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전교 1등은 교무실에서 생기부 써요”

입력 2019.09.06 (07:01) 수정 2019.09.0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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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등학교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불공정한 일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서울대를 포함한 서울 유수 대학에 한해 30여 명의 학생을 보내는 이른바 '지역 명문고'였습니다.

수능이 석 달도 안 남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제보자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놓은 자습반인 목련반 학생에게 학교가 각종 특혜를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스스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써서 교사에게 낸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 '생기부'는 학교에서 학생이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하는지 기록하는 문서입니다. 대학 입시, 특히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교사가 객관적으로 평가한 내용을 기입해야 합니다. 생기부 '셀프 작성'은 불법입니다.

[연관 기사] 생기부 셀프 기재·성적 봐주기…지역 명문고의 슬픈 자화상

성적 최상위권 학생, 본인이 생기부 작성

KBS 뉴스 9 '생기부 셀프 기재·성적 봐주기…지역 명문고의 슬픈 자화상' 내용 중KBS 뉴스 9 '생기부 셀프 기재·성적 봐주기…지역 명문고의 슬픈 자화상' 내용 중

이○○ (가명) / A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선생님께서 직접 교무실로 부르셔서 선생님 컴퓨터에 앉아 작성하고, 전교 1등이 그렇게 하는 걸 저는 봤고요. 나머지 목련반 아이들은 교실에서 다 보는 자리에서 쉬는 시간에 작성해요."
"목련반 아이들이 '너희가 인터넷을 하는 것보다 내 생기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비켜 달라'라고 말하면서 학교 컴퓨터에 둘러앉아 생기부를 작성해요. 대놓고 학교 컴퓨터에 '○○○(이름) 생기부 제출'이라는 식으로 저장해 놔요."


학생들이 본인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직접 쓰는 '셀프 생기부', 이 고등학교에선 공공연한 일이라는 증언입니다.

학교 컴퓨터에 목련반 학생들이 작성한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이 학생 사이에 퍼졌습니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총평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내용도 있습니다. 강조하기를 원하는 부분은 특수기호(!, ?)나 글자색을 바꿔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A 고등학교 학생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셀프 생기부 화면A 고등학교 학생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셀프 생기부 화면

찢고 폐기한 답안지, 정식 답안지로 인정

셀프 생기부 의혹뿐 아닙니다. 시험에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일반 학생들은 쉽게 받을 수 없는 혜택을 최상위권 학생들이 누리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1학기 중간고사, 전교 1등 학생이 답안지를 교체하고 답을 적는 도중 시험이 끝났습니다. 이전 답안지는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뒤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찢어서 버린 답안지를 정식 답안지로 인정해 성적을 처리했습니다.

김○○ (가명) / A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이미 찢어서 버린 답안지를 다시 달라고 울고불고해서 그 찢은 종이를 다시 테이프로 붙여서 그거를 성적으로 인정해 줬다고 들었어요."


이런 일은 현재 고3 학생에게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 A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만났습니다. 현재 고3 학생이 겪은 것과 비슷한 경험을 말했습니다.

졸업생 김○○ 씨는 생기부 작성부터 시험 봐주기 등의 특혜를 목격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갈만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차별이 심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 A 고등학교 졸업생
"(항의해도)'공부를 잘하니까 이렇게 해 주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도 많았어요. 같은 학교 후배에게 '그런 차별을 받는 게 싫으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것밖에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A 고등학교 성적 우수 자습반 '목련반' 앞 모습. 명문대 진학한 선배 사진과 진학 학교가 적혀 있다.A 고등학교 성적 우수 자습반 '목련반' 앞 모습. 명문대 진학한 선배 사진과 진학 학교가 적혀 있다.

학교는 셀프 생기부와 성적 봐주기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지난해 찢어진 답안지를 성적으로 처리한 것은 인정했지만, 다른 의혹에 대해선 그런 일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학교에서 셀프 생기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학교 활동을 바탕으로 대다수 학생에게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게 하고, 이를 근거로 교사가 생기부를 작성한다는 겁니다.

A 고등학교 관계자
"학생들에게 활동 보고서를 쓰게 해요. 그 활동 보고서를 쓴 걸 가지고 서로 얘기해 가면서 생기부를 쓰는 거지."


경북교육청, 학교 말만 듣고 '문제없다'…보도 이후에서야 '조사하겠다'

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교육청은 관련 사실을 알고 있을까?

경북교육청은 A 고등학교의 셀프 생기부, 성적 봐주기 의혹 등에 대해 민원이나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교육청은 관련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이 제기한 의혹에 A 학교 관계자들과 통화하고 검토한 결과, 언론에 나올 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의혹 대부분을 부인하는 학교 관계자 말만 듣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3일 'KBS 뉴스 9' 보도가 나간 직후, 교육청은 태도를 바꿨습니다. 교육청 관계자는 '당혹스럽다'면서 앞으로 조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칫 큰 불이익을 무릅쓰고 제보를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당장 대학 입시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런 차별과 특혜는 사라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 이○○ (가명) / A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사회에 나가서 받을 차별을 이미 학교에서 다 받아버리니까 학교에 가기 싫어요. 그런 특혜에 대해 나머지 아이들이 동의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 자존심 많이 상하죠."


