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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훈의 시사본부] “DJ, MB정권 민주주의 후퇴 걱정하며 눈물 흘리기도”
입력 2019.08.16 (15:04) 수정 2019.08.16 (15:47) 오태훈의 시사본부
[오태훈의 시사본부] “DJ, MB정권 민주주의 후퇴 걱정하며 눈물 흘리기도”
- 김한정, 최경환 찾아와 자서전 써달라 했을 때 소주잔 깨뜨릴 뻔했을 정도로 놀라
- 고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서도 나라의 미래를 설계했던 절망하지 않는 긍정의 정치인
-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자서전에도 자세히 나와,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담겨
- 김 대통령은 치밀하게 준비, 수난 받았던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절제된 행동 선보여
- 일본인들이 굉장히 신뢰할만하고 어떻게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상도 받아
- 외교는 ‘내가 고개를 숙이더라도,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 이라는 원칙에 충실해
- 끝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던 그런 분으로 국민들이 그 분을 기억해 줬으면
- 퇴임 후 민주주의 후퇴 많이 걱정해, 2009년 시국 이야기 하며 눈물 흘리기도
-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검토하고, 망원경처럼 높고 크게 사고하라”는 말씀 떠올라
- 강제징용 배상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한일관계는 망원경으로 보라고 말씀하실 듯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8월 16일(금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김택근 작가( <김대중 자서전> 집필,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 오태훈 : 지난 2009년 8월 18일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일입니다. 이제 꼭 10주기가 되는데요.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갈등이 극한 상황이죠.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과가 담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끌어낸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존재 더욱더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거 10주기 맞아서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고 이어서 <김대중 평론>까지 쓰신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택근 작가와 함께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택근 : 안녕하세요.

▷ 오태훈 : 반갑습니다. 어려운 걸음 감사드리고요. 먼저 2004년에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게 되셨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으셨어요?

▶ 김택근 : 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습니다.

▷ 오태훈 : 그런데 어떻게 연락이 간 건가요?

▶ 김택근 : 글쎄 그때 지금은 국회의원 된 김한정, 최경환 두 분이 저를 만나러 왔어요. 그래서 인사동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자서전을 써달라고 그러신다고 그래서 소주잔을 깨뜨릴 뻔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이게 뭐 어째서 그러셨는지는 모르는데 하여튼 제가 그때 경향신문에 굉장히 왕성하게 글을 썼을 시대니까 아마 제 글을 보시고 그러지 않았는가 이렇게 짐작합니다. 한번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냥 또 일찍 가셔서.

▷ 오태훈 :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나를 왜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쭤보지도 못하셨어요?

▶ 김택근 : 네, 그래서 나중에 그분의 일기를 쭉 보면서 일기의 그 문체가 제 글과 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오태훈 : 문체가 닮아서 나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 김택근 : 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오태훈 : 추측을 하고 계시는 거군요.

▶ 김택근 : 네, 네.

▷ 오태훈 : 소주잔을 깰 정도로 놀랐다고 하시는 건 두 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분노가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줬을까라는.

▶ 김택근 : 그렇죠. 후자 쪽이죠. 대통령께서 저를 보고 있었구나라는 그런 것 때문에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본격적으로 좀 말씀드리기 전에 자서전을 쓴 작가가 본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 김택근 : 그분은 많은 덕목이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덕목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긍정의 정치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긍정의 정치인.

▶ 김택근 : 네,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던 긍정 에너지를 품고 있었던 그런. 사막의 골짜기에서도 내일을 설계했고 또 감옥에서도 독서를 하고 나라의 미래를 설계했던. 이렇듯 결코 절망하지 않는, 자신의 운명을 믿고 사랑했던 그런 사람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보면 역사적인 사건이 상당히 많이 있었고 그 역사적인 사건들이 불행한 상황들, 위험한 상황들,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는 사건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다 그거를 헤쳤네요, 보니까?

