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넘치는 ‘중앙아시아의 거인’

입력 2019.09.08 (13:37) 수정 2019.09.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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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취재진은 카자흐스탄 외교부 초청으로 유럽과 아시아 10여개 국 외신 기자들과 일주일 동안 카자흐스탄을 방문 취재했습니다. 방송 이후 남은 이야기를 디지털 공간에서 두 편에 나눠 전합니다. ①편에선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는 카자흐스탄의 첫인상을, ②편에는 카자흐스탄의 정치상황을 전합니다.

[연관기사] “구소련을 넘어 관광대국으로”…카자흐스탄의 도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신이 카자흐스탄 사람에게 땅을 얼만큼 줄까 물었다. 카자흐스탄 사람이 답했다. "지금 제 발(toe)이 있는 곳부터 머리(head)가 닿는 곳까지 주세요." 신이 승낙하자 카자흐스탄 사람은 발로 시작점을 찍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선 말을 타고 6일을 달렸다. 말이 지쳐 죽자 직접 이틀을 달렸다. 뛰다 지쳐 쓰러지자 엎드려 기기 시작한 카자흐스탄 사람은 하루를 더 이동했다. 마침내 모든 기력이 다하자 누운 채 쓴 모자를 멀리 던지고 말했다. "저 모자(hat, 머리를 뜻하는 head와 발음이 비슷하다.)가 있는 곳까지 카자흐스탄의 땅입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브라질, 호주, 인도,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국토 면적이 큰 나라다.(출처: 구글)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브라질, 호주, 인도,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국토 면적이 큰 나라다.(출처: 구글)

'중앙아시아의 거인'은 세계에서 9번째로 영토 면적이 넓은 카자흐스탄이 얼마나 큰 지를 빗댄 말이다. 총 면적은 272만 4900㎢로, 한국(10만 363㎢)의 약 27배다. 반면 인구는 천 758만 4천여 명(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5천 182만 6천여 명, 2018년 기준)의 3분의 1 수준이다.

드넓은 대지를 옛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마음껏 누비며 살았다. '게르'라고 불리는 천막과 가재도구를 싸들고 말과 낙타를 타고 다니며 유목 생활을 했다. 발닿는 곳이 내 땅이요 집이었던 그 옛날 유목민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너른 대지가 아까워 도무지 정착할 수 없었던 건 아닌가 싶다.

카자흐스탄 남부 투르키스탄 지역.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이슬람 유적 뒷편으로 인근 심켄트 시가 펼쳐져 있다.카자흐스탄 남부 투르키스탄 지역.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이슬람 유적 뒷편으로 인근 심켄트 시가 펼쳐져 있다.

카자흐스탄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전혀 다른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구 구성을 보면 카자흐인이 대부분(66%)이고 러시아인(20%)이 두번째로 많다. 한국에서 건너간 고려인도 전체의 0.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는 이슬람교 신자가 70%, 기독교가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민족들이 어우러져 산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알마티에서 가이드를 했던 세르게이 씨는 이렇게 자랑했다. "제 지인 중에는 러시아인과 유대인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와 카자흐인과 고려인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가 결혼한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여전하다는 비영리기구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지적도 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에 위치한 ‘하즈라술탄 모스크(Hazrat Sultan Mosque)’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에 위치한 ‘하즈라술탄 모스크(Hazrat Sultan Mosque)’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카자흐스탄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다. 국내선 이동을 위해 공항에 가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젊은 부부를 흔히 볼 수 있다. 심켄트와 투르키스탄 지역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루스템 씨는 34살인데 벌써 아이가 셋이다. 아이들 나이는 7살, 5살, 2살이다. 유소년층이 많은 높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인구 비율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결혼식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행사다. 결혼식을 하게 되면 낮부터 시작해 밤을 지새며 파티를 하는데, 하객은 4백~5백 명을 초대한다고 한다. 루스템 씨는 "결혼식 때 5백 명을 넘게 불렀는데 모르는 사람이 많아 혼났다"면서 "그런데도 다른 친척들이 나에게 결혼식에 왜 초대하지 않았냐고 항의를 했었다"는 농담을 건넸다.

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의 시장에서 어린이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의 시장에서 어린이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한국은 친숙한 나라다. 고려인들 덕분이다. 소련 시기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들 일부는 카자흐스탄에 자리를 잡았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이제 3세대를 맞이하고 있다. 고려인 3세대인 빅토리아 씨는 심켄트 지역 홍보 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어는 어른에게 배운 기본적인 인삿말 밖에 모르지만, 빅토리아 씨는 "한국에 7번 방문했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온다'는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많다. 많은 카자흐스탄의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농촌 등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가이드 루스템 씨는 "한국에 일하러 간 친구들이 많다"며 "인터넷이 아주 잘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 국민들에게 카자흐스탄은 아직 낯선 나라다. 이제껏 '카자흐스탄'이란 단어를 한번도 검색해보지 않은 시민들도 많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방문 내내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젊음과 생명력이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도로는 열악하고 식당과 숙박 시설은 열악하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성장의 꿈을 꾸고 있다. 5년, 10년 뒤 달라질 카자흐스탄의 모습을 기대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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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력 넘치는 ‘중앙아시아의 거인’
    • 입력 2019-09-08 13:37:47
    • 수정2019-09-08 13:42:55
    취재K
※ KBS 취재진은 카자흐스탄 외교부 초청으로 유럽과 아시아 10여개 국 외신 기자들과 일주일 동안 카자흐스탄을 방문 취재했습니다. 방송 이후 남은 이야기를 디지털 공간에서 두 편에 나눠 전합니다. ①편에선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는 카자흐스탄의 첫인상을, ②편에는 카자흐스탄의 정치상황을 전합니다.

