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미성년자 성착취’ 억만장자의 미스터리한 죽음 그리고 ‘권력의 그림자’

입력 2019.08.2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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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발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제프리 엡스타인이 수용된 감옥에서 숨진 지 열흘 넘게 지났다. 전 세계 많은 매체가 '자살'로 전하고 있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정황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죽기 3주 전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도 숨진 시간대에 카메라 촬영을 포함한 교도소 측의 감시 행위가 전혀 없었다. 부검 결과, 목이 졸려 타살된 사람한테서 흔히 나타나는 골절 흔적들이 발견됐다. 시신을 부검한 검시관도 사망 원인을 '미결'로 남겨뒀지만, 연방 교정국은 서둘러 자살로 결론 내렸다. 엡스타인은 좁고 지저분한 감방에 있기 싫다며 매일 변호인단을 불러 길게는 12시간씩 면회실에서 음료와 스낵을 먹으며 죽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랬던 그가 난데없이 사망 이틀 전 7천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신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뉴스도 미심쩍다. 신탁 수혜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엡스타인의 말 한마디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거물들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그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엡스타인 사건에서 거론되는 인물 상당수는 반 트럼프 진영 인사이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런 만큼 러시아 스캔들이 조작극이라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트럼프 진영은 엡스타인 사건을 반대 진영을 때릴 회심의 카드로 여겨왔다.

억만장자라는 타이틀과 맞지 않게 엡스타인이 정·재계 거물들과 어린 소녀들 간 성매매를 알선하는 연결책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엡스타인 사건의 핵심이다. '엡스타인 성 스캔들'의 진실은 과연 밝혀질 수 있을까.

■ 법원 서류 공개 하루 뒤 '의문의 사망' ... 트럼프, 빌 클린턴 겨냥 리트윗

현지시각 10일 오전 7시쯤, 엡스타인이 수용된 감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죄수복을 비롯한 모든 물건이 자살 방지를 위해 종이로 만들어졌고, 엡스타인은 침대 시트로 목을 맨 상태였다고 한다.

사망 3주 전에도 자해를 하려 해 주의할 인물이었음에도 사망 당시 교도소 측은 그에 대한 특별 감시를 해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0분마다 그를 감시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인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은 엡스타인의 사망 소식을 보고받고 경악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들에게 "교도소 내에서 깊이 우려되는 심각한 '이상'이 있었음을 인지하게 됐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밑바닥부터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이 사망한 뉴욕 맨해튼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교도소 전경제프리 엡스타인이 사망한 뉴욕 맨해튼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교도소 전경

엡스타인이 죽기 하루 전, 그의 소송에 대한 법원 서류가 공개된 점도 의문을 더해주고 있다. 2천 페이지 분량의 서류에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와 성매매에 연루된 거물급 인사들의 명단, 엡스타인 전용기의 탑승객 명단까지 상세히 기록돼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엡스타인이 1년 전 인터뷰에서 '유명한 권력층 인사들의 성적 기벽이나 마약 복용 전력을 많이 알고 있다. 사진도 다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자신과 연결된 세력에게 '나를 건드리지 말라' 내지는 '나를 적극 비호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테런스 윌리엄스의 트윗 글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테런스 윌리엄스의 트윗 글

SNS상에 '누군가 엡스타인의 입을 막기 위해 자살극을 벌였다'는 식의 의혹이 퍼진 가운데 엡스타인이 사망한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글이 '타살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리트윗된 글은 친 트럼프 성향 코미디언 테런스 윌리엄스가 쓴 것으로 그는 자신의 트윗에 "24시간 7일 내내 자살 감시를 받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오! 그래? 제프리 엡스타인은 빌 클린턴과 관련된 정보를 갖고 있었고 이제 그는 죽었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엡스타인이 자살로 위장돼 살해됐을 수 있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 배후임을 암시하는 글을 리트윗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틀 뒤인 현지시각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사망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를 원한다"며 "그것이 내가 전적으로 요구하는 바이며, 법무장관이 하고 있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 "빌 클린턴, 엡스타인 전용기 최소 26번 탑승" ... '절친' 인증 흔적들