▶ 김택근 : 헤쳐 나왔죠. 그리고 그분이 남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이런 말. 또 '기회는 천사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악마의 얼굴로도 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런 역경을 헤쳐 나가는 그런 것들은 안에서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뜬다는 그런 걸 믿는 내부에 그런 긍정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또 헤쳐오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오태훈 : 그게 요즘 말하는 '위기가 기회다' 이런 거 아니에요.

▶ 김택근 : 그럴 수 있죠.

▷ 오태훈 : 자서전에 이어서 <김대중 평전>까지 쓰셨어요. 자서전은 자신의 생각으로 쓰는 글인 것 같고 평전은 누군가가 평가하는 글 아닙니까.

▶ 김택근 : 그렇죠.

▷ 오태훈 : 어떤 차이가 다가오던가요.

▶ 김택근 : 저는 자서전을 쓴 사람은 평전을 쓰지 않습니다, 사실은.

▷ 오태훈 : 그래요?

▶ 김택근 : 그런데 이제 제가 평전을 쓰게 된 것은 자서전에 담지 못한 비화, 또 감동적인 일화 이런 걸 역사에 한번 남겨보자. 이게 시간이 지나면 저도 잊어버릴 거 아닙니까? 그래서 서둘러서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자서전은 6년, 평전은 2년 걸려서 8년 동안 작업을 했죠. 제가 그때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평전 출판기념회 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6년 넘게 감옥에 계셨는데 저는 김대중 글 감옥에 8년을 넘게 있었다.

▷ 오태훈 : 글 감옥에.

▶ 김택근 : 네, 이제는 좀 탈출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 오태훈 : 규제가 많았었나 봐요, 감옥이라고 말씀하신 거 보니까.

▶ 김택근 : 저한테 엄청난 부담이었죠. 파란만장한 인생을 제 무딘 펜으로 그거를 이어간다는 것은 저한테 너무 버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사실은.

▷ 오태훈 : 지금 시기가 시기라서 이 질문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제 도발로 인해서 한일 관계가 지금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주목할 만한 상황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인데 이 이야기도 자서전에 있습니까?

▶ 김택근 : 네, 자서전에 좀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죠.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지금 1998년도인데 근 20년이 넘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선언의 의미가 어떤 거냐 하면 오부치 총리대신이 '한국 국민에게 그간 식민지 지배로 인해서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는데 이거를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하겠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거는 여태까지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도 있었는데 그거는 그냥 아시아 여러 나라를 지칭했었고 오부치 총리는 한국만을 지칭했고 거기에다가 외교문서에 첫 번째로 서명을 했어요. 그 의미가 큰 거죠. 그 오부치 선언이 한일 관계를 이렇게 지탱해 온 겁니다.

▷ 오태훈 : 지금까지 20년 동안.

▶ 김택근 : 지금까지. 그래서 해마다 그 선언을.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제 우리 한국은, 오부치 총리의 그런 솔직한 사죄에 대해서 우리 한국은 그거를 받아들이고 양국이 겸허하게 새로운 세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가겠다 이거거든요. 그걸 이제 보통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입니다. 그게 과거에 그런 것이 있으니까 일본은 반성을 하고 우리는 용서를 해서 새로운 세계로 나가자 이런 내용이기 때문에 아주 굉장한 의미가 있는 거죠.

▷ 오태훈 : 지금 일본의 태도를 반추해 본다고 그러면 그 선언은 상당히 의미 있는 선언으로 들리는데 당시 상황이 98년도라고 하면 김대중 대통령 취임한 첫 해였고 그리고 우리는 한참 IMF 때문에 힘들 때였지 않습니까?

▶ 김택근 : 그렇죠.

▷ 오태훈 :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 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도 꽤 있었을 것 같아요.

