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와 가재도 행복한 국립대병원, 이제서야 첫발?

입력 2019.09.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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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직원 800여 명 정규직 전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 이후 국립대병원 첫 사례
급여와 복지, 서울대병원 정규직과 동일 적용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5천여 명 중 4천여 명 여전히 비정규직

■ 청소하는 ‘여사님’도 이제는 정규직

꽉 막혀있던 물꼬가 트였습니다. 진통 끝에 서울대병원 노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원 직접 고용하는데 합의했습니다. 병실·수술실 청소하는 '여사님', 설비기술자, 환자 이송원 등이 대상입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614명이 11월 1일부터 정규직이 됩니다.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하는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200여 명도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합니다.

당연하게 이들도 기존 서울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이 체결했던 단체협약을 적용받습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수준이던 월급도 20% 정도 올라갈 전망입니다. 직원 의료비 감면 등 복지혜택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지만

국립서울대병원이라는 개천에서 용은 누구일까요? 권한과 처우가 확고한 의료진이겠지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붕어나 가재도 살기 좋은 개천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방법이 정규직 전환입니다. 하청업체 소속인 비정규직 신분으로는 사람 대접을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병원은 당신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니 하청업체에 얘기하라, 하청업체는 비용을 절감해야 해서 요구사항 못 들어준다, '책임의 공백' 상태에서 비정규직 직원들은 방치됐습니다.

■ 장갑을 뚫고 주삿바늘이 푹푹 들어와요

'책임의 공백'에서 가장 불안한 사람들은 의료진과 똑같이 환자를 대면하는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청소작업. 맨살이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닐장갑 하나만 끼고 병실을 돕니다. 환자 몸에 박혀있던 이름 모를 의료기구를 쓰레기통에 손으로 꾹꾹 눌러 담습니다. 따로 모으게 돼 있다지만 미처 걸러지지 못한 각양각색의 주삿바늘도 섞여 있습니다.

얇은 장갑 한 장에 의지한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얇은 장갑 한 장에 의지한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요령껏 해보지만, 장갑을 뚫고 푹푹 들어옵니다. 올해만 청소 중 주삿바늘 찔림 사고가 6차례. 감염 위험에 노출돼있습니다. 에이즈 환자의 주삿바늘에 찔린 일도 있습니다.

마스크도 열악합니다. 일회용 마스크 하나를 끼고 감염병동, 외과 병동, 응급실 등등을 전전합니다.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교체해야 하지만 언감생심입니다. 청소 노동자 본인은 물론 환자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두꺼운 안전장갑 등 안전장비를 요구했지만 병원도, 하청업체도 묵살했습니다. 눈치껏 간호사들이 쓰는 일회용 장갑을 빼서 씁니다.

올해 6월 9시뉴스에서 관련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그 이후 형식적인 안전 교육 한번 한 게 다입니다.

[연관 기사]
[영상] 주삿바늘 ‘푹푹’ 찔려도…비닐장갑 한 장뿐
[앵커의 눈] 일상화된 공포…서울대 병원만 ‘찔림사고’ 한 달 한 번꼴


■ 비정규직 5천여 명 중 이제야 800여 명

이제는 이런 모습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규직이 되면 회사가 직원들의 안전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6개월마다 새로 써야 했던 근로계약서도 사라지겠죠. 고용이 안정될 겁니다.

전국 14개 국립대병원의 '대장' 격인 서울대병원이 먼저 움직인 상황, 다른 국립대병원들은 어떨까요?
전망은 다소 엇갈립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 핑계만 대던 국립대병원들이 따라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국립대병원들이 똘똘 뭉쳐 정규직 전환에 반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역의 한 국립대병원은 '우리는 정부지원금도 적게 받는데 왜 정부지침 따라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전국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5천여 명 중 정규직 전환이 확정된 건 이제 800여 명. 아직 4천여 명의 거취는 안갯속입니다.

■ 주삿바늘에 푹푹 찔리던 날들, 이제는 안녕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한 게 2년도 넘게 지났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는 여차여차 정규직 전환이 진행됐지만 유독 국립대병원만은 사각지대였습니다. 서울대병원의 '결단' 이전엔 정규직 전환된 사람이 6명뿐이었습니다.

환자의 혈액·체액이 묻은 쓰레기통 속 의료장비. 안전 장구 없이 만질 수 있을까요?환자의 혈액·체액이 묻은 쓰레기통 속 의료장비. 안전 장구 없이 만질 수 있을까요?

