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사’ 탈북민을 좌절시킨 말…“중국 가서 서류 떼어 오라”
입력 2019.08.15 (07:01)
수정 2019.08.1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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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餓死). 사전적인 의미는 '굶어 죽음'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어를 오르내린 이유는 그만큼 한국 사회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기 때문일 겁니다.
2019년 서울 도심에서 어떻게 40대 여성과 5살 아이가 굶어 죽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왜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 "타살·자살 흔적 없어...아사 '가능성'"
탈북민 어머니와 아들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아사'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탈북민 41살 한 모 씨의 자택에는 외부침입 흔적이 없었고, 타살이나 자살로 볼 만한 단서도 없었습니다.
발견 당시 숨진 한 씨는 거실 겸 주방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발견된 한 씨의 아들 6살 김 모 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서 고춧가루 말고는 음식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아사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김 군이 아팠다는 주변 증언이 있어 병원 진료 기록 등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 씨는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김 군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사정을 알 만한 가족도 없는 상황입니다. 경찰은 전 남편 김 모 씨가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범죄 혐의점이 없다 보니 강제로 소환해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어렵습니다.
한 씨의 행적을 취재하던 중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탈북해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을 도왔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을 데리고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한 씨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어요. 그래서 제가 주민센터에 가서 문의해보라고 했죠. 그런데, 주민센터에서는 그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했다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아니, 돈도 없는 사람한테 중국가서 서류를 떼오라니, 말이나 됩니까? 가면 중국 당국이 바로 떼준답니까?"
전 남편이 중국 국적이어서 국내에서는 이혼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 씨는 더이상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된 겁니다.
김 회장은 "한 씨는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전화도 하고, 살아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면서도, 그 이후로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 "재개발 임대주택..위기관리 관찰에서 빠져"
한 씨 모자는 수개월간 임대료와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징후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위기가구에 대한 발굴 관리를 강화했습니다. 이른바 '세모녀법'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3개월 이상 임대료나 공과금이 밀리면 '행복e음(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이 시스템에 따라 두 달에 한 번씩 5백만 명 정도가 대상자에 오르고, 이 가운데 의도적인 체납자 등을 제외하고 추린 5만 명 가량이 '위기 가구'로 선정돼 지자체에 통보됩니다.
그런데 한 씨는 18개월 정도 임대료 등을 납부하지 못했는데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한 씨가 사는 곳이 재개발 아파트가 의무조성하는 임대주택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스템은 공공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만 모니터링 대상자입니다.
수도요금 미납도 이 아파트가 개별 가구 직접 징수 방식이 아닌, '단지 과금' 형태로 징수했기 때문에 시스템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한 씨는 이혼 이후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외부와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달 10만 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만 5세 미만 아동에게 지급)'과 '양육수당(유치원 등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지급)'은 받았지만, 김 군이 만 5살을 넘긴 올해 3월부터는 아동수당마저 끊겼습니다.
■ 탈북자들의 한숨..."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현행법상 탈북민들은 정착 후 5년간 보호를 받지만, 그 이후로도 필요할 경우 '하나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하나재단이 관리하는 전문상담사는 전국 25개 센터에 83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재 탈북민이 3만 명이 넘는 점을 볼 때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씨에게 도움이 닿진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한 씨가 비단 탈북민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을 때 당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은 특히 그런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탈북민들 사이에선 "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있다"라는 탄식섞인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김 회장은 전했습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 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2019년 서울 도심에서 어떻게 40대 여성과 5살 아이가 굶어 죽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왜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 "타살·자살 흔적 없어...아사 '가능성'"
탈북민 어머니와 아들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아사'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탈북민 41살 한 모 씨의 자택에는 외부침입 흔적이 없었고, 타살이나 자살로 볼 만한 단서도 없었습니다.
발견 당시 숨진 한 씨는 거실 겸 주방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발견된 한 씨의 아들 6살 김 모 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서 고춧가루 말고는 음식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아사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김 군이 아팠다는 주변 증언이 있어 병원 진료 기록 등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숨진 한 씨가 살았던 서울 관악구의 임대아파트. 이 곳은 재개발 아파트가 의무조성하는 임대주택으로, 정부의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운영하는 위기가구 모니터링 대상에서 제외돼있다.
한 씨는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김 군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사정을 알 만한 가족도 없는 상황입니다. 경찰은 전 남편 김 모 씨가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범죄 혐의점이 없다 보니 강제로 소환해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어렵습니다.