▶ 김택근 : 그러니까 치밀하게 준비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때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은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서 원죄가 있어요. 팔레스호텔 납치 사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납치 사건에 말하자면 박정희 정권의 손을 들어준 원죄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제 말하자면 그런 수난 받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서 일본에 왔단 말입니다. 그 일본에 왔을 때 그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아, 저 사람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긴장을 했는데 본인의 그런 수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한마디도 안 하고 그리고 일본 수상한테도 가서 깍듯이 찾아뵙고 그리고 일체 개인적인 그런 말하자면 자랑이나 이런 어떤 자부심을 내비치지 않고 오로지 양국 관계만.

▷ 오태훈 : 국가 대 국가로.

▶ 김택근 : 네, 그런 절제된 행동으로 일본인들이 굉장히 신뢰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런 인상까지 받은. 아주 치밀한, 그분은 정상회담 할 때는 치밀하게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내치는 잘못하면 고치면 되지만 외교는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이거는 고칠 수가 없다' 그분의 지론이거든요. 그래서 퇴임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의 외교에 대해서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을 합니다. 그분은 하여튼 외교에 대해서는 철저히 준비하고 가서. 외교라는 게 뭡니까? 가서 고개를 숙이건 뭐 하건 내 국민들을 위하는 것이 외교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아주 충실했던 정말 정치인입니다.

▷ 오태훈 : 외교 분야만 들어도 거의 뭐 1시간 이상을 다뤄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좀 가름하도록 하고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10주기 맞아서 <김대중 자서전> 집필하신 김택근 작가와 함께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부분도 좀 여쭤볼까 해요. 진보 정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에 대해서 많은 분들께서 이야기하고 감동을 느끼고는 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삶에 대해서는 좀 이런 인간적인 면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 같은 것들은 좀 덜 알려진 편이 아닌가 싶어서요.

▶ 김택근 : 그렇죠. 김대중 대통령은 삶이 우리한테 무겁게 다가옵니다. 너무 고난을 많이 받으시고 그리고 파란만장했지 않습니까, 본인의 표현대로. 그래서 정말 드라마틱한 여러 요소가 있지만 사실은 지금은 많이 잊히고 있어요, 그것들이. 그래서 저도 이제 술회를 했습니다만 저도 큰 산인 줄만 알고 올라갔더니 실제 올라가 보니까 이분은 산맥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그러니까 너무 무겁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그럽니다. 대신 우리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감성적으로 많이들 접근해서 다큐도 나오고 영화도 나와서 그분의 삶을 이렇게 조영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너무 거대하고 크다 보니까 일반인들이 많이 다가가기가 좀 힘든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김 작가께서 보시기에 그러면 소개할 만한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면 어떤 걸 말씀해 주실까요?

▶ 김택근 : 김대중 대통령을 보통 과격하다, 거짓말 잘한다, 용공분자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분을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분은 지극히 평화스러운 분이고 진실한 분이었습니다. 눈을 보면 알거든요. 저랑 눈을 마주쳤을 때 그 눈이 아주 맑았어요. 그리고 말년의 모습은 거의 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리고 진실로 나라와 민족을 생각했던 분이었거든요. 그리고 끝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던 그런 분으로 국민들이, 또 후세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 오태훈 : 3254님께서 지금 방송 들으시다가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워서인지 고 김대중 대통령 무척 그립습니다라고 의견도 보내주셨고 9190님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분의 행적과 실적 등 자서전을 읽고부터 이제 그분을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도 문자 보내주셨는데요. 퇴임 후의 삶은 어떠셨을까 궁금해요.

▶ 김택근 : 지국히 평화스럽게 일상은 평화스러웠지만 그때 민주주의가 후퇴했던 걸 가장 걱정을 했죠. 제가 그때 저한테 자서전의 마지막을 부탁하는 그런 7월 9일이었어요, 2009년. 7월 9일에 그분이 저를 불러서 이제 자서전 마무리를 잘해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시국 이야기를 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제 앞에서 갑자기 우시는 거예요.

▷ 오태훈 : 그래요?

