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워라밸’ 뜨고 ‘한잔의 추억’ 진다

입력 2019.09.11 (06:09) 수정 2019.09.1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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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13.5분, 작지만 주목할만한 변화

지난해 7월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주52시간제가 시행됐습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직장인들의 회사 생활과 여가활동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고용노동부가 KT와 BC카드에 빅데이터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회사와 공공기관이 밀집한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가산디지털단지 그리고 경기도 판교의 직장인들이 직장 근처에 몇 시간 머물고, 어디에 돈을 썼는지 들여다봤습니다. 비교 기간은 주 52시간제 시행 전인 18년 3~5월과 시행 후인 19년 3~5월입니다. 조사대상은 15만 3천명입니다.

줄어든 노동시간, 퇴근후 문화생활을 하는 직장인줄어든 노동시간, 퇴근후 문화생활을 하는 직장인

4개 지역을 평균 내봤습니다.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직장 근처 지역에 머무는 시간, 즉 노동시간은 하루평균 13.5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겨우 13.5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주5일 근무로 환산해보면 주당 67.5분, 한 달이면 270분이니 4시간이 좀 넘는 시간입니다.

OECD 최고수준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계속 늘려가던 우리나라가 월평균 4시간 정도 노동시간을 줄였다는 건 주목할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겠죠.

광화문 직장인 노동시간, 가장 많은 하루평균 39.2분 줄어들어

지역별로 세분해볼까요. 우선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많이 자리 잡은 서울 광화문입니다.

광화문 지역에서는 하루평균 605분이던 노동시간이 565.8분으로 줄었습니다. 하루 39.2분 감소한 것으로 조사대상 4개 지역 중에 가장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금융 업종 대기업이 포진한 서울 여의도는 어떨까요. 하루평균 9.9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626.3분→616.4분) 금융 업종 대기업은 특례제외업종이라 올해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적용됐는데요, 그런데도 3~5월 조사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건 제도시행에 앞서 준비에 들어갔다는 방증입니다.

굵직굵직한 IT 기업이 많은 경기도 판교도 9.7분 감소했습니다. 한 달에 대략 200분, 3시간 정도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주52시간제 제외된 '가디단의 눈물'

IT 관련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많이 자리 잡은 가산디지털단지. 노동시간은 오히려 0.6분 늘어났습니다. 주52시간제 적용을 아직 받지 않는 규모의 업체가 많다 보니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다만 주52시간제 시행은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른바 '워라밸' 가치관이 확산했다고 할까요. 조사대상 4개 지역 모두에서 퇴근 시간이 앞당겨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퇴근 후 시작되는 나를 가꾸는 시간

'부어라 마셔라' 즐거운(?) 회식을 하려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퇴근 이후에는 어디에 돈을 쓰는지 빅데이터를 들여다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가·문화·자기계발 관련 업종의 신용카드 이용액이 증가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사무실 인근 유흥, 저녁급식 이용액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여의도 직장인

앞서 나온 4개지역을 다시 볼까요.

광화문에서는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여행업종의 카드 결제액이 56.5% 증가했습니다. 헬스장이나 수영장, 볼링장같은 스포츠레저업종의 카드 사용액도 25% 늘어났습니다.

여의도에서는 스포츠레저 업종의 카드사용이 무려 103.5% 폭증했습니다. 학원에서 쓴 카드 결제액도 66.6% 늘어났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여의도 직장인들입니다.

판교에서는 골프 업종이 93.8%나 급증한게 눈에 띕니다. 가산디지털단지에서는 학원 업종 결제가 84% 늘고 여행 업종도 21.8% 늘어났습니다.

'아 옛날이여'...갈수록 줄어드는 유흥의 입지

운동하고 공부하느라 바빠서겠죠. 사무실 인근의 일반 주점, 노래방, 유흥주점 등 유흥 업종의 소비는 하락추세입니다.

관습헌법과 다름없던 ‘퇴근 후 소주 한 잔’도 점점 옛이야기관습헌법과 다름없던 ‘퇴근 후 소주 한 잔’도 점점 옛이야기

광화문 지역은 9.3%, 판교는 18.4% 줄어들었습니다. 가산디지털단지도 3.2% 줄었는데 여의도는 3% 늘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락 추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회사에서 주는 저녁 식사, 위탁 급식 업종의 카드 이용액도 여의도 64.8%, 광화문 11%, 판교 10.5% 줄었습니다. 저녁밥 먹어가면서까지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겠죠. 다만 가산디지털단지만큼은 30.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52시간제, 먹고 일하고 사랑하라

고용노동부 권기섭 근로감독정책단장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 연간으로 환산하면 줄어든 노동시간이 40시간 정도 되니까, 상당히 생각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나이별로 봤을 때 40대-30대-20대-50대 순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선입견과 달리 '개성 뚜렷한(?)' 젊은 직원보다는 '조직의 중추'인 40대가 주52시간제 혜택을 더 반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2021년부터 모든 사업장 적용, 소상공인 보완책 등 시급

걱정 속에 시작된 주52시간제는 조금씩 우리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습니다. 다만 인건비 등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상공업종에 대한 보완대책도 필요합니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종업원 50~299인 사업장도 주52시간제 적용을 받습니다. 2021년 7월부터는 5~49인 사업장도 제도시행에 들어갑니다.

