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號 출범…뒤틀린 농업정책 해결할까?

입력 2019.09.0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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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취임했다. 30년 넘게 농정 공무원으로 일한 김 장관은 '농정 전문가'라는 평과 함께 국회 인사청문회를 비교적 무난하게 통과했다. 취임사에서 김 장관은 농업계의 묵은 과제인 '공익형 직불제'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매년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 널뛰기도 해결하겠다고 했다. 농정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예고한 셈이다.

농가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해 도시 가구의 평균소득은 6천만 원대인 데 비해 농가는 4천만 원 선에 그친다. 이 4천만 원도 대부분 부업에 의존한다. 순수 농업소득은 1천만 원을 겨우 넘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농정 소외는 갈수록 심해지는 모양새다.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약 9%나 늘어나 총 513조를 넘긴 '슈퍼예산' 소리를 듣지만, 농식품부 할당량은 전체의 2.98%(15조 2,990억 원)에 불과하다. 역대 처음으로 3% 선이 무너지자 농민단체에서는 "농정 개혁의 의지가 있긴 하냐"는 성토가 나온다.

문제는 농정 예산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에는 둘러싼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먹고 마시는 데 돈을 덜 쓴다. 가계의 소비패턴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소비항목 실질증감률(2003년~2016년)'을 비교해 보면, 보건, 오락·문화 분야 등은 40% 넘게 소비가 늘었지만, 식료품·비주류품 등은 10% 넘게 줄었다.

'지는 업종'이다 보니 일자리도 마땅치 않다. 최근 5년 동안 '보건·사회복지업'과 회계·법률 서비스 등 '사업서비스업'의 취업자는 증가 추세를 보였지만, 농업과 임·어업은 매우 감소했다. 나눠 쓰는 재정에서 농정은 늘 뒷순위가 된다.

출처: 통계청출처: 통계청

그래도 농정을 버릴 수는 없다. '식량 주권'같은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안전한 먹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최근 유전자 변형 농작물이나 환경오염, 사회재난 등으로 그 필요성을 더 증폭시킨다. "'걱정 없이 농사짓고, 안심하고 소비하는 나라'라는 목표를 바라보며 모두 함께 걸어가자"는 김 장관의 취임사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읽힌다.

해결책을 찾아보자며 어제(3일) 국회에서는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황주홍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농정예산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농정예산과 정책의 문제점, 개선 방향 등이 제시됐다.

‘농정예산 이대로 좋은가?’ 국회 정책토론회 모습‘농정예산 이대로 좋은가?’ 국회 정책토론회 모습

■'농정 예산·정책' 이것이 문제다!

①아직도 농업=산업…"농촌 다기능화 실현해야"

주제 발표에 나선 이명헌 인천대 교수(농업경제학 박사)는 여전히 농업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과 올해 농업재정의 구조를 비교해봤더니, 여전히 신산업이나 식품산업, 외식산업 등 '산업육성'과 관련된 예산이 전체의 30%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예산집행은 농촌이 가지고 있는 환경·생태·경관과 같은 다양한 가치 발굴을 어렵게 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농촌이 환경·생태·경관 등 다기능성을 갖추면, (농촌을 중심으로) 정주, 문화, 휴양, 관광 등 다양한 활로가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②사업시행지침서 151개…"컨설팅 업체만 배불려"

농정 사업을 너무 '쪼개서' 추진하는 데다 중앙정부·지자체·관련기관 등 사업 추진 주체가 여러 곳이다 보니 비슷한 사업이 중복된다는 지적도 공통으로 나왔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충남의) 농업인력육성사업군 사업의 경우 도청 및 도 농업기술원, 시군 및 시군 농업기술센터 사이에 유사중복사업이 시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헌 교수도 "농정 예산 집행 방식을 보면, 수많은 사업 대상자를 '공모제'를 통해 선발하는 구조"라며, "(사업이) 농정당국의 국·과별로 분절돼 집중적·체계적으로 쓰기 어렵게 하고, 공모제를 통해 선택된 사람에게만 지원을 하다 보니 소득이전의 효율성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도 "공모 사업 선정은 '얼마나 실력 있는 컨설팅 업체를 만났느냐'에 달린 데다, 자부담 사업이 많아서 결국 중·소농은 소외된다"고 지적했다.

③ "농민 1명에 빨대 7명"…예산 따면 끝?

