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종 "美에 중재 요청 안 했다…국제 호구 될 일 있나"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오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달 미국에 가서 한일 갈등에 대한 중재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중재는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차장은 또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올 게 뻔한데, 제가 왜 중재를 요청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김 차장은 그러면서 당시 방미의 목적이 두 가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삼권분립에 의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이는 결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미국의 의도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고 김 차장은 밝혔습니다.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외교 정책을 운용하려는 것인지 속뜻을 물어보려 했다는 겁니다.
김 차장은 "미국이 만약에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한일 갈등에) 관여를 할 것이고, 만약에 그렇지 않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외교 정책을 하겠다고 그러면 관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중재라는 말은 안 하고 미국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에 요구한 건 중재(arbitration)가 아니라 관여(engagement)"
지난달 중순, 김현종 차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던 방미단의 일원은 "당시 방미단은 미국이 인게이지(engage)해서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중재(arbitration)나 조정(mediation)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면서, 중재(arbitration)란 표현은 구속성이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조율한 표현이 관여(engagement)였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요청에 대해 미국 측은 한 가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미국 당국자들은 한국과 일본 둘 다 가까운 맹방이기 때문에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렵다고 우리 방미단에 전했습니다. 중재(arbitration)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다만 미국 당국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하면 안 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후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스틸웰 차관보는 지난달 17일, 김현종 2차장과의 면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동맹의 미덕으로서, 미국과 한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여할 것(We by just virtue of alliance will engage in all issues deal with US and Korea, so.)"이라고 말했습니다. 관여(engagement)라는 표현을 써 미국이 한일 갈등에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스틸웰 차관보 이후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틸웰 차관보는 '관찰 모드'였다면 볼턴 보좌관은 한일 간에 다투는 이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이해도가 더 높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이 다녀간 직후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이 임박해서, 미국의 위기의식이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파기 여론도 높아졌는데, 미국이 그때부터 한일의 입장을 모두 감안한 타협안을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스틸웰 美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美, 타협안 찾으려 했다"…사실상 '물밑 중재' 나섰던 미국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이 임박했던 8월 초, 태국 방콕에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중재나 관여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이때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한일 간 타협안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종 2차장도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직후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가 이른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를 제안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 차장은 당시 "한일 갈등을 해결코자 하는 노력에 최근 미국도 동참했다"면서 "소위 현상동결합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은 긍정적 입장을 갖고 일본과 협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은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한미일 고위급 협의도 제안했습니다. 지난달 12일 스틸웰 차관보 방한을 계기로 한미일 차관급이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의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이후 미국은 지난 2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도 배석자 없이 진행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이 배석자를 요구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이달 초 외교부 당국자들은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더 이상 "중재가 아니다"라고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지난 2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중재하느냐"는 질문에 중재가 아니라고 바로잡지 않은 채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를 결정하기 전날인 어제(1일) 밤까지도 아주 부산하게 움직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일 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ARF 갈라 만찬에 참석해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한 자리에 서서 20분 이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대반전 없이 끝난 외교전…더 이상 나서지 않는 미국
하지만 긴박했던 외교전은 결국 대반전 없이 끝났습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 등 제안에 대해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이 문제는 외무성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경제산업성의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 미국 국무부는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중재(arbitrating)나 조정(mediating)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간의 물밑 중재 움직임을 부정하고 앞으로의 중재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겁니다. 실제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엔 미국의 관여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김현종 2차장의 "중재 요청이 없었다"는 말은 중재(arbitration), 조정(mediation), 관여(engagement) 등과 같이 외교적 표현을 세부적으로 나눠봤을 땐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간의 외교전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한일 간의 문제에 끼어들기를 요구했고, 실제 미국의 움직임까지 이끌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반전 없이 외교전이 끝이 났다고 해서, 우리의 외교적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순 없다는 뜻입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오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달 미국에 가서 한일 갈등에 대한 중재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중재는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차장은 또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올 게 뻔한데, 제가 왜 중재를 요청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김 차장은 그러면서 당시 방미의 목적이 두 가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삼권분립에 의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이는 결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미국의 의도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고 김 차장은 밝혔습니다.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외교 정책을 운용하려는 것인지 속뜻을 물어보려 했다는 겁니다.
