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①

입력 2019.09.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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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6월 11일 방송)’편에 출연해 트럼프의 뉴욕군사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동창생 샌디 매킨토시(Sandy McIntosh)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기고문을 KBS에 보내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중학생 트럼프가 군대에 간 이야기’입니다. 중년 이상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었음직한 군대식 문화를 트럼프는 중고등학생 때 경험한 셈인데, 이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의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매킨토시의 판단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요변수인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번역본을 4편에 걸쳐 싣습니다. 뉴욕에서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매킨토시가 직접 겪고 본 트럼프를 쓴 글이기에 좀 긴 감은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1차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소설처럼 잘 읽히는 편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이 글은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뉴요커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1. 해변의 카멜레온

도널드 트럼프를 처음 만나던 날, 하늘엔 모기떼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1960년 8월, 대서양 연안의 롱비치 아일랜드 클럽에서였다. 도널드 나이 14살, 내 나이 12살 시절이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에 그가 쳐놓은 국방색 군용텐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도널드는 군사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도 곧 그 학교에 입학할 참이었으므로 사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텐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직 안 와 있었다. 4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도널드와 그의 아버지가 해변 오두막 계단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도널드를 심하게 혼내고 있었다.

도널드의 아버지 프레드는 늘 그렇듯 중절모에 검은색 정장의 품위 있는 차림이었다(나는 그가 비치클럽에서 수영복을 입고 쉬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트럼프네 가족은 주말이면 해변 오두막 촌에 오곤 했는데 프레드는 일부러 일광욕을 하고 있는 숙녀들의 뒤편으로 돌아 걸어가면서 중절모에 손을 살짝 얹어 예의를 표시하곤 했다. 도널드를 혼내고 있던 그 날도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프레드는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그러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버지가 훈계를 늘어놓는 동안, 도널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훈계가 끝나고 도널드가 나한테 다가왔을 때,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도널드의 등 뒤의 프레드는 마치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식, 여기 있었군.” 텐트 앞에서 도널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해줄 경고는 이거다. 군사학교에 가면 넌 죽었어. 넌 아직 고통이란 게 뭔지도 모를걸!”

아버지가 저만치 사라지자 도널드는 목청을 높였다. 그리고 군사학교에서 잘못 걸리면 겪어야 할 온갖 고문들의 목록을 늘어놓았다. 그 목록은 오페라 ’미카도‘에 나오는 민스트렐의 목록처럼 아주 길었고, 전혀 즐겁지 않은 내용이었다.

뉴욕군사학교 신입생 당시의 트럼프,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한다. (Sandy McIntosh 제공)뉴욕군사학교 신입생 당시의 트럼프,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한다. (Sandy McIntosh 제공)

처음엔 잔뜩 겁을 집어먹었지만 도널드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 분노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했다. 그 중얼거림은 차라리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독백에 가까웠다.

마침내 도널드의 중얼거림이 멈췄다. 마치 이제야 내가 앞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듯이 그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모기떼들이 널 물어뜯고 있어.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카나스타 카드놀이 할 줄 아니? 내가 가르쳐줄게.”

나는 카멜레온처럼 돌변한 그의 태도에 살짝 당황했다. 한편으론 그가 쏟아낸 분노에 얼떨떨했고 다른 한편으론 갑작스러운 친절에 고맙기도 했다.

도널드와 말을 섞어본 건 그 날이 처음이었지만, 그는 늘 해변과 수영장에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

비치클럽은 아이들에게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하고 싶은 짓은 다 할 수 있었다. 부모들이 수영을 하거나 테니스를 치거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면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신 지켜봐주는 게 클럽의 분위기였다.

