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과 망향의 섬 사할린

입력 2019.08.16 (15:42) 수정 2019.08.16 (15:4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멘트]

    광복절을 앞두고 
KBS 충북뉴스가 마련한 
특별기획 보도 마지막 순섭니다.
    사할린은 광복 직후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픈 역사를 가진
사할린 한인들의 이산과 망향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이정훈 기잡니다.


[리포트]
   
    올해 여든한 살의 남기필씨는
아들과 함께 사할린을
방문했습니다.

    사할린에 끌려갔다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섭니다.

    유일한 단서는 
편지 한 통이 전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절실함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남기필/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81세)
"(아버지)보고 싶죠. 그럼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내 동생 3살이고 우리 누나들은 9살.
아이고 우리 아버지."
                          
    광복되고도 한인들은
분단과 냉전이 이어지며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사할린에 억류됐습니다.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최소 만 6천여 명

    강제동원 피해자 중 34.3%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지거나 행방불명됐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이 이뤄진
다른 지역에 비해
돌아오지 못한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방일권 교수/과거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 사할린 학살 사건 조사 책임자
"이 미귀환의 문제는 역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가 본 자리로 되돌리지 못한
일본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할린 한인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에서도 제외돼
지금까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영주 귀국 대상도
광복 이전이어서 또다시
자녀들과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태엽/사할린 영주귀국자(83세) 
"여기(한국) 사니까 좋죠.
좋으니까 (자녀)생각이 더 나죠. 정말요, 가만히 생각하면
어떻게 (법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결국, 정부 대신 개인이 나서
귀환 운동을 펼쳐야 했습니다.

박창규/고 박노학 사할린 억류 귀환한국인회장 아들 
 "한국엔 연락이 안돼요
사할린하고 한국하고는 그 당시엔 교류가 안될 때니까
아버지한테 계속 (편지 부탁한)사람들이 그게 7천 명이나 된 거예요."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조국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박순옥 회장/사할린주 한인협회  
"누가 제일 많이 잘못됐냐? 저는 첫째로 생각해요.
한국. 왜 한국(이라고 생각하냐면) 한국 우리 조국이지요?
어머니 대신 자기 자식들 찾아야 되죠.한번도 우리 안 찾고."

    벌써 74년이 지났지만
사할린의 광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이정훈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산과 망향의 섬 사할린
    • 입력 2019-08-16 15:42:59
    • 수정2019-08-16 15:49:52
    뉴스9(청주)
[앵커멘트]     광복절을 앞두고  KBS 충북뉴스가 마련한  특별기획 보도 마지막 순섭니다.     사할린은 광복 직후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픈 역사를 가진 사할린 한인들의 이산과 망향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이정훈 기잡니다. [리포트]         올해 여든한 살의 남기필씨는 아들과 함께 사할린을 방문했습니다.     사할린에 끌려갔다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섭니다.     유일한 단서는  편지 한 통이 전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절실함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남기필/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81세) "(아버지)보고 싶죠. 그럼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내 동생 3살이고 우리 누나들은 9살. 아이고 우리 아버지."                                광복되고도 한인들은 분단과 냉전이 이어지며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사할린에 억류됐습니다.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최소 만 6천여 명     강제동원 피해자 중 34.3%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지거나 행방불명됐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이 이뤄진 다른 지역에 비해 돌아오지 못한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방일권 교수/과거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 사할린 학살 사건 조사 책임자 "이 미귀환의 문제는 역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가 본 자리로 되돌리지 못한 일본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할린 한인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에서도 제외돼 지금까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영주 귀국 대상도 광복 이전이어서 또다시 자녀들과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태엽/사할린 영주귀국자(83세)  "여기(한국) 사니까 좋죠. 좋으니까 (자녀)생각이 더 나죠. 정말요, 가만히 생각하면 어떻게 (법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결국, 정부 대신 개인이 나서 귀환 운동을 펼쳐야 했습니다. 박창규/고 박노학 사할린 억류 귀환한국인회장 아들   "한국엔 연락이 안돼요 사할린하고 한국하고는 그 당시엔 교류가 안될 때니까 아버지한테 계속 (편지 부탁한)사람들이 그게 7천 명이나 된 거예요."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조국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박순옥 회장/사할린주 한인협회   "누가 제일 많이 잘못됐냐? 저는 첫째로 생각해요. 한국. 왜 한국(이라고 생각하냐면) 한국 우리 조국이지요? 어머니 대신 자기 자식들 찾아야 되죠.한번도 우리 안 찾고."     벌써 74년이 지났지만 사할린의 광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이정훈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청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