예산을 따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강마야 연구위원은 충남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운영 실태의 예를 들면서 "사업 추진 체계를 고민하지 않고 행정도 마을도 사업계획서 통과와 사업 선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정책 사후관리가 미흡하다 보니 실제 농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영재 회장은 "자재를 구매할 때도 정부 보조사업으로 받는 자재 단가와 현장에서 농민이 구매하는 단가가 다르다. 사업 자체가 부풀려져 있고 중간 업자가 다 가져가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강 연구위원 역시 "농민 1명당 빨대 꽂고 있는 사람이 7명이란 말이 있다"며, "결국 예산이 누구에게 가고 있는지, 현장의 체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 게티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

■농정의 '사회 기여 가치' 찾아야

'공익형 직불제 추진', '농정 예산 규모 확대'같은 가시적인 목표도 중요하지만, 농정 예산이 가진 고질적 병폐들을 같이 풀어내야 한다. 이명헌 교수는 "현재 추진되는 '공익형 직불제' 개편의 기본방향은 적합하지만, 추가적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한다. 산업과 효율의 측면을 넘어서 '사회 기여'의 차원에서 농업이 기여하는 부분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지불의 형태로 '공익형 직불제'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진도 농특위원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농정은 농어민들에게 교차준수의무(환경보호 등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를 요구한다"고 언급했다. 농정 예산과 정책을 개혁하는 일이 시혜적인 지원책이 아닌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농정 예산을 확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 원장은 "개인 차원에서 (보조금을) 준다면 도시 저소득층이나 농촌 저소득층은 차이가 없다"며, "농촌을 지원하는 일이 수도권 집중 해소나 삶의 터전으로서 지방의 가치 등과 연결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경표 기획재정부 지출혁신과장도 "(국가 전체로 보면) 빠른 고령화로 인한 재정 압박과 늘어나는 보건복지 지출 속에서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할 지는 모두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며, "농업 분야의 당사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업 예산을 얼마나 책정할지, 농업의 다원성·공익성을 (재정에) 고려해야 한다면 얼마나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첨예한 의견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김현수 신임 장관은 취임사에서 "농업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버팀목이 되는 것이 농식품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는 오히려 '비농업인들'에게 '농정의 가치'라는 희망을 틔울 때 가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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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수號 출범…뒤틀린 농업정책 해결할까?
    • 입력 2019-09-04 07:03:04
    취재K
김현수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취임했다. 30년 넘게 농정 공무원으로 일한 김 장관은 '농정 전문가'라는 평과 함께 국회 인사청문회를 비교적 무난하게 통과했다. 취임사에서 김 장관은 농업계의 묵은 과제인 '공익형 직불제'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매년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 널뛰기도 해결하겠다고 했다. 농정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예고한 셈이다.

농가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해 도시 가구의 평균소득은 6천만 원대인 데 비해 농가는 4천만 원 선에 그친다. 이 4천만 원도 대부분 부업에 의존한다. 순수 농업소득은 1천만 원을 겨우 넘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농정 소외는 갈수록 심해지는 모양새다.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약 9%나 늘어나 총 513조를 넘긴 '슈퍼예산' 소리를 듣지만, 농식품부 할당량은 전체의 2.98%(15조 2,990억 원)에 불과하다. 역대 처음으로 3% 선이 무너지자 농민단체에서는 "농정 개혁의 의지가 있긴 하냐"는 성토가 나온다.

문제는 농정 예산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에는 둘러싼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먹고 마시는 데 돈을 덜 쓴다. 가계의 소비패턴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소비항목 실질증감률(2003년~2016년)'을 비교해 보면, 보건, 오락·문화 분야 등은 40% 넘게 소비가 늘었지만, 식료품·비주류품 등은 10% 넘게 줄었다.

'지는 업종'이다 보니 일자리도 마땅치 않다. 최근 5년 동안 '보건·사회복지업'과 회계·법률 서비스 등 '사업서비스업'의 취업자는 증가 추세를 보였지만, 농업과 임·어업은 매우 감소했다. 나눠 쓰는 재정에서 농정은 늘 뒷순위가 된다.

출처: 통계청
그래도 농정을 버릴 수는 없다. '식량 주권'같은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안전한 먹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최근 유전자 변형 농작물이나 환경오염, 사회재난 등으로 그 필요성을 더 증폭시킨다. "'걱정 없이 농사짓고, 안심하고 소비하는 나라'라는 목표를 바라보며 모두 함께 걸어가자"는 김 장관의 취임사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읽힌다.