나는 2살이 어려서 도널드 패거리와 몰려다니지 않았지만 그 패거리는 개구쟁이질과 괴롭힘으로 유명했다. 내 또래 아이들이 혼나는 경우라 해봤자 남의 해변오두막을 휘젓고 다니거나 빈 탈의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는 정도였는데 깡패 같은 도널드 패거리는 훨씬 심한 짓들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훔치기도 하고, 유리병을 깨서는 주차장에 깔아놓고 차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본다고 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다. 내가 본 것은 일요일 오후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는데, 트럼프와 친구들은 수영장 다이빙대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정장 차림으로 교회에 다녀오는 가족들이 옆으로 지나갈 때를 노려서 풍덩하고 뛰어들곤 했다. 도널드는 마치 키 큰 왜가리처럼 다이빙대 꼭대기에 꼼짝도 않고 서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가 수영장으로 뛰어내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벼락을 날렸다. 이런 장난을 어른들이 언제나 눈감아주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럴 때마다 도널드는 다른 애가 한 짓이라 우겨대곤 했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걸로 악명이 높았지만 도널드는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아마도 도널드 아버지가 그러지 말라고 일러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우리 아버지가 비치클럽에서 유도 시범행사를 연 적이 있었다. 내가 유도 강사와 엎어치기 시범을 보이는 걸 도널드가 보고 있었다. 내가 도널드더러 매트로 올라오라고 하자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잠시 후 뭐 하고 있나 돌아봤더니 가버리고 없었다.

2. 2명의 문제아

내가 도널드를 정식으로 소개받았던 그 여름, 그는 뉴욕군사학교에 입학한 지 1년 정도된 상태였다. 그전에는 뉴욕 퀸스의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도널드는 그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싸웠노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나중에 전기작가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을 좋아해요. 몸으로 하는 싸움을 포함해서 어떤 종류든.” 아버지가 그 학교의 거물급 기부자였으므로 도널드의 행동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도널드는 중상류층 동네인 자마이카 주택단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요란한 말썽을 부리고 다녔다. 아버지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이야 스위치블레이드 칼(단추를 누르면 칼날이 튀어나오는 칼)을 모으고 있었거든.” 도널드가 내게 말했다. “난 말이야 신발에 징을 박고 다니기도 했지. 모두들 내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말이야. 깡다구 있는 꼬마 후레자식(tough-ass little motherfucker)이었지!”

트럼프는 초등학교 시절 잭나이프를 수집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협했다고 매킨토시는 말한다.(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 편의 삽화)트럼프는 초등학교 시절 잭나이프를 수집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협했다고 매킨토시는 말한다.(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 편의 삽화)

1959년쯤 프레드 트럼프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국 육군사관학교와 5마일 정도 떨어진, 뉴욕 북부의 뉴욕군사학교를 알게 되었다. “그 학교에 들어가니까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나중에 도널드가 내게 말했다.

반면에 나는 요란스러운 아이가 아니었다. 진보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공부도 했지만 불어와 독일어, 뜨개질, 코바늘 뜨개질, 양초 만들기, 목공 그리고 의상제작 등을 배웠다. 게다가 큰 고모는 내가 여섯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배워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열 살, 열한 살 무렵에 나는 거의 6피트짜리 스카프를 짤 수 있었는데 운동에는 통 관심이 없었다. 유도만 예외였는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우아한 무술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걱정이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열정적인 분이셨다. 그 진보학교의 새 체육관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을 맡게 되자 아버지는 기꺼이 형과 나를 그 학교에 입학시키셨다. 그런데 이 결정을 미심쩍어 하던 중에 교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뭔가 더 미심쩍은 걸 알게 되셨다. 교장이 말하길, 그 진보학교의 철학은 천사의 감화와 영적인 세계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 은혜로운 접신을 너무 확신한 나머지, 교장은 거액의 학교 공금을 주식시장에 투자했노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영의 세계로부터 강림한 사자는 자메이카 태생의 6학년 학생이었는데 이 아이가 교장에게 투자 방향을 일러주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내가 뜨개질이나 피아노 연주에 빠져 있다는 걸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나서 걱정이 많아지셨다.

아버지는 비치클럽을 통해 프레드 트럼프를 알고 지내셨는데 가끔 그의 프로젝트에 투자금을 모아주면서 사업상으로도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프레드와 함께 나의 장래를 상의했다. 프레드는 뉴욕군사학교에 간 1년 사이에 도널드가 확 바뀌었다고 했다. 그 학교가 도널드를 사나이로 만들었다고 자랑했는데 그게 결정타였다.

아버지가 내 걱정을 많이 하는 걸 알고 있던 프레드는 제안을 했다. 도널드한테 그 학교에서 내 멘토 역할을 하라고 일러두겠노라고 했다. 대신에 아버지가 뉴욕군사학교의 과학관 신축을 위한 모금에 힘써주면 학교 관계자들한테 부탁해서 수주계약을 따내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프레드는 이미 학교와 그런저런 사업상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버지는 동의했다.