메르스 당시 병원 감염을 예방한다며 부산을 떨었지만,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는 마스크 하나 지급하지 않았던 국립대병원들입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은 직접 고용을 두고 남은 국립대병원들과 협상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직접 고용 원칙을 가지고 국립대병원을 지도했던 교육부도 끝까지 책임을 다해달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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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붕어와 가재도 행복한 국립대병원, 이제서야 첫발?
    • 입력 2019-09-04 15:23:01
    취재K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직원 800여 명 정규직 전환 <br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 이후 국립대병원 첫 사례 <br />급여와 복지, 서울대병원 정규직과 동일 적용 <br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5천여 명 중 4천여 명 여전히 비정규직
■ 청소하는 ‘여사님’도 이제는 정규직

꽉 막혀있던 물꼬가 트였습니다. 진통 끝에 서울대병원 노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원 직접 고용하는데 합의했습니다. 병실·수술실 청소하는 '여사님', 설비기술자, 환자 이송원 등이 대상입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614명이 11월 1일부터 정규직이 됩니다.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하는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200여 명도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합니다.

당연하게 이들도 기존 서울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이 체결했던 단체협약을 적용받습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수준이던 월급도 20% 정도 올라갈 전망입니다. 직원 의료비 감면 등 복지혜택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지만

국립서울대병원이라는 개천에서 용은 누구일까요? 권한과 처우가 확고한 의료진이겠지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붕어나 가재도 살기 좋은 개천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방법이 정규직 전환입니다. 하청업체 소속인 비정규직 신분으로는 사람 대접을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병원은 당신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니 하청업체에 얘기하라, 하청업체는 비용을 절감해야 해서 요구사항 못 들어준다, '책임의 공백' 상태에서 비정규직 직원들은 방치됐습니다.

■ 장갑을 뚫고 주삿바늘이 푹푹 들어와요

'책임의 공백'에서 가장 불안한 사람들은 의료진과 똑같이 환자를 대면하는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청소작업. 맨살이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닐장갑 하나만 끼고 병실을 돕니다. 환자 몸에 박혀있던 이름 모를 의료기구를 쓰레기통에 손으로 꾹꾹 눌러 담습니다. 따로 모으게 돼 있다지만 미처 걸러지지 못한 각양각색의 주삿바늘도 섞여 있습니다.

얇은 장갑 한 장에 의지한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요령껏 해보지만, 장갑을 뚫고 푹푹 들어옵니다. 올해만 청소 중 주삿바늘 찔림 사고가 6차례. 감염 위험에 노출돼있습니다. 에이즈 환자의 주삿바늘에 찔린 일도 있습니다.

마스크도 열악합니다. 일회용 마스크 하나를 끼고 감염병동, 외과 병동, 응급실 등등을 전전합니다.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교체해야 하지만 언감생심입니다. 청소 노동자 본인은 물론 환자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두꺼운 안전장갑 등 안전장비를 요구했지만 병원도, 하청업체도 묵살했습니다. 눈치껏 간호사들이 쓰는 일회용 장갑을 빼서 씁니다.

올해 6월 9시뉴스에서 관련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그 이후 형식적인 안전 교육 한번 한 게 다입니다.

[연관 기사]
[영상] 주삿바늘 ‘푹푹’ 찔려도…비닐장갑 한 장뿐
[앵커의 눈] 일상화된 공포…서울대 병원만 ‘찔림사고’ 한 달 한 번꼴


■ 비정규직 5천여 명 중 이제야 800여 명

이제는 이런 모습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규직이 되면 회사가 직원들의 안전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6개월마다 새로 써야 했던 근로계약서도 사라지겠죠. 고용이 안정될 겁니다.

전국 14개 국립대병원의 '대장' 격인 서울대병원이 먼저 움직인 상황, 다른 국립대병원들은 어떨까요?
전망은 다소 엇갈립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 핑계만 대던 국립대병원들이 따라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국립대병원들이 똘똘 뭉쳐 정규직 전환에 반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역의 한 국립대병원은 '우리는 정부지원금도 적게 받는데 왜 정부지침 따라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전국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5천여 명 중 정규직 전환이 확정된 건 이제 800여 명. 아직 4천여 명의 거취는 안갯속입니다.

■ 주삿바늘에 푹푹 찔리던 날들, 이제는 안녕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한 게 2년도 넘게 지났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는 여차여차 정규직 전환이 진행됐지만 유독 국립대병원만은 사각지대였습니다. 서울대병원의 '결단' 이전엔 정규직 전환된 사람이 6명뿐이었습니다.

환자의 혈액·체액이 묻은 쓰레기통 속 의료장비. 안전 장구 없이 만질 수 있을까요?
메르스 당시 병원 감염을 예방한다며 부산을 떨었지만,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는 마스크 하나 지급하지 않았던 국립대병원들입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은 직접 고용을 두고 남은 국립대병원들과 협상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직접 고용 원칙을 가지고 국립대병원을 지도했던 교육부도 끝까지 책임을 다해달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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