한 씨의 행적을 취재하던 중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탈북해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을 도왔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을 데리고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한 씨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어요. 그래서 제가 주민센터에 가서 문의해보라고 했죠. 그런데, 주민센터에서는 그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했다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아니, 돈도 없는 사람한테 중국가서 서류를 떼오라니, 말이나 됩니까? 가면 중국 당국이 바로 떼준답니까?"
전 남편이 중국 국적이어서 국내에서는 이혼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 씨는 더이상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된 겁니다.
김 회장은 "한 씨는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전화도 하고, 살아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면서도, 그 이후로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 "재개발 임대주택..위기관리 관찰에서 빠져"
한 씨 모자는 수개월간 임대료와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징후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위기가구에 대한 발굴 관리를 강화했습니다. 이른바 '세모녀법'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3개월 이상 임대료나 공과금이 밀리면 '행복e음(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이 시스템에 따라 두 달에 한 번씩 5백만 명 정도가 대상자에 오르고, 이 가운데 의도적인 체납자 등을 제외하고 추린 5만 명 가량이 '위기 가구'로 선정돼 지자체에 통보됩니다.
탈북민 한 씨의 아파트 우편함에 남아 있는 수도요금 고지서.
그런데 한 씨는 18개월 정도 임대료 등을 납부하지 못했는데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한 씨가 사는 곳이 재개발 아파트가 의무조성하는 임대주택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스템은 공공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만 모니터링 대상자입니다.
수도요금 미납도 이 아파트가 개별 가구 직접 징수 방식이 아닌, '단지 과금' 형태로 징수했기 때문에 시스템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한 씨는 이혼 이후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외부와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달 10만 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만 5세 미만 아동에게 지급)'과 '양육수당(유치원 등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지급)'은 받았지만, 김 군이 만 5살을 넘긴 올해 3월부터는 아동수당마저 끊겼습니다.
■ 탈북자들의 한숨..."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현행법상 탈북민들은 정착 후 5년간 보호를 받지만, 그 이후로도 필요할 경우 '하나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하나재단이 관리하는 전문상담사는 전국 25개 센터에 83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재 탈북민이 3만 명이 넘는 점을 볼 때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씨에게 도움이 닿진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한 씨가 비단 탈북민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을 때 당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은 특히 그런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탈북민들 사이에선 "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있다"라는 탄식섞인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김 회장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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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8-15 07:01:32
- 수정2019-08-15 07:15:27
아사(餓死). 사전적인 의미는 '굶어 죽음'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어를 오르내린 이유는 그만큼 한국 사회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기 때문일 겁니다.
2019년 서울 도심에서 어떻게 40대 여성과 5살 아이가 굶어 죽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왜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 "타살·자살 흔적 없어...아사 '가능성'"
탈북민 어머니와 아들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아사'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탈북민 41살 한 모 씨의 자택에는 외부침입 흔적이 없었고, 타살이나 자살로 볼 만한 단서도 없었습니다.
발견 당시 숨진 한 씨는 거실 겸 주방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발견된 한 씨의 아들 6살 김 모 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서 고춧가루 말고는 음식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아사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김 군이 아팠다는 주변 증언이 있어 병원 진료 기록 등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 씨는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김 군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사정을 알 만한 가족도 없는 상황입니다. 경찰은 전 남편 김 모 씨가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범죄 혐의점이 없다 보니 강제로 소환해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어렵습니다.
한 씨의 행적을 취재하던 중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탈북해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을 도왔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을 데리고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한 씨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어요. 그래서 제가 주민센터에 가서 문의해보라고 했죠. 그런데, 주민센터에서는 그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했다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아니, 돈도 없는 사람한테 중국가서 서류를 떼오라니, 말이나 됩니까? 가면 중국 당국이 바로 떼준답니까?"
전 남편이 중국 국적이어서 국내에서는 이혼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 씨는 더이상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된 겁니다.
김 회장은 "한 씨는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전화도 하고, 살아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면서도, 그 이후로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 "재개발 임대주택..위기관리 관찰에서 빠져"
한 씨 모자는 수개월간 임대료와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징후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위기가구에 대한 발굴 관리를 강화했습니다. 이른바 '세모녀법'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3개월 이상 임대료나 공과금이 밀리면 '행복e음(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이 시스템에 따라 두 달에 한 번씩 5백만 명 정도가 대상자에 오르고, 이 가운데 의도적인 체납자 등을 제외하고 추린 5만 명 가량이 '위기 가구'로 선정돼 지자체에 통보됩니다.