3. 용의 세상

아버지는 학교로 가는 도중에 내가 도망칠 거라 생각하셨다. 그래서 캐딜락 뒷좌석에 덩치 큰 아저씨들 둘을 태운 다음 둘 사이에 나를 앉히고 허드슨강을 거슬러 뉴욕군사학교까지 차를 몰았다.

‘저기가 학교야’ 운전석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멀리 사암으로 지은 요새가 보였다. 총구들이 숭숭 뚫려 있었다. 고가교를 내려가고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길을 지나면서 나는 공룡 뼈다귀처럼 생긴 것들에 놀라고 말았다. 나무 꼭대기 위로 먹이를 노리고 있는 공룡 머리통 같은 것들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그것들은 녹슨 포탄 잔해들이었다. 포신 4~5미터짜리 남북전쟁 시절 대포는 나무바퀴가 부러져 있었는데 거기다가 작은 철판들을 덧대 놓았다. 정문을 지나면서 저 멀리 연병장에서 학생들이 제식훈련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의 발걸음은 완벽하게 일치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지네가 꼬물거리는 것 같았다.

뉴욕군사학교 입구뉴욕군사학교 입구

우리는 좀 일찍 도착했다. 견장을 단 회색 군복에 허리엔 칼을 차고 있던 상급생이 와서 말해주었다. 신입생들에게 학교를 구경시켜 주고 오리엔테이션을 시켜줄 선배들은 17시는 넘어야 올 거라고 했다. 나는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수영장으로 가려고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 나는 도널드가 다이빙대에 있는 걸 발견했다.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그때 도널드가 첨벙 소리를 내며 뛰어내렸다. 지나던 다른 학생들은 물벼락을 맞았다. 나는 일광욕을 하려고 셔츠를 벗어 수건 위에 올려놓고는 선베드에 엎드렸다.

한 무리의 커다란 새들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가 싶더니 내 등에 뭔가가 철퍼덕하고 떨어진 것 같았다. "우웩!"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놈의 새가 쟤 등에 똥 쌌어.'

나는 수건으로 새똥을 닦았다.

마치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에 나오는 엄청 재수 없는 대사를 듣는 기분이었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비엔나 엑센트의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Sandy McIntosh(작가)/(번역: 박성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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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가 군대 간 이야기①
    • 입력 2019-09-12 08:01:51
    취재K
〈역자 주〉
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6월 11일 방송)’편에 출연해 트럼프의 뉴욕군사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동창생 샌디 매킨토시(Sandy McIntosh)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기고문을 KBS에 보내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중학생 트럼프가 군대에 간 이야기’입니다. 중년 이상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었음직한 군대식 문화를 트럼프는 중고등학생 때 경험한 셈인데, 이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의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매킨토시의 판단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요변수인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번역본을 4편에 걸쳐 싣습니다. 뉴욕에서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매킨토시가 직접 겪고 본 트럼프를 쓴 글이기에 좀 긴 감은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1차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소설처럼 잘 읽히는 편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이 글은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뉴요커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1. 해변의 카멜레온

도널드 트럼프를 처음 만나던 날, 하늘엔 모기떼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1960년 8월, 대서양 연안의 롱비치 아일랜드 클럽에서였다. 도널드 나이 14살, 내 나이 12살 시절이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에 그가 쳐놓은 국방색 군용텐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도널드는 군사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도 곧 그 학교에 입학할 참이었으므로 사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텐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직 안 와 있었다. 4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도널드와 그의 아버지가 해변 오두막 계단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도널드를 심하게 혼내고 있었다.

도널드의 아버지 프레드는 늘 그렇듯 중절모에 검은색 정장의 품위 있는 차림이었다(나는 그가 비치클럽에서 수영복을 입고 쉬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트럼프네 가족은 주말이면 해변 오두막 촌에 오곤 했는데 프레드는 일부러 일광욕을 하고 있는 숙녀들의 뒤편으로 돌아 걸어가면서 중절모에 손을 살짝 얹어 예의를 표시하곤 했다. 도널드를 혼내고 있던 그 날도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프레드는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그러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버지가 훈계를 늘어놓는 동안, 도널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훈계가 끝나고 도널드가 나한테 다가왔을 때,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도널드의 등 뒤의 프레드는 마치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식, 여기 있었군.” 텐트 앞에서 도널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해줄 경고는 이거다. 군사학교에 가면 넌 죽었어. 넌 아직 고통이란 게 뭔지도 모를걸!”

