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3조 원 버는 브라질 교통 단속 카메라…대통령도 분개

입력 2019.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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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브라질에서 차를 모는 운전자들이 교통 단속 카메라에 적발되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브라질 현지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외국인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남미 최대 도시 상파울루는 차량 정체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곳이지만, 도로에는 수많은 교통 단속 카메라가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대부분 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40~50km로 아주 드문 경우지만 도로가 한산할 때 60~70km로 운전했다가는 교통 단속 카메라에 과속으로 적발된다. 적발되면 한 달 안에 벌점과 함께 위반 속도에 따라 45,000원에서 10만 원 정도의 범칙금이 통보된다. 브라질에서 이 교통 단속 카메라가 속도위반으로 벌어들이는 세수가 한해 3조 원이 넘는다. 그야말로 세수를 벌어들이는 기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시민들에게는 큰 불만의 대상이다. 최근에는 브라질 대통령까지 이 단속 카메라의 과도한 설치에 화를 내며 일부 카메라의 운용 중단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브라질 속도 위반 범칙금 연간 추이(브라질 교통국)브라질 속도 위반 범칙금 연간 추이(브라질 교통국)

1년 3.3조 원 버는 과속 단속 카메라

브라질 상파울루시의 전 시장은 교통 단속 카메라 설치를 '범칙금 산업'이라고 지칭하며 과도한 설치와 단속, 그리고 교통 위반 벌점을 무마시키기 위한 교통국 공무원들과의 은밀한 거래를 꼬집기도 했다. 브라질 정부가 밝힌 2018년 교통 단속 카메라의 속도위반 적발 건수는 천 백만여 건, 이를 통해 거둬들인 범칙금이 3조 3천억 원에 이른다. 전년도보다 24% 증가한 금액이고, 4년 전보다는 배 증가한 액수다. 이는 100만 인구의 한국 성남시의 연간 예산과 맞먹는다. 상파울루시의 등록된 차량 대수가 770만 대로 수치로만 보면 차량 1대가 1년에 약 2차례 정도 적발되는 셈이다.

도로가에 설치된 브라질의 교통 단속 카메라도로가에 설치된 브라질의 교통 단속 카메라

단속 카메라 도로가에서 '찰칵'...차량 뒤를 단속

한국의 경우는 차량이 달리는 도로 전면에서 단속 카메라가 과속을 단속하지만, 브라질의 경우는 카메라 대부분이 도로가에 위치해 차량 전면을 촬영하지 않고 차량이 지나친 뒤 뒤쪽을 촬영해 운전자들이 카메라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과 관련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반드시 작동시킨 뒤, 차를 몰며 이 카메라 단속을 피하곤 한다.

여기에 CET(쎄에떼)라고 불리는 교통단속관리요원들도 주요 교차로에서 교통법규 위반 단속에 나선다. 이 경우는 사진 등의 증거물도 없이 차량 번호판과 위반 내용을 적어 교통 당국에 전달하면 벌점과 함께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 차량을 세워 법규 위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지나친 차량의 번호판을 적는 것이다. 운전자들이 억울한 경우, 절차에 따라 교통 당국에 항의하기도 하지만 운전자의 호소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통위반 법규만도 250여 가지로 운전자는 CET가 보이면 혹시나 법규를 위반할까 조마조마하면서 운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브라질 CET(쎄에떼) 교통단속관리요원 브라질 CET(쎄에떼) 교통단속관리요원

