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외눈박이?…정치쇼에 장애인은 웁니다

입력 2019.08.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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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정치적 관심을 끄는 일에 장애인 비하를 이용하지 말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의 '벙어리' 표현과 관련해, 장애인 단체들이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피진정인은 발언의 당사자인 황교안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그리고 국회의 반복되는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한 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문희상 국회의장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7개 장애인 인권단체는 오늘(1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장애를 가진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애초 뜻을 같이했던 장애인은 10여 명 정도였는데, 어제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지면서 하루 만에 50여 명의 장애인이 진정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청각장애인 60명, 시각장애인 2명,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 각 1명, 모두 64명의 장애인이 진정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분노한 장애인 30여 명이 추가로 동참 의사를 전해와, 단체들은 또 한 번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입니다.

■ "가슴을 후벼 파는 말"…정치적 '말장난'에 상처받는 장애인

장애인 단체들은 오늘(16일) 황교안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습니다.장애인 단체들은 오늘(16일) 황교안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7일 국회 자유한국당 대표 및 황교안 대표의 최고위원회의 발언이었습니다. 황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수출 규제에는 국무회의를 생중계까지 하더니 북한 미사일 도발에는 '벙어리'가 돼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벙어리'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 요인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비하해 부르는 말로,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32조 괴롭힘 등의 금지에 대한 조항에 어긋나는 언어적 표현입니다. 이에 장애인 단체들은 발언 이틀 뒤인 9일,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틀 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조롱해도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다음 날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야당대표가 '벙어리'라고 비판하니 왜 '벙어리'가 되었는지 따져 보지는 않고 관제 언론은 '벙어리'를 장애인 비하라고 시비만 한다.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만 쳐다보는 '외눈박이' 세상이 됐다"는 글을 올리며 장애인 비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이를 비판한 언론 등을 탓하는 모양새였습니다.

홍 전 대표가 언급한 '외눈박이' 역시 한쪽 눈이 먼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언어적 표현입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정치인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본인들의 위치와 역할을 망각한 채 누군가를 비하하고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표현과 장애를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이는 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오늘 기자 회견에 참석한 청각장애인 송지은 씨는 "TV를 보다 황교안 대표의 발언을 들었다"며 "누군가에겐 단순히 다른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로 살고 싶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도 "국민들을 잘살게 하고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나 (장애인들을) 우습게 알고 무시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을지 암담하다"고 토로했습니다.

■ '장애인 차별금지법' 11년…사과도 반성도 없는 국회

장애인 단체들은 오늘 ‘경고’라고 적힌 옐로카드를 드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정치인의 가벼운 말 속에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장애인 단체들은 오늘 ‘경고’라고 적힌 옐로카드를 드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정치인의 가벼운 말 속에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사실 장애인 단체들이 정치인의 장애인 비하 발언과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1월에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앞서 이해찬 대표도 지난해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그런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 "정치권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이를 비판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정신장애인이라고 말한다"고 썼습니다.

그로부터 여덟 달이 지났지만, 국회는 여전합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청각장애인은 벙어리로, 시각장애인은 외눈박이로, 정신장애인은 정신병자로, 그들에게 장애를 가진 국민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정치적 쇼에 동원하는 하찮은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거 때마다 앞다투어 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쏟아내는 그들의 말 속에 장애인에 대한 인권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며 "그들의 말장난 속에서 장애인은 비하와 모욕적인 표현에 상처받고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들이 바라는 건 황교안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그리고 국회의장으로서 감독 의무가 있는 문희상 의장의 공식 사과입니다. 황 대표에게는 이미 지난주에 공식 면담을 요청했지만, 일주일이 되도록 묵묵부답입니다. 홍준표 전 대표에 대한 진정은 이미 제기돼있어 이번 명단에는 빠졌지만, 반성 없는 모습에 장애인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 11년, 정작 법을 만든 국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요. 국회조차 지키지 않는 법을 국민들이 잘 지킬 수 있을지, 명백한 차별과 혐오의 표현을 그동안 단순한 말실수라고 가벼이 여기고 넘어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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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벙어리·외눈박이?…정치쇼에 장애인은 웁니다
    • 입력 2019-08-16 13:36:28
    취재K
"국회는 정치적 관심을 끄는 일에 장애인 비하를 이용하지 말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의 '벙어리' 표현과 관련해, 장애인 단체들이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피진정인은 발언의 당사자인 황교안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그리고 국회의 반복되는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한 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문희상 국회의장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7개 장애인 인권단체는 오늘(1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장애를 가진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애초 뜻을 같이했던 장애인은 10여 명 정도였는데, 어제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지면서 하루 만에 50여 명의 장애인이 진정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청각장애인 60명, 시각장애인 2명,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 각 1명, 모두 64명의 장애인이 진정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분노한 장애인 30여 명이 추가로 동참 의사를 전해와, 단체들은 또 한 번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입니다.

