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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산재·성폭력에 무방비…‘을 중의 을’ 농촌 이주노동자
입력 2019.08.16 (16:42) 수정 2019.08.16 (16:42) 취재후
[취재후] 산재·성폭력에 무방비…‘을 중의 을’ 농촌 이주노동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근로시간과 휴일을 보장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63조에는 농ㆍ축산업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축산업의 특성상 일괄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현재 농어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외국인입니다. 고령화된 농어촌에서 한국인 인력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1백만 명 시대, 이 가운데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2만 3천여 명인 것으로 집계됩니다.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농촌 외국인 노동자들은 도시보다 훨씬 더 외지고 고립된 공간에서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항시적인 성폭력의 위험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습니다.


동생들 공부시키려 왔는데…수천만 원 빚만 남아

네팔에서 온 수라 씨를 안산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만났습니다. 몸이 너무 왜소하고, 한눈에 봐도 나이가 너무 어려 보여서 놀랐습니다. 20대 초반의 이 청년은 별다른 기술도 없고, 체력도 약했습니다. 동생이 두 명 있지만,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는 집이 가난했습니다. 그는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인력센터를 통해 한국에 있는 농장에 취직됐을 때는 기뻤다고 합니다. 가서 몇 년만 열심히 일하면 동생들도 부양할 수 있고, 본인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두 달째, 농기계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괜히 운전했구나’ 이런 생각만 떠올랐다고 합니다. 처음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차례 대형 수술을 받은 뒤, 수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제 걸을 수는 있게 됐지만 장애를 피할 수는 없게 됐습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에 대해 농장주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상시 1인 미만의 사업장까지도 산재보험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농업은 예외입니다. 상시 근로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산재보험 가입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현재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85%는 4인 이하의 사업장에서 일합니다. 농촌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다쳐도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셈입니다. 수라 씨를 돕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몇몇이 기부금을 내놓기도 했고, 병원 측도 수라 씨의 병원비를 감면해줬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치료기간 동안 어떻게 병원비를 마련해야 할지, 네팔로 돌아갈 비용은 마련할 수 있을지 막막한 형편입니다.


여성 이주노동자 "성폭력 당해도 속으로만 앓아"

또 다른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왔다는 이 여성 노동자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편하게 인터뷰하자고 계속 다독여도 움츠러든 어깨를 잘 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도착해서 처음 강원도에 있는 농장으로 일하러 가게 된 날,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일흔이 넘은 농장주는 그녀를 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예뻐, 예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묘사하는 손동작을 그녀 앞에서 보여주었다는데, 이 태국 노동자는 겁에 질려 그 길로 농장을 벗어나 택시를 타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포천에 있는 다른 농장으로 배정받아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쉽사리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농촌 이주 노동자들은 농장주가 제공하는 컨테이너 가건물이나 비닐하우스 등지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밭이나 논 등 일터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숙소들은 상태가 열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숙사라는 말만 있을 뿐, 위생상태는 물론 방범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한 공익인권법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당했다는 농촌 이주 여성 노동자가 전체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폭언과 폭행, 그리고 성추행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마주하고도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찰과 이주민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신고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사뭇 무지하기에 피해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방송에 차마 내지 못했던 폭언들…"그저 눈물만"

취재를 하면서 한 외국인 인권단체가 제공한 영상들을 수십 번 돌려봤습니다. 차마 숙소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열악한 곳에서, 고용주와 농촌 이주 노동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이어지는 고용주의 욕설을 듣고 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싸가지 없는 것들아. XX 이런 건방진 것들. 이런 멍청한 것들. 확 패버릴라. 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지!” “너네 시키는 대로 일 안 할 거야? 그럼 하루에 5만 원씩 쳐서 나한테 밀린 숙박비 다 내놔. 계산 정확히 하자.” 아무리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맺어졌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대우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고용주마다 막말의 결은 달랐지만, 이주 노동자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안산에서 만난 수라 씨와의 인터뷰 말미에 가족사진을 좀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촬영을 하는데, 사진 속 엄마 아빠 동생들 모습을 보던 수라 씨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함께 통역을 해주러 온 네팔인 동료가 병원 구석 침대 옆에서 숨죽여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차마 눈물 없이 보고 있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수라 씨의 눈물은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도 쉽사리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돈을 벌러 왔습니다. 가난도, 이주 노동도 죄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게,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자답게. 빈부격차와 인종을 뛰어넘어 최소한의 인권만은 존중되는 사회를 과연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묻고 또 묻게 됩니다.
  • [취재후] 산재·성폭력에 무방비…‘을 중의 을’ 농촌 이주노동자
    • 입력 2019.08.16 (16:42)
    • 수정 2019.08.16 (16:42)
    취재후
[취재후] 산재·성폭력에 무방비…‘을 중의 을’ 농촌 이주노동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근로시간과 휴일을 보장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63조에는 농ㆍ축산업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축산업의 특성상 일괄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현재 농어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외국인입니다. 고령화된 농어촌에서 한국인 인력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1백만 명 시대, 이 가운데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2만 3천여 명인 것으로 집계됩니다.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농촌 외국인 노동자들은 도시보다 훨씬 더 외지고 고립된 공간에서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항시적인 성폭력의 위험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습니다.