▶ 김택근 : 그러면서 꿈만 같습니다. 그 멘트가 그랬어요. 꿈만 같습니다. 지난 50년을 어떻게 가꿔온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민주주의가 후퇴하는지. 내가 이렇게, 늙은 내가 이렇게 전직 대통령이 사람들은 간섭을 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현실 정치에. 나라도 나서야지 아무도 안 나서면 나라도 나서야 할 거 아닙니까. 지하에 있는 의사, 열사가 통곡하고 있는데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냐고 하면서 우셨어요. 그러니까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퇴임 이후에는 이희호 여사랑 둘이만 있어도 행복하다 그리고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일기도 남기고 참 평화스럽게 사셨지만 민주주의 후퇴, 말하자면 서민 경제 후퇴, 남북관계 후퇴에 대해서는 정말 불같이 화를 내시고 거기에 적극 대처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분이었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아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데 시간이 많이 없어서 딱 마지막 질문드리고 마쳐야 할 것 같은데요. 다음 기회에 한번 시간이 되면 또 모시는 시간 한번 갖도록 해보겠습니다. 지금 참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요즘 많이 있습니다.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하는 쪽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쪽도 있는데 지금의 상황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묻는다면 어떤 길을 제시해 주실까요?

▶ 김택근 : 글쎄요, 저는 그거는 상당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김대중 대통령이 평소에 하신 말씀이 있어요. 현안이 생겨났을 때 그 현안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검토하고 망원경처럼 높고 크게 사고하라 그런 걸 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한일 관계는 당장 징용 배상 문제가 대두됐는데 그 징용 배상 문제는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 오태훈 : 세세하게 보고.

▶ 김택근 : 한일 관계는 망원경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 오태훈 : 정말 그랬을 것 같은데요.

▶ 김택근 : 네, 참 정확한 그분의 해법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정말 어떻게 보면 참 그분이 계시면 아마 이렇게 다소나마 이런 현안 돌파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서거 10주기 맞아서 말씀을 나눠봤습니다.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신 김택근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택근 : 감사합니다.
  • [오태훈의 시사본부] “DJ, MB정권 민주주의 후퇴 걱정하며 눈물 흘리기도”
    • 입력 2019.08.16 (15:04)
    • 수정 2019.08.16 (15:47)
    오태훈의 시사본부
[오태훈의 시사본부] “DJ, MB정권 민주주의 후퇴 걱정하며 눈물 흘리기도”
- 김한정, 최경환 찾아와 자서전 써달라 했을 때 소주잔 깨뜨릴 뻔했을 정도로 놀라
- 고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서도 나라의 미래를 설계했던 절망하지 않는 긍정의 정치인
-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자서전에도 자세히 나와,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담겨
- 김 대통령은 치밀하게 준비, 수난 받았던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절제된 행동 선보여
- 일본인들이 굉장히 신뢰할만하고 어떻게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상도 받아
- 외교는 ‘내가 고개를 숙이더라도,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 이라는 원칙에 충실해
- 끝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던 그런 분으로 국민들이 그 분을 기억해 줬으면
- 퇴임 후 민주주의 후퇴 많이 걱정해, 2009년 시국 이야기 하며 눈물 흘리기도
-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검토하고, 망원경처럼 높고 크게 사고하라”는 말씀 떠올라
- 강제징용 배상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한일관계는 망원경으로 보라고 말씀하실 듯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8월 16일(금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김택근 작가( <김대중 자서전> 집필,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 오태훈 : 지난 2009년 8월 18일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일입니다. 이제 꼭 10주기가 되는데요.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갈등이 극한 상황이죠.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과가 담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끌어낸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존재 더욱더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거 10주기 맞아서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고 이어서 <김대중 평론>까지 쓰신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택근 작가와 함께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택근 : 안녕하세요.

▷ 오태훈 : 반갑습니다. 어려운 걸음 감사드리고요. 먼저 2004년에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게 되셨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으셨어요?

▶ 김택근 : 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습니다.