[연관기사] “구소련을 넘어 관광대국으로”…카자흐스탄의 도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신이 카자흐스탄 사람에게 땅을 얼만큼 줄까 물었다. 카자흐스탄 사람이 답했다. "지금 제 발(toe)이 있는 곳부터 머리(head)가 닿는 곳까지 주세요." 신이 승낙하자 카자흐스탄 사람은 발로 시작점을 찍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선 말을 타고 6일을 달렸다. 말이 지쳐 죽자 직접 이틀을 달렸다. 뛰다 지쳐 쓰러지자 엎드려 기기 시작한 카자흐스탄 사람은 하루를 더 이동했다. 마침내 모든 기력이 다하자 누운 채 쓴 모자를 멀리 던지고 말했다. "저 모자(hat, 머리를 뜻하는 head와 발음이 비슷하다.)가 있는 곳까지 카자흐스탄의 땅입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브라질, 호주, 인도,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국토 면적이 큰 나라다.(출처: 구글)
'중앙아시아의 거인'은 세계에서 9번째로 영토 면적이 넓은 카자흐스탄이 얼마나 큰 지를 빗댄 말이다. 총 면적은 272만 4900㎢로, 한국(10만 363㎢)의 약 27배다. 반면 인구는 천 758만 4천여 명(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5천 182만 6천여 명, 2018년 기준)의 3분의 1 수준이다.

드넓은 대지를 옛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마음껏 누비며 살았다. '게르'라고 불리는 천막과 가재도구를 싸들고 말과 낙타를 타고 다니며 유목 생활을 했다. 발닿는 곳이 내 땅이요 집이었던 그 옛날 유목민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너른 대지가 아까워 도무지 정착할 수 없었던 건 아닌가 싶다.

카자흐스탄 남부 투르키스탄 지역.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이슬람 유적 뒷편으로 인근 심켄트 시가 펼쳐져 있다.
카자흐스탄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전혀 다른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구 구성을 보면 카자흐인이 대부분(66%)이고 러시아인(20%)이 두번째로 많다. 한국에서 건너간 고려인도 전체의 0.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는 이슬람교 신자가 70%, 기독교가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민족들이 어우러져 산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알마티에서 가이드를 했던 세르게이 씨는 이렇게 자랑했다. "제 지인 중에는 러시아인과 유대인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와 카자흐인과 고려인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가 결혼한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여전하다는 비영리기구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지적도 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에 위치한 ‘하즈라술탄 모스크(Hazrat Sultan Mosque)’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카자흐스탄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다. 국내선 이동을 위해 공항에 가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젊은 부부를 흔히 볼 수 있다. 심켄트와 투르키스탄 지역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루스템 씨는 34살인데 벌써 아이가 셋이다. 아이들 나이는 7살, 5살, 2살이다. 유소년층이 많은 높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인구 비율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결혼식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행사다. 결혼식을 하게 되면 낮부터 시작해 밤을 지새며 파티를 하는데, 하객은 4백~5백 명을 초대한다고 한다. 루스템 씨는 "결혼식 때 5백 명을 넘게 불렀는데 모르는 사람이 많아 혼났다"면서 "그런데도 다른 친척들이 나에게 결혼식에 왜 초대하지 않았냐고 항의를 했었다"는 농담을 건넸다.

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의 시장에서 어린이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한국은 친숙한 나라다. 고려인들 덕분이다. 소련 시기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들 일부는 카자흐스탄에 자리를 잡았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이제 3세대를 맞이하고 있다. 고려인 3세대인 빅토리아 씨는 심켄트 지역 홍보 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어는 어른에게 배운 기본적인 인삿말 밖에 모르지만, 빅토리아 씨는 "한국에 7번 방문했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온다'는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많다. 많은 카자흐스탄의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농촌 등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가이드 루스템 씨는 "한국에 일하러 간 친구들이 많다"며 "인터넷이 아주 잘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 국민들에게 카자흐스탄은 아직 낯선 나라다. 이제껏 '카자흐스탄'이란 단어를 한번도 검색해보지 않은 시민들도 많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방문 내내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젊음과 생명력이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도로는 열악하고 식당과 숙박 시설은 열악하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성장의 꿈을 꾸고 있다. 5년, 10년 뒤 달라질 카자흐스탄의 모습을 기대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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