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긴 한데, 검증은 안 됐어요”…식약처의 딜레마

입력 2019.08.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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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가 이렇게 다른 말, 어떻게 된 걸까요?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보사에 대해 밝힌 내용입니다.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단 안전하다고는 했는데, 정작 법정에서는 인보사의 위험성을 역설해야 하는 현실, 식약처가 처한 딜레마입니다.


■ '세계 최초'라더니, 종양 유발할 수 있는 신장 세포로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 각광받아왔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는 2017년 7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습니다. 무릎에 주사하면 손상된 연골의 재생을 도와 통증을 완화시킨다는 효과가 입증된 건데요. 난리가 난 건 지난 3월입니다. 인보사 2액의 주성분이 당초 알려진 것처럼 연골세포가 아니라, 신장세포(GP2-293)라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이 세포는 무한 증식할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양을 유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식약처는 부랴부랴 자체 조사를 실시하고, 두 달 뒤인 5월 28일 인보사 허가를 취소하기에 이릅니다.

인보사 사태가 터진 뒤 식약처는 줄곧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코오롱 측이 허위 자료를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면 물론 문제지만, 어떻게 식약처가 그걸 모를 수 있었냐는 것이죠. 의약품을 허가하기 전에 꼼꼼히 안전성을 검증하라고 식약처가 존재하는 것일텐데 잘못된 자료를 제출받고도 전혀 몰랐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인보사 주성분이 신장세포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도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허가를 취소한 식약처의 느린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 안전하다더니... 검증 안 돼 위험하다고?

그래서일까요? 식약처는 인보사의 안전성을 강조했습니다. 일단 허가는 취소하지만, 환자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말이 달라졌습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를 상대로 인보사 허가 취소를 잠정 중단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소송에서 식약처는 인보사가 전혀 검증된 바가 없고, 안전하지도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정에서 식약처는 인보사에 사용된 신장세포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판된 의약품에 사용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인보사 투약자는 2017년 7월 인보사 허가 이후에 투약 받아 2년이 채 안 됐기 때문에 안전성이 검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일단 인보사가 안전하다고 발표는 했는데, 코오롱과의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보사가 위험한 의약품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셈입니다.

■ "더 강한 방사선 쬐어도 세포 안 죽는다" 주장했다 철회한 식약처

식약처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방사선 처리로 세포가 전부 사멸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인보사를 제조하며 세포에 조사(照射)한 방사선보다 더 강한 방사선을 쬐어도 세포가 죽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가 있는데, 이걸 코오롱이 숨기고 제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그동안 코오롱 측은 인보사에 방사선 처리를 했기 때문에 약효를 다하고 나면 세포가 자연 소멸돼 안전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세포치료제는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니, 사전에 방사선을 쬐어 세포의 DNA를 망가뜨려 무한 증식할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겁니다.

식약처의 주장은 이 같은 코오롱의 해명과는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KBS 취재 결과 검찰은 코오롱 압수수색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발견해 식약처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식약처는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공개 법정에서 언급했다가 "수사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라"며 재판부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이후 식약처는 해당 내용을 빼고 다시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오롱이 인보사 허가를 받을 당시 불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정황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법원은 얼마 전 코오롱이 낸 허가 취소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코오롱이 불리한 자료는 제출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고 판시했습니다. '코오롱 측에 속았다'고 주장하는 식약처도 할 말은 있는 셈입니다.


■ 코오롱만 잘못이라고 하면 해결되나요? 식약처의 이상한 '자기부정'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식약처가 이 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건 스스로 식약처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지난 5월 식약처는 인보사를 상대로 자체 세포사멸시험을 실시한 결과, 44일 뒤 세포가 모두 사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반대의 주장을 편 것이죠.