▷ 오태훈 : 그런데 어떻게 연락이 간 건가요?

▶ 김택근 : 글쎄 그때 지금은 국회의원 된 김한정, 최경환 두 분이 저를 만나러 왔어요. 그래서 인사동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자서전을 써달라고 그러신다고 그래서 소주잔을 깨뜨릴 뻔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이게 뭐 어째서 그러셨는지는 모르는데 하여튼 제가 그때 경향신문에 굉장히 왕성하게 글을 썼을 시대니까 아마 제 글을 보시고 그러지 않았는가 이렇게 짐작합니다. 한번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냥 또 일찍 가셔서.

▷ 오태훈 :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나를 왜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쭤보지도 못하셨어요?

▶ 김택근 : 네, 그래서 나중에 그분의 일기를 쭉 보면서 일기의 그 문체가 제 글과 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오태훈 : 문체가 닮아서 나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 김택근 : 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오태훈 : 추측을 하고 계시는 거군요.

▶ 김택근 : 네, 네.

▷ 오태훈 : 소주잔을 깰 정도로 놀랐다고 하시는 건 두 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분노가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줬을까라는.

▶ 김택근 : 그렇죠. 후자 쪽이죠. 대통령께서 저를 보고 있었구나라는 그런 것 때문에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본격적으로 좀 말씀드리기 전에 자서전을 쓴 작가가 본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 김택근 : 그분은 많은 덕목이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덕목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긍정의 정치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긍정의 정치인.

▶ 김택근 : 네,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던 긍정 에너지를 품고 있었던 그런. 사막의 골짜기에서도 내일을 설계했고 또 감옥에서도 독서를 하고 나라의 미래를 설계했던. 이렇듯 결코 절망하지 않는, 자신의 운명을 믿고 사랑했던 그런 사람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보면 역사적인 사건이 상당히 많이 있었고 그 역사적인 사건들이 불행한 상황들, 위험한 상황들,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는 사건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다 그거를 헤쳤네요, 보니까?

▶ 김택근 : 헤쳐 나왔죠. 그리고 그분이 남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이런 말. 또 '기회는 천사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악마의 얼굴로도 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런 역경을 헤쳐 나가는 그런 것들은 안에서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뜬다는 그런 걸 믿는 내부에 그런 긍정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또 헤쳐오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오태훈 : 그게 요즘 말하는 '위기가 기회다' 이런 거 아니에요.

▶ 김택근 : 그럴 수 있죠.

▷ 오태훈 : 자서전에 이어서 <김대중 평전>까지 쓰셨어요. 자서전은 자신의 생각으로 쓰는 글인 것 같고 평전은 누군가가 평가하는 글 아닙니까.

▶ 김택근 : 그렇죠.

▷ 오태훈 : 어떤 차이가 다가오던가요.

▶ 김택근 : 저는 자서전을 쓴 사람은 평전을 쓰지 않습니다, 사실은.

▷ 오태훈 : 그래요?

▶ 김택근 : 그런데 이제 제가 평전을 쓰게 된 것은 자서전에 담지 못한 비화, 또 감동적인 일화 이런 걸 역사에 한번 남겨보자. 이게 시간이 지나면 저도 잊어버릴 거 아닙니까? 그래서 서둘러서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자서전은 6년, 평전은 2년 걸려서 8년 동안 작업을 했죠. 제가 그때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평전 출판기념회 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6년 넘게 감옥에 계셨는데 저는 김대중 글 감옥에 8년을 넘게 있었다.

▷ 오태훈 : 글 감옥에.

▶ 김택근 : 네, 이제는 좀 탈출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 오태훈 : 규제가 많았었나 봐요, 감옥이라고 말씀하신 거 보니까.

▶ 김택근 : 저한테 엄청난 부담이었죠. 파란만장한 인생을 제 무딘 펜으로 그거를 이어간다는 것은 저한테 너무 버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사실은.

