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카톡제보로 알려진 살인사건…‘노모와 형 살해’의 진실은?

입력 2019.09.04 (14:42) 수정 2019.09.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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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일) 오전 '가양동 모자 피살사건'의 용의자 심 모 씨(51)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사건 발생 54시간 만에, 살던 곳에서 약 30㎞ 떨어진 서울 강동구 한강 물속에서 경찰이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용의자는 숨진 80대 노모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경찰은 "타살 정황은 없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장애인 아들과 노모 숨진 채 발견…“타살 정황”

■ "문제가 크게 생겼다" … 비밀번호 알려준 용의자

둘째 아들 심 씨는 80대 노모, 장애인 형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돌봐왔습니다. 경찰은 집 주변 CCTV 등을 통해 세 모자가 사건 직전까지 같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하고 둘째 아들의 행방을 추적해왔습니다. 특히 심 씨는 사건 직후, 직접 112에 신고 전화를 했습니다. 신고 당시 심 씨는 "문제가 크게 생겼다"며 집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를 얘기했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심 씨를 찾았지만,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경찰이 둘째 아들 심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던 이유입니다.

경찰은 CCTV와 심 씨 휴대폰 위치 추적 등을 통해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심 씨가 강동구 한강공원에 도착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공원에서 나오는 장면이 확인되지 않아 경찰은 이 일대를 수색했습니다. 경찰은 "심 씨가 직접 강으로 걸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KBS에 들어온 카톡 제보…둘째 아들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이유

KBS는 지난 1일 오후 1시쯤 SNS 카카오톡으로 제보를 받았고, 당일 [뉴스9]를 통해 이 사건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제보는 "어머니와 형을 살해하고 도주 중인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보 내용에는 둘째 아들 심 씨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꺼진 곳이 서울 광진구여서, 경찰이 광진경찰서와 공조해 심 씨를 추적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첫 보도에는 둘째 아들 심 씨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인 아파트의 이웃 주민들도 둘째 아들의 존재와 범행 가능성에 대해 이구동성 말했지만, 쓰지 않았습니다.

우선 둘째 아들 심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고, 만약 심 씨가 범인이라면 경찰이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도주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심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뒀습니다.

하지만 결국 심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꺼진 곳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 부양 부담 끝 '간병살인'...이웃들이 전한 이야기

KBS 취재진은 사건 발생 후 사흘 동안 사건 현장을 찾아, 이웃 주민과 지인 등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둘째 아들과 친분이 있고 숨진 노모와 형을 돌봐왔던 지인 김 모 씨가 비교적 상세히 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김 씨는 "며칠 전 둘째 심 씨가 힘들다고 해서 힘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돼 안타깝다"면서 "심 씨가 전기설비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왔다"고 전했습니다. 심 씨는 쉰이 넘도록 결혼을 안 한 채 노모와 형과 함께 살았습니다. 8개월 전부터는 전기설비 일도 그만두고 집에서 노모와 형을 돌봐왔습니다. 30여 년 전부터 근육병을 앓아 중증장애 판정을 받은 형의 건강이 지난 겨울부터 더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숨진 형이 다녔던 장애인재활센터 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형 심 씨는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웃들은 "어머니도 최근부터는 걸어다니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노모와 장애인 형은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등을 받았고, 19년 전부터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기도 했습니다. 또, 꾸준히 요양보호사와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지원도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둘째 아들 심 씨에겐 나날이 악화되는 식구들의 상태 등이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릅니다.

둘째 심 씨가 일을 그만둔 뒤 스트레스가 심했고, 술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고 지인들은 말합니다. 사건 열흘 전쯤에 지인에게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우리 어머니와 형 돌보는 일을 도와달라"고 한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이웃 주민 김 모 씨도 "최근 둘째 아들의 고민이 깊어보였다"고 했습니다. 심 씨가 초조하고 불안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담배를 태우거나, 요양원에 노모를 맡기는 일을 두고 상담 전화를 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와 나날이 건강이 나빠지는 지체 장애인 형, 그들을 돌보며 일을 그만두게 된 남동생. 그리고 이어진 극단적인 선택….

