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3년 전 동료 떠난 뒤…소방관의 시간은 멈췄다

입력 2019.08.15 (08:31) 수정 2019.08.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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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한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약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그는 가족을 위해 버텨왔지만 결국 죽어야 했다고 쪽지를 남겼습니다.

두 딸을 둔 한 가장이었던 소방관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뉴스 따라잡기에서 다녀왔습니다.

같이 보시죠.

[리포트]

울산의 한 119 안전센터입니다.

이곳에 침통한 분위기가 가득하게 된 건 지난 5일부텁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평상시와 다름없이 퇴근했는데 집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연락이 오고 또 우리 상황실에 신고도 하고, 그래서 수색을 했던 것입니다."]

24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을 했던 정희국 소방장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색을 하던 동료들이 그를 찾은 건 소방센터 인근의 한 산,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습니다.

[정민규/故 정희국 소방장 동료 : "전혀 그런 낌새도 못 느꼈습니다. 항상 형처럼 잘 챙겨주고 업무에서도 솔선수범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형 같은 동료였습니다."]

누구보다 일에 대한 사명감과 동료애가 깊었다던 정 소방장.

그는 왜 이 같은 선택을 했을까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사물함을 열어본 동료들이 발견했던 건 뜻밖의 물품이었습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평상시에 우리가 입는 옷이 이 작업복인데 이 작업복 사이에 우리 강기봉 소방교 옷이 이렇게 걸려있었던 겁니다. 이 옷이 여기 걸려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발견됐던 고 강기봉 소방교의 옷.

강 소방교는 3년 전 태풍 '차바' 당시 구조 활동을 벌이다 순직한 동료입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태풍 차바 때 물난리가 나서 모든 마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강기봉 대원하고 정희국 대원이 인원을 지원하기 위해서 갔었어요."]

고 강기봉 대원이 순직을 한 바로 그날 정 소방장도 함께 출동을 했던 건데요.

당시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입니다.

보시죠.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다 보니까 강 한가운데 자기들이 이렇게 매달려있는 그런 상황이 돼버린 거예요."]

간신히 전봇대와 쇠기둥에 의지해 버터고 있었지만 곧 한계가 왔다는 겁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기봉이가 너무 버티기가 힘드니까 "형 나 휩쓸릴 것 같아, 더 버티지 못하겠어." (하니까) 혼자 보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희국이가 "그럼 우리 같이 잡고 갈까?" 얘기했던 거예요."]

그렇게 함께 물에 뛰어든 두 사람은 그대로 급류에 휩쓸렸고 정 소방장만 목숨을 건졌습니다.

홀로 남은 정 소방장은 그 순간부터 누구보다 힘들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 소방장이 남긴 쪽집니다.

들어보시죠.

[故 정희국 소방장이 남긴 쪽지 中 : "나는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 약도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가족을 위해서 버텨왔지만 괴롭다. 또다시 반복이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

가족에게 정 소방장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故 정희국 소방장 아내/음성변조 : "정말 따뜻한 사람이고요. 자상하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정말로 다음 세상에 저런 사람 만날 수 있을까. 그 정도로…."]

그랬던 정 소방장은 동시에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故 정희국 소방장 아내/음성변조 : "죽고 싶다는 얘기를 좀 많이 했었어요. 순간 확 뛰어내리고 싶고 그런 생각들이 되게 많았다 하더라고요. 한 1, 2년 동안은 좀 심했어요 그런 증상이."]

앞서 보신 3년 전 사고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故 정희국 소방장 아내/음성변조 :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3년이 흘렀고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았기에 이제 좀 죄책감에서 가벼워진 듯도 보였다는데요.

[고태관/故 정희국 소방장 동료 : "자기는 이제 술을 안 먹는다고 하면서 너 혼자 술 많이 먹어라 하면서 하지만 마지막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날은 강 소방교의 생일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를 괴롭혀 왔던 3년 전 그날에 대한 24쪽 분량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희국이는 엄밀히 따지면 차바 때 죽은 애예요. 그 당시 같이 살거나 같이 죽지 못한 그 죄책감으로 이번에 극단적인 선택하는 이 순간까지 버텨왔던 거예요."]

소방관 5만 명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소방관은 5% 내외.

특히, 동료를 잃었을 때 정신적 충격은 더욱 크다고 합니다.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 사업부장 : "특히 소방 공무원들 같은 경우에는 동료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 사실 그런 믿음이 있어야지 그런 위험한 현장에 들어가실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동료가 잘못됐을 때 충격은 내가 뭔가 도와주지 못했다. 구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있고, 본인이 다쳤을 때보다 후유증이 오래가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동료를 잃은 정 소방장이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받아온 만큼 순직 승인되기를 동료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여 명의 소방관 가운데 순직이 인정된 적은 없다고 합니다.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괴로워했던 고 정희국 소방장.