▷ 오태훈 : 지금 시기가 시기라서 이 질문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제 도발로 인해서 한일 관계가 지금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주목할 만한 상황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인데 이 이야기도 자서전에 있습니까?

▶ 김택근 : 네, 자서전에 좀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죠.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지금 1998년도인데 근 20년이 넘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선언의 의미가 어떤 거냐 하면 오부치 총리대신이 '한국 국민에게 그간 식민지 지배로 인해서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는데 이거를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하겠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거는 여태까지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도 있었는데 그거는 그냥 아시아 여러 나라를 지칭했었고 오부치 총리는 한국만을 지칭했고 거기에다가 외교문서에 첫 번째로 서명을 했어요. 그 의미가 큰 거죠. 그 오부치 선언이 한일 관계를 이렇게 지탱해 온 겁니다.

▷ 오태훈 : 지금까지 20년 동안.

▶ 김택근 : 지금까지. 그래서 해마다 그 선언을.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제 우리 한국은, 오부치 총리의 그런 솔직한 사죄에 대해서 우리 한국은 그거를 받아들이고 양국이 겸허하게 새로운 세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가겠다 이거거든요. 그걸 이제 보통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입니다. 그게 과거에 그런 것이 있으니까 일본은 반성을 하고 우리는 용서를 해서 새로운 세계로 나가자 이런 내용이기 때문에 아주 굉장한 의미가 있는 거죠.

▷ 오태훈 : 지금 일본의 태도를 반추해 본다고 그러면 그 선언은 상당히 의미 있는 선언으로 들리는데 당시 상황이 98년도라고 하면 김대중 대통령 취임한 첫 해였고 그리고 우리는 한참 IMF 때문에 힘들 때였지 않습니까?

▶ 김택근 : 그렇죠.

▷ 오태훈 :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 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도 꽤 있었을 것 같아요.

▶ 김택근 : 그러니까 치밀하게 준비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때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은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서 원죄가 있어요. 팔레스호텔 납치 사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납치 사건에 말하자면 박정희 정권의 손을 들어준 원죄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제 말하자면 그런 수난 받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서 일본에 왔단 말입니다. 그 일본에 왔을 때 그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아, 저 사람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긴장을 했는데 본인의 그런 수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한마디도 안 하고 그리고 일본 수상한테도 가서 깍듯이 찾아뵙고 그리고 일체 개인적인 그런 말하자면 자랑이나 이런 어떤 자부심을 내비치지 않고 오로지 양국 관계만.

▷ 오태훈 : 국가 대 국가로.

▶ 김택근 : 네, 그런 절제된 행동으로 일본인들이 굉장히 신뢰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런 인상까지 받은. 아주 치밀한, 그분은 정상회담 할 때는 치밀하게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내치는 잘못하면 고치면 되지만 외교는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이거는 고칠 수가 없다' 그분의 지론이거든요. 그래서 퇴임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의 외교에 대해서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을 합니다. 그분은 하여튼 외교에 대해서는 철저히 준비하고 가서. 외교라는 게 뭡니까? 가서 고개를 숙이건 뭐 하건 내 국민들을 위하는 것이 외교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아주 충실했던 정말 정치인입니다.

▷ 오태훈 : 외교 분야만 들어도 거의 뭐 1시간 이상을 다뤄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좀 가름하도록 하고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10주기 맞아서 <김대중 자서전> 집필하신 김택근 작가와 함께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부분도 좀 여쭤볼까 해요. 진보 정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에 대해서 많은 분들께서 이야기하고 감동을 느끼고는 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삶에 대해서는 좀 이런 인간적인 면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 같은 것들은 좀 덜 알려진 편이 아닌가 싶어서요.

