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내가 하느님의 우체부’, 어느 여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입력 2019.08.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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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7) 씨와 초등학교 여교사인 B(27) 씨는 지난 2015년 A 씨가 다니던 교회 지인의 소개로 만나 종교적 멘토·멘티 사이로 발전했다.

A 씨는 자신을 미국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변에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무기로 제주도 내 교회에서 피아노를 이용해 직접 작곡한 찬송가 등을 연주하며 젊은 여성들의 환심을 샀다. 이후 그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자 A 씨는 개인적 혹은 종교적 고민을 상담해 주겠다며 본심을 드러낸다. A 씨는 젊은 여성들의 고민에 공감하며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뢰를 얻었다. B 씨도 이런 A 씨를 철석같이 믿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A 씨의 버클리 음대 졸업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 씨는 사악한 본심을 드러낸다. 그는 B 씨에게 “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자이고, 나의 말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라며 세뇌했다. A 씨는 이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게 만들어 소위 ‘주종관계’를 유지한 채 청소, 설거지, 애 돌보기 등 마치 ‘하인’처럼 부렸다. 특히 B 씨는 지난 2017년 8월부터는 퇴근 후 서귀포시에 있는 A 씨 집에서 A 씨의 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 자정 무렵의 늦은 귀가로 부모와 잦은 갈등을 겪기까지 했다. 이후 2018년 3월 B 씨는 A 씨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보된 이후에는 A 씨가 주선한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는데, 학교도 휴직한 채 A 씨가 지시하는 일을 하며 지내 왔다.

A 씨는 B 씨에게 노동력 착취뿐만 아니라 돈도 가로챘다. 그는 2015년 8월부터 B 씨에게 “네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다 드려라.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 나는 우체부 역할을 한다. 그 돈을 필요한 곳에 헌금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2017년 3월 16일까지 모두 29차례에 걸쳐 1억 8천300만 원을 챙겼다.

A 씨의 착취를 견디지 못한 B 씨는 A 씨의 전화를 피하고 그의 지옥 같은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A 씨는 B 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분노와 배신감이 커졌고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지난해 6월 2일 A 씨는 서귀포의 한 아파트에서 B 씨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다. A 씨 이후 119에 직접 전화해 “B 씨가 어딘가에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며 허위신고를 하는 사악함까지 보였다.

수사기관 조사결과 A 씨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은 3명이 더 있었다. 특히 A 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C(47) 씨도 B 씨와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 C 씨는 A 씨의 과도한 헌금 요구 때문에 배우자와 불화를 겪다가 이혼까지 했다. 이후에도 C 씨는 A 씨의 지시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아 현금을 A 씨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A 씨에게 폭행 및 금품을 빼앗겼는데 피해 금액은 3억 9,000여만 원에 달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A 씨의 행태는 전형적인 사기로 바로 의심할 수 있었겠지만, 피해자들은 A 씨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4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C 씨는 “남들이 못 믿을 수 있겠지만, A 씨의 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며 “폭행에 금품 갈취 등이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당시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A 씨의 말을 믿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살인, 사기, 특수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A 씨에게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 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A 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20대 젊은 여성이자 초등학교 교사였던 피해자의 신앙심을 악용해 자신이 신을 대변하는 것처럼 가장, 피해자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집안일을 떠맡기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했다”며 “피해자가 피고인을 벗어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췌장이 파열될 때까지 폭행 살해,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죄책 또한 대단히 무겁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의 가족들은 슬픔과 충격을 호소하며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거듭 탄원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자신의 범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참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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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후] ‘내가 하느님의 우체부’, 어느 여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 입력 2019-08-16 11:35:24
    취재후·사건후
A(47) 씨와 초등학교 여교사인 B(27) 씨는 지난 2015년 A 씨가 다니던 교회 지인의 소개로 만나 종교적 멘토·멘티 사이로 발전했다.

A 씨는 자신을 미국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변에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무기로 제주도 내 교회에서 피아노를 이용해 직접 작곡한 찬송가 등을 연주하며 젊은 여성들의 환심을 샀다. 이후 그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자 A 씨는 개인적 혹은 종교적 고민을 상담해 주겠다며 본심을 드러낸다. A 씨는 젊은 여성들의 고민에 공감하며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뢰를 얻었다. B 씨도 이런 A 씨를 철석같이 믿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A 씨의 버클리 음대 졸업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 씨는 사악한 본심을 드러낸다. 그는 B 씨에게 “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자이고, 나의 말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라며 세뇌했다. A 씨는 이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게 만들어 소위 ‘주종관계’를 유지한 채 청소, 설거지, 애 돌보기 등 마치 ‘하인’처럼 부렸다. 특히 B 씨는 지난 2017년 8월부터는 퇴근 후 서귀포시에 있는 A 씨 집에서 A 씨의 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 자정 무렵의 늦은 귀가로 부모와 잦은 갈등을 겪기까지 했다. 이후 2018년 3월 B 씨는 A 씨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보된 이후에는 A 씨가 주선한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는데, 학교도 휴직한 채 A 씨가 지시하는 일을 하며 지내 왔다.

A 씨는 B 씨에게 노동력 착취뿐만 아니라 돈도 가로챘다. 그는 2015년 8월부터 B 씨에게 “네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다 드려라.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 나는 우체부 역할을 한다. 그 돈을 필요한 곳에 헌금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2017년 3월 16일까지 모두 29차례에 걸쳐 1억 8천300만 원을 챙겼다.

A 씨의 착취를 견디지 못한 B 씨는 A 씨의 전화를 피하고 그의 지옥 같은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A 씨는 B 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분노와 배신감이 커졌고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지난해 6월 2일 A 씨는 서귀포의 한 아파트에서 B 씨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다. A 씨 이후 119에 직접 전화해 “B 씨가 어딘가에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며 허위신고를 하는 사악함까지 보였다.

수사기관 조사결과 A 씨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은 3명이 더 있었다. 특히 A 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C(47) 씨도 B 씨와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 C 씨는 A 씨의 과도한 헌금 요구 때문에 배우자와 불화를 겪다가 이혼까지 했다. 이후에도 C 씨는 A 씨의 지시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아 현금을 A 씨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A 씨에게 폭행 및 금품을 빼앗겼는데 피해 금액은 3억 9,000여만 원에 달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A 씨의 행태는 전형적인 사기로 바로 의심할 수 있었겠지만, 피해자들은 A 씨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4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C 씨는 “남들이 못 믿을 수 있겠지만, A 씨의 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며 “폭행에 금품 갈취 등이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당시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A 씨의 말을 믿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살인, 사기, 특수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A 씨에게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 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A 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20대 젊은 여성이자 초등학교 교사였던 피해자의 신앙심을 악용해 자신이 신을 대변하는 것처럼 가장, 피해자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집안일을 떠맡기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했다”며 “피해자가 피고인을 벗어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췌장이 파열될 때까지 폭행 살해,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죄책 또한 대단히 무겁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의 가족들은 슬픔과 충격을 호소하며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거듭 탄원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자신의 범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참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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