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무차별 폭행 가해자 잡은 건 SNS…경찰은 관할 탓

입력 2019.08.27 (07:00) 수정 2019.08.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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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팠지만,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수 없었어요. 사고가 날 수도 있잖아요."

20대 여성 운전자 A 씨는 얼마 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공포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신호가 바뀌어도 출발하지 않은 오토바이를 향해 경적을 두세 차례 울렸다가 도로 위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오토바이에 탄 남성은 A 씨 차량을 향해 침을 뱉고 욕을 했고, 분이 덜 풀렸는지 다음 신호등까지 따라와 A 씨에게 운전석 창문을 내리라고 한 다음, 마구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그렇게 A 씨는 도로 위에서 무려 8분여 동안 무차별 보복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지난달 26일 밤 경남 창원의 한 도심 사거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20대 여성 운전자가 ‘도로 위 폭행’을 당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20대 여성 운전자가 ‘도로 위 폭행’을 당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 피해자보다 적극적이지 못했던 경찰?

그런데 황당하게도 가해자의 덜미를 잡은 건 경찰이 아닌 피해자 A 씨였습니다.

사건 당시 인근 운전자 신고로 순찰차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경찰은 가해자 오토바이를 불과 30여 미터 앞에서 놓쳤습니다.

경찰이 가해자를 놓치자 A 씨는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A씨가 매일 밤 출근하는 길이었고, 폭행 직후 가해자는 모자로 오토바이 번호판을 가린 채 '날 절대 못 잡아'라고 말한 뒤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놓치면 영영 가해자를 잡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A 씨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가해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나섰습니다.

SNS에 경찰 추격을 따돌리고 달아난 폭행 가해자를 찾아 달라며 블랙박스 피해 영상과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3시간 만에 누리꾼들 제보로 가해자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달아난 폭행 가해자를 찾아달라며 피해자가 SNS에 올린 글달아난 폭행 가해자를 찾아달라며 피해자가 SNS에 올린 글

◇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출동 떠넘긴 경찰

문제는 경찰의 후속 대응이었습니다. A씨가 SNS를 통해 가해자 위치까지 알아내 동행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서로 관할이 아니라며 출동을 떠넘겼습니다.

먼저, A 씨는 사건 발생 장소에 있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동행을 요청했지만 '순찰차 인력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A씨가 재차 요청하자 해당 파출소는 가해자 소재지가 있는 관할 파출소에 연락하라며 출동을 떠넘깁니다.

10분 뒤, A씨가 가해자 소재지 관할 파출소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이번에는 사건 발생 장소 관할 파출소로 다시 미룹니다.

사건 발생 장소와 가해자 위치가 다를 경우 해당 파출소들이 공조 수사를 해야 하는 데, 직선거리로 불과 1.8km 떨어진 두 파출소는 이를 지키지 않고 서로 출동을 떠넘긴 겁니다.

결국, 두 파출소의 도움을 못 받은 A씨가 경남지방경찰청 112 민원센터에 전화한 뒤에야 뒤늦게 경찰이 출동했고 가해자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직선거리로 불과 1.8km 떨어진 두 파출소가 서로 출동을 떠넘겼다.직선거리로 불과 1.8km 떨어진 두 파출소가 서로 출동을 떠넘겼다.

◇ 한 번 '무너진' 믿음, 쉽게 회복 어려워

A 씨는 현재 2차 보복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SNS에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연락처까지 알아내 여러 차례 합의를 종용하며 압박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 씨는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인 자신보다 가해자 검거에 소극적이었던 모습, 같은 조직인 '국가 경찰'이 관할이 아니라며 출동을 떠넘긴 모습 등을 보며 경찰에 대한 믿음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KBS 보도로 관련 소식을 접한 경찰은 뒤늦게 A 씨와 핫 라인을 구축하고 신변보호용 스마트 워치를 지급하는 등의 보호 조치를 두 달 동안 내렸습니다. 경찰의 후속 조치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경찰에 대한 무너진 믿음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연관 기사]
①경적 울렸다고 전치 4주 폭행…SNS로 잡았다
②“피해자가 6번이나 신고했는데”…관할 따진 경찰관들
③가해자가 고소에 협박까지…“경찰도 못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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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무차별 폭행 가해자 잡은 건 SNS…경찰은 관할 탓
    • 입력 2019-08-27 07:00:20
    • 수정2019-08-27 07:00:54
    취재후·사건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팠지만,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수 없었어요. 사고가 날 수도 있잖아요."

