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죽어도 장례도 못 치르는 탈북 모자
입력 2019.08.18 (11:00) 수정 2019.08.18 (22:05) 취재K
죽어도 장례도 못 치르는 탈북 모자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아사(餓死)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한 모 씨와 6살 아들 김 군. 시신 발견 당시 고춧가루를 제외한 음식물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비극이었습니다. 모자의 비극은 삶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고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제는 장례를 못 치르고 있는 겁니다. 모자의 시신은 부검 뒤 서울의 한 병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탈북 여성이었던 한 씨는 지난해 10월 중국동포와 이혼한 뒤 혼자서 김 군을 키웠습니다. 연고자라면, 아들 김 군의 아빠인 중국동포일텐데, 현재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소식에 탈북민들이 나섰습니다. 과거 한 씨와 하나원 동기였던 A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옆에서 지켜주고 싶어서 가족을 대신해 장례 절차를 알아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저 벽에 부닥쳤습니다. 관할 주민센터에서 난색을 보였다고 합니다.

장사법상 가족·친척만 장례 가능…억장 무너진 탈북민들

이유가 뭘까요? 현행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가족과 친척 등 연고자가 아닌 사람이 고인의 장례를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탈북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입니다. 연고를 찾기 어렵거나 연고가 없을 수 있는 게 탈북민들의 처지이니, 가족이 아니더라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게 탈북민들 요구입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등 탈북단체는 14일부터 광화문역 인근에 탈북 모자의 임시 분향소를 차리고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는데요. 16일 분향소에서 만난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장례를 무사히 치를 때까지 분향소를 기한 없이 운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광화문역 4번 출구 인근에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탈북 모자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광화문역 4번 출구 인근에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탈북 모자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하태경 "친구·이웃은 장례 불가…장사법 개정할 것"

사망 뒤에도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국회도 나섰습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서 "아사한 탈북 모자의 연고자를 못찾아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관할 경찰청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며 "현행 장사법에 따라 고인과 가까웠던 친구나 이웃 등 지인은 장례를 맡고 싶어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 의원은 "친구나 이웃 등 같은 핏줄이 아니더라도 연고자 범위에 포함시켜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장례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장사법상 연고자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법이 악용될 우려를 고려해 구청에서 이를 심사하는 방식 등의 견제 장치를 담아 조만간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1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장례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1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장례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해마다 증가하는 무연고자…한 해 2,000명 이상

탈북 모자 외에도 무연고자 사망자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국내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3년 1,280명, 2014년 1,389명, 2015년 1,679명, 2016년 1,832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다 2017년 2,010명으로, 처음으로 2천 명을 돌파했습니다.

4년간 47%가 증가한 건데, 연령별로 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80%나 급증했습니다. 최도자 의원은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질병으로 보고 '외로움 담당 장관'까지 임명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고독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며 "늘어나고 있는 고독사에 대해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13~2017년 무연고 사망자 처리 현황[자료 제공: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2013~2017년 무연고 사망자 처리 현황[자료 제공: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

서울의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단체인 나눔과나눔은 지난해 기준 382명의 무연고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한 명의 무연고자 사망자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정부의 대책은 무연고 사망자 시신을 장례가 아닌 처리하는 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다"며 "광역자치단체 중에선 공영장례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를 제외하고는 정부 차원에선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꼬집었습니다.

16일 통일부는 탈북 모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 유관기관과 함께 실무협의회를 열고 재발 방지 대책 논의에 나섰습니다. 한 씨 모자의 비극은 탈북자 문제, 복지 사각지대, 무연고자 장례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드러냈습니다. 5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당시에도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을 쏟아냈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다를 수 있을까요?
  • 죽어도 장례도 못 치르는 탈북 모자
    • 입력 2019.08.18 (11:00)
    • 수정 2019.08.18 (22:05)
    취재K
죽어도 장례도 못 치르는 탈북 모자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아사(餓死)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한 모 씨와 6살 아들 김 군. 시신 발견 당시 고춧가루를 제외한 음식물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비극이었습니다. 모자의 비극은 삶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고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제는 장례를 못 치르고 있는 겁니다. 모자의 시신은 부검 뒤 서울의 한 병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탈북 여성이었던 한 씨는 지난해 10월 중국동포와 이혼한 뒤 혼자서 김 군을 키웠습니다. 연고자라면, 아들 김 군의 아빠인 중국동포일텐데, 현재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소식에 탈북민들이 나섰습니다. 과거 한 씨와 하나원 동기였던 A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옆에서 지켜주고 싶어서 가족을 대신해 장례 절차를 알아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저 벽에 부닥쳤습니다. 관할 주민센터에서 난색을 보였다고 합니다.

장사법상 가족·친척만 장례 가능…억장 무너진 탈북민들

이유가 뭘까요? 현행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가족과 친척 등 연고자가 아닌 사람이 고인의 장례를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탈북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입니다. 연고를 찾기 어렵거나 연고가 없을 수 있는 게 탈북민들의 처지이니, 가족이 아니더라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게 탈북민들 요구입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등 탈북단체는 14일부터 광화문역 인근에 탈북 모자의 임시 분향소를 차리고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는데요. 16일 분향소에서 만난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장례를 무사히 치를 때까지 분향소를 기한 없이 운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광화문역 4번 출구 인근에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탈북 모자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광화문역 4번 출구 인근에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탈북 모자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하태경 "친구·이웃은 장례 불가…장사법 개정할 것"

사망 뒤에도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국회도 나섰습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서 "아사한 탈북 모자의 연고자를 못찾아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관할 경찰청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며 "현행 장사법에 따라 고인과 가까웠던 친구나 이웃 등 지인은 장례를 맡고 싶어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 의원은 "친구나 이웃 등 같은 핏줄이 아니더라도 연고자 범위에 포함시켜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장례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장사법상 연고자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법이 악용될 우려를 고려해 구청에서 이를 심사하는 방식 등의 견제 장치를 담아 조만간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1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장례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1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장례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해마다 증가하는 무연고자…한 해 2,000명 이상

탈북 모자 외에도 무연고자 사망자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국내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3년 1,280명, 2014년 1,389명, 2015년 1,679명, 2016년 1,832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다 2017년 2,010명으로, 처음으로 2천 명을 돌파했습니다.

4년간 47%가 증가한 건데, 연령별로 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80%나 급증했습니다. 최도자 의원은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질병으로 보고 '외로움 담당 장관'까지 임명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고독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며 "늘어나고 있는 고독사에 대해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13~2017년 무연고 사망자 처리 현황[자료 제공: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2013~2017년 무연고 사망자 처리 현황[자료 제공: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

서울의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단체인 나눔과나눔은 지난해 기준 382명의 무연고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한 명의 무연고자 사망자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정부의 대책은 무연고 사망자 시신을 장례가 아닌 처리하는 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다"며 "광역자치단체 중에선 공영장례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를 제외하고는 정부 차원에선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꼬집었습니다.

16일 통일부는 탈북 모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 유관기관과 함께 실무협의회를 열고 재발 방지 대책 논의에 나섰습니다. 한 씨 모자의 비극은 탈북자 문제, 복지 사각지대, 무연고자 장례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드러냈습니다. 5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당시에도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을 쏟아냈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다를 수 있을까요?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

    KBS사이트에서 소셜계정으로 로그인한 이용자는 댓글 이용시 KBS회원으로 표시되고
    댓글창을 통해 소셜계정으로 로그인한 이용자는 소셜회원으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