동료들은 소방관으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의 명예가 지켜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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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3년 전 동료 떠난 뒤…소방관의 시간은 멈췄다
    • 입력 2019-08-15 08:32:08
    • 수정2019-08-15 09: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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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한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약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그는 가족을 위해 버텨왔지만 결국 죽어야 했다고 쪽지를 남겼습니다.

두 딸을 둔 한 가장이었던 소방관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뉴스 따라잡기에서 다녀왔습니다.

같이 보시죠.

[리포트]

울산의 한 119 안전센터입니다.

이곳에 침통한 분위기가 가득하게 된 건 지난 5일부텁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평상시와 다름없이 퇴근했는데 집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연락이 오고 또 우리 상황실에 신고도 하고, 그래서 수색을 했던 것입니다."]

24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을 했던 정희국 소방장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색을 하던 동료들이 그를 찾은 건 소방센터 인근의 한 산,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습니다.

[정민규/故 정희국 소방장 동료 : "전혀 그런 낌새도 못 느꼈습니다. 항상 형처럼 잘 챙겨주고 업무에서도 솔선수범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형 같은 동료였습니다."]

누구보다 일에 대한 사명감과 동료애가 깊었다던 정 소방장.

그는 왜 이 같은 선택을 했을까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사물함을 열어본 동료들이 발견했던 건 뜻밖의 물품이었습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평상시에 우리가 입는 옷이 이 작업복인데 이 작업복 사이에 우리 강기봉 소방교 옷이 이렇게 걸려있었던 겁니다. 이 옷이 여기 걸려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발견됐던 고 강기봉 소방교의 옷.

강 소방교는 3년 전 태풍 '차바' 당시 구조 활동을 벌이다 순직한 동료입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태풍 차바 때 물난리가 나서 모든 마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강기봉 대원하고 정희국 대원이 인원을 지원하기 위해서 갔었어요."]

고 강기봉 대원이 순직을 한 바로 그날 정 소방장도 함께 출동을 했던 건데요.

당시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입니다.

보시죠.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다 보니까 강 한가운데 자기들이 이렇게 매달려있는 그런 상황이 돼버린 거예요."]

간신히 전봇대와 쇠기둥에 의지해 버터고 있었지만 곧 한계가 왔다는 겁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기봉이가 너무 버티기가 힘드니까 "형 나 휩쓸릴 것 같아, 더 버티지 못하겠어." (하니까) 혼자 보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희국이가 "그럼 우리 같이 잡고 갈까?" 얘기했던 거예요."]

그렇게 함께 물에 뛰어든 두 사람은 그대로 급류에 휩쓸렸고 정 소방장만 목숨을 건졌습니다.

홀로 남은 정 소방장은 그 순간부터 누구보다 힘들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 소방장이 남긴 쪽집니다.

들어보시죠.

[故 정희국 소방장이 남긴 쪽지 中 : "나는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 약도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가족을 위해서 버텨왔지만 괴롭다. 또다시 반복이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

가족에게 정 소방장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故 정희국 소방장 아내/음성변조 : "정말 따뜻한 사람이고요. 자상하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정말로 다음 세상에 저런 사람 만날 수 있을까. 그 정도로…."]

그랬던 정 소방장은 동시에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故 정희국 소방장 아내/음성변조 : "죽고 싶다는 얘기를 좀 많이 했었어요. 순간 확 뛰어내리고 싶고 그런 생각들이 되게 많았다 하더라고요. 한 1, 2년 동안은 좀 심했어요 그런 증상이."]

앞서 보신 3년 전 사고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故 정희국 소방장 아내/음성변조 :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3년이 흘렀고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았기에 이제 좀 죄책감에서 가벼워진 듯도 보였다는데요.

[고태관/故 정희국 소방장 동료 : "자기는 이제 술을 안 먹는다고 하면서 너 혼자 술 많이 먹어라 하면서 하지만 마지막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날은 강 소방교의 생일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를 괴롭혀 왔던 3년 전 그날에 대한 24쪽 분량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동현/울산 농소 119안전센터장 : "희국이는 엄밀히 따지면 차바 때 죽은 애예요. 그 당시 같이 살거나 같이 죽지 못한 그 죄책감으로 이번에 극단적인 선택하는 이 순간까지 버텨왔던 거예요."]

소방관 5만 명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소방관은 5% 내외.

특히, 동료를 잃었을 때 정신적 충격은 더욱 크다고 합니다.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 사업부장 : "특히 소방 공무원들 같은 경우에는 동료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 사실 그런 믿음이 있어야지 그런 위험한 현장에 들어가실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동료가 잘못됐을 때 충격은 내가 뭔가 도와주지 못했다. 구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있고, 본인이 다쳤을 때보다 후유증이 오래가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동료를 잃은 정 소방장이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받아온 만큼 순직 승인되기를 동료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여 명의 소방관 가운데 순직이 인정된 적은 없다고 합니다.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괴로워했던 고 정희국 소방장.

동료들은 소방관으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의 명예가 지켜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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