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황교안 ‘아직은’ 어색한 만남

입력 2019.08.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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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이틀 연속 국회를 찾았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각 당 지도부에 취임 후 첫 인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8일)은 한국당 지도부를 만났습니다. 미묘한 시기에 눈길 쏠리는 만남이었습니다.

'어색한 만남' 이어간 황교안과 윤석열

윤석열 총장과 황교안 대표의 악연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6년 전 윤 총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황교안 법무장관을 그야말로 '저격'했습니다.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수사 당시 외압이 있었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무관치 않다"고 해서 정국을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국정농단 수사 때도 악연은 되풀이됐습니다. 윤석열 수사팀장이 속한 특검팀은 박근혜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특검 연장을 요청했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악연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시그널일까요? 윤석열 총장은 한국당의 상징인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황교안 대표를 찾아왔고, 그를 기다렸습니다. 윤 총장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려는 듯했고, 황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에 들어섰습니다.

황 대표는 윤 총장과 짧게 인사했습니다. 윤 총장의 손을 잡으려다가 슬그머니 놓기도 했습니다. 촬영기자들의 요청을 받고서야 겨우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자세를 취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작심한 듯 곧바로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주요 보직을 특정 영역 검사들이 맡는 것 아니냐, 역량 있는 검사들이 많이 떠나고 있다, 한국당이 고소·고발한 사건 대부분이 유야무야됐다며 맹공을 가했습니다.

최근 검찰인사에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특수통 검사들이 약진하고 공안통들이 밀려난 걸 꼬집은 겁니다. 청와대 특감반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해 한국당이 고발한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해 달라는 요청도 담겼습니다.

비공개 면담도 30분 넘게 이어졌습니다. 한국당 의원들이 수사 대상인 패스트트랙 수사같은 현안 얘기가 오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회동에 배석한 전희경 대변인은 "황 대표가 검찰의 전문성 강화나 과학수사시스템 구축 등 검찰 선배로서의 조언을 많이 건넸고, 윤 총장은 주로 경청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첫 공식 회동에서 패스트트랙 수사같은 민감한 얘기를 바로 꺼낼 정도로 내공이 얕은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쓴소리'와 '당부' 쏟아낸 한국당

오후에 만난 나경원 원내대표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다소 실망한 부분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검찰이 집권세력에 쏠려 있었다"며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 조직 운영을 '상식적으로' 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비공개 면담에 함께 참석한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나 원내대표가 정치 분야의 지나친 사법화에 대해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패스트트랙 수사를 신중하게 해달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겁니다.

공교롭게도 검찰의 명운을 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모두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윤 총장은 이틀간 법사위와 사개특위 위원장과 위원들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여상규 법사위원장도 "여야 편향되지 않게 중립적으로 수사해 달라"며 패스트트랙 수사를 우회적으로 언급했고, 유기준 사개특위 위원장은 비공개 면담에서 검찰의 편향적 인사와 수사를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말 아낀 윤석열 검찰총장…비공개 면담에선?

회의장 앞에 진을 친 취재진에게는 극도로 말을 아꼈던 윤 총장. 비공개 면담에서는 검찰 현안 등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때 마침 최순실 씨가 딸 정유라 씨에게 보낸 재산 관련 서신이 공개된 상황. 윤 총장은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최 씨와 관련된 재산에 대해 상당히 보전 청구를 해뒀기 때문에 몰수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굉장히 많은 재산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사유재산에 대한 정보보호가 미국보다 강해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또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 "(검찰총장 임명 후 검찰 인사에서) 관례적으로 40~50명이 사표를 내곤 했다"며 이번 검찰 인사가 무리한 인사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사과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이미 (인사) 조치를 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설에 우려를 표한 것에도 "소셜미디어(SNS)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좀 그렇지만 사람 자체는 괜찮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이번 방문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특히 야당 의원들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도록 법 집행을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불리한 수사 결과가 나오면 검찰을 탓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를 공격할 때는 고발장부터 들고가는 정치권. 이례적으로 여야 지도부와 법제사법위원와 사법개혁특별위원를 일일이 찾아 인사한 새 검찰총장과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요? 패스트트랙 수사에 응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검찰이 어떤 조치를 내릴지가 곧 시금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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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황교안 ‘아직은’ 어색한 만남
    • 입력 2019-08-08 20:08:47
    취재K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이틀 연속 국회를 찾았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각 당 지도부에 취임 후 첫 인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8일)은 한국당 지도부를 만났습니다. 미묘한 시기에 눈길 쏠리는 만남이었습니다.

