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재활용의 나라’ 독일, 쓰레기 수출도 선두…지구촌, 불법 쓰레기로 몸살

입력 2019.09.0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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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ARD 홈페이지

지난해 5월 하순 늦은 밤, 폴란드 중부 도시 즈기에시(Zgierz)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큰 불이 났다. 쓰레기 5만 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활활 타올랐다. 검은 연기가 며칠 동안이나 주변 수 킬로미터까지 퍼져 나갔다.

이 쓰레기 중 4분의 1이 독일에서 왔다고 최근 독일 공영방송 ARD가 보도했다. 폴란드 검찰은 이 쓰레기가 불법적인 경로로 폴란드로 운송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쓰레기 수거 업체와 운송업체 등 36개 기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폴란드로 쓰레기 불법 수출…독일 36개 기업 수사

폴란드 쓰레기 처리장에서는 유독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해만 117건의 화재가 있었다. 그런데 방화 혐의가 짙은 화재가 다수이다. 쓰레기 처리장 측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되어야 할 쓰레기를 태워 없앤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렇게 폴란드에서 태워 없애지는 쓰레기 대부분이 독일에서 온다. 독일은 폴란드로 쓰레기를 수출하는 국가 중 선두 주자로 꼽힌다. 폴란드로 수출되는 독일 쓰레기는 2015년 5만 4천 톤에서 3년 후인 지난해 25만 톤으로 5배나 증가해 신기록을 세웠다.


독일 쓰레기 수거 업체들이 폴란드로 쓰레기를 보내는 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독일에서는 쓰레기 1톤을 태우는 데 200유로가 들지만, 폴란드에서는 80유로면 된다. 이 때문에 독일 업체들이 쓰레기를 재활용장이나 독일 내 소각장으로 보내지 않고 폴란드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낸다. 또 폴란드 쓰레기 처리장은 재활용 대신 태워 없애는 방식을 선호한다.

폴란드 국경 세관에서는 종종 불법 운송되고 있는 독일 쓰레기가 적발된다. 폴란드 국경 도시 구비넥(Gubinek) 세관에서만 올해 들어 허가받지 않은 쓰레기를 운송하다 적발된 건수가 21건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불법 쓰레기 수출이 늘면서 적발되는 횟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ARD는 지적했다. 환경 보호에 민감하고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재활용을 강조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국발 쓰레기 항위 시위(지난 7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미국 총영사관 앞)미국발 쓰레기 항위 시위(지난 7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미국 총영사관 앞)

불법 쓰레기 수출은 전 지구적 문제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수라바야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 앞에 11살과 12살의 인도네시아 소녀 2명이 등장했다. 소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쓴 손 편지에서 "왜 당신은 쓰레기를 항상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내 꿈은 인도네시아의 강과 해변이 다시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왜 우리가 미국 쓰레기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소녀들의 외침이었다.

"더는 선진국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개발도상국들에서 일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정부 등이 밀반입된 쓰레기를 해당 국가에 되돌려 보내거나, 아예 유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만들고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이렇게 수입 쓰레기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수입 쓰레기 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또 쓰레기 안에 재활용이 안 되는 유해 쓰레기들이 대량 섞여 들어오기 때문이다. 2016년과 2017년 사이 동남아 국가의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량을 보면, 베트남 34만 톤→55만 톤, 말레이시아 29만 톤→45만 톤, 인도네시아 12만 톤→20만 톤으로 각각 증가했다.

국내로 반송된 필리핀 수출 폐기물국내로 반송된 필리핀 수출 폐기물

한국도 예외 아냐…불법 수출로 '국제 망신'

쓰레기 불법 수출에 있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지난 6월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과 관세법 등 위반 혐의로 폐기물 수출업체 대표 등 11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했다.

피의자들은 재활용 불가능 쓰레기가 포함된 폐기물 만 6천여 톤을 재활용할 수 있는 합성 플라스틱이라고 속여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세계 최대 쓰레기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필리핀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들 업체가 불법 수출한 폐기물 중 일부는 국내로 반송됐지만, 아직도 5천 톤 이상이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남아있다.

환경부 전수 조사 결과 해외 불법 수출을 위해 항구에 보관된 폐기물은 3만 4천여 톤에 이른다. 방치 폐기물 83만 9천여 톤과 불법투기 폐기물 33만 톤 가운데 상당량도 불법 수출을 목적으로 수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과 인간 삶에 치명적…"엄격한 감독과 처벌 필요"

'쓰레기 수입 대국'으로 불리던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한 건 환경 문제에 대한 각성 때문이었다. 사실 중국은 2017년에만 730만 톤의 폐플라스틱을 수입했는데, 세계 수입량의 56%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금액으로는 4조 3천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수입된 쓰레기에 각종 위험 물질과 오염 물질 등이 대거 섞여 있어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결국은 국민들의 건강에도 위해를 끼친다는 비판에 정책을 변경했다.

독일의 쓰레기 불법 수출이 종종 적발되곤 하지만, 형사상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에서 적발된 불법 쓰레기는 다시 독일로 반송됐을 뿐 벌금이나 다른 처벌은 없었다. 불법 운송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더 엄격한 감독과 처벌을 요구한다. 그린피스는 "독일과 같이 자신을 재활용 챔피언으로 부르는 나라는 자신들의 쓰레기를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쓰레기가 눈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잊어버리고, 다른 나라로 옮기는 사실 뒤에 숨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개발도상국들이 불법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했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상당수 국가들이 그동안 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린 만큼 단번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또 쓰레기 처리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서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쓰레기 재활용은 분명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처리 비용을 아끼려는 선진국들의 불법 쓰레기 수출은 개발도상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적 이득과 환경 보호 사이에서 고민이 깊지만, 건강과 삶의 질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무게 추는 환경 보호 쪽으로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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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재활용의 나라’ 독일, 쓰레기 수출도 선두…지구촌, 불법 쓰레기로 몸살
    • 입력 2019-09-01 07:02:22
    특파원 리포트
 사진 출처 : ARD 홈페이지

지난해 5월 하순 늦은 밤, 폴란드 중부 도시 즈기에시(Zgierz)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큰 불이 났다. 쓰레기 5만 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활활 타올랐다. 검은 연기가 며칠 동안이나 주변 수 킬로미터까지 퍼져 나갔다.