말할 수 없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겠다는 정황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이 가족의 상황이 안타깝다", "다음 생에는 행복하길 빈다"는 반응들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이유로 둔기를 사용해 가족을 숨지게까지 했는지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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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4 14:42:27
    • 수정2019-09-04 17:10:56
    취재후·사건후
어제(3일) 오전 '가양동 모자 피살사건'의 용의자 심 모 씨(51)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사건 발생 54시간 만에, 살던 곳에서 약 30㎞ 떨어진 서울 강동구 한강 물속에서 경찰이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용의자는 숨진 80대 노모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경찰은 "타살 정황은 없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장애인 아들과 노모 숨진 채 발견…“타살 정황”

■ "문제가 크게 생겼다" … 비밀번호 알려준 용의자

둘째 아들 심 씨는 80대 노모, 장애인 형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돌봐왔습니다. 경찰은 집 주변 CCTV 등을 통해 세 모자가 사건 직전까지 같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하고 둘째 아들의 행방을 추적해왔습니다. 특히 심 씨는 사건 직후, 직접 112에 신고 전화를 했습니다. 신고 당시 심 씨는 "문제가 크게 생겼다"며 집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를 얘기했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심 씨를 찾았지만,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경찰이 둘째 아들 심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던 이유입니다.

경찰은 CCTV와 심 씨 휴대폰 위치 추적 등을 통해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심 씨가 강동구 한강공원에 도착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공원에서 나오는 장면이 확인되지 않아 경찰은 이 일대를 수색했습니다. 경찰은 "심 씨가 직접 강으로 걸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KBS에 들어온 카톡 제보…둘째 아들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이유

KBS는 지난 1일 오후 1시쯤 SNS 카카오톡으로 제보를 받았고, 당일 [뉴스9]를 통해 이 사건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제보는 "어머니와 형을 살해하고 도주 중인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보 내용에는 둘째 아들 심 씨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꺼진 곳이 서울 광진구여서, 경찰이 광진경찰서와 공조해 심 씨를 추적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첫 보도에는 둘째 아들 심 씨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인 아파트의 이웃 주민들도 둘째 아들의 존재와 범행 가능성에 대해 이구동성 말했지만, 쓰지 않았습니다.

우선 둘째 아들 심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고, 만약 심 씨가 범인이라면 경찰이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도주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심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뒀습니다.

하지만 결국 심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꺼진 곳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 부양 부담 끝 '간병살인'...이웃들이 전한 이야기

KBS 취재진은 사건 발생 후 사흘 동안 사건 현장을 찾아, 이웃 주민과 지인 등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둘째 아들과 친분이 있고 숨진 노모와 형을 돌봐왔던 지인 김 모 씨가 비교적 상세히 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김 씨는 "며칠 전 둘째 심 씨가 힘들다고 해서 힘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돼 안타깝다"면서 "심 씨가 전기설비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왔다"고 전했습니다. 심 씨는 쉰이 넘도록 결혼을 안 한 채 노모와 형과 함께 살았습니다. 8개월 전부터는 전기설비 일도 그만두고 집에서 노모와 형을 돌봐왔습니다. 30여 년 전부터 근육병을 앓아 중증장애 판정을 받은 형의 건강이 지난 겨울부터 더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숨진 형이 다녔던 장애인재활센터 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형 심 씨는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웃들은 "어머니도 최근부터는 걸어다니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노모와 장애인 형은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등을 받았고, 19년 전부터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기도 했습니다. 또, 꾸준히 요양보호사와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지원도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둘째 아들 심 씨에겐 나날이 악화되는 식구들의 상태 등이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릅니다.

둘째 심 씨가 일을 그만둔 뒤 스트레스가 심했고, 술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고 지인들은 말합니다. 사건 열흘 전쯤에 지인에게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우리 어머니와 형 돌보는 일을 도와달라"고 한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이웃 주민 김 모 씨도 "최근 둘째 아들의 고민이 깊어보였다"고 했습니다. 심 씨가 초조하고 불안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담배를 태우거나, 요양원에 노모를 맡기는 일을 두고 상담 전화를 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와 나날이 건강이 나빠지는 지체 장애인 형, 그들을 돌보며 일을 그만두게 된 남동생. 그리고 이어진 극단적인 선택….

말할 수 없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겠다는 정황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이 가족의 상황이 안타깝다", "다음 생에는 행복하길 빈다"는 반응들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이유로 둔기를 사용해 가족을 숨지게까지 했는지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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