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아사 추정 ‘탈북민 모자’…아무도 몰랐던 이유는?

입력 2019.08.16 (08:33) 수정 2019.08.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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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40대 여성과 6살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월세와 공과금이 밀리고, 수도도 끊겼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고, 이웃들은 몰랐습니다.

그제 친절한 뉴스 시간에서도 전해드렸는데요.

네, 탈북민 모자의 사연입니다.

2014년 이른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찾고 없애는 시스템이 강화됐다고 하는데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입니다.

이곳에 살던 탈북민 40대 여성 한모 씨와 6살 아들이 안 보이기 시작한 건 두 달 전 쯤입니다.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사람이 안 보이니까. 항상 뭐 사람이 안 보이고 문이 닫혀 있으니까 사람도 안 사나 이랬죠."]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아이가) 목소리를 크게 질렀던 거 같아요. 왔을 때부터 계속. 5월 말 때쯤부터 안 들렸죠. 저희는 어디 갔는지는 모르니까 다른 집 갔겠지 생각하고…."]

월세와 전기, 수도요금은 몇 개월간 밀린 상태, 물이 끊겼는데도 소식이 없자, 지난달 31일 수도 검침원이 방문했고 아파트 관리인이 강제로 문을 열었습니다.

집 안엔 한 씨 모자가 숨진 채 누워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보니까 마네킹 같은 게 쓰러져 있더래요. 아이는 방에 있고, 여자는 거기(주방)서 죽어 있었던 거지."]

방 안에는 오랫동안 음식을 해먹은 흔적이 없었고, 냉장고에 남은 건 고춧가루 뿐이었습니다.

통장에 남아있던 3천 원 정도를 5월 중순 마지막으로 인출한 것으로 보아 경찰은 두 달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한 씨 모자가 제대로 먹지 못해 숨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관악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일차적으로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한 씨 모자가 우리 이웃이 된 건 10년 전입니다.

2009년,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한 씨.

하나원에서 생활하면서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제과자격증도 따고 컴퓨터 자격증도 따고 자격증을 두 개, 세 개를 딴 거 봐서는 굉장히 열심히 배워서 돈도 좀 열심히 벌고 싶은 그런 정착 의지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말이 없고 내성적이었지만, 하나원에서 퇴소한 지 9개월 만에 제빵 일을 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날 정도로 의욕적이었습니다.

이후 중국 동포와 결혼한 뒤 조선소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경남 통영으로 내려간 한 씨,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아예 남편이 일하는 곳으로 내려가서 월세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선 업계에 불황이 닥쳐오면서 남편의 일자리도 없어지고 하니까 통영의 일자리를 정리하고 아예 남편을 따라서 중국으로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죠."]

지난해 10월, 한 씨는 아이를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남편과는 이혼을 한 상태였는데요.

이때부터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동대문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는데요.

그마저도 한두 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몸이) 불편한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취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취업했다가도 오래 일을 못 하고 금방금방 그만두고…."]

아픈 아이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던 걸로 보이는데요.

이때부터 휴대전화도 끊기고, 하나원 동기들과도 연락이 두절됐다고 합니다.

주민들과도 교류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내가 한두 번 봤는데도 그냥 말을, 대화를 안 해요. 그냥 지나가는 것만 봤죠. 그냥 지나가면서 봤는데 고개를 숙이고 다녀요. 여자가."]

탈북민들은 취업이나 교육 등 거주지 보호를 받는데요.

이 기간이 5년입니다.

[서울 관악구청 관계자/음성변조 : "5년이 지나면 이제 우리나라에 정상적으로 안착을 했다고 보는 거예요. 일단 북한 이탈 주민으로는 관리가 안 된 거고요."]

이후에도 경찰인 보호담당관들이 관리를 하지만, 한 씨는 중국 동포와 결혼하면서 보호담당관들의 연락을 피했다고 합니다.

법적 보호기간이 지나면 강제적으로 할 수 없기에, 경찰의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송파 세모녀 사망사건 이후로 시작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시스템'은 재개발 임대아파트라는 이유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셈입니다.

한 씨는 이혼한 직후인 지난 겨울, 직접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들어보시죠.

[김용화/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 : "나한테 전화가 와서 지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한다. 동사무소에 가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이혼)확인서를 떼어오라고 하면 이혼을 했는데 남편이 해줄 것도 아니고 자기가 중국 가서 할 수도 없는 거 아니에요. 뭐 비행기값이 있어야 또 갈 거 아닙니까. 가도 탈북자 신분이기 때문에 중국에 들어가면 그렇게 당당하지도 못하고..."]

올해 초부터는 아이가 만 6살이 되면서 자동으로 나오던 아동수당 10만 원 마저 끊기면서 굶주림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한 씨 모자가 무연고자 처리될 거라는 소식에 탈북 주민들은 분향소를 마련했습니다.

한 씨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는 게 탈북민들의 얘기입니다.

[임대광/탈북민 : "진짜 눈물을 흘리며 달려왔습니다. 밤새껏. 저희가 탈북할 때는 자유를 찾아 배고픔을 피해서 찾아왔거든요. 그것도 이 땅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나라에서 굶어 죽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보건복지부는 한 씨 모자가 왜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빠졌는지, 시스템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은 한 씨 모자의 부검이 끝나는 대로 장례 절차를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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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아사 추정 ‘탈북민 모자’…아무도 몰랐던 이유는?
    • 입력 2019-08-16 08:34:06
    • 수정2019-08-16 10: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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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40대 여성과 6살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월세와 공과금이 밀리고, 수도도 끊겼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고, 이웃들은 몰랐습니다.

