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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뉴스] 항일 무장투쟁 새로운 발견…‘40번의 전투, 승전 또 승전’
입력 2019.08.16 (13:55) 수정 2019.08.16 (13:57) 자막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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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뉴스] 항일 무장투쟁 새로운 발견…‘40번의 전투, 승전 또 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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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이 봉오동, 청산리에서 연거푸 승리하자 일제는 간도참변으로 보복합니다.

수만 명의 동포를 잃은 독립군은 선전포고를 하고, 강도 높은 투쟁에 들어갑니다.

[익세보(益世報) 1920年12月23日 : "한인을 잔인무도하게 학살하고 있다. 원수를 잊지 않고 목숨 걸고 복수할 것이다."

대표적인 전투는 함경도 경성, 청진항 전투였습니다.

[경보(京報), 신화일보-북경(新華日報-北京) 1921年1月27日: "1월 4일 경성·청진항에서 일본군 병사 40여 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이 급파돼 전투가 이어졌는데 일본군 사상자는 600여 명, 독립군은 50여 명이었다. 이 전투로 독립군 지원이 증가했다."

독립군이 나타나면 혼비백산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익세보(益世報) 1922年3月14日: "독립군이 의주군을 습격했다. 면사무소 일본인 직원들이 총소리를 듣고 옷 입을 새도 없이 도망쳤다."]

연이은 승전에 독립군의 기세는 나날이 올라갔습니다.

[익세보(益世報) 1921年2月16日 : "만주일일신문에 따르면 독립군이 이미 8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20년대 10년 동안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를 제외하고 당시 중국 언론에 보도된 독립운동은 96건, 이중 40건이 무장투쟁 기사입니다.

숨지거나 다친 일본군 등이 660여 명에 달했지만, 독립군의 피해는 70여 명이었습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안양봉입니다.
  • [자막뉴스] 항일 무장투쟁 새로운 발견…‘40번의 전투, 승전 또 승전’
    • 입력 2019.08.16 (13:55)
    • 수정 2019.08.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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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이 봉오동, 청산리에서 연거푸 승리하자 일제는 간도참변으로 보복합니다.

수만 명의 동포를 잃은 독립군은 선전포고를 하고, 강도 높은 투쟁에 들어갑니다.

[익세보(益世報) 1920年12月23日 : "한인을 잔인무도하게 학살하고 있다. 원수를 잊지 않고 목숨 걸고 복수할 것이다."

대표적인 전투는 함경도 경성, 청진항 전투였습니다.

[경보(京報), 신화일보-북경(新華日報-北京) 1921年1月27日: "1월 4일 경성·청진항에서 일본군 병사 40여 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이 급파돼 전투가 이어졌는데 일본군 사상자는 600여 명, 독립군은 50여 명이었다. 이 전투로 독립군 지원이 증가했다."

독립군이 나타나면 혼비백산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익세보(益世報) 1922年3月14日: "독립군이 의주군을 습격했다. 면사무소 일본인 직원들이 총소리를 듣고 옷 입을 새도 없이 도망쳤다."]

연이은 승전에 독립군의 기세는 나날이 올라갔습니다.

[익세보(益世報) 1921年2月16日 : "만주일일신문에 따르면 독립군이 이미 8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20년대 10년 동안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를 제외하고 당시 중국 언론에 보도된 독립운동은 96건, 이중 40건이 무장투쟁 기사입니다.

숨지거나 다친 일본군 등이 660여 명에 달했지만, 독립군의 피해는 70여 명이었습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안양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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