아버지가 저만치 사라지자 도널드는 목청을 높였다. 그리고 군사학교에서 잘못 걸리면 겪어야 할 온갖 고문들의 목록을 늘어놓았다. 그 목록은 오페라 ’미카도‘에 나오는 민스트렐의 목록처럼 아주 길었고, 전혀 즐겁지 않은 내용이었다.

뉴욕군사학교 신입생 당시의 트럼프,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한다. (Sandy McIntosh 제공)
처음엔 잔뜩 겁을 집어먹었지만 도널드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 분노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했다. 그 중얼거림은 차라리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독백에 가까웠다.

마침내 도널드의 중얼거림이 멈췄다. 마치 이제야 내가 앞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듯이 그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모기떼들이 널 물어뜯고 있어.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카나스타 카드놀이 할 줄 아니? 내가 가르쳐줄게.”

나는 카멜레온처럼 돌변한 그의 태도에 살짝 당황했다. 한편으론 그가 쏟아낸 분노에 얼떨떨했고 다른 한편으론 갑작스러운 친절에 고맙기도 했다.

도널드와 말을 섞어본 건 그 날이 처음이었지만, 그는 늘 해변과 수영장에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

비치클럽은 아이들에게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하고 싶은 짓은 다 할 수 있었다. 부모들이 수영을 하거나 테니스를 치거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면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신 지켜봐주는 게 클럽의 분위기였다.

나는 2살이 어려서 도널드 패거리와 몰려다니지 않았지만 그 패거리는 개구쟁이질과 괴롭힘으로 유명했다. 내 또래 아이들이 혼나는 경우라 해봤자 남의 해변오두막을 휘젓고 다니거나 빈 탈의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는 정도였는데 깡패 같은 도널드 패거리는 훨씬 심한 짓들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훔치기도 하고, 유리병을 깨서는 주차장에 깔아놓고 차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본다고 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다. 내가 본 것은 일요일 오후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는데, 트럼프와 친구들은 수영장 다이빙대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정장 차림으로 교회에 다녀오는 가족들이 옆으로 지나갈 때를 노려서 풍덩하고 뛰어들곤 했다. 도널드는 마치 키 큰 왜가리처럼 다이빙대 꼭대기에 꼼짝도 않고 서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가 수영장으로 뛰어내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벼락을 날렸다. 이런 장난을 어른들이 언제나 눈감아주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럴 때마다 도널드는 다른 애가 한 짓이라 우겨대곤 했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걸로 악명이 높았지만 도널드는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아마도 도널드 아버지가 그러지 말라고 일러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우리 아버지가 비치클럽에서 유도 시범행사를 연 적이 있었다. 내가 유도 강사와 엎어치기 시범을 보이는 걸 도널드가 보고 있었다. 내가 도널드더러 매트로 올라오라고 하자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잠시 후 뭐 하고 있나 돌아봤더니 가버리고 없었다.

2. 2명의 문제아

내가 도널드를 정식으로 소개받았던 그 여름, 그는 뉴욕군사학교에 입학한 지 1년 정도된 상태였다. 그전에는 뉴욕 퀸스의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도널드는 그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싸웠노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나중에 전기작가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을 좋아해요. 몸으로 하는 싸움을 포함해서 어떤 종류든.” 아버지가 그 학교의 거물급 기부자였으므로 도널드의 행동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도널드는 중상류층 동네인 자마이카 주택단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요란한 말썽을 부리고 다녔다. 아버지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이야 스위치블레이드 칼(단추를 누르면 칼날이 튀어나오는 칼)을 모으고 있었거든.” 도널드가 내게 말했다. “난 말이야 신발에 징을 박고 다니기도 했지. 모두들 내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말이야. 깡다구 있는 꼬마 후레자식(tough-ass little motherfucker)이었지!”

트럼프는 초등학교 시절 잭나이프를 수집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협했다고 매킨토시는 말한다.(시사기획 창 ‘트럼프의 선택은?’ 편의 삽화)
1959년쯤 프레드 트럼프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국 육군사관학교와 5마일 정도 떨어진, 뉴욕 북부의 뉴욕군사학교를 알게 되었다. “그 학교에 들어가니까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나중에 도널드가 내게 말했다.