김 차장은 "미국이 만약에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한일 갈등에) 관여를 할 것이고, 만약에 그렇지 않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외교 정책을 하겠다고 그러면 관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중재라는 말은 안 하고 미국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에 요구한 건 중재(arbitration)가 아니라 관여(engagement)"
지난달 중순, 김현종 차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던 방미단의 일원은 "당시 방미단은 미국이 인게이지(engage)해서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중재(arbitration)나 조정(mediation)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면서, 중재(arbitration)란 표현은 구속성이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조율한 표현이 관여(engagement)였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요청에 대해 미국 측은 한 가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미국 당국자들은 한국과 일본 둘 다 가까운 맹방이기 때문에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렵다고 우리 방미단에 전했습니다. 중재(arbitration)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다만 미국 당국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하면 안 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후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스틸웰 차관보는 지난달 17일, 김현종 2차장과의 면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동맹의 미덕으로서, 미국과 한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여할 것(We by just virtue of alliance will engage in all issues deal with US and Korea, so.)"이라고 말했습니다. 관여(engagement)라는 표현을 써 미국이 한일 갈등에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스틸웰 차관보 이후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틸웰 차관보는 '관찰 모드'였다면 볼턴 보좌관은 한일 간에 다투는 이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이해도가 더 높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이 다녀간 직후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이 임박해서, 미국의 위기의식이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파기 여론도 높아졌는데, 미국이 그때부터 한일의 입장을 모두 감안한 타협안을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美, 타협안 찾으려 했다"…사실상 '물밑 중재' 나섰던 미국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이 임박했던 8월 초, 태국 방콕에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중재나 관여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이때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한일 간 타협안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종 2차장도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직후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가 이른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를 제안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 차장은 당시 "한일 갈등을 해결코자 하는 노력에 최근 미국도 동참했다"면서 "소위 현상동결합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은 긍정적 입장을 갖고 일본과 협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은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한미일 고위급 협의도 제안했습니다. 지난달 12일 스틸웰 차관보 방한을 계기로 한미일 차관급이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의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이후 미국은 지난 2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도 배석자 없이 진행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이 배석자를 요구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이달 초 외교부 당국자들은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더 이상 "중재가 아니다"라고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지난 2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중재하느냐"는 질문에 중재가 아니라고 바로잡지 않은 채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를 결정하기 전날인 어제(1일) 밤까지도 아주 부산하게 움직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일 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ARF 갈라 만찬에 참석해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한 자리에 서서 20분 이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대반전 없이 끝난 외교전…더 이상 나서지 않는 미국
하지만 긴박했던 외교전은 결국 대반전 없이 끝났습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 등 제안에 대해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이 문제는 외무성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경제산업성의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 미국 국무부는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중재(arbitrating)나 조정(mediating)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간의 물밑 중재 움직임을 부정하고 앞으로의 중재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겁니다. 실제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엔 미국의 관여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김현종 2차장의 "중재 요청이 없었다"는 말은 중재(arbitration), 조정(mediation), 관여(engagement) 등과 같이 외교적 표현을 세부적으로 나눠봤을 땐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간의 외교전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한일 간의 문제에 끼어들기를 요구했고, 실제 미국의 움직임까지 이끌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반전 없이 외교전이 끝이 났다고 해서, 우리의 외교적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순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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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구될까봐 美에 중재 요청 안했다고?…한미일 외교전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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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8-12 17:53:53

김현종 "美에 중재 요청 안 했다…국제 호구 될 일 있나"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오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달 미국에 가서 한일 갈등에 대한 중재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중재는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차장은 또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올 게 뻔한데, 제가 왜 중재를 요청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김 차장은 그러면서 당시 방미의 목적이 두 가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삼권분립에 의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이는 결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미국의 의도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고 김 차장은 밝혔습니다.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외교 정책을 운용하려는 것인지 속뜻을 물어보려 했다는 겁니다.
김 차장은 "미국이 만약에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한일 갈등에) 관여를 할 것이고, 만약에 그렇지 않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외교 정책을 하겠다고 그러면 관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중재라는 말은 안 하고 미국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에 요구한 건 중재(arbitration)가 아니라 관여(engagement)"
지난달 중순, 김현종 차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던 방미단의 일원은 "당시 방미단은 미국이 인게이지(engage)해서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중재(arbitration)나 조정(mediation)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면서, 중재(arbitration)란 표현은 구속성이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조율한 표현이 관여(engagement)였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요청에 대해 미국 측은 한 가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미국 당국자들은 한국과 일본 둘 다 가까운 맹방이기 때문에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렵다고 우리 방미단에 전했습니다. 중재(arbitration)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다만 미국 당국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하면 안 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후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스틸웰 차관보는 지난달 17일, 김현종 2차장과의 면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동맹의 미덕으로서, 미국과 한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여할 것(We by just virtue of alliance will engage in all issues deal with US and Korea, so.)"이라고 말했습니다. 관여(engagement)라는 표현을 써 미국이 한일 갈등에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스틸웰 차관보 이후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틸웰 차관보는 '관찰 모드'였다면 볼턴 보좌관은 한일 간에 다투는 이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이해도가 더 높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이 다녀간 직후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이 임박해서, 미국의 위기의식이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파기 여론도 높아졌는데, 미국이 그때부터 한일의 입장을 모두 감안한 타협안을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美, 타협안 찾으려 했다"…사실상 '물밑 중재' 나섰던 미국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이 임박했던 8월 초, 태국 방콕에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중재나 관여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이때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한일 간 타협안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종 2차장도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직후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가 이른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를 제안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 차장은 당시 "한일 갈등을 해결코자 하는 노력에 최근 미국도 동참했다"면서 "소위 현상동결합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은 긍정적 입장을 갖고 일본과 협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은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한미일 고위급 협의도 제안했습니다. 