미국의 주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혹 제기를 '음모론'으로 일축한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0년대 초 재임 기간 이후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타고 최소 26차례 여행을 떠났으며 일부 여행에서 비밀 경호국의 세부 사항을 폐기한 사실이 2016년 폭스 뉴스가 입수한 법정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클린턴 측은 과거 성명을 통해 2002년과 2003년, 제프리 엡스타인의 비행기를 이용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을 4차례 다녀왔다고 해명한 바 있다. 나머지 22차례 기록의 목적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트럼프 진영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26차례 여행 중 대부분 목적지가 엡스타인이 소유한 카리브 해 섬이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엡스타인의 맨해튼 저택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그림 (출처: 뉴욕포스트) 엡스타인의 맨해튼 저택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그림 (출처: 뉴욕포스트)

최근, 엡스타인의 맨해튼 저택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의 차림을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입고 구두까지 신은 그림이 발견됐다. 엡스타인 저택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자필 서명과 또, 그와 엡스타인이 함께 찍은 사진도 발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내용에 대해 클린턴 측이 "터무니없다"고 반발했지만, 엡스타인 저택에 있는 클린턴의 흔적은 그와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둘러싼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엡스타인이 최근 체포된 것은 그가 십수 년 전 저지른 일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5년 사이 미성년자 20여 명을 상대로 성매매한 혐의 등을 받았다. 이런 의혹이 처음 불거진 건 사건이 발생한 직후이며, 엡스타인은 이미 2008년에 기소돼 18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는 13개월 만에 풀려났다. 미국 사회가 절대 용납하지 않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였음에도 형량 자체가 매우 낮았으며, 뉴욕주 검찰이 나서 엡스타인의 성범죄자 등급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사실도 드러났다.

■ 쏟아지는 '거물'의 이름 ... 피해여성 "성매수 남성들은 소아성애자"

10년 전에는 재력과 로비력으로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피해갔지만, 엡스타인과 그와 친분이 있었던 인사들을 둘러싼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엡스타인의 성 노예였다고 주장해온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라는 여성이 있다. 주프레는 2016년부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10대 시절 엡스타인의 강요로 정치·경제, 학계 등의 거물급 인사들과 성관계를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제 30대가 된 주프레는 자신이 상대했던 남성들이 모두 '소아성애자'였다고 주장한다.

주프레는 해당 남성들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그녀의 리스트에는 영국의 앤드루 왕자와 민주당 소속 뉴멕시코주 주지사였던 빌 리처드슨과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 자산 매니저인 글랜 더빈, 모델업계 이사인 장 루크 브루넬, 앨런 더쇼비츠 전 하버드 법대 교수와 MIT 교수를 지낸 인공지능 전문가 마빈 민스키 등이 포함됐다. 더쇼비츠 전 교수는 2008년 엡스타인이 처음 기소됐을 때 변호를 맡아 특혜성 형량을 받아낸 인물이다.

‘데일리매일’ 기사(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7346077/Prince-Andrew-joined-fellow-royals-church-Balmoral-day-Jeffrey-Epsteins-suicide.html)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가 17살이던 2001년 앤드루 왕자와 촬영한 사진. 오른쪽 뒤에 서 있는 여성은 기슬레인 맥스웰이다 (출처: 영국 데일리매일)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가 17살이던 2001년 앤드루 왕자와 촬영한 사진. 오른쪽 뒤에 서 있는 여성은 기슬레인 맥스웰이다 (출처: 영국 데일리매일)

주프레는 "1999년과 2002년 사이 뉴욕과 런던에서 앤드루 왕자와 세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다는 진술과 함께 당시 화대(만 5천 파운드)까지 구체적으로 밝혀,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엡스타인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우디 앨런 영화감독까지 전 세계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해왔다.

■ FBI, '성매매 온상' 의혹 카리브해 섬 압수수색 ... "'조직책' 맥스웰을 잡아라"

엡스타인의 삶은 마감됐지만, 수사는 확대되고 있다. 미국 연방 검찰은 엡스타인 타살 의혹뿐 아니라 그의 위법 행위에 대한 수사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사의 초점은 그의 범죄 행위를 도운 공모자들에 맞춰질 것"이라고 했다.