해결책을 찾아보자며 어제(3일) 국회에서는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황주홍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농정예산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농정예산과 정책의 문제점, 개선 방향 등이 제시됐다.

‘농정예산 이대로 좋은가?’ 국회 정책토론회 모습
■'농정 예산·정책' 이것이 문제다!

①아직도 농업=산업…"농촌 다기능화 실현해야"

주제 발표에 나선 이명헌 인천대 교수(농업경제학 박사)는 여전히 농업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과 올해 농업재정의 구조를 비교해봤더니, 여전히 신산업이나 식품산업, 외식산업 등 '산업육성'과 관련된 예산이 전체의 30%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예산집행은 농촌이 가지고 있는 환경·생태·경관과 같은 다양한 가치 발굴을 어렵게 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농촌이 환경·생태·경관 등 다기능성을 갖추면, (농촌을 중심으로) 정주, 문화, 휴양, 관광 등 다양한 활로가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②사업시행지침서 151개…"컨설팅 업체만 배불려"

농정 사업을 너무 '쪼개서' 추진하는 데다 중앙정부·지자체·관련기관 등 사업 추진 주체가 여러 곳이다 보니 비슷한 사업이 중복된다는 지적도 공통으로 나왔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충남의) 농업인력육성사업군 사업의 경우 도청 및 도 농업기술원, 시군 및 시군 농업기술센터 사이에 유사중복사업이 시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헌 교수도 "농정 예산 집행 방식을 보면, 수많은 사업 대상자를 '공모제'를 통해 선발하는 구조"라며, "(사업이) 농정당국의 국·과별로 분절돼 집중적·체계적으로 쓰기 어렵게 하고, 공모제를 통해 선택된 사람에게만 지원을 하다 보니 소득이전의 효율성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도 "공모 사업 선정은 '얼마나 실력 있는 컨설팅 업체를 만났느냐'에 달린 데다, 자부담 사업이 많아서 결국 중·소농은 소외된다"고 지적했다.

③ "농민 1명에 빨대 7명"…예산 따면 끝?

예산을 따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강마야 연구위원은 충남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운영 실태의 예를 들면서 "사업 추진 체계를 고민하지 않고 행정도 마을도 사업계획서 통과와 사업 선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정책 사후관리가 미흡하다 보니 실제 농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영재 회장은 "자재를 구매할 때도 정부 보조사업으로 받는 자재 단가와 현장에서 농민이 구매하는 단가가 다르다. 사업 자체가 부풀려져 있고 중간 업자가 다 가져가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강 연구위원 역시 "농민 1명당 빨대 꽂고 있는 사람이 7명이란 말이 있다"며, "결국 예산이 누구에게 가고 있는지, 현장의 체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 게티이미지
■농정의 '사회 기여 가치' 찾아야

'공익형 직불제 추진', '농정 예산 규모 확대'같은 가시적인 목표도 중요하지만, 농정 예산이 가진 고질적 병폐들을 같이 풀어내야 한다. 이명헌 교수는 "현재 추진되는 '공익형 직불제' 개편의 기본방향은 적합하지만, 추가적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한다. 산업과 효율의 측면을 넘어서 '사회 기여'의 차원에서 농업이 기여하는 부분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지불의 형태로 '공익형 직불제'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진도 농특위원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농정은 농어민들에게 교차준수의무(환경보호 등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를 요구한다"고 언급했다. 농정 예산과 정책을 개혁하는 일이 시혜적인 지원책이 아닌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농정 예산을 확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 원장은 "개인 차원에서 (보조금을) 준다면 도시 저소득층이나 농촌 저소득층은 차이가 없다"며, "농촌을 지원하는 일이 수도권 집중 해소나 삶의 터전으로서 지방의 가치 등과 연결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경표 기획재정부 지출혁신과장도 "(국가 전체로 보면) 빠른 고령화로 인한 재정 압박과 늘어나는 보건복지 지출 속에서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할 지는 모두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며, "농업 분야의 당사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업 예산을 얼마나 책정할지, 농업의 다원성·공익성을 (재정에) 고려해야 한다면 얼마나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첨예한 의견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김현수 신임 장관은 취임사에서 "농업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버팀목이 되는 것이 농식품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는 오히려 '비농업인들'에게 '농정의 가치'라는 희망을 틔울 때 가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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