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韓·日 모두 ‘조작이지?’…폭행 피해 여성 “이젠 한계에 이르러”

입력 2019.09.05 (16:47) 수정 2019.09.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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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해자에게 습격당하는 꿈을 꿉니다. 항상 잠이 부족하고, 밥을 먹으려고 해도 음식을 먹으면 금방 토해 버려요. 문신한 사람이나 남자가 말을 걸기만 해도 공포를 느낍니다. 그때의 기분과 두려움을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거죠?"

어제(4일)저녁, '홍대 일본인 폭행 사건'의 피해자 A(20) 씨는 자신의 SNS에 긴 호소문을 올렸습니다. 지난달 27일 경찰 조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한동안 SNS에서 사건에 대한 언급을 피하던 A 씨였습니다. '정말로 억울하다'는 말과 함께,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까지 A 씨는 자신을 둘러싼 비난과 억측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지금도 '너 조작이지?' '너무 빨리 건강해져서 거짓말한 걸로 밖에 안 보여'라는 댓글이나 쪽지가 오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싫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에요. (...) 이제 한계입니다."

A 씨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온라인 메신저로 갑자기 말을 걸어 오거나, SNS에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특이한 점은, 한일 네티즌 양쪽에서 A씨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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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호소문과 이를 옮긴 트위터 이용자@HANBINIZM의 한국어 번역문A씨가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호소문과 이를 옮긴 트위터 이용자@HANBINIZM의 한국어 번역문

처음 사건이 알려진 지난달 23일 저녁부터, 양국 네티즌들이 A 씨에게 보인 반응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했습니다. 위로하고 동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그저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데 쓸 시빗거리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떠올랐던 게 바로 A씨가 영상을 조작했다는 주장입니다.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A씨가 자극적인 혐한 영상으로 수입을 올리는 유튜버라거나, 일본 우익에게 한국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려고 상황을 연출했을 거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동시에 일본에서는 A씨가 사고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한일 관계가 나빠지지 않길 바란다'고 밝힌 점, 당시 여성 일행 4명이 함께 있는데도 폭행이 벌어진 점 등을 이유로 조작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한편 일본 안에서는 A 씨가 한국에 놀러 간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일본 대중 매체가 전형적으로 묘사하는, '한국 좋아하는 나이 어린 여성'인 A 씨가 피해를 본 걸 은근히 고소해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A 씨 사건을 소개한 일본 뉴스 사이트 댓글난에는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 '이번 일로 한국의 실체를 깨달았길 바란다'는 의견이 높은 추천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A 씨가 '혐한' 의심을 받는 동안, 일본 안에서는 '친한'이라는 이유로 비방과 인신공격이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비난이 피해자 A 씨 혼자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A 씨는 여전히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정말로 억울하다'고 말했습니다. 폭행 후유증으로 오른손에 감각이 사라진 데다, 보험 처리도 안 돼 한국에서 거액의 의료비를 내야 했는데, 정말로 영상 때문에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6일 KBS 본관 인터뷰실에서 마주앉았을 때에도 A 씨는 "가해자 한 명의 문제"라며, 한국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일로 한국과 일본 사이가 더 나빠지는 것도 싫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가해자는 그대로 방치됐겠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어젯밤에도 A 씨는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A 씨 사건은 검찰 송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경찰은 모욕죄와 폭행죄가 모두 인정된다고 보고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예정입니다. 일방적인 '폭행'과 '모욕'. 어쩌면 이 사건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 두 단어로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말을 알기 전까지는 중립을 지키겠다'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면'과 '배후'를 찾는 검증의 잣대를 오직 피해 여성에게만 혹독하게 들이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떡볶이와 스티커 사진을 좋아하고, 직접 요리한 사진을 올리며 '남자친구 있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던 스무 살 A 씨의 트위터에 다시 평온한 일상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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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韓·日 모두 ‘조작이지?’…폭행 피해 여성 “이젠 한계에 이르러”
    • 입력 2019-09-05 16:47:40
    • 수정2019-09-05 16:48:28
    취재후·사건후
"매일 가해자에게 습격당하는 꿈을 꿉니다. 항상 잠이 부족하고, 밥을 먹으려고 해도 음식을 먹으면 금방 토해 버려요. 문신한 사람이나 남자가 말을 걸기만 해도 공포를 느낍니다. 그때의 기분과 두려움을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거죠?"

어제(4일)저녁, '홍대 일본인 폭행 사건'의 피해자 A(20) 씨는 자신의 SNS에 긴 호소문을 올렸습니다. 지난달 27일 경찰 조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한동안 SNS에서 사건에 대한 언급을 피하던 A 씨였습니다. '정말로 억울하다'는 말과 함께,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까지 A 씨는 자신을 둘러싼 비난과 억측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지금도 '너 조작이지?' '너무 빨리 건강해져서 거짓말한 걸로 밖에 안 보여'라는 댓글이나 쪽지가 오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싫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에요. (...) 이제 한계입니다."

A 씨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온라인 메신저로 갑자기 말을 걸어 오거나, SNS에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특이한 점은, 한일 네티즌 양쪽에서 A씨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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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호소문과 이를 옮긴 트위터 이용자@HANBINIZM의 한국어 번역문
처음 사건이 알려진 지난달 23일 저녁부터, 양국 네티즌들이 A 씨에게 보인 반응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했습니다. 위로하고 동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그저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데 쓸 시빗거리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떠올랐던 게 바로 A씨가 영상을 조작했다는 주장입니다.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A씨가 자극적인 혐한 영상으로 수입을 올리는 유튜버라거나, 일본 우익에게 한국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려고 상황을 연출했을 거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동시에 일본에서는 A씨가 사고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한일 관계가 나빠지지 않길 바란다'고 밝힌 점, 당시 여성 일행 4명이 함께 있는데도 폭행이 벌어진 점 등을 이유로 조작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한편 일본 안에서는 A 씨가 한국에 놀러 간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일본 대중 매체가 전형적으로 묘사하는, '한국 좋아하는 나이 어린 여성'인 A 씨가 피해를 본 걸 은근히 고소해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A 씨 사건을 소개한 일본 뉴스 사이트 댓글난에는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 '이번 일로 한국의 실체를 깨달았길 바란다'는 의견이 높은 추천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A 씨가 '혐한' 의심을 받는 동안, 일본 안에서는 '친한'이라는 이유로 비방과 인신공격이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비난이 피해자 A 씨 혼자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A 씨는 여전히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정말로 억울하다'고 말했습니다. 폭행 후유증으로 오른손에 감각이 사라진 데다, 보험 처리도 안 돼 한국에서 거액의 의료비를 내야 했는데, 정말로 영상 때문에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6일 KBS 본관 인터뷰실에서 마주앉았을 때에도 A 씨는 "가해자 한 명의 문제"라며, 한국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일로 한국과 일본 사이가 더 나빠지는 것도 싫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가해자는 그대로 방치됐겠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어젯밤에도 A 씨는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A 씨 사건은 검찰 송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경찰은 모욕죄와 폭행죄가 모두 인정된다고 보고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예정입니다. 일방적인 '폭행'과 '모욕'. 어쩌면 이 사건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 두 단어로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말을 알기 전까지는 중립을 지키겠다'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면'과 '배후'를 찾는 검증의 잣대를 오직 피해 여성에게만 혹독하게 들이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떡볶이와 스티커 사진을 좋아하고, 직접 요리한 사진을 올리며 '남자친구 있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던 스무 살 A 씨의 트위터에 다시 평온한 일상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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