지난달 12일 스틸웰 차관보 방한을 계기로 한미일 차관급이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의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이후 미국은 지난 2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도 배석자 없이 진행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이 배석자를 요구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이달 초 외교부 당국자들은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더 이상 "중재가 아니다"라고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지난 2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중재하느냐"는 질문에 중재가 아니라고 바로잡지 않은 채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를 결정하기 전날인 어제(1일) 밤까지도 아주 부산하게 움직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일 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ARF 갈라 만찬에 참석해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한 자리에 서서 20분 이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대반전 없이 끝난 외교전…더 이상 나서지 않는 미국
하지만 긴박했던 외교전은 결국 대반전 없이 끝났습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 등 제안에 대해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이 문제는 외무성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경제산업성의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 미국 국무부는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중재(arbitrating)나 조정(mediating)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간의 물밑 중재 움직임을 부정하고 앞으로의 중재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겁니다. 실제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엔 미국의 관여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김현종 2차장의 "중재 요청이 없었다"는 말은 중재(arbitration), 조정(mediation), 관여(engagement) 등과 같이 외교적 표현을 세부적으로 나눠봤을 땐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간의 외교전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한일 간의 문제에 끼어들기를 요구했고, 실제 미국의 움직임까지 이끌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반전 없이 외교전이 끝이 났다고 해서, 우리의 외교적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순 없다는 뜻입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오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달 미국에 가서 한일 갈등에 대한 중재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중재는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차장은 또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올 게 뻔한데, 제가 왜 중재를 요청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김 차장은 그러면서 당시 방미의 목적이 두 가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삼권분립에 의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이는 결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미국의 의도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고 김 차장은 밝혔습니다.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외교 정책을 운용하려는 것인지 속뜻을 물어보려 했다는 겁니다.
김 차장은 "미국이 만약에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한일 갈등에) 관여를 할 것이고, 만약에 그렇지 않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외교 정책을 하겠다고 그러면 관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중재라는 말은 안 하고 미국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에 요구한 건 중재(arbitration)가 아니라 관여(engagement)"
지난달 중순, 김현종 차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던 방미단의 일원은 "당시 방미단은 미국이 인게이지(engage)해서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중재(arbitration)나 조정(mediation)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면서, 중재(arbitration)란 표현은 구속성이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조율한 표현이 관여(engagement)였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요청에 대해 미국 측은 한 가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미국 당국자들은 한국과 일본 둘 다 가까운 맹방이기 때문에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렵다고 우리 방미단에 전했습니다. 중재(arbitration)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다만 미국 당국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하면 안 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후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스틸웰 차관보는 지난달 17일, 김현종 2차장과의 면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동맹의 미덕으로서, 미국과 한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여할 것(We by just virtue of alliance will engage in all issues deal with US and Korea, so.)"이라고 말했습니다. 관여(engagement)라는 표현을 써 미국이 한일 갈등에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스틸웰 차관보 이후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틸웰 차관보는 '관찰 모드'였다면 볼턴 보좌관은 한일 간에 다투는 이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이해도가 더 높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이 다녀간 직후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이 임박해서, 미국의 위기의식이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파기 여론도 높아졌는데, 미국이 그때부터 한일의 입장을 모두 감안한 타협안을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美, 타협안 찾으려 했다"…사실상 '물밑 중재' 나섰던 미국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이 임박했던 8월 초, 태국 방콕에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중재나 관여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이때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한일 간 타협안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종 2차장도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직후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가 이른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를 제안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 차장은 당시 "한일 갈등을 해결코자 하는 노력에 최근 미국도 동참했다"면서 "소위 현상동결합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은 긍정적 입장을 갖고 일본과 협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은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한미일 고위급 협의도 제안했습니다. 지난달 12일 스틸웰 차관보 방한을 계기로 한미일 차관급이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의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이후 미국은 지난 2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도 배석자 없이 진행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이 배석자를 요구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이달 초 외교부 당국자들은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더 이상 "중재가 아니다"라고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지난 2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중재하느냐"는 질문에 중재가 아니라고 바로잡지 않은 채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를 결정하기 전날인 어제(1일) 밤까지도 아주 부산하게 움직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일 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ARF 갈라 만찬에 참석해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한 자리에 서서 20분 이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대반전 없이 끝난 외교전…더 이상 나서지 않는 미국
하지만 긴박했던 외교전은 결국 대반전 없이 끝났습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상동결합의(스탠드스틸, standstill agreement)' 등 제안에 대해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이 문제는 외무성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경제산업성의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 미국 국무부는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중재(arbitrating)나 조정(mediating)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간의 물밑 중재 움직임을 부정하고 앞으로의 중재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겁니다. 실제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이후엔 미국의 관여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김현종 2차장의 "중재 요청이 없었다"는 말은 중재(arbitration), 조정(mediation), 관여(engagement) 등과 같이 외교적 표현을 세부적으로 나눠봤을 땐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간의 외교전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한일 간의 문제에 끼어들기를 요구했고, 실제 미국의 움직임까지 이끌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반전 없이 외교전이 끝이 났다고 해서, 우리의 외교적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순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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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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