2년 정도 남은 주52시간제 전면시행, 노동시간 세계 선두권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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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52시간제 ‘워라밸’ 뜨고 ‘한잔의 추억’ 진다
    • 입력 2019-09-11 06:09:02
    • 수정2019-09-11 07:13:45
    취재K
하루 평균 13.5분, 작지만 주목할만한 변화

지난해 7월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주52시간제가 시행됐습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직장인들의 회사 생활과 여가활동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고용노동부가 KT와 BC카드에 빅데이터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회사와 공공기관이 밀집한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가산디지털단지 그리고 경기도 판교의 직장인들이 직장 근처에 몇 시간 머물고, 어디에 돈을 썼는지 들여다봤습니다. 비교 기간은 주 52시간제 시행 전인 18년 3~5월과 시행 후인 19년 3~5월입니다. 조사대상은 15만 3천명입니다.

줄어든 노동시간, 퇴근후 문화생활을 하는 직장인
4개 지역을 평균 내봤습니다.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직장 근처 지역에 머무는 시간, 즉 노동시간은 하루평균 13.5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겨우 13.5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주5일 근무로 환산해보면 주당 67.5분, 한 달이면 270분이니 4시간이 좀 넘는 시간입니다.

OECD 최고수준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계속 늘려가던 우리나라가 월평균 4시간 정도 노동시간을 줄였다는 건 주목할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겠죠.

광화문 직장인 노동시간, 가장 많은 하루평균 39.2분 줄어들어

지역별로 세분해볼까요. 우선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많이 자리 잡은 서울 광화문입니다.

광화문 지역에서는 하루평균 605분이던 노동시간이 565.8분으로 줄었습니다. 하루 39.2분 감소한 것으로 조사대상 4개 지역 중에 가장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금융 업종 대기업이 포진한 서울 여의도는 어떨까요. 하루평균 9.9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626.3분→616.4분) 금융 업종 대기업은 특례제외업종이라 올해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적용됐는데요, 그런데도 3~5월 조사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건 제도시행에 앞서 준비에 들어갔다는 방증입니다.

굵직굵직한 IT 기업이 많은 경기도 판교도 9.7분 감소했습니다. 한 달에 대략 200분, 3시간 정도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주52시간제 제외된 '가디단의 눈물'

IT 관련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많이 자리 잡은 가산디지털단지. 노동시간은 오히려 0.6분 늘어났습니다. 주52시간제 적용을 아직 받지 않는 규모의 업체가 많다 보니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다만 주52시간제 시행은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른바 '워라밸' 가치관이 확산했다고 할까요. 조사대상 4개 지역 모두에서 퇴근 시간이 앞당겨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퇴근 후 시작되는 나를 가꾸는 시간

'부어라 마셔라' 즐거운(?) 회식을 하려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퇴근 이후에는 어디에 돈을 쓰는지 빅데이터를 들여다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가·문화·자기계발 관련 업종의 신용카드 이용액이 증가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사무실 인근 유흥, 저녁급식 이용액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여의도 직장인

앞서 나온 4개지역을 다시 볼까요.

광화문에서는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여행업종의 카드 결제액이 56.5% 증가했습니다. 헬스장이나 수영장, 볼링장같은 스포츠레저업종의 카드 사용액도 25% 늘어났습니다.

여의도에서는 스포츠레저 업종의 카드사용이 무려 103.5% 폭증했습니다. 학원에서 쓴 카드 결제액도 66.6% 늘어났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여의도 직장인들입니다.

판교에서는 골프 업종이 93.8%나 급증한게 눈에 띕니다. 가산디지털단지에서는 학원 업종 결제가 84% 늘고 여행 업종도 21.8% 늘어났습니다.

'아 옛날이여'...갈수록 줄어드는 유흥의 입지

운동하고 공부하느라 바빠서겠죠. 사무실 인근의 일반 주점, 노래방, 유흥주점 등 유흥 업종의 소비는 하락추세입니다.

관습헌법과 다름없던 ‘퇴근 후 소주 한 잔’도 점점 옛이야기
광화문 지역은 9.3%, 판교는 18.4% 줄어들었습니다. 가산디지털단지도 3.2% 줄었는데 여의도는 3% 늘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락 추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회사에서 주는 저녁 식사, 위탁 급식 업종의 카드 이용액도 여의도 64.8%, 광화문 11%, 판교 10.5% 줄었습니다. 저녁밥 먹어가면서까지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겠죠. 다만 가산디지털단지만큼은 30.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52시간제, 먹고 일하고 사랑하라

고용노동부 권기섭 근로감독정책단장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 연간으로 환산하면 줄어든 노동시간이 40시간 정도 되니까, 상당히 생각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나이별로 봤을 때 40대-30대-20대-50대 순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선입견과 달리 '개성 뚜렷한(?)' 젊은 직원보다는 '조직의 중추'인 40대가 주52시간제 혜택을 더 반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2021년부터 모든 사업장 적용, 소상공인 보완책 등 시급

걱정 속에 시작된 주52시간제는 조금씩 우리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습니다. 다만 인건비 등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상공업종에 대한 보완대책도 필요합니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종업원 50~299인 사업장도 주52시간제 적용을 받습니다. 2021년 7월부터는 5~49인 사업장도 제도시행에 들어갑니다.

2년 정도 남은 주52시간제 전면시행, 노동시간 세계 선두권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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