"소수의 학생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다른 학생들은 챙겨주지도 않아요. 숙명여고 사태랑 뭐가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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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전교 1등은 교무실에서 생기부 써요”
    • 입력 2019-09-06 07:01:45
    • 수정2019-09-06 07:19:01
    취재후·사건후
'우리 고등학교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불공정한 일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서울대를 포함한 서울 유수 대학에 한해 30여 명의 학생을 보내는 이른바 '지역 명문고'였습니다.

수능이 석 달도 안 남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제보자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놓은 자습반인 목련반 학생에게 학교가 각종 특혜를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스스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써서 교사에게 낸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 '생기부'는 학교에서 학생이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하는지 기록하는 문서입니다. 대학 입시, 특히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교사가 객관적으로 평가한 내용을 기입해야 합니다. 생기부 '셀프 작성'은 불법입니다.

[연관 기사] 생기부 셀프 기재·성적 봐주기…지역 명문고의 슬픈 자화상

성적 최상위권 학생, 본인이 생기부 작성

KBS 뉴스 9 '생기부 셀프 기재·성적 봐주기…지역 명문고의 슬픈 자화상' 내용 중
이○○ (가명) / A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선생님께서 직접 교무실로 부르셔서 선생님 컴퓨터에 앉아 작성하고, 전교 1등이 그렇게 하는 걸 저는 봤고요. 나머지 목련반 아이들은 교실에서 다 보는 자리에서 쉬는 시간에 작성해요."
"목련반 아이들이 '너희가 인터넷을 하는 것보다 내 생기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비켜 달라'라고 말하면서 학교 컴퓨터에 둘러앉아 생기부를 작성해요. 대놓고 학교 컴퓨터에 '○○○(이름) 생기부 제출'이라는 식으로 저장해 놔요."


학생들이 본인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직접 쓰는 '셀프 생기부', 이 고등학교에선 공공연한 일이라는 증언입니다.

학교 컴퓨터에 목련반 학생들이 작성한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이 학생 사이에 퍼졌습니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총평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내용도 있습니다. 강조하기를 원하는 부분은 특수기호(!, ?)나 글자색을 바꿔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A 고등학교 학생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셀프 생기부 화면
찢고 폐기한 답안지, 정식 답안지로 인정

셀프 생기부 의혹뿐 아닙니다. 시험에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일반 학생들은 쉽게 받을 수 없는 혜택을 최상위권 학생들이 누리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1학기 중간고사, 전교 1등 학생이 답안지를 교체하고 답을 적는 도중 시험이 끝났습니다. 이전 답안지는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뒤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찢어서 버린 답안지를 정식 답안지로 인정해 성적을 처리했습니다.

김○○ (가명) / A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이미 찢어서 버린 답안지를 다시 달라고 울고불고해서 그 찢은 종이를 다시 테이프로 붙여서 그거를 성적으로 인정해 줬다고 들었어요."


이런 일은 현재 고3 학생에게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 A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만났습니다. 현재 고3 학생이 겪은 것과 비슷한 경험을 말했습니다.

졸업생 김○○ 씨는 생기부 작성부터 시험 봐주기 등의 특혜를 목격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갈만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차별이 심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 A 고등학교 졸업생
"(항의해도)'공부를 잘하니까 이렇게 해 주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도 많았어요. 같은 학교 후배에게 '그런 차별을 받는 게 싫으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것밖에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A 고등학교 성적 우수 자습반 '목련반' 앞 모습. 명문대 진학한 선배 사진과 진학 학교가 적혀 있다.
학교는 셀프 생기부와 성적 봐주기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지난해 찢어진 답안지를 성적으로 처리한 것은 인정했지만, 다른 의혹에 대해선 그런 일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학교에서 셀프 생기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학교 활동을 바탕으로 대다수 학생에게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게 하고, 이를 근거로 교사가 생기부를 작성한다는 겁니다.

A 고등학교 관계자
"학생들에게 활동 보고서를 쓰게 해요. 그 활동 보고서를 쓴 걸 가지고 서로 얘기해 가면서 생기부를 쓰는 거지."


경북교육청, 학교 말만 듣고 '문제없다'…보도 이후에서야 '조사하겠다'

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교육청은 관련 사실을 알고 있을까?

경북교육청은 A 고등학교의 셀프 생기부, 성적 봐주기 의혹 등에 대해 민원이나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교육청은 관련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이 제기한 의혹에 A 학교 관계자들과 통화하고 검토한 결과, 언론에 나올 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의혹 대부분을 부인하는 학교 관계자 말만 듣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3일 'KBS 뉴스 9' 보도가 나간 직후, 교육청은 태도를 바꿨습니다. 교육청 관계자는 '당혹스럽다'면서 앞으로 조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칫 큰 불이익을 무릅쓰고 제보를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당장 대학 입시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런 차별과 특혜는 사라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 이○○ (가명) / A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사회에 나가서 받을 차별을 이미 학교에서 다 받아버리니까 학교에 가기 싫어요. 그런 특혜에 대해 나머지 아이들이 동의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 자존심 많이 상하죠."


"소수의 학생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다른 학생들은 챙겨주지도 않아요. 숙명여고 사태랑 뭐가 다른가요?"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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