엡스타인 소유의 카리브 해 섬 전경 (출처 : 인사이드 에디션) 엡스타인 소유의 카리브 해 섬 전경 (출처 : 인사이드 에디션)

섬 내 비밀공간으로 알려진 건물 (출처 : 인사이드 에디션)섬 내 비밀공간으로 알려진 건물 (출처 : 인사이드 에디션)

수사 당국이 '공모자'를 강조한 점으로 미뤄 엡스타인과 미성년자 성매매를 함께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력 인사들까지 법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수사 당국 관계자들이 엡스타인이 소유한 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연방수사국 FBI 요원들이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별장 내부까지 샅샅이 살폈다. 현지시각 12일, 연방 검찰이 수사 의지를 강하게 천명한 다음 날 압수수색을 집행한 것이다. 카리브 해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이 섬은 엡스타인이 주선한 성매매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비행기를 타고 함께 갔다는 의심을 받는 그 섬이다.

‘인사이드 에디션’ 보도(https://www.youtube.com/watch?v=GHTAeUIlnRM)

지난 수년 동안 엡스타인을 둘러싼 의혹을 집요하게 추적해 폭로해온 건 '1인 미디어' 대안매체나 소규모 언론사들이었다. 1인 미디어는 대부분 트럼프 지지자들이다. 피해 여성 수십 명을 취재한 대형 탐사 보도를 통해 지난달 엡스타인을 법정에 세운 것도 '마이애미 헤럴드'라는 지역 일간지였다. 트럼프 진영은 엡스타인이 궁지에 몰릴 상황에 대비해 섬을 찾은 유력인사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해놨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다. 압수수색을 통해 '빼박' 증거가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방 검찰은 버진 아일랜드가 조세회피처인 만큼 엡스타인과 주변 인물을 둘러싼 거액의 자금 흐름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뉴스가 엡스타인 섬 압수수색 소식을 전하고 있다폭스뉴스가 엡스타인 섬 압수수색 소식을 전하고 있다

유력 인사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데 있어 엡스타인의 '윗선'이 있었는지도 수사 당국이 밝혀낼지 관심이다. 이런 가운데 사건의 '키(Key)'로 부상한 인물이 있다. '마사지사를 구한다'는 광고 등을 통해 어린 소녀들을 모집한 뒤 엡스타인에게 소개하고 화대를 받아 소녀들에게 지급한 일종의 '포주'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기슬레인 맥스웰'이다. 한때 엡스타인의 연인이었던 맥스웰은 영국의 미디어 재벌 로버트 맥스웰의 막내딸이다. 그녀는 1991년 아버지 사망 후 미국으로 건너와 엡스타인을 만났다. 맥스웰은 자신의 영국 왕실과의 친분 등을 기반으로, 서민가정에서 태어난 대학 중퇴자인 엡스타인을 최상류층과 연결해준 핵심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엡스타인 사건 외면하던 주류 언론, '트럼프도 절친' 부각 ... 대선 이슈 될까

변변한 기반이 없던 엡스타인이 어떻게 억만장자가 됐는지는 월가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있다. 그 때문에 항간에는 그가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으로 부자가 됐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검찰 수사의 표적은 맥스웰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최근까지 엡스타인의 인맥관리와 조직책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진 그녀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다.