동생들 공부시키려 왔는데…수천만 원 빚만 남아

네팔에서 온 수라 씨를 안산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만났습니다. 몸이 너무 왜소하고, 한눈에 봐도 나이가 너무 어려 보여서 놀랐습니다. 20대 초반의 이 청년은 별다른 기술도 없고, 체력도 약했습니다. 동생이 두 명 있지만,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는 집이 가난했습니다. 그는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인력센터를 통해 한국에 있는 농장에 취직됐을 때는 기뻤다고 합니다. 가서 몇 년만 열심히 일하면 동생들도 부양할 수 있고, 본인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두 달째, 농기계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괜히 운전했구나’ 이런 생각만 떠올랐다고 합니다. 처음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차례 대형 수술을 받은 뒤, 수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제 걸을 수는 있게 됐지만 장애를 피할 수는 없게 됐습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에 대해 농장주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상시 1인 미만의 사업장까지도 산재보험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농업은 예외입니다. 상시 근로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산재보험 가입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현재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85%는 4인 이하의 사업장에서 일합니다. 농촌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다쳐도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셈입니다. 수라 씨를 돕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몇몇이 기부금을 내놓기도 했고, 병원 측도 수라 씨의 병원비를 감면해줬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치료기간 동안 어떻게 병원비를 마련해야 할지, 네팔로 돌아갈 비용은 마련할 수 있을지 막막한 형편입니다.


여성 이주노동자 "성폭력 당해도 속으로만 앓아"

또 다른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왔다는 이 여성 노동자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편하게 인터뷰하자고 계속 다독여도 움츠러든 어깨를 잘 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도착해서 처음 강원도에 있는 농장으로 일하러 가게 된 날,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일흔이 넘은 농장주는 그녀를 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예뻐, 예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묘사하는 손동작을 그녀 앞에서 보여주었다는데, 이 태국 노동자는 겁에 질려 그 길로 농장을 벗어나 택시를 타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포천에 있는 다른 농장으로 배정받아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쉽사리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농촌 이주 노동자들은 농장주가 제공하는 컨테이너 가건물이나 비닐하우스 등지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밭이나 논 등 일터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숙소들은 상태가 열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숙사라는 말만 있을 뿐, 위생상태는 물론 방범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한 공익인권법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당했다는 농촌 이주 여성 노동자가 전체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폭언과 폭행, 그리고 성추행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마주하고도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찰과 이주민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신고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사뭇 무지하기에 피해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방송에 차마 내지 못했던 폭언들…"그저 눈물만"

취재를 하면서 한 외국인 인권단체가 제공한 영상들을 수십 번 돌려봤습니다. 차마 숙소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열악한 곳에서, 고용주와 농촌 이주 노동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이어지는 고용주의 욕설을 듣고 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싸가지 없는 것들아. XX 이런 건방진 것들. 이런 멍청한 것들. 확 패버릴라. 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지!” “너네 시키는 대로 일 안 할 거야? 그럼 하루에 5만 원씩 쳐서 나한테 밀린 숙박비 다 내놔. 계산 정확히 하자.” 아무리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맺어졌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대우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고용주마다 막말의 결은 달랐지만, 이주 노동자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안산에서 만난 수라 씨와의 인터뷰 말미에 가족사진을 좀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촬영을 하는데, 사진 속 엄마 아빠 동생들 모습을 보던 수라 씨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함께 통역을 해주러 온 네팔인 동료가 병원 구석 침대 옆에서 숨죽여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차마 눈물 없이 보고 있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수라 씨의 눈물은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도 쉽사리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돈을 벌러 왔습니다. 가난도, 이주 노동도 죄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게,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자답게. 빈부격차와 인종을 뛰어넘어 최소한의 인권만은 존중되는 사회를 과연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묻고 또 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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