그런데 한 씨는 18개월 정도 임대료 등을 납부하지 못했는데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한 씨가 사는 곳이 재개발 아파트가 의무조성하는 임대주택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스템은 공공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만 모니터링 대상자입니다.
수도요금 미납도 이 아파트가 개별 가구 직접 징수 방식이 아닌, '단지 과금' 형태로 징수했기 때문에 시스템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한 씨는 이혼 이후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외부와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달 10만 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만 5세 미만 아동에게 지급)'과 '양육수당(유치원 등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지급)'은 받았지만, 김 군이 만 5살을 넘긴 올해 3월부터는 아동수당마저 끊겼습니다.
■ 탈북자들의 한숨..."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현행법상 탈북민들은 정착 후 5년간 보호를 받지만, 그 이후로도 필요할 경우 '하나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하나재단이 관리하는 전문상담사는 전국 25개 센터에 83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재 탈북민이 3만 명이 넘는 점을 볼 때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씨에게 도움이 닿진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한 씨가 비단 탈북민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을 때 당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은 특히 그런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탈북민들 사이에선 "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있다"라는 탄식섞인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김 회장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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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서울 도심에서 어떻게 40대 여성과 5살 아이가 굶어 죽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왜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 "타살·자살 흔적 없어...아사 '가능성'"
탈북민 어머니와 아들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아사'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탈북민 41살 한 모 씨의 자택에는 외부침입 흔적이 없었고, 타살이나 자살로 볼 만한 단서도 없었습니다.
발견 당시 숨진 한 씨는 거실 겸 주방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발견된 한 씨의 아들 6살 김 모 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서 고춧가루 말고는 음식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아사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김 군이 아팠다는 주변 증언이 있어 병원 진료 기록 등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 씨는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김 군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사정을 알 만한 가족도 없는 상황입니다. 경찰은 전 남편 김 모 씨가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범죄 혐의점이 없다 보니 강제로 소환해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어렵습니다.
한 씨의 행적을 취재하던 중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탈북해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을 도왔습니다.
김 회장은 "한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을 데리고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한 씨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어요. 그래서 제가 주민센터에 가서 문의해보라고 했죠. 그런데, 주민센터에서는 그 중국 동포인 남편과 이혼했다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아니, 돈도 없는 사람한테 중국가서 서류를 떼오라니, 말이나 됩니까? 가면 중국 당국이 바로 떼준답니까?"
전 남편이 중국 국적이어서 국내에서는 이혼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 씨는 더이상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된 겁니다.
김 회장은 "한 씨는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전화도 하고, 살아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면서도, 그 이후로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 "재개발 임대주택..위기관리 관찰에서 빠져"
한 씨 모자는 수개월간 임대료와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징후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위기가구에 대한 발굴 관리를 강화했습니다. 이른바 '세모녀법'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3개월 이상 임대료나 공과금이 밀리면 '행복e음(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이 시스템에 따라 두 달에 한 번씩 5백만 명 정도가 대상자에 오르고, 이 가운데 의도적인 체납자 등을 제외하고 추린 5만 명 가량이 '위기 가구'로 선정돼 지자체에 통보됩니다.
그런데 한 씨는 18개월 정도 임대료 등을 납부하지 못했는데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한 씨가 사는 곳이 재개발 아파트가 의무조성하는 임대주택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스템은 공공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만 모니터링 대상자입니다.
수도요금 미납도 이 아파트가 개별 가구 직접 징수 방식이 아닌, '단지 과금' 형태로 징수했기 때문에 시스템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한 씨는 이혼 이후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외부와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달 10만 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만 5세 미만 아동에게 지급)'과 '양육수당(유치원 등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지급)'은 받았지만, 김 군이 만 5살을 넘긴 올해 3월부터는 아동수당마저 끊겼습니다.
■ 탈북자들의 한숨..."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현행법상 탈북민들은 정착 후 5년간 보호를 받지만, 그 이후로도 필요할 경우 '하나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하나재단이 관리하는 전문상담사는 전국 25개 센터에 83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재 탈북민이 3만 명이 넘는 점을 볼 때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씨에게 도움이 닿진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한 씨가 비단 탈북민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을 때 당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은 특히 그런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탈북민들 사이에선 "어제의 한 씨가 오늘의 내가 될 수도 있다"라는 탄식섞인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김 회장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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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기자 young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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