▶ 김택근 : 그렇죠. 김대중 대통령은 삶이 우리한테 무겁게 다가옵니다. 너무 고난을 많이 받으시고 그리고 파란만장했지 않습니까, 본인의 표현대로. 그래서 정말 드라마틱한 여러 요소가 있지만 사실은 지금은 많이 잊히고 있어요, 그것들이. 그래서 저도 이제 술회를 했습니다만 저도 큰 산인 줄만 알고 올라갔더니 실제 올라가 보니까 이분은 산맥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그러니까 너무 무겁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그럽니다. 대신 우리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감성적으로 많이들 접근해서 다큐도 나오고 영화도 나와서 그분의 삶을 이렇게 조영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너무 거대하고 크다 보니까 일반인들이 많이 다가가기가 좀 힘든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김 작가께서 보시기에 그러면 소개할 만한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면 어떤 걸 말씀해 주실까요?

▶ 김택근 : 김대중 대통령을 보통 과격하다, 거짓말 잘한다, 용공분자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분을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분은 지극히 평화스러운 분이고 진실한 분이었습니다. 눈을 보면 알거든요. 저랑 눈을 마주쳤을 때 그 눈이 아주 맑았어요. 그리고 말년의 모습은 거의 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리고 진실로 나라와 민족을 생각했던 분이었거든요. 그리고 끝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던 그런 분으로 국민들이, 또 후세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 오태훈 : 3254님께서 지금 방송 들으시다가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워서인지 고 김대중 대통령 무척 그립습니다라고 의견도 보내주셨고 9190님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분의 행적과 실적 등 자서전을 읽고부터 이제 그분을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도 문자 보내주셨는데요. 퇴임 후의 삶은 어떠셨을까 궁금해요.

▶ 김택근 : 지국히 평화스럽게 일상은 평화스러웠지만 그때 민주주의가 후퇴했던 걸 가장 걱정을 했죠. 제가 그때 저한테 자서전의 마지막을 부탁하는 그런 7월 9일이었어요, 2009년. 7월 9일에 그분이 저를 불러서 이제 자서전 마무리를 잘해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시국 이야기를 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제 앞에서 갑자기 우시는 거예요.

▷ 오태훈 : 그래요?

▶ 김택근 : 그러면서 꿈만 같습니다. 그 멘트가 그랬어요. 꿈만 같습니다. 지난 50년을 어떻게 가꿔온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민주주의가 후퇴하는지. 내가 이렇게, 늙은 내가 이렇게 전직 대통령이 사람들은 간섭을 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현실 정치에. 나라도 나서야지 아무도 안 나서면 나라도 나서야 할 거 아닙니까. 지하에 있는 의사, 열사가 통곡하고 있는데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냐고 하면서 우셨어요. 그러니까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퇴임 이후에는 이희호 여사랑 둘이만 있어도 행복하다 그리고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일기도 남기고 참 평화스럽게 사셨지만 민주주의 후퇴, 말하자면 서민 경제 후퇴, 남북관계 후퇴에 대해서는 정말 불같이 화를 내시고 거기에 적극 대처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분이었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아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데 시간이 많이 없어서 딱 마지막 질문드리고 마쳐야 할 것 같은데요. 다음 기회에 한번 시간이 되면 또 모시는 시간 한번 갖도록 해보겠습니다. 지금 참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요즘 많이 있습니다.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하는 쪽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쪽도 있는데 지금의 상황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묻는다면 어떤 길을 제시해 주실까요?

▶ 김택근 : 글쎄요, 저는 그거는 상당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김대중 대통령이 평소에 하신 말씀이 있어요. 현안이 생겨났을 때 그 현안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검토하고 망원경처럼 높고 크게 사고하라 그런 걸 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한일 관계는 당장 징용 배상 문제가 대두됐는데 그 징용 배상 문제는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 오태훈 : 세세하게 보고.

▶ 김택근 : 한일 관계는 망원경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 오태훈 : 정말 그랬을 것 같은데요.

▶ 김택근 : 네, 참 정확한 그분의 해법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정말 어떻게 보면 참 그분이 계시면 아마 이렇게 다소나마 이런 현안 돌파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서거 10주기 맞아서 말씀을 나눠봤습니다.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신 김택근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택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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