20대 여성 운전자 A 씨는 얼마 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공포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신호가 바뀌어도 출발하지 않은 오토바이를 향해 경적을 두세 차례 울렸다가 도로 위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오토바이에 탄 남성은 A 씨 차량을 향해 침을 뱉고 욕을 했고, 분이 덜 풀렸는지 다음 신호등까지 따라와 A 씨에게 운전석 창문을 내리라고 한 다음, 마구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그렇게 A 씨는 도로 위에서 무려 8분여 동안 무차별 보복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지난달 26일 밤 경남 창원의 한 도심 사거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20대 여성 운전자가 ‘도로 위 폭행’을 당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 피해자보다 적극적이지 못했던 경찰?

그런데 황당하게도 가해자의 덜미를 잡은 건 경찰이 아닌 피해자 A 씨였습니다.

사건 당시 인근 운전자 신고로 순찰차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경찰은 가해자 오토바이를 불과 30여 미터 앞에서 놓쳤습니다.

경찰이 가해자를 놓치자 A 씨는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A씨가 매일 밤 출근하는 길이었고, 폭행 직후 가해자는 모자로 오토바이 번호판을 가린 채 '날 절대 못 잡아'라고 말한 뒤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놓치면 영영 가해자를 잡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A 씨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가해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나섰습니다.

SNS에 경찰 추격을 따돌리고 달아난 폭행 가해자를 찾아 달라며 블랙박스 피해 영상과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3시간 만에 누리꾼들 제보로 가해자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달아난 폭행 가해자를 찾아달라며 피해자가 SNS에 올린 글
◇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출동 떠넘긴 경찰

문제는 경찰의 후속 대응이었습니다. A씨가 SNS를 통해 가해자 위치까지 알아내 동행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서로 관할이 아니라며 출동을 떠넘겼습니다.

먼저, A 씨는 사건 발생 장소에 있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동행을 요청했지만 '순찰차 인력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A씨가 재차 요청하자 해당 파출소는 가해자 소재지가 있는 관할 파출소에 연락하라며 출동을 떠넘깁니다.

10분 뒤, A씨가 가해자 소재지 관할 파출소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이번에는 사건 발생 장소 관할 파출소로 다시 미룹니다.

사건 발생 장소와 가해자 위치가 다를 경우 해당 파출소들이 공조 수사를 해야 하는 데, 직선거리로 불과 1.8km 떨어진 두 파출소는 이를 지키지 않고 서로 출동을 떠넘긴 겁니다.

결국, 두 파출소의 도움을 못 받은 A씨가 경남지방경찰청 112 민원센터에 전화한 뒤에야 뒤늦게 경찰이 출동했고 가해자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직선거리로 불과 1.8km 떨어진 두 파출소가 서로 출동을 떠넘겼다.
◇ 한 번 '무너진' 믿음, 쉽게 회복 어려워

A 씨는 현재 2차 보복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SNS에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연락처까지 알아내 여러 차례 합의를 종용하며 압박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 씨는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인 자신보다 가해자 검거에 소극적이었던 모습, 같은 조직인 '국가 경찰'이 관할이 아니라며 출동을 떠넘긴 모습 등을 보며 경찰에 대한 믿음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KBS 보도로 관련 소식을 접한 경찰은 뒤늦게 A 씨와 핫 라인을 구축하고 신변보호용 스마트 워치를 지급하는 등의 보호 조치를 두 달 동안 내렸습니다. 경찰의 후속 조치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경찰에 대한 무너진 믿음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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