보통 6차례 위반에 면허 정지

범칙금이 운전자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지만, 벌점 또한 늘 신경 써야 하는 문제다. 21점을 넘기게 되면 운전면허가 수개월 정지되기 때문이다. 제한 시속을 얼마나 위반해 운전했는지에 따라 벌점이 다르지만, 최소 벌점이 4점으로 6차례만 위반해도 운전면허가 정지되는 것이다. 자칫 버스전용차로를 잘못 진입했다가 적발되면 벌점 7점, 보행자 건널목을 조금이라도 침범했다면 중대 법규 위반으로 역시 7점짜리 벌점이 통보된다. 버스 전용차로 위반 단속 카메라는 상파울루시의 경우 함정처럼 숨어 있는 경우가 있어 외지 또는 외국인 운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대통령 가족 5년간 벌점 129점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과속 단속 카메라의 과도한 설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건 지난 3월이었다. 브라질 인프라 부가 고속도로에 8,000대의 단속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하려 하자 반대했고, 결국 1,400대의 카메라 설치만 승인됐다. 브라질 유력 언론사인 '폴랴'는 지난 4월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세 아들 등 가족 5명의 최근 5년간의 교통법규 위반 벌점을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5명의 벌점은 모두 129점, 부과된 범칙금 건수는 44건으로 당시 환율로 치면 2백만 원 정도였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의원 시절 버스전용차로를 위반하는 등 교통법규를 위반해 단속 카메라에 적발됐고, 미셸리 영부인은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벌점 7점을 통보받았다. 셋째 아들 에두아르도 하원 의원은 상파울루주 외곽 200km의 해변 도로를 여행해보니 단속 카메라가 79개나 설치돼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교통 단속 카메라 설치가 과도하다며 추가 설치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범칙금으로 거둬들인 세수가 도로 보수에 쓰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크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손된 도로브라질 상파울루의 파손된 도로

"도로 보수는 외면, 곳곳 웅덩이"

실제, 상파울루 시내와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도로 곳곳에서 큰 웅덩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피하려고 차선을 넘는 경우도 많아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큰 실정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보수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웅덩이만을 메우는 식의 임시 처방만 할 뿐이다. 최근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8,000대의 교통 단속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예산이라면 도로 300km를 새로 깔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도로 실정을 반영한 것이다. 범칙금만 걷는 데 혈안이 된 안이한 교통 행정을 질책한 것이다.

"고속도로 이동식 단속 카메라 폐지"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급기야 지난 14일 연방정부가 담당하는 고속도로에서 경찰의 이동식 과속 단속 카메라 운용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또, 운전면허가 정지되는 벌점 기준을 20점에서 40점으로 두 배 상향시켰다. 대통령의 속내는 이동식뿐 아니라 고정식 카메라 운용도 축소하는 것이었겠지만 증가하는 교통사고를 고려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 해마다 3만 7천여 명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이는 차량 속도와 연관돼 있다는 교통사고 분석 전문가들의 우려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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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0 07:00:09
    특파원 리포트
남미 브라질에서 차를 모는 운전자들이 교통 단속 카메라에 적발되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브라질 현지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외국인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남미 최대 도시 상파울루는 차량 정체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곳이지만, 도로에는 수많은 교통 단속 카메라가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대부분 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40~50km로 아주 드문 경우지만 도로가 한산할 때 60~70km로 운전했다가는 교통 단속 카메라에 과속으로 적발된다. 적발되면 한 달 안에 벌점과 함께 위반 속도에 따라 45,000원에서 10만 원 정도의 범칙금이 통보된다. 브라질에서 이 교통 단속 카메라가 속도위반으로 벌어들이는 세수가 한해 3조 원이 넘는다. 그야말로 세수를 벌어들이는 기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시민들에게는 큰 불만의 대상이다. 최근에는 브라질 대통령까지 이 단속 카메라의 과도한 설치에 화를 내며 일부 카메라의 운용 중단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브라질 속도 위반 범칙금 연간 추이(브라질 교통국)
1년 3.3조 원 버는 과속 단속 카메라

브라질 상파울루시의 전 시장은 교통 단속 카메라 설치를 '범칙금 산업'이라고 지칭하며 과도한 설치와 단속, 그리고 교통 위반 벌점을 무마시키기 위한 교통국 공무원들과의 은밀한 거래를 꼬집기도 했다. 브라질 정부가 밝힌 2018년 교통 단속 카메라의 속도위반 적발 건수는 천 백만여 건, 이를 통해 거둬들인 범칙금이 3조 3천억 원에 이른다. 전년도보다 24% 증가한 금액이고, 4년 전보다는 배 증가한 액수다. 이는 100만 인구의 한국 성남시의 연간 예산과 맞먹는다. 상파울루시의 등록된 차량 대수가 770만 대로 수치로만 보면 차량 1대가 1년에 약 2차례 정도 적발되는 셈이다.