반면에 나는 요란스러운 아이가 아니었다. 진보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공부도 했지만 불어와 독일어, 뜨개질, 코바늘 뜨개질, 양초 만들기, 목공 그리고 의상제작 등을 배웠다. 게다가 큰 고모는 내가 여섯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배워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열 살, 열한 살 무렵에 나는 거의 6피트짜리 스카프를 짤 수 있었는데 운동에는 통 관심이 없었다. 유도만 예외였는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우아한 무술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걱정이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열정적인 분이셨다. 그 진보학교의 새 체육관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을 맡게 되자 아버지는 기꺼이 형과 나를 그 학교에 입학시키셨다. 그런데 이 결정을 미심쩍어 하던 중에 교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뭔가 더 미심쩍은 걸 알게 되셨다. 교장이 말하길, 그 진보학교의 철학은 천사의 감화와 영적인 세계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 은혜로운 접신을 너무 확신한 나머지, 교장은 거액의 학교 공금을 주식시장에 투자했노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영의 세계로부터 강림한 사자는 자메이카 태생의 6학년 학생이었는데 이 아이가 교장에게 투자 방향을 일러주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내가 뜨개질이나 피아노 연주에 빠져 있다는 걸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나서 걱정이 많아지셨다.

아버지는 비치클럽을 통해 프레드 트럼프를 알고 지내셨는데 가끔 그의 프로젝트에 투자금을 모아주면서 사업상으로도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프레드와 함께 나의 장래를 상의했다. 프레드는 뉴욕군사학교에 간 1년 사이에 도널드가 확 바뀌었다고 했다. 그 학교가 도널드를 사나이로 만들었다고 자랑했는데 그게 결정타였다.

아버지가 내 걱정을 많이 하는 걸 알고 있던 프레드는 제안을 했다. 도널드한테 그 학교에서 내 멘토 역할을 하라고 일러두겠노라고 했다. 대신에 아버지가 뉴욕군사학교의 과학관 신축을 위한 모금에 힘써주면 학교 관계자들한테 부탁해서 수주계약을 따내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프레드는 이미 학교와 그런저런 사업상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버지는 동의했다.

3. 용의 세상

아버지는 학교로 가는 도중에 내가 도망칠 거라 생각하셨다. 그래서 캐딜락 뒷좌석에 덩치 큰 아저씨들 둘을 태운 다음 둘 사이에 나를 앉히고 허드슨강을 거슬러 뉴욕군사학교까지 차를 몰았다.

‘저기가 학교야’ 운전석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멀리 사암으로 지은 요새가 보였다. 총구들이 숭숭 뚫려 있었다. 고가교를 내려가고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길을 지나면서 나는 공룡 뼈다귀처럼 생긴 것들에 놀라고 말았다. 나무 꼭대기 위로 먹이를 노리고 있는 공룡 머리통 같은 것들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그것들은 녹슨 포탄 잔해들이었다. 포신 4~5미터짜리 남북전쟁 시절 대포는 나무바퀴가 부러져 있었는데 거기다가 작은 철판들을 덧대 놓았다. 정문을 지나면서 저 멀리 연병장에서 학생들이 제식훈련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의 발걸음은 완벽하게 일치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지네가 꼬물거리는 것 같았다.

뉴욕군사학교 입구
우리는 좀 일찍 도착했다. 견장을 단 회색 군복에 허리엔 칼을 차고 있던 상급생이 와서 말해주었다. 신입생들에게 학교를 구경시켜 주고 오리엔테이션을 시켜줄 선배들은 17시는 넘어야 올 거라고 했다. 나는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수영장으로 가려고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 나는 도널드가 다이빙대에 있는 걸 발견했다.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그때 도널드가 첨벙 소리를 내며 뛰어내렸다. 지나던 다른 학생들은 물벼락을 맞았다. 나는 일광욕을 하려고 셔츠를 벗어 수건 위에 올려놓고는 선베드에 엎드렸다.

한 무리의 커다란 새들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가 싶더니 내 등에 뭔가가 철퍼덕하고 떨어진 것 같았다. "우웩!"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놈의 새가 쟤 등에 똥 쌌어.'

나는 수건으로 새똥을 닦았다.

마치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에 나오는 엄청 재수 없는 대사를 듣는 기분이었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비엔나 엑센트의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Sandy McIntosh(작가)/(번역: 박성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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