엡스타인과 맥스웰 (출처: 폭스뉴스)엡스타인과 맥스웰 (출처: 폭스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이 1997년 팜비치에서 함께 찍은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이 1997년 팜비치에서 함께 찍은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맥스웰이 관리했던 인맥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엡스타인을 알고 지냈으며, 1992년에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엡스타인과 단둘이 여성 28명을 초대해 파티를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이 어린 소녀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다시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고 수차례 해명했다. 하지만 주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엡스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눈에 띌 정도로 반복해 내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진영은 엡스타인 사건에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됐다면 트럼프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는 주류 언론이 왜 그동안 엡스타인 사건을 철저히 외면했냐고 따지며 의도적인 물타기라고 반발한다. 실제 미국의 주류언론은 엡스타인이 지난달 체포되기 전까지 이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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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윌리엄 바 장관을 중심으로 오바마 정부 말기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됐고 지난 대선 때 트럼프 캠프에 대한 도청이 이뤄진 배경과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수사하고 있다. 또, 2016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서버를 해킹해 위키리크스에 넘긴 주체가 러시아의 해커였다는 결론을 당시 FBI가 왜 자체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내렸는지도 조사 중이다. 트럼프 진영은 당시 위키리크스에 정보를 넘긴 사람은 민주당 전국위 직원인 세스리치였고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세스 리치가 거리에서 총을 맞아 숨진 사건 뒤에도 클린턴 부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대선 시간표에 맞춰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반격을 준비 중인 트럼프 진영. 그리고 빌 클린턴은 물론 트럼프의 과거 사생활까지 알고 있는 억만장자의 의문의 죽음. 이와 관련해 벌어질 일들은 앞으로 미국 대선 가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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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3주 전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도 숨진 시간대에 카메라 촬영을 포함한 교도소 측의 감시 행위가 전혀 없었다. 부검 결과, 목이 졸려 타살된 사람한테서 흔히 나타나는 골절 흔적들이 발견됐다. 시신을 부검한 검시관도 사망 원인을 '미결'로 남겨뒀지만, 연방 교정국은 서둘러 자살로 결론 내렸다. 엡스타인은 좁고 지저분한 감방에 있기 싫다며 매일 변호인단을 불러 길게는 12시간씩 면회실에서 음료와 스낵을 먹으며 죽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랬던 그가 난데없이 사망 이틀 전 7천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신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뉴스도 미심쩍다. 신탁 수혜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엡스타인의 말 한마디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거물들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그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엡스타인 사건에서 거론되는 인물 상당수는 반 트럼프 진영 인사이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런 만큼 러시아 스캔들이 조작극이라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트럼프 진영은 엡스타인 사건을 반대 진영을 때릴 회심의 카드로 여겨왔다.

억만장자라는 타이틀과 맞지 않게 엡스타인이 정·재계 거물들과 어린 소녀들 간 성매매를 알선하는 연결책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엡스타인 사건의 핵심이다. '엡스타인 성 스캔들'의 진실은 과연 밝혀질 수 있을까.

■ 법원 서류 공개 하루 뒤 '의문의 사망' ... 트럼프, 빌 클린턴 겨냥 리트윗

현지시각 10일 오전 7시쯤, 엡스타인이 수용된 감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죄수복을 비롯한 모든 물건이 자살 방지를 위해 종이로 만들어졌고, 엡스타인은 침대 시트로 목을 맨 상태였다고 한다.

사망 3주 전에도 자해를 하려 해 주의할 인물이었음에도 사망 당시 교도소 측은 그에 대한 특별 감시를 해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0분마다 그를 감시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인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은 엡스타인의 사망 소식을 보고받고 경악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들에게 "교도소 내에서 깊이 우려되는 심각한 '이상'이 있었음을 인지하게 됐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밑바닥부터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이 사망한 뉴욕 맨해튼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교도소 전경
엡스타인이 죽기 하루 전, 그의 소송에 대한 법원 서류가 공개된 점도 의문을 더해주고 있다. 2천 페이지 분량의 서류에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와 성매매에 연루된 거물급 인사들의 명단, 엡스타인 전용기의 탑승객 명단까지 상세히 기록돼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엡스타인이 1년 전 인터뷰에서 '유명한 권력층 인사들의 성적 기벽이나 마약 복용 전력을 많이 알고 있다. 사진도 다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자신과 연결된 세력에게 '나를 건드리지 말라' 내지는 '나를 적극 비호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테런스 윌리엄스의 트윗 글
SNS상에 '누군가 엡스타인의 입을 막기 위해 자살극을 벌였다'는 식의 의혹이 퍼진 가운데 엡스타인이 사망한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글이 '타살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리트윗된 글은 친 트럼프 성향 코미디언 테런스 윌리엄스가 쓴 것으로 그는 자신의 트윗에 "24시간 7일 내내 자살 감시를 받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오! 그래? 제프리 엡스타인은 빌 클린턴과 관련된 정보를 갖고 있었고 이제 그는 죽었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엡스타인이 자살로 위장돼 살해됐을 수 있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 배후임을 암시하는 글을 리트윗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틀 뒤인 현지시각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사망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를 원한다"며 "그것이 내가 전적으로 요구하는 바이며, 법무장관이 하고 있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 "빌 클린턴, 엡스타인 전용기 최소 26번 탑승" ... '절친' 인증 흔적들