도로가에 설치된 브라질의 교통 단속 카메라
단속 카메라 도로가에서 '찰칵'...차량 뒤를 단속

한국의 경우는 차량이 달리는 도로 전면에서 단속 카메라가 과속을 단속하지만, 브라질의 경우는 카메라 대부분이 도로가에 위치해 차량 전면을 촬영하지 않고 차량이 지나친 뒤 뒤쪽을 촬영해 운전자들이 카메라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과 관련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반드시 작동시킨 뒤, 차를 몰며 이 카메라 단속을 피하곤 한다.

여기에 CET(쎄에떼)라고 불리는 교통단속관리요원들도 주요 교차로에서 교통법규 위반 단속에 나선다. 이 경우는 사진 등의 증거물도 없이 차량 번호판과 위반 내용을 적어 교통 당국에 전달하면 벌점과 함께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 차량을 세워 법규 위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지나친 차량의 번호판을 적는 것이다. 운전자들이 억울한 경우, 절차에 따라 교통 당국에 항의하기도 하지만 운전자의 호소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통위반 법규만도 250여 가지로 운전자는 CET가 보이면 혹시나 법규를 위반할까 조마조마하면서 운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브라질 CET(쎄에떼) 교통단속관리요원
보통 6차례 위반에 면허 정지

범칙금이 운전자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지만, 벌점 또한 늘 신경 써야 하는 문제다. 21점을 넘기게 되면 운전면허가 수개월 정지되기 때문이다. 제한 시속을 얼마나 위반해 운전했는지에 따라 벌점이 다르지만, 최소 벌점이 4점으로 6차례만 위반해도 운전면허가 정지되는 것이다. 자칫 버스전용차로를 잘못 진입했다가 적발되면 벌점 7점, 보행자 건널목을 조금이라도 침범했다면 중대 법규 위반으로 역시 7점짜리 벌점이 통보된다. 버스 전용차로 위반 단속 카메라는 상파울루시의 경우 함정처럼 숨어 있는 경우가 있어 외지 또는 외국인 운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대통령 가족 5년간 벌점 129점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과속 단속 카메라의 과도한 설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건 지난 3월이었다. 브라질 인프라 부가 고속도로에 8,000대의 단속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하려 하자 반대했고, 결국 1,400대의 카메라 설치만 승인됐다. 브라질 유력 언론사인 '폴랴'는 지난 4월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세 아들 등 가족 5명의 최근 5년간의 교통법규 위반 벌점을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5명의 벌점은 모두 129점, 부과된 범칙금 건수는 44건으로 당시 환율로 치면 2백만 원 정도였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의원 시절 버스전용차로를 위반하는 등 교통법규를 위반해 단속 카메라에 적발됐고, 미셸리 영부인은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벌점 7점을 통보받았다. 셋째 아들 에두아르도 하원 의원은 상파울루주 외곽 200km의 해변 도로를 여행해보니 단속 카메라가 79개나 설치돼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교통 단속 카메라 설치가 과도하다며 추가 설치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범칙금으로 거둬들인 세수가 도로 보수에 쓰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크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손된 도로
"도로 보수는 외면, 곳곳 웅덩이"

실제, 상파울루 시내와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도로 곳곳에서 큰 웅덩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피하려고 차선을 넘는 경우도 많아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큰 실정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보수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웅덩이만을 메우는 식의 임시 처방만 할 뿐이다. 최근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8,000대의 교통 단속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예산이라면 도로 300km를 새로 깔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도로 실정을 반영한 것이다. 범칙금만 걷는 데 혈안이 된 안이한 교통 행정을 질책한 것이다.

"고속도로 이동식 단속 카메라 폐지"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급기야 지난 14일 연방정부가 담당하는 고속도로에서 경찰의 이동식 과속 단속 카메라 운용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또, 운전면허가 정지되는 벌점 기준을 20점에서 40점으로 두 배 상향시켰다. 대통령의 속내는 이동식뿐 아니라 고정식 카메라 운용도 축소하는 것이었겠지만 증가하는 교통사고를 고려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 해마다 3만 7천여 명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이는 차량 속도와 연관돼 있다는 교통사고 분석 전문가들의 우려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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