이와 관련해 KBS 취재진은 식약처 쪽에 수차례 관련 자료와 입장을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는데요. 왜 법정에서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 그리고 왜 다시 철회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식약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작정하고 허위 자료를 내면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항변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검증 의무를 소홀히 한 식약처가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코오롱 측에 돌리고 있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식약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인보사의 위험성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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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하긴 한데, 검증은 안 됐어요”…식약처의 딜레마
    • 입력 2019-08-16 13:55:49
    취재K
앞뒤가 이렇게 다른 말, 어떻게 된 걸까요?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보사에 대해 밝힌 내용입니다.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단 안전하다고는 했는데, 정작 법정에서는 인보사의 위험성을 역설해야 하는 현실, 식약처가 처한 딜레마입니다.


■ '세계 최초'라더니, 종양 유발할 수 있는 신장 세포로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 각광받아왔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는 2017년 7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습니다. 무릎에 주사하면 손상된 연골의 재생을 도와 통증을 완화시킨다는 효과가 입증된 건데요. 난리가 난 건 지난 3월입니다. 인보사 2액의 주성분이 당초 알려진 것처럼 연골세포가 아니라, 신장세포(GP2-293)라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이 세포는 무한 증식할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양을 유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식약처는 부랴부랴 자체 조사를 실시하고, 두 달 뒤인 5월 28일 인보사 허가를 취소하기에 이릅니다.

인보사 사태가 터진 뒤 식약처는 줄곧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코오롱 측이 허위 자료를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면 물론 문제지만, 어떻게 식약처가 그걸 모를 수 있었냐는 것이죠. 의약품을 허가하기 전에 꼼꼼히 안전성을 검증하라고 식약처가 존재하는 것일텐데 잘못된 자료를 제출받고도 전혀 몰랐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인보사 주성분이 신장세포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도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허가를 취소한 식약처의 느린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 안전하다더니... 검증 안 돼 위험하다고?

그래서일까요? 식약처는 인보사의 안전성을 강조했습니다. 일단 허가는 취소하지만, 환자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말이 달라졌습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를 상대로 인보사 허가 취소를 잠정 중단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소송에서 식약처는 인보사가 전혀 검증된 바가 없고, 안전하지도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정에서 식약처는 인보사에 사용된 신장세포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판된 의약품에 사용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인보사 투약자는 2017년 7월 인보사 허가 이후에 투약 받아 2년이 채 안 됐기 때문에 안전성이 검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일단 인보사가 안전하다고 발표는 했는데, 코오롱과의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보사가 위험한 의약품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셈입니다.

■ "더 강한 방사선 쬐어도 세포 안 죽는다" 주장했다 철회한 식약처

식약처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방사선 처리로 세포가 전부 사멸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인보사를 제조하며 세포에 조사(照射)한 방사선보다 더 강한 방사선을 쬐어도 세포가 죽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가 있는데, 이걸 코오롱이 숨기고 제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그동안 코오롱 측은 인보사에 방사선 처리를 했기 때문에 약효를 다하고 나면 세포가 자연 소멸돼 안전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세포치료제는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니, 사전에 방사선을 쬐어 세포의 DNA를 망가뜨려 무한 증식할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겁니다.

식약처의 주장은 이 같은 코오롱의 해명과는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KBS 취재 결과 검찰은 코오롱 압수수색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발견해 식약처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식약처는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공개 법정에서 언급했다가 "수사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라"며 재판부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이후 식약처는 해당 내용을 빼고 다시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오롱이 인보사 허가를 받을 당시 불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정황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법원은 얼마 전 코오롱이 낸 허가 취소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코오롱이 불리한 자료는 제출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고 판시했습니다. '코오롱 측에 속았다'고 주장하는 식약처도 할 말은 있는 셈입니다.


■ 코오롱만 잘못이라고 하면 해결되나요? 식약처의 이상한 '자기부정'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식약처가 이 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건 스스로 식약처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지난 5월 식약처는 인보사를 상대로 자체 세포사멸시험을 실시한 결과, 44일 뒤 세포가 모두 사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반대의 주장을 편 것이죠.

이와 관련해 KBS 취재진은 식약처 쪽에 수차례 관련 자료와 입장을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는데요. 왜 법정에서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 그리고 왜 다시 철회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식약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작정하고 허위 자료를 내면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항변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검증 의무를 소홀히 한 식약처가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코오롱 측에 돌리고 있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식약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인보사의 위험성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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