미국의 주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혹 제기를 '음모론'으로 일축한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0년대 초 재임 기간 이후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타고 최소 26차례 여행을 떠났으며 일부 여행에서 비밀 경호국의 세부 사항을 폐기한 사실이 2016년 폭스 뉴스가 입수한 법정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클린턴 측은 과거 성명을 통해 2002년과 2003년, 제프리 엡스타인의 비행기를 이용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을 4차례 다녀왔다고 해명한 바 있다. 나머지 22차례 기록의 목적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트럼프 진영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26차례 여행 중 대부분 목적지가 엡스타인이 소유한 카리브 해 섬이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엡스타인의 맨해튼 저택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그림 (출처: 뉴욕포스트)
최근, 엡스타인의 맨해튼 저택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의 차림을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입고 구두까지 신은 그림이 발견됐다. 엡스타인 저택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자필 서명과 또, 그와 엡스타인이 함께 찍은 사진도 발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내용에 대해 클린턴 측이 "터무니없다"고 반발했지만, 엡스타인 저택에 있는 클린턴의 흔적은 그와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둘러싼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엡스타인이 최근 체포된 것은 그가 십수 년 전 저지른 일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5년 사이 미성년자 20여 명을 상대로 성매매한 혐의 등을 받았다. 이런 의혹이 처음 불거진 건 사건이 발생한 직후이며, 엡스타인은 이미 2008년에 기소돼 18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는 13개월 만에 풀려났다. 미국 사회가 절대 용납하지 않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였음에도 형량 자체가 매우 낮았으며, 뉴욕주 검찰이 나서 엡스타인의 성범죄자 등급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사실도 드러났다.

■ 쏟아지는 '거물'의 이름 ... 피해여성 "성매수 남성들은 소아성애자"

10년 전에는 재력과 로비력으로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피해갔지만, 엡스타인과 그와 친분이 있었던 인사들을 둘러싼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엡스타인의 성 노예였다고 주장해온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라는 여성이 있다. 주프레는 2016년부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10대 시절 엡스타인의 강요로 정치·경제, 학계 등의 거물급 인사들과 성관계를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제 30대가 된 주프레는 자신이 상대했던 남성들이 모두 '소아성애자'였다고 주장한다.

주프레는 해당 남성들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그녀의 리스트에는 영국의 앤드루 왕자와 민주당 소속 뉴멕시코주 주지사였던 빌 리처드슨과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 자산 매니저인 글랜 더빈, 모델업계 이사인 장 루크 브루넬, 앨런 더쇼비츠 전 하버드 법대 교수와 MIT 교수를 지낸 인공지능 전문가 마빈 민스키 등이 포함됐다. 더쇼비츠 전 교수는 2008년 엡스타인이 처음 기소됐을 때 변호를 맡아 특혜성 형량을 받아낸 인물이다.

‘데일리매일’ 기사(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7346077/Prince-Andrew-joined-fellow-royals-church-Balmoral-day-Jeffrey-Epsteins-suicide.html)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가 17살이던 2001년 앤드루 왕자와 촬영한 사진. 오른쪽 뒤에 서 있는 여성은 기슬레인 맥스웰이다 (출처: 영국 데일리매일)
주프레는 "1999년과 2002년 사이 뉴욕과 런던에서 앤드루 왕자와 세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다는 진술과 함께 당시 화대(만 5천 파운드)까지 구체적으로 밝혀,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엡스타인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우디 앨런 영화감독까지 전 세계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해왔다.

■ FBI, '성매매 온상' 의혹 카리브해 섬 압수수색 ... "'조직책' 맥스웰을 잡아라"

엡스타인의 삶은 마감됐지만, 수사는 확대되고 있다. 미국 연방 검찰은 엡스타인 타살 의혹뿐 아니라 그의 위법 행위에 대한 수사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사의 초점은 그의 범죄 행위를 도운 공모자들에 맞춰질 것"이라고 했다.