이 쓰레기 중 4분의 1이 독일에서 왔다고 최근 독일 공영방송 ARD가 보도했다. 폴란드 검찰은 이 쓰레기가 불법적인 경로로 폴란드로 운송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쓰레기 수거 업체와 운송업체 등 36개 기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폴란드로 쓰레기 불법 수출…독일 36개 기업 수사

폴란드 쓰레기 처리장에서는 유독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해만 117건의 화재가 있었다. 그런데 방화 혐의가 짙은 화재가 다수이다. 쓰레기 처리장 측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되어야 할 쓰레기를 태워 없앤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렇게 폴란드에서 태워 없애지는 쓰레기 대부분이 독일에서 온다. 독일은 폴란드로 쓰레기를 수출하는 국가 중 선두 주자로 꼽힌다. 폴란드로 수출되는 독일 쓰레기는 2015년 5만 4천 톤에서 3년 후인 지난해 25만 톤으로 5배나 증가해 신기록을 세웠다.


독일 쓰레기 수거 업체들이 폴란드로 쓰레기를 보내는 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독일에서는 쓰레기 1톤을 태우는 데 200유로가 들지만, 폴란드에서는 80유로면 된다. 이 때문에 독일 업체들이 쓰레기를 재활용장이나 독일 내 소각장으로 보내지 않고 폴란드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낸다. 또 폴란드 쓰레기 처리장은 재활용 대신 태워 없애는 방식을 선호한다.

폴란드 국경 세관에서는 종종 불법 운송되고 있는 독일 쓰레기가 적발된다. 폴란드 국경 도시 구비넥(Gubinek) 세관에서만 올해 들어 허가받지 않은 쓰레기를 운송하다 적발된 건수가 21건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불법 쓰레기 수출이 늘면서 적발되는 횟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ARD는 지적했다. 환경 보호에 민감하고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재활용을 강조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국발 쓰레기 항위 시위(지난 7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미국 총영사관 앞)
불법 쓰레기 수출은 전 지구적 문제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수라바야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 앞에 11살과 12살의 인도네시아 소녀 2명이 등장했다. 소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쓴 손 편지에서 "왜 당신은 쓰레기를 항상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내 꿈은 인도네시아의 강과 해변이 다시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왜 우리가 미국 쓰레기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소녀들의 외침이었다.

"더는 선진국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개발도상국들에서 일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정부 등이 밀반입된 쓰레기를 해당 국가에 되돌려 보내거나, 아예 유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만들고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이렇게 수입 쓰레기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수입 쓰레기 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또 쓰레기 안에 재활용이 안 되는 유해 쓰레기들이 대량 섞여 들어오기 때문이다. 2016년과 2017년 사이 동남아 국가의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량을 보면, 베트남 34만 톤→55만 톤, 말레이시아 29만 톤→45만 톤, 인도네시아 12만 톤→20만 톤으로 각각 증가했다.

국내로 반송된 필리핀 수출 폐기물
한국도 예외 아냐…불법 수출로 '국제 망신'

쓰레기 불법 수출에 있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지난 6월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과 관세법 등 위반 혐의로 폐기물 수출업체 대표 등 11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했다.

피의자들은 재활용 불가능 쓰레기가 포함된 폐기물 만 6천여 톤을 재활용할 수 있는 합성 플라스틱이라고 속여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세계 최대 쓰레기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필리핀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들 업체가 불법 수출한 폐기물 중 일부는 국내로 반송됐지만, 아직도 5천 톤 이상이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남아있다.

환경부 전수 조사 결과 해외 불법 수출을 위해 항구에 보관된 폐기물은 3만 4천여 톤에 이른다. 방치 폐기물 83만 9천여 톤과 불법투기 폐기물 33만 톤 가운데 상당량도 불법 수출을 목적으로 수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과 인간 삶에 치명적…"엄격한 감독과 처벌 필요"

'쓰레기 수입 대국'으로 불리던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한 건 환경 문제에 대한 각성 때문이었다. 사실 중국은 2017년에만 730만 톤의 폐플라스틱을 수입했는데, 세계 수입량의 56%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금액으로는 4조 3천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수입된 쓰레기에 각종 위험 물질과 오염 물질 등이 대거 섞여 있어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결국은 국민들의 건강에도 위해를 끼친다는 비판에 정책을 변경했다.

독일의 쓰레기 불법 수출이 종종 적발되곤 하지만, 형사상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에서 적발된 불법 쓰레기는 다시 독일로 반송됐을 뿐 벌금이나 다른 처벌은 없었다. 불법 운송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더 엄격한 감독과 처벌을 요구한다. 그린피스는 "독일과 같이 자신을 재활용 챔피언으로 부르는 나라는 자신들의 쓰레기를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쓰레기가 눈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잊어버리고, 다른 나라로 옮기는 사실 뒤에 숨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개발도상국들이 불법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했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상당수 국가들이 그동안 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린 만큼 단번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또 쓰레기 처리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서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쓰레기 재활용은 분명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처리 비용을 아끼려는 선진국들의 불법 쓰레기 수출은 개발도상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적 이득과 환경 보호 사이에서 고민이 깊지만, 건강과 삶의 질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무게 추는 환경 보호 쪽으로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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