그제 친절한 뉴스 시간에서도 전해드렸는데요.

네, 탈북민 모자의 사연입니다.

2014년 이른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찾고 없애는 시스템이 강화됐다고 하는데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입니다.

이곳에 살던 탈북민 40대 여성 한모 씨와 6살 아들이 안 보이기 시작한 건 두 달 전 쯤입니다.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사람이 안 보이니까. 항상 뭐 사람이 안 보이고 문이 닫혀 있으니까 사람도 안 사나 이랬죠."]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아이가) 목소리를 크게 질렀던 거 같아요. 왔을 때부터 계속. 5월 말 때쯤부터 안 들렸죠. 저희는 어디 갔는지는 모르니까 다른 집 갔겠지 생각하고…."]

월세와 전기, 수도요금은 몇 개월간 밀린 상태, 물이 끊겼는데도 소식이 없자, 지난달 31일 수도 검침원이 방문했고 아파트 관리인이 강제로 문을 열었습니다.

집 안엔 한 씨 모자가 숨진 채 누워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보니까 마네킹 같은 게 쓰러져 있더래요. 아이는 방에 있고, 여자는 거기(주방)서 죽어 있었던 거지."]

방 안에는 오랫동안 음식을 해먹은 흔적이 없었고, 냉장고에 남은 건 고춧가루 뿐이었습니다.

통장에 남아있던 3천 원 정도를 5월 중순 마지막으로 인출한 것으로 보아 경찰은 두 달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한 씨 모자가 제대로 먹지 못해 숨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관악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일차적으로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한 씨 모자가 우리 이웃이 된 건 10년 전입니다.

2009년,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한 씨.

하나원에서 생활하면서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제과자격증도 따고 컴퓨터 자격증도 따고 자격증을 두 개, 세 개를 딴 거 봐서는 굉장히 열심히 배워서 돈도 좀 열심히 벌고 싶은 그런 정착 의지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말이 없고 내성적이었지만, 하나원에서 퇴소한 지 9개월 만에 제빵 일을 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날 정도로 의욕적이었습니다.

이후 중국 동포와 결혼한 뒤 조선소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경남 통영으로 내려간 한 씨,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아예 남편이 일하는 곳으로 내려가서 월세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선 업계에 불황이 닥쳐오면서 남편의 일자리도 없어지고 하니까 통영의 일자리를 정리하고 아예 남편을 따라서 중국으로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죠."]

지난해 10월, 한 씨는 아이를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남편과는 이혼을 한 상태였는데요.

이때부터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동대문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는데요.

그마저도 한두 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몸이) 불편한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취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취업했다가도 오래 일을 못 하고 금방금방 그만두고…."]

아픈 아이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던 걸로 보이는데요.

이때부터 휴대전화도 끊기고, 하나원 동기들과도 연락이 두절됐다고 합니다.

주민들과도 교류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내가 한두 번 봤는데도 그냥 말을, 대화를 안 해요. 그냥 지나가는 것만 봤죠. 그냥 지나가면서 봤는데 고개를 숙이고 다녀요. 여자가."]

탈북민들은 취업이나 교육 등 거주지 보호를 받는데요.

이 기간이 5년입니다.

[서울 관악구청 관계자/음성변조 : "5년이 지나면 이제 우리나라에 정상적으로 안착을 했다고 보는 거예요. 일단 북한 이탈 주민으로는 관리가 안 된 거고요."]

이후에도 경찰인 보호담당관들이 관리를 하지만, 한 씨는 중국 동포와 결혼하면서 보호담당관들의 연락을 피했다고 합니다.

법적 보호기간이 지나면 강제적으로 할 수 없기에, 경찰의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송파 세모녀 사망사건 이후로 시작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시스템'은 재개발 임대아파트라는 이유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셈입니다.

한 씨는 이혼한 직후인 지난 겨울, 직접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들어보시죠.

[김용화/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 : "나한테 전화가 와서 지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한다. 동사무소에 가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이혼)확인서를 떼어오라고 하면 이혼을 했는데 남편이 해줄 것도 아니고 자기가 중국 가서 할 수도 없는 거 아니에요. 뭐 비행기값이 있어야 또 갈 거 아닙니까. 가도 탈북자 신분이기 때문에 중국에 들어가면 그렇게 당당하지도 못하고..."]

올해 초부터는 아이가 만 6살이 되면서 자동으로 나오던 아동수당 10만 원 마저 끊기면서 굶주림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한 씨 모자가 무연고자 처리될 거라는 소식에 탈북 주민들은 분향소를 마련했습니다.

한 씨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는 게 탈북민들의 얘기입니다.

[임대광/탈북민 : "진짜 눈물을 흘리며 달려왔습니다. 밤새껏. 저희가 탈북할 때는 자유를 찾아 배고픔을 피해서 찾아왔거든요. 그것도 이 땅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나라에서 굶어 죽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보건복지부는 한 씨 모자가 왜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빠졌는지, 시스템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은 한 씨 모자의 부검이 끝나는 대로 장례 절차를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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