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조국 광복… 이산 아픔 이어져

입력 2019.08.15 (21:51) 수정 2019.08.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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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일제 강점기, 사할린에서의
조선인 집단 희생을 다룬
KBS의 연속 보도, 마지막 순서입니다.

사할린은 광복 직후,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인데요.

사할린 한인들은 아직도
이산과 망향의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정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올해 여든한 살의 남기필 씨는
아들과 함께 사할린을 방문했습니다.

사할린에 끌려갔다가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유일한 단서는 편지 한 통이 전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절실함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남기필/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81세)[인터뷰]
"(아버지가) 보고 싶죠.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강제동원되셨는데), 내 동생은 3살이었고, 우리 누나는 9살. 아이고, 우리 아버지."

광복되고도 한인들은
분단과 냉전이 이어지며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사할린에 억류됐습니다.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최소 만 6천여 명

강제동원 피해자 중 34.3%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지거나 행방불명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이 이뤄진
다른 지역에 비해
돌아오지 못한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방일권/ 과거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사할린 학살 조사 책임자[인터뷰]
"이 미귀환의 문제는 역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가 본 자리로 되돌리지 못한 일본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할린 한인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에서도 제외돼
지금까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영주 귀국 대상도 광복 이전이어서
또다시 자녀들과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태엽/ 사할린 영주귀국자 (83세) [인터뷰]
"여기(한국) 사니까 좋죠. 좋으니까 (자녀) 생각이 더 나죠. 정말요, 가만히 생각하면
어떻게 (법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결국, 정부 대신 개인이 나서
귀환 운동을 펼쳐야 했습니다.

박창규/ 고 박노학 사할린 억류 귀환한국인회장 아들 [인터뷰]
"한국엔 연락이 안 돼요. 사할린하고 한국하고 그 당시엔 교류가 안 될 때니까, 아버지한테 계속 (편지 부탁한) 사람들이 7천 명이나 된 거예요."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조국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박순옥/ 사할린주 한인협회장[인터뷰]
"누가 제일 많이 잘못됐냐? 저는 첫째로 생각해요. 한국. 왜 한국(이라고 생각하냐면), 한국은 우리 조국이지요? 어머니 대신 자기 자식들을 찾아야 되죠. 한번도 우리를 안 찾고."

벌써 74년이 지났지만
사할린의 광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이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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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나먼 조국 광복… 이산 아픔 이어져
    • 입력 2019-08-15 21:51:32
    • 수정2019-08-15 23:22:00
    뉴스9(충주)
[앵커멘트] 일제 강점기, 사할린에서의 조선인 집단 희생을 다룬 KBS의 연속 보도, 마지막 순서입니다. 사할린은 광복 직후,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인데요. 사할린 한인들은 아직도 이산과 망향의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정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올해 여든한 살의 남기필 씨는 아들과 함께 사할린을 방문했습니다. 사할린에 끌려갔다가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유일한 단서는 편지 한 통이 전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절실함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남기필/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81세)[인터뷰] "(아버지가) 보고 싶죠.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강제동원되셨는데), 내 동생은 3살이었고, 우리 누나는 9살. 아이고, 우리 아버지." 광복되고도 한인들은 분단과 냉전이 이어지며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사할린에 억류됐습니다.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최소 만 6천여 명 강제동원 피해자 중 34.3%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지거나 행방불명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이 이뤄진 다른 지역에 비해 돌아오지 못한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방일권/ 과거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사할린 학살 조사 책임자[인터뷰] "이 미귀환의 문제는 역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가 본 자리로 되돌리지 못한 일본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할린 한인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에서도 제외돼 지금까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영주 귀국 대상도 광복 이전이어서 또다시 자녀들과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태엽/ 사할린 영주귀국자 (83세) [인터뷰] "여기(한국) 사니까 좋죠. 좋으니까 (자녀) 생각이 더 나죠. 정말요, 가만히 생각하면 어떻게 (법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결국, 정부 대신 개인이 나서 귀환 운동을 펼쳐야 했습니다. 박창규/ 고 박노학 사할린 억류 귀환한국인회장 아들 [인터뷰] "한국엔 연락이 안 돼요. 사할린하고 한국하고 그 당시엔 교류가 안 될 때니까, 아버지한테 계속 (편지 부탁한) 사람들이 7천 명이나 된 거예요."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조국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박순옥/ 사할린주 한인협회장[인터뷰] "누가 제일 많이 잘못됐냐? 저는 첫째로 생각해요. 한국. 왜 한국(이라고 생각하냐면), 한국은 우리 조국이지요? 어머니 대신 자기 자식들을 찾아야 되죠. 한번도 우리를 안 찾고." 벌써 74년이 지났지만 사할린의 광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이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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