■ "가슴을 후벼 파는 말"…정치적 '말장난'에 상처받는 장애인

장애인 단체들은 오늘(16일) 황교안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7일 국회 자유한국당 대표 및 황교안 대표의 최고위원회의 발언이었습니다. 황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수출 규제에는 국무회의를 생중계까지 하더니 북한 미사일 도발에는 '벙어리'가 돼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벙어리'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 요인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비하해 부르는 말로,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32조 괴롭힘 등의 금지에 대한 조항에 어긋나는 언어적 표현입니다. 이에 장애인 단체들은 발언 이틀 뒤인 9일,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틀 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조롱해도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다음 날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야당대표가 '벙어리'라고 비판하니 왜 '벙어리'가 되었는지 따져 보지는 않고 관제 언론은 '벙어리'를 장애인 비하라고 시비만 한다.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만 쳐다보는 '외눈박이' 세상이 됐다"는 글을 올리며 장애인 비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이를 비판한 언론 등을 탓하는 모양새였습니다.

홍 전 대표가 언급한 '외눈박이' 역시 한쪽 눈이 먼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언어적 표현입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정치인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본인들의 위치와 역할을 망각한 채 누군가를 비하하고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표현과 장애를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이는 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오늘 기자 회견에 참석한 청각장애인 송지은 씨는 "TV를 보다 황교안 대표의 발언을 들었다"며 "누군가에겐 단순히 다른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로 살고 싶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도 "국민들을 잘살게 하고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나 (장애인들을) 우습게 알고 무시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을지 암담하다"고 토로했습니다.

■ '장애인 차별금지법' 11년…사과도 반성도 없는 국회

장애인 단체들은 오늘 ‘경고’라고 적힌 옐로카드를 드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정치인의 가벼운 말 속에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사실 장애인 단체들이 정치인의 장애인 비하 발언과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1월에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앞서 이해찬 대표도 지난해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그런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 "정치권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이를 비판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정신장애인이라고 말한다"고 썼습니다.

그로부터 여덟 달이 지났지만, 국회는 여전합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청각장애인은 벙어리로, 시각장애인은 외눈박이로, 정신장애인은 정신병자로, 그들에게 장애를 가진 국민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정치적 쇼에 동원하는 하찮은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거 때마다 앞다투어 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쏟아내는 그들의 말 속에 장애인에 대한 인권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며 "그들의 말장난 속에서 장애인은 비하와 모욕적인 표현에 상처받고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들이 바라는 건 황교안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그리고 국회의장으로서 감독 의무가 있는 문희상 의장의 공식 사과입니다. 황 대표에게는 이미 지난주에 공식 면담을 요청했지만, 일주일이 되도록 묵묵부답입니다. 홍준표 전 대표에 대한 진정은 이미 제기돼있어 이번 명단에는 빠졌지만, 반성 없는 모습에 장애인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 11년, 정작 법을 만든 국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요. 국회조차 지키지 않는 법을 국민들이 잘 지킬 수 있을지, 명백한 차별과 혐오의 표현을 그동안 단순한 말실수라고 가벼이 여기고 넘어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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