팅해놓고 이것들을 위기 탈출에 다양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건 구급차가 아닌 사설 견인차고요.

명배우 버스터 키튼이 "평범한 코미디언은 재미있는 것을 연기하지만 훌륭한 코미디언은 평범한 것을 재미있게 만든다"고 말한 것처럼 평범한 주인공이 평범한 도시 속에서 위태롭고 흥미로운 상황들을 연출하는 솜씨는 고도로 훈련된 첩보요원의 그것만큼이나 재미있습니다.

또 한가지 돋보이는 점은 이 영화가 여성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인데요.

대부분의 재난 영화에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구조가 필요한 여린 존재로 그려지기 쉽죠.

이 영화는 초반에 여주인공의 암벽등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자연스럽게 전제하고 솔선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구조활동을 지휘할 뿐 아니라,

["모두 건물밖으로 나가세요. 빨리요, 빨리."]

남성 주인공과 동등한 실력으로 매달리고 뜀박질하면서 위기를 극복합니다.

여기에다 앞서 보신 장면에서 눈물을 숨긴다든지 그것이 들통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이렇게 다소 모자라보이는 역할도 사실은 기존의 코미디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의 몫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런 부분까지 여성 캐릭터에게 배분함으로써 여배우의 연기 반경을 넓히고 있다, 이런 점들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네, 이렇게 보니까 쉽게 보고 지나치는 오락영화 중에도 부지런히 공들여 만든 작품은 그만큼 화면의 밀도가 높고 그래서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송 기자, 오늘 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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