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동락 ‘가출팸’ 형들, 악마로 돌변한 이유는?

입력 2019.08.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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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오전 8시가 좀 안 된 시각.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벌초를 하다가 뼈를 발견했다는 신고였습니다.

경찰은 사건 현장인 경기도 오산시의 한 야산으로 출동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야산의 흙을 퍼내자 백골 시신 1구가 드러났습니다.

뼈만 남은 시신은 누구일까. 형체가 유지됐다면 지문이라도 있을 텐데, 신원을 확인할 단서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15~17세로 추정되는, 충치가 많은 사람이라는 소견을 내놨습니다.

경찰은 40여 명으로 전담팀을 꾸렸습니다. 10대 청소년 가운데 가출을 했거나 학교에 장기 결석한 사람들,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추적했습니다.


단서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습니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반지와 귀걸이에서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이 반지와 귀걸이를 낀 사진이 올라와 있는 SNS 계정을 찾은 겁니다. 이 계정 주인의 가족을 찾아 DNA 검사를 해보니 백골 시신과 일치했습니다.

피해자는 18살 A 군. 가출 전력이 있고, 2017년 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한 소년이었습니다.

경찰은 본격적으로 A 군의 행적을 수소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 군이 이른바 '가출팸' 생활을 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가출팸은 가출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는 무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가출팸은 특이하게도 22살 청년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이던 경찰은 이들이 사용한 차량 트렁크에서 A 군의 DNA를 확보했습니다. 삽과 장갑 등 범행 도구를 산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쫓았습니다. 2명은 또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이었고, 나머지 1명은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가출 청소년들을 단순히 돌봐주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가출 청소년들을 모아 대포 통장을 모집하는 일에 활용했습니다. 이를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겨 돈을 벌었습니다.

이 범행에 관여한 A 군은 가출 청소년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지난해 9월 경찰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A 군은 함께 생활한 형들이 시킨 일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범인들은 A 군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 군이 없어지면 자신들이 처벌을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때 동고동락했던 가출팸 형들은 이렇게 악마가 됐습니다.

A 군은 형들이 자신을 해칠까 봐 도망 다녔습니다. 범인들은 지난해 9월, 자신들도 알고 A 군도 알던 10대 가출 소녀 등에게 A 군을 유인하라고 시켰습니다.

문신을 시켜주겠다는 연락에 오산의 한 공장으로 나온 A 군은 현장에서 살해됐습니다. 범인들은 A 군을 공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야산으로 끌고 가서 암매장했습니다.

경찰은 살해에 직접 가담한 3명을 체포했고, 피해자를 유인한 2명은 입건했습니다.

가출 청소년은 연간 27만 명 정도 된다는 게 정부 추산입니다. 정부는 가출 청소년 쉼터 등을 확대하는 등 가출 청소년을 돕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렇게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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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고동락 ‘가출팸’ 형들, 악마로 돌변한 이유는?
    • 입력 2019-08-22 15:49:02
    취재K
지난 6월 6일 오전 8시가 좀 안 된 시각.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벌초를 하다가 뼈를 발견했다는 신고였습니다.

경찰은 사건 현장인 경기도 오산시의 한 야산으로 출동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야산의 흙을 퍼내자 백골 시신 1구가 드러났습니다.

뼈만 남은 시신은 누구일까. 형체가 유지됐다면 지문이라도 있을 텐데, 신원을 확인할 단서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15~17세로 추정되는, 충치가 많은 사람이라는 소견을 내놨습니다.

경찰은 40여 명으로 전담팀을 꾸렸습니다. 10대 청소년 가운데 가출을 했거나 학교에 장기 결석한 사람들,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추적했습니다.


단서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습니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반지와 귀걸이에서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이 반지와 귀걸이를 낀 사진이 올라와 있는 SNS 계정을 찾은 겁니다. 이 계정 주인의 가족을 찾아 DNA 검사를 해보니 백골 시신과 일치했습니다.

피해자는 18살 A 군. 가출 전력이 있고, 2017년 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한 소년이었습니다.

경찰은 본격적으로 A 군의 행적을 수소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 군이 이른바 '가출팸' 생활을 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가출팸은 가출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는 무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가출팸은 특이하게도 22살 청년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이던 경찰은 이들이 사용한 차량 트렁크에서 A 군의 DNA를 확보했습니다. 삽과 장갑 등 범행 도구를 산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쫓았습니다. 2명은 또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이었고, 나머지 1명은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가출 청소년들을 단순히 돌봐주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가출 청소년들을 모아 대포 통장을 모집하는 일에 활용했습니다. 이를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겨 돈을 벌었습니다.

이 범행에 관여한 A 군은 가출 청소년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지난해 9월 경찰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A 군은 함께 생활한 형들이 시킨 일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범인들은 A 군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 군이 없어지면 자신들이 처벌을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때 동고동락했던 가출팸 형들은 이렇게 악마가 됐습니다.

A 군은 형들이 자신을 해칠까 봐 도망 다녔습니다. 범인들은 지난해 9월, 자신들도 알고 A 군도 알던 10대 가출 소녀 등에게 A 군을 유인하라고 시켰습니다.

문신을 시켜주겠다는 연락에 오산의 한 공장으로 나온 A 군은 현장에서 살해됐습니다. 범인들은 A 군을 공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야산으로 끌고 가서 암매장했습니다.

경찰은 살해에 직접 가담한 3명을 체포했고, 피해자를 유인한 2명은 입건했습니다.

가출 청소년은 연간 27만 명 정도 된다는 게 정부 추산입니다. 정부는 가출 청소년 쉼터 등을 확대하는 등 가출 청소년을 돕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렇게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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