엡스타인 소유의 카리브 해 섬 전경 (출처 : 인사이드 에디션)
섬 내 비밀공간으로 알려진 건물 (출처 : 인사이드 에디션)
수사 당국이 '공모자'를 강조한 점으로 미뤄 엡스타인과 미성년자 성매매를 함께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력 인사들까지 법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수사 당국 관계자들이 엡스타인이 소유한 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연방수사국 FBI 요원들이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별장 내부까지 샅샅이 살폈다. 현지시각 12일, 연방 검찰이 수사 의지를 강하게 천명한 다음 날 압수수색을 집행한 것이다. 카리브 해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이 섬은 엡스타인이 주선한 성매매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비행기를 타고 함께 갔다는 의심을 받는 그 섬이다.

‘인사이드 에디션’ 보도(https://www.youtube.com/watch?v=GHTAeUIlnRM)

지난 수년 동안 엡스타인을 둘러싼 의혹을 집요하게 추적해 폭로해온 건 '1인 미디어' 대안매체나 소규모 언론사들이었다. 1인 미디어는 대부분 트럼프 지지자들이다. 피해 여성 수십 명을 취재한 대형 탐사 보도를 통해 지난달 엡스타인을 법정에 세운 것도 '마이애미 헤럴드'라는 지역 일간지였다. 트럼프 진영은 엡스타인이 궁지에 몰릴 상황에 대비해 섬을 찾은 유력인사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해놨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다. 압수수색을 통해 '빼박' 증거가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방 검찰은 버진 아일랜드가 조세회피처인 만큼 엡스타인과 주변 인물을 둘러싼 거액의 자금 흐름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뉴스가 엡스타인 섬 압수수색 소식을 전하고 있다
유력 인사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데 있어 엡스타인의 '윗선'이 있었는지도 수사 당국이 밝혀낼지 관심이다. 이런 가운데 사건의 '키(Key)'로 부상한 인물이 있다. '마사지사를 구한다'는 광고 등을 통해 어린 소녀들을 모집한 뒤 엡스타인에게 소개하고 화대를 받아 소녀들에게 지급한 일종의 '포주'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기슬레인 맥스웰'이다. 한때 엡스타인의 연인이었던 맥스웰은 영국의 미디어 재벌 로버트 맥스웰의 막내딸이다. 그녀는 1991년 아버지 사망 후 미국으로 건너와 엡스타인을 만났다. 맥스웰은 자신의 영국 왕실과의 친분 등을 기반으로, 서민가정에서 태어난 대학 중퇴자인 엡스타인을 최상류층과 연결해준 핵심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엡스타인 사건 외면하던 주류 언론, '트럼프도 절친' 부각 ... 대선 이슈 될까

변변한 기반이 없던 엡스타인이 어떻게 억만장자가 됐는지는 월가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있다. 그 때문에 항간에는 그가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으로 부자가 됐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검찰 수사의 표적은 맥스웰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최근까지 엡스타인의 인맥관리와 조직책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진 그녀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다.

엡스타인과 맥스웰 (출처: 폭스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이 1997년 팜비치에서 함께 찍은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맥스웰이 관리했던 인맥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엡스타인을 알고 지냈으며, 1992년에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엡스타인과 단둘이 여성 28명을 초대해 파티를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이 어린 소녀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다시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고 수차례 해명했다. 하지만 주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엡스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눈에 띌 정도로 반복해 내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진영은 엡스타인 사건에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됐다면 트럼프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는 주류 언론이 왜 그동안 엡스타인 사건을 철저히 외면했냐고 따지며 의도적인 물타기라고 반발한다. 실제 미국의 주류언론은 엡스타인이 지난달 체포되기 전까지 이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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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윌리엄 바 장관을 중심으로 오바마 정부 말기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됐고 지난 대선 때 트럼프 캠프에 대한 도청이 이뤄진 배경과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수사하고 있다. 또, 2016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서버를 해킹해 위키리크스에 넘긴 주체가 러시아의 해커였다는 결론을 당시 FBI가 왜 자체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내렸는지도 조사 중이다. 트럼프 진영은 당시 위키리크스에 정보를 넘긴 사람은 민주당 전국위 직원인 세스리치였고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세스 리치가 거리에서 총을 맞아 숨진 사건 뒤에도 클린턴 부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대선 시간표에 맞춰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반격을 준비 중인 트럼프 진영. 그리고 빌 클린턴은 물론 트럼프의 과거 사생활까지 알고 있는 억만장자의 의문의 죽음. 이와 관련해 벌어질 일들은 앞으로 미국 대선 가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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