'어색한 만남' 이어간 황교안과 윤석열

윤석열 총장과 황교안 대표의 악연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6년 전 윤 총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황교안 법무장관을 그야말로 '저격'했습니다.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수사 당시 외압이 있었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무관치 않다"고 해서 정국을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국정농단 수사 때도 악연은 되풀이됐습니다. 윤석열 수사팀장이 속한 특검팀은 박근혜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특검 연장을 요청했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악연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시그널일까요? 윤석열 총장은 한국당의 상징인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황교안 대표를 찾아왔고, 그를 기다렸습니다. 윤 총장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려는 듯했고, 황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에 들어섰습니다.

황 대표는 윤 총장과 짧게 인사했습니다. 윤 총장의 손을 잡으려다가 슬그머니 놓기도 했습니다. 촬영기자들의 요청을 받고서야 겨우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자세를 취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작심한 듯 곧바로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주요 보직을 특정 영역 검사들이 맡는 것 아니냐, 역량 있는 검사들이 많이 떠나고 있다, 한국당이 고소·고발한 사건 대부분이 유야무야됐다며 맹공을 가했습니다.

최근 검찰인사에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특수통 검사들이 약진하고 공안통들이 밀려난 걸 꼬집은 겁니다. 청와대 특감반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해 한국당이 고발한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해 달라는 요청도 담겼습니다.

비공개 면담도 30분 넘게 이어졌습니다. 한국당 의원들이 수사 대상인 패스트트랙 수사같은 현안 얘기가 오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회동에 배석한 전희경 대변인은 "황 대표가 검찰의 전문성 강화나 과학수사시스템 구축 등 검찰 선배로서의 조언을 많이 건넸고, 윤 총장은 주로 경청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첫 공식 회동에서 패스트트랙 수사같은 민감한 얘기를 바로 꺼낼 정도로 내공이 얕은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쓴소리'와 '당부' 쏟아낸 한국당

오후에 만난 나경원 원내대표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다소 실망한 부분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검찰이 집권세력에 쏠려 있었다"며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 조직 운영을 '상식적으로' 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비공개 면담에 함께 참석한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나 원내대표가 정치 분야의 지나친 사법화에 대해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패스트트랙 수사를 신중하게 해달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겁니다.

공교롭게도 검찰의 명운을 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모두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윤 총장은 이틀간 법사위와 사개특위 위원장과 위원들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여상규 법사위원장도 "여야 편향되지 않게 중립적으로 수사해 달라"며 패스트트랙 수사를 우회적으로 언급했고, 유기준 사개특위 위원장은 비공개 면담에서 검찰의 편향적 인사와 수사를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말 아낀 윤석열 검찰총장…비공개 면담에선?

회의장 앞에 진을 친 취재진에게는 극도로 말을 아꼈던 윤 총장. 비공개 면담에서는 검찰 현안 등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때 마침 최순실 씨가 딸 정유라 씨에게 보낸 재산 관련 서신이 공개된 상황. 윤 총장은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최 씨와 관련된 재산에 대해 상당히 보전 청구를 해뒀기 때문에 몰수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굉장히 많은 재산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사유재산에 대한 정보보호가 미국보다 강해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또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 "(검찰총장 임명 후 검찰 인사에서) 관례적으로 40~50명이 사표를 내곤 했다"며 이번 검찰 인사가 무리한 인사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사과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이미 (인사) 조치를 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설에 우려를 표한 것에도 "소셜미디어(SNS)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좀 그렇지만 사람 자체는 괜찮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이번 방문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특히 야당 의원들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도록 법 집행을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불리한 수사 결과가 나오면 검찰을 탓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를 공격할 때는 고발장부터 들고가는 정치권. 이례적으로 여야 지도부와 법제사법위원와 사법개혁특별위원를 일일이 찾아 인사한 새 검찰총장과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요? 패스트트랙 수사에 응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검찰이 어